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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06화 (106/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06화

“……그레이스.”

“사실 당신이 반역을 언급했을 때, 난 당신 뜻에 동조하면서도 두렵고 불안했어요. 나와 당신이 겪은 일에 대한 증언과 칼딘 경의 추정만으로는 제국 귀족들의 지지가 굳건한 황제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이 이길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죠.”

“타당한 생각이십니다.”

“하지만 레이나 영애의 증언이 나온 이상, 상황은 달라졌어요. 이 사실이 레이나 영애의 가문은 물론, 지금껏 당신의 저주 때문에 딸을 잃고 황제파에 섰던 귀족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당장 그들의 굳건한 지지는 흔들리게 되겠죠. 황제가 제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황태자를 위해 그들의 자식들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희생시킬 수 있는 작자라는 걸 알게 된다면 그들도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치는 걸 경계하게 될 테니까요.”

“……그럴 테죠.”

“그리고, 그렇게 되면 황제를 등에 업고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망쳐 놓은 앨버튼 공작 또한 나락에 떨어질 테고요.”

아서는 복수로 파랗게 불꽃이 타오르는 그레이스의 아름다운 눈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런 그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곧은 시선으로 말했다.

“그러니 아서, 군비라든가 갑작스러운 군의 차출로 인한 문제로 다소 부담스럽더라도 이 이상 지체할 것 없이 곧장…….”

그레이스가 다시 한번 조심스레 아서의 이름을 불러 운을 띄우곤 간곡한 설득을 늘어놓으려던 그때, 아서가 다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알겠습니다. 당장 내 휘하의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언제라도 전쟁을 치를 수 있도록 채비를 앞당기라고 명령하겠습니다.”

“……아서.”

“더불어 위그 백작 가문과 로이엔느 공국에도 서신을 띄우도록 하죠. 그녀들의 죽음과 광증의 비밀을 알고 싶다면 펠릭스 성으로 오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아서의 시선은 조금 전 그레이스의 푸른 눈에서 타오르던 강렬한 감정이 옮겨붙은 듯 굳건했다.

그레이스는 망설임 없는 아서의 대답에 감동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자신의 주장이 얼마나 그에게 부담이 되는 일인지 그가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망설임 없이 그러겠노라 대답해 주는 그의 마음에 감격했다.

그레이스가 맞잡은 아서의 손 위로 짧게 키스하며 말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하실 것 없습니다. 잊으셨습니까? 나 또한 그자들에게 진 원한이 크다는 걸.”

“……아서.”

“그러니 부인께서는 앞으로의 모든 일은 내게 맡겨 두시고, 당신은 당신의 행복에만 집중하세요.”

아서는 두 손을 맞잡은 채로 몸을 일으켜 가까워진 그레이스의 이마 위로 짧게 입맞춤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장난을 칠 때의 레온처럼 다소 짓궂게 웃으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그리고 사실 나중에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만, 부인께서 내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신 그날, 당장 기사들을 시켜 손을 좀 써 두었습니다. 지금껏 그들이 나와 내 가문을 괴롭혔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말입니다.”

“……손이요? 어떤…….”

“그건 앞으로의 즐거움을 위해 잠시 비밀로 해 두겠습니다. 아마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아시게 될 겁니다.”

아서는 그렇게 대꾸하며 잡았던 그레이스의 손을 놓은 후, 양손으로 그녀의 뺨을 감싸 쥐었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뺨에 닿은 아서의 따뜻한 손에 제 얼굴을 기대며 자신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그를 꿀이 떨어질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 사람은 이렇게 날 생각해 주고, 한결같이 날 안심시켜 줄까.’

늘 자신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주고, 자신이 원한다면 무엇이든 하겠노라 선언하고, 또 그렇게 하는 아서가 그레이스는 사랑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레이스는 충동적으로 눈을 꼭 감으며 자신과 한 뼘도 되지 않은 거리에서 웃고 있는 아서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곧이어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맞닿고, 그 모습에 살짝 놀란 듯 커졌던 아서의 눈이 조용히 감겼다.

그렇게 두 사람은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입맞춤을 나누었다. 올리버 경과 칼딘 경이 차와 디저트를 가져올 때까지, 계속.

* * *

펠릭스 성의 하늘 위로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시각, 펠릭스 공작 부인이 거주하는 별채에 근무하는 시녀들과 시종들은 저택 외곽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이유인즉 자신들이 모시는 별채의 주인이 이른 오전부터 시녀장인 샐리를 제외한 모두에게 별채 출입을 금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하릴없이 시간만 죽이게 된 그들은 각자 저택 내의 다른 소일거리를 찾아 하나둘 흩어졌다.

그런 그들 중, 유난히 인상이 흐릿한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하나둘 저택 내 다른 곳으로 흩어지는 다른 시종들과 시녀들을 살피며 눈치를 보다가 조용히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그 후, 청년은 시종들의 숙소로 향하더니 자신의 침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여 자신과 같은 침실을 쓰는 마구간지기 잭이 돌아와 있다면 다시 침실을 나갈 생각이었다.

다행히 청년이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잭의 침대는 비어 있었고, 한쪽 벽을 꽉 채운 옷장 또한 꽉 닫혀 있었다. 다행히 잭이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후우…….”

청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침대 옆으로 걸어가 배게 밑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잠시 그 아래를 손바닥으로 더듬던 청년은 이윽고 그 밑에서 짧은 깃펜과 양피지 조각을 찾아냈다. 그러더니 한 손에 전부 들어올 만큼 짧은 깃펜을 쥐고 손바닥보다 작은 양피지 조각 위로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 작은 양피지 조각 위에 빼곡히 글을 써넣은 청년이 펜을 침대 옆에 내려놓던 그때―.

“대체 뭘 그리 적고 있는 건가, 카리오.”

청년의 등 뒤에서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누군가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

청년, 카리오는 깜짝 놀라 쥐고 있던 양피지 조각을 황급히 구겨 한 손에 말아쥐고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펠릭스 기사단의 기사이자 현 펠릭스 공작의 측근 중 한 명인 캐러독 경이었다.

캐러독 경이 싸늘한 미소를 띤 채 당황한 카리오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으아악!”

카리오는 마치 자신의 손목을 비틀어 끊어 버리려는 듯 강하게 손목을 움켜쥐는 캐러독 경의 악력에 비명을 지르며 주먹 쥔 손을 풀었다. 그러자 꼭 쥔 그의 주먹에서 구겨진 양피지 조각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 순간 카리오는 다급히 그것을 발로 걷어차려 했지만, 그보다 빠른 캐러독 경의 발길질에 그의 시도는 수포가 됐다.

캐러독 경은 발목을 붙잡고 끙끙 앓는 카리오를 비웃으며 떨어진 양피지 조각을 쥐고 빠르게 적힌 내용을 눈으로 훑었다. 캐러독 경의 눈이 바늘땀보다 작은 글씨를 읽어 내려갈수록 카리오는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잠시 후. 양피지 속에 적힌 내용을 전부 확인한 캐러독 경이 그것을 구겨 손에 움켜쥐었을 때, 카리오는 버둥거리며 침실 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이런, 어딜 가시나.”

그러나 이번에도 그 시도는 간단히 제압되었다.

카리오는 자신의 머리채를 한 손으로 움켜쥔 캐러독 경에 의해 조금 전 그가 양피지 조각을 찾은 침대로 끌려와 머리를 처박혔다.

캐러독 경은 자신에게 머리를 붙잡혀 버둥거리는 카리오의 몸을 다리로 짓누르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펠릭스 성의 비밀을 밖으로 빼돌리는 쥐새끼가 어디에 숨어 있나 했더니, 이리 가까운 곳에 있었을 줄이야.”

“……사, 살려 주십…….”

“살려 달라? 감히 첩자 짓을 하고도 목숨을 부지하길 바라나?”

“……제발……, 목숨만은…….”

“자비라……. 그래, 기회를 원하는가?”

캐러독 경이 묻자, 카리오가 냉큼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캐러독 경은 그의 비굴한 모습에 싸늘하게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저택에 숨어 있는 첩자의 수와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대로 전부 털어놔라. 그럼 살려 주도록 하지.”

“……예!? 그, 그것은…….”

“왜? 못하겠나? 그럼 별수 없지.”

돌아온 카리오의 대답에 캐러독 경은 곧장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빼내 자신의 발아래 짓눌려 있는 그의 가슴에 그 끝을 갖다 댔다.

그랬음에도 카리오가 망설이는 얼굴로 입을 열지 않자, 캐러독 경은 날카로운 검 끝을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살짝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 날카로운 새파란 검날이 그의 싸구려 셔츠를 뚫고 살갗에 파고들 때쯤, 그가 사색이 된 얼굴로 벌벌 떨며 소리쳤다.

“기, 기사단의 시녀 피아스와 그, 그리고 본채를 드나드는 보석상 샤일록입니다!”

“그래? 이 저택에 숨어든 첩자는 그들이 다인가?”

“네, 네! 제가 아는 첩자는 그들이 전부입니다!”

“아는 첩자라 함은, 네가 알고 있는 그들 말고도 다른 놈들이 더 있을 수도 있다는 건가?”

“……아, 아마도 그럴 겁니다! 기, 기사님도 잘 알고 계시다시피 앨버튼 공작은 사람을 잘 믿지 않으니까요. 분명 자, 자신이 보낸 첩자가 붙잡혀 동료들을 밀고할 가능성도 계산해 뒀을 겁니다!”

“음, 일리 있는 말이군.”

캐러독 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몸을 짓누르고 있던 다리의 힘을 살짝 풀었다.

그제야 카리오는 살짝 혈색이 돌아온 얼굴로 비굴하게 캐러독 경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첩자들의 이름을 전부 말했으니, 약속대로 자신을 살려 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카리오가 한껏 비굴한 목소리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캐러독 경을 향해 말했다.

“그, 그럼 이제 절 살려 주시는 거겠지요?”

“……음.”

“저, 전 야, 약속대로 기, 기사님께 전부 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카리오의 애원에 캐러독 경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그는 캐러독 경이 자신을 살려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신으로 바뀌는 것을 느끼며 웃고 있는 캐러독 경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말이야. 네놈을 살려 보내기엔 그동안 네놈 때문에 죽은 내 부하들과 병사들이 너무 많아서 말이지.”

“……윽!”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그러나 카리오의 기대는 명치에 내리꽂힌 캐러독 경의 주먹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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