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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03화 (103/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03화

약 5분간 자욱한 안개를 뚫고 수도원 건물 뒤, 후미진 구석으로 온 작은 덩치의 사내가 걸음을 멈추고는 중얼거렸다.

“……형제는 무슨.”

그러더니 자신의 옆에 수레를 멈춰 세우는 덩치 큰 사내를 향해 말했다.

“우리를 뒤쫓는 자는 없었나, 올리버 경?”

구석에 수레를 세운 덩치 큰 사내, 올리버 경이 살짝 드러난 입가를 부드럽게 끌어 올리며 작은 덩치의 사내에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칼딘 경.”

그 후, 올리버 경은 주변을 경계하며 수레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덮인 천을 걷었다.

“크르르…….”

그러자 두 사람처럼 온몸에 긴 로브로 뒤집어쓴 채 웅크리고 있던 한 형체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것은 사람처럼 팔다리가 달린 생물인데, 로브 아래로 가려진 얼굴 부분에는 세 개의 새빨간 눈과 솟은 코 아래로 뱀처럼 긴 혀가 번들거리는 기괴한 외관을 지녔다.

생물은 펠릭스 성 북쪽과 로이엔느 공국을 관통하는 체가루 산맥에 서식하는 크레아라는 마물로, 오늘 애플튼 수도원 방문을 위해 그들이 특별히 준비한 ‘선물’이었다.

올리버 경은 자신들을 향해 연신 으르렁거리는 크레아의 손목과 발목에 묶인 쇠사슬을 살피며 말했다.

“벌써 고정해 놓은 쇠사슬이 반 넘게 녹았어. 서둘러야겠군. 자칫 잘못하다간 이 녀석이 구속에서 풀려나 수도원 안에서 제대로 날뛰어 보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붙잡혀서 앨버튼 공작에게 끌려갈 테니 말이야.”

“알겠네. 서두르지.”

칼딘 경이 고개를 끄덕인 후, 수도원을 향해 고갯짓했다.

두 사람은 혹여 누군가 자신들의 얼굴을 알아볼세라 로브를 더욱 깊게 눌러쓴 후,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종종 자신들의 곁을 지나는 신관과 수도원 내에 딸린 시종들에게 태연스레 인사를 받거나 건네며 미궁처럼 복잡한 수도원의 복도로 지나 목적지인 지하 병실로 향했다.

“…….”

“……이건.”

이윽고 그들이 애플튼 수도원 내 지하 병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눈앞에 드러난 살풍경한 모습을 보곤 인상을 찡그렸다.

도저히 사람이 지내는 곳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어두운 복도와 그에 대비되는 밝은 병실의 횃불, 그리고 그 아래 드러난 사방의 벽이 철창으로 이루어진 병실과 한가운데 놓인 하나뿐인 침대는 누구라도 밖에서 병실 안에 있는 자를 감시하기 좋게끔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그 안에서 풍기는 독한 술 냄새와 섞인 은은한 피비린내까지, 도저히 병실은커녕 사람이 지내는 곳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만큼 기괴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살풍경한 모습에 섬뜩함을 느낄 새도 없이 빠르게 눈을 돌렸다. 침실 안에 있어야 할 사람, 미쳐 버린 레이나 영애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그때, 방 중앙에 놓여 있던 침대가 작게 꿈틀거렸다. 그러더니 산발을 한 깡마른 여성이 자신의 몸을 덮고 있던 시트를 걷고 몸을 일으켰다.

“올리버 경! 저기!”

그 광경을 가장 먼저 발견한 칼딘 경이 다른 곳을 살피던 올리버 경의 로브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올리버 경은 곧장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빌어먹을.”

그 순간, 올리버 경은 침대에 맥없이 누워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몇 년 전, 자신의 주군과 약혼식을 치른 후 지나친 집착과 광증으로 미쳐 버렸던 여자, 레이나 위그 백작 영애였다.

칼딘 경은 까맣게 죽은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푹 꺼진 눈과 낡은 드레스 자락 아래 드러난 깡마른 몸을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며 올리버 경에게 말했다.

“그놈들, 대체 레이나 영애께 무슨 짓을 저지른 거죠? 펠릭스 성을 떠날 때 정신은 온전치 않았어도 몸만은 건강하셨는데…….”

“……그런 생각은 일단 저분을 펠릭스 성으로 모시고 난 이후에 하도록 하지.”

올리버 경이 짓씹듯 대꾸하며 로브 주머니에 숨겨 두었던 열쇠를 꺼냈다. 그 후, 닫힌 철창문을 열곤 재빨리 침대에 맥없이 앉아 있는 레이나의 곁으로 다가갔다.

자박, 자박.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레이나가 새까맣게 죽어 버린 눈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올리버 경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올리버 경과 눈이 마주친 레이나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러더니 그녀가 갑자기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너! 이 빌어먹을 놈! 괴물 공작의 개! 네가 감히 어디라고 여길 와!”

“……이런!”

“올리버 경!”

레이나의 고함에 올리버 경은 당황하여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고, 철창 밖에서 망을 보던 칼딘 경이 다급히 그를 불렀다.

이러다 소란한 소리를 듣고 신관들이나 앨버튼 공작 혹은 황실 근위군이 들이닥치는 순간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올리버 경은 자신의 손에 입이 틀어막혀 연신 버둥거리는 레이나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죄송합니다, 영애.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올리버 경은 조금 전, 열쇠를 꺼냈던 로브 주머니에서 수면 약이 담긴 작은 유리병을 꺼내 열고는 그 입구를 레이나의 코앞에 가져다 댔다.

“――!”

그러자 충혈된 눈으로 버둥거리던 레이나가 곧 편안한 표정으로 잠에 빠져들었다.

올리버 경은 잠이 든 그녀를 한 팔로 안아 든 뒤, 조금 전까지 그녀가 누워 있던 침대 속에 낡은 베개를 넣어 마치 사람이 누워 있는 것처럼 위장했다.

그 후, 그녀를 안고 병실 밖으로 나온 올리버 경은 품에서 긴 모포를 꺼내 자신에게 내미는 칼딘 경을 향해 말했다.

“약사 말에 따르면, 수면 약의 지속 시간은 최대 여섯 시간이라고 했네.”

“……펠릭스 성까지 무사 귀환하려면 지체할 시간이 없겠군. 얼른 움직이자고.”

“그래.”

올리버 경은 칼딘 경이 내민 긴 모포로 잠든 레이나의 몸을 칭칭 감은 후, 그에게 쥐고 있던 철창의 열쇠를 내밀었다.

그 후, 열쇠를 받아 든 칼딘 경이 다시 문을 잠그는 것을 곁눈질한 올리버 경은 숨소리를 죽인 채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쯤이면 손발을 구속한 쇠사슬을 끊은 마물, 크레아가 수도원 안을 헤집으며 난동을 피우고 있을 텐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올리버 경이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빌어먹을, 아직인가.”

그러던 그때였다.

쿵, 쿵, 쿵!

“크, 큰일이다! 수도원에 마물이 들어왔다!”

“뭐!?”

“벌써 신관 몇 명이 속수무책으로 당했어! 자네도 얼른 대피하게! 기왕이면 다른 신관들에게도 신속히 대피하라고 전해 주고!”

“빌어먹을! 기사 놈들은 지금 어디 있답니까?”

“기사들도 지금 사태를 파악하고 마물을 퇴치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마물이 내뿜는 독이 워낙 강력해서 속수무책이라더군! 그러니, 자네도 마물을 마주치면 상대할 생각 말고 즉시 도망치게!”

“아, 알겠습니다!”

때마침 지상이 발소리로 시끄럽게 울리더니, 신관들의 당황한 듯한 고함이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고서야 올리버 경은 기분 좋게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들이 의도한 대로였다. 그는 철창문을 걸어 잠그고 자신의 곁으로 다급히 달려오는 칼딘 경을 향해 말했다.

“이대로 빠져나가서 곧장 수레 쪽으로 달리지.”

“알겠네. 내 걱정은 말고, 경이나 신경 쓰게.”

“그러는 자네야말로.”

두 사람은 잠시 시선을 교환한 후, 조금 전 그들이 타고 내려왔던 지하실 계단을 단숨에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마물을 피해 정신없이 도망치는 신관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섞여들었다.

그렇게 혼란에 휩싸인 수도원을 손쉽게 빠져나와 수레를 세워 둔 곳까지 무사히 온 두 사람은 잠든 레이나를 수레 위에 눕히고 그 위로 천을 덮어 주었다.

서둘러 달리느라 조금 벗겨진 후드를 다시 깊게 눌러쓴 그들은 조금 전 애플튼 수도원에 발을 들였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위장하고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 후, 빠르게 수레를 끌고 수도원의 입구로 가선 초소 안에서 태평하게 졸고 있는 신관을 향해 소리쳤다.

“이봐! 얼른 일어나게! 지금 이리 태평하게 잠을 잘 때가 아니야!”

“……으, 응? 무, 무슨 일인가?”

여전히 잠이 덜 깬 신관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칼딘 경이 기다렸다는 듯 수도원 본관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지금 수도원 안에 마물이 나타났다네! 어찌나 강력한지, 수도원 내 기사들만으로는 토벌할 수 없는 정도야!”

“뭐, 뭐!? 아니, 어쩌다가……!”

“그래서 지금 대신관님께서 수도원 안의 병력을 소집하는 한편, 당장 수도원을 나가 원군을 요청하는 서신을 전하라고 했다네. 그러니, 자네도 문을 열어 주고 빨리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게! 한시가 급해!”

“아, 알겠네!”

칼딘 경이 다급한 목소리로 채근하자, 여전히 사태 파악이 되지 않은 신관은 허둥지둥 초소에서 뛰어나와 닫힌 철창문 앞에 서서 주문을 외웠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올리버 경과 칼딘 경은 수레를 끌고 빠르게 애플튼 수도원을 빠져나갔다. 칼딘 경은 문을 열어 준 후 멍하니 서 있는 신관을 향해 당부하듯 소리쳤다.

“자네도 얼른 도망치게! 마물이 수도원 밖으로 뛰어나올지도 모르니까!”

“그, 그러겠네!”

그제야 신관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헐레벌떡 어딘가로 달려가 버렸다.

“우습군, 우스워.”

칼딘 경은 그 모습에 재밌다는 듯 낄낄거리며 자신의 앞에서 수레를 끌고 달려가는 올리버 경을 향해 말했다.

“꼬리에 불붙은 양 뛰어가는 꼴 좀 보라지! 수도원 놈들이 하나같이 멍청하고 무능해서 다행이군.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올리버 경?”

“입조심하게. 아직 방심하긴 일러.”

올리버 경은 장난기 가득한 칼딘 경의 말을 냉철하게 받아치고는 더욱더 빨리 수레를 몰았다. 칼딘 경은 그의 일갈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따라 발걸음을 빨리했다.

잠시 후, 말을 세워 둔 곳까지 무사히 온 두 사람은 곧장 나무에 묶어 둔 말고삐를 풀고는 각각 말 위에 올라탔다. 물론, 레이나를 싣고 온 수레를 조각조각 부숴서 숲속에 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올리버 경은 잠이 든 레이나의 몸을 떨어지지 않도록 자신의 등 뒤에 비단 끈으로 단단히 묶은 후, 준비를 마친 칼딘 경을 향해 말했다.

“약효가 떨어질 때까지 앞으로 몇 시간 정도 남았지?”

“대략 다섯 시간 반 정도 남았네.”

“서두르지. 가능한 빨리 펠릭스 성으로 돌아가자고.”

“알겠네!”

짧은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은 각자 타고 있던 말에 채찍을 휘둘렀다.

그러자 두 사람을 태운 말이 시끄럽게 투레질하더니 곧장 뻗은 길을 따라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올리버 경과 칼딘 경은 잠시 고개를 돌려 자신들을 쫓는 추격자는 없는지 확인한 후, 더욱 속도를 높였다.

이윽고 레이나와 두 명의 기사를 태운 말들은 유유히 애플튼 수도원이 있는 땅에서 모습을 감췄다. 마치, 아무 일도 벌이지 않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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