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07화
카리오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끔찍한 고통으로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고, 캐러독 경은 자신의 주먹 한 방에 정신을 잃은 그를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노려보며 등 뒤로 손짓했다.
“부르셨습니까, 캐러독 경!”
그러자 방 안으로 펠릭스 기사단의 정복을 걸친 수십 명의 기사가 쏟아져 들어왔다. 캐러독 경은 완전무장한 그들에게 침대 위에 기절해 있는 첩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하 감옥으로 끌고 가. 처분은 내가 직접 한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당장 병사들을 보내 기사단의 시녀 피아스와 보석상 샤일록이라는 자를 붙잡아다 감옥에 가두고 심문해. 그리고 그들 말고도 성내에 다른 첩자가 있는지, 지금껏 어떤 정보를 빼내 앨버튼 공작과 황실에 제공했는지에 대해 실토하기 전엔 잠도 재우지 말고 물 한 모금도 주지 마.”
“명 받들겠습니다.”
캐러독 경의 명령에 침실을 가득 채운 기사들과 병사들은 살짝 몸을 숙여 예를 표한 후, 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가짜 카리오’를 짐짝처럼 들고 침실 밖을 빠져나갔다.
“…….”
캐러독 경은 멀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싸늘한 시선으로 좇았다. 그 후, 그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손에 쥔 양피지 조각을 품 안에 끼워 넣고는 빠르게 침실 밖을 나와 어딘가로 향하며 휘파람으로 전서구를 불렀다.
‘제물’을 찾았으니, 이제 ‘의식’을 집행할 때였다.
* * *
제국의 수도, 중심부에 위치한 세인트 로드 저택.
개국한 이래 수십 번도 더 주인이 바뀐 그 저택은 예로부터 수도에 진출해 중앙 권력을 손에 넣고자 하는 지방 귀족들과 공을 세워 작위를 받고 막 귀족이 된 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과도 같은 저택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다지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외관에 그리 크지 않은 세인트 로드 저택이 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 이유는 바로 저택의 위치 때문이었다.
세인트 로드 저택에서 두어 블록을 지나면 황족들의 저택이 밀집한 로열 스트리트가 있고, 불과 한 블록 뒤엔 제국에서 가장 많은 수의 황후와 황태자비를 배출해 낸 명문 귀족가 앨버튼 공작의 저택이 위치한 그곳은 신흥 귀족들에게 권력의 집결지 같은 곳이었다.
귀족들은 황실과 고위 귀족들이 심심하면 열어 대는 파티에 관한 소문을 듣기 쉽고, 세인트 저택을 지나며 마주치는 그들과 알음알음 친분을 쌓아 중앙 권력에 진출한 세인트 로드의 전 주인들을 동경했고, 그 전주인들이 더 좋은 저택을 찾아 그곳을 떠나면 앞다투어 그 저택을 손에 넣기 위해 막대한 재산을 싸들고 모여들었다.
그 치열한 경쟁 끝에 겨우 세인트 로드 저택의 주인이 된 러슬 백작은 지금 적잖이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그가 마호가니 원목으로 된 고급스러운 책상을 두꺼운 손바닥으로 탕탕 두들기며 자신의 앞에 선 시종장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댔다.
“앨버튼 공작께서 또 우리 가문의 초대를 거절했다고? 시종장, 제대로 격식을 갖춰서 초대장을 보낸 것이 맞나?”
“……예, 예. 물론입니다. 앨버튼 공작 부인께서 보석을 좋아하신다기에 초대장에 최고급 흑진주까지 달아서 보냈는걸요.”
“빌어먹을! 그런데도 답장이 없단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다이아몬드라도 박아서 보내! 그럼 무슨 답장이라도 오겠지! 만일 그것도 안 된다면 앨버튼 공작가의 시종장이라도 매수해! 그래서 어떻게든 다음 달 우리 딸 로잘린느의 생일 파티에 앨버튼 가문의 사람이 오게 하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러슬 가의 시종장은 새빨개진 목으로 연신 호통을 치는 러슬 백작의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연신 굽실거렸다.
다행히 그 노력이 통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몸만 투실투실하지 부실하기 짝이 없는 체력이 다한 것인지 러슬 백작이 뱀 같은 눈으로 허리를 굽힌 시종장에게 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럼 당장 나가 봐! 가서 다시 초대장을 보내!”
“……네, 백작님.”
시종장은 기다렸다는 듯 허둥지둥 문밖으로 나왔다. 그 후, 육중한 무게의 문이 닫히고 복도를 걸어 나온 시종장은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백작의 서재가 있는 복도를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건지.”
시종장은 혀를 쯧, 차며 서재가 있는 2층에서 응접실과 자신의 침실이 있는 1층으로 내려왔다. 앨버튼 공작가로 보낼 초대장을 쓰기 위해서였다.
또다시 이전처럼 돌아오지 않을 테지만 뭘 어쩌겠는가. 고작 시종장인 자신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야만 했다. 그는 곧장 1층 자신의 침실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손에 최고급 양피지로 만들어진 초대장을 갖고 나온 시종장은 곧장 저택의 정문으로 향했다. 약 30분 후, 세인트 로드 저택 앞으로 앨버튼 공작의 마차가 지나갈 텐데 그때 이 초대장을 직접 전할 생각이었다.
지금까진 앨버튼 공작가의 시종을 통해 전하느라 답을 듣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공작에게 직접 전하는 것이니 어떤 식으로든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시종장은 절박한 얼굴로 길게 이어진 정원을 지나 정문으로 향했다.
“응? 저게 뭐지?”
그런데, 정문 앞에 도달한 시종장은 철창문 너머로 보이는 희한한 풍경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택 앞, 마차가 지나는 돌길에 수십 마리의 까마귀가 둥글게 모여 시끄럽게 우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종장은 고막을 찢을 듯 시끄럽게 울어 대는 까마귀 소리에 귀를 틀어막으며 투덜거렸다.
“젠장, 또 어느 높으신 분의 마차가 동물을 치고 지나간 모양이지?”
시종장은 연신 투덜거리며 허리에 차고 있던 열쇠 꾸머리에서 한 개의 열쇠를 빼내 정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수십 마리의 까마귀들이 둘러싸고 있는 사체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몰려 있는 까마귀들을 손으로 쫓으며 다가갔다.
이윽고 그의 눈앞에 까마귀들이 새까맣게 뒤덮고 있는 사체가 보인 순간, 그는 비명을 지르며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으아아악――!”
그것은 동물의 사체가 아니라, 한 사내의 시체였다. 죽음을 맞이한 지 며칠은 된 듯 보이는 그 시체는 하체만 겨우 낡은 바지로 가리고 상체는 전부 드러낸 채 팔이 기괴하게 꺾여 있었다.
기괴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체의 드러난 상체 위에 핏빛 독수리 인장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한눈에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아본 시종장이 사색이 된 채 중얼거렸다.
“……저, 저주, 저주다. 누군가 황실에 저주를 내린 거야.”
시체에 새겨진 핏빛 독수리 인장. 제국에서 독수리를 가문의 새로서 사용할 수 있는 건 단 한 가문, 황실뿐이었다.
시종장은 사색이 된 채 몸을 빼며 도망치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자 곧 또다시 비명을 지르며 저택 안으로 도망쳤다.
그가 도망친 자리에는 그가 짓밟은 초대장만이 구겨진 채 뒹굴었다.
* * *
러슬 가에서 기괴한 남성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은 곧 수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사람을 해친 것도 모자라 감히 황실의 인장으로 저주를 행했다는 소식에 황제는 당장 관리를 파견해 사건을 조사하게 했고, 이 일을 벌인 범인을 찾기 위해 근위군을 파견했다.
그러나,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 일을 시작으로 수도에는 괴이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러슬 백작가의 세인트 로드 저택 앞에 기괴한 시체가 발견된 후 약 3일 뒤, 로열 스트리트에 위치한 에이언 후작의 저택 앞에 피가 전부 뽑힌 흰 올빼미의 사체가 기괴한 문양을 단 채 버려져 있던 것이 시녀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그로부터 약 이틀 뒤, 황제를 모시는 로쉬 백작의 저택 앞에서는 죽은 독수리와 함께 러슬 백작가에서 그랬듯 가슴에 핏빛 독수리 인장이 새겨진 신원 미상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고작 일주일 사이, 신원을 알 수 없는 두 구의 시신이 황실을 상징하는 인장을 단 채 발견되자 수도는 발칵 뒤집혔다.
황제는 길길이 날뛰며 당장 범인을 찾으라 명령했고, 이에 근위군뿐만 아니라 수도를 방위하는 군대까지 전부 나서 범인을 수색했지만, 흉측한 짓을 벌인 이를 찾아내지 못했다.
수사는 답보 상태에 빠졌고, 불안에 빠진 시민들은 무능한 황실 근위군과 수도 방위군을 손가락질하며 민심은 날로 흉흉해졌다.
그러던 그때, 빈민가에서는 불경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 모든 불길한 일이 사실은 누군가 황실을 저주해서가 아니라, 황실에 내려진 저주 때문이라는 소문이었다.
그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사실 황실에는 제국민들이 모르는 수상한 저주가 내려졌고, 황제는 그 저주를 풀기 위해 앨버튼 공작과 손잡고 수상한 마법을 사용했다.
또한 그 수상한 마법을 실행하기 위해선 사람의 피가 필요한데, 그 피를 얻기 위해 수도원에 감금된 광증 환자들을 이용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로열 스트리트와 앨버튼 공작가의 주변에 버려진 시신들은 바로 황실이 앨버튼 공작과 짜고 수상한 마법을 벌이다 죽은 광증 환자들이라는 거였다.
그 소문에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신빙성이 있다고 떠들어 댔다. 그렇게 사람들이 각자 한두 마디씩 보태며 소문은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소문은 또 다른 소문을 낳고, 명확히 해결되지 않는 상황은 또 다른 의혹을 낳았다.
그렇게 점점 황실과 앨버튼 공작을 향한 흉흉한 소문이 수도를 넘어 제국 전역으로 퍼지던 그때, 범인은 그들을 비웃듯 네 번째 범행을 저질렀다.
이번에 사건이 벌어진 곳은 앨버튼 공작가의 저택 앞이었다.
“꺄아아악――!”
이른 새벽, 잠이 오지 않아 저택 앞을 산책하던 시녀의 비명이 고요한 앨버튼 공작가의 저택을 발칵 뒤집었다.
또다시 발견된 신원 미상의 시신과 그 시신의 가슴에 새겨진 핏빛 독수리, 그리고 그 주변에 떨어져 있는 수십 개의 흰 올빼미 깃털.
사람들은 그 모습에서 앨버튼 공작의 권위를 정면에서 부정하고자 하는 범인의 악의를 느끼고 두려워했다.
“세, 세상에 어떻게 또 이런 일이!”
“세 번째 사건이 터지고 한 며칠 잠잠하다 싶더라니!”
“대체 누가 이런 흉측한 짓을 벌이는 걸까요? 정말 소문처럼 정말 황실에 저주가 내려서 앨버튼 공작과 짜고 수상한 짓을 벌이다 이 사달이 난 걸까요?”
“어머, 후작 부인! 말조심하세요! 이러다 황실 근위군 귀에 들어가면 어떡하려고요!”
적잖이 흉측하고 기괴한 현장임에도, 앨버튼 저택 밖은 그것을 구경하기 위한 황족들과 귀족들로 바글거렸다.
그런 그들의 뒤에 평범한 차림을 한 기사 한 명이 서 있었다. 그는 연신 경망스럽게 소문에 대해 떠들어 대는 그들의 말을 엿들으며 짧게 웃은 후, 슬쩍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당연하게도 그런 그를 주목하는 이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