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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02화 (102/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02화

‘젠장…….’

오웬은 분노와 무력감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그에게는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오웬은 으득 이를 갈며 마리안느를 죽일 듯 노려보다 곧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황태자! 지금 어디 가는 겁니까?”

황후가 그를 불러세웠지만 오웬은 대답 없이 태양의 방 문 앞으로 걸어가 문을 거칠게 열고 나가 버렸다.

쾅―!

오웬의 속마음을 대변하듯 시끄럽게 부딪혀 울리는 문소리에 겨우 화기애애해졌던 분위기는 다시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해졌다.

앨버튼 공작 부부는 황태자가 닫고 나가 버린 문을 말없이 노려보았고, 마리안느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졌다.

황제와 황후는 눈에 띄게 굳어진 마리안느를 바라보며 허둥지둥 다정한 말을 건넸다.

“개, 개의치 마요, 마리안느 영애.”

“그래. 지금에야 헛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저러는 것일 뿐, 결혼한 후엔 달라질 걸세.”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오히려 저 때문에 심려를 끼쳐 드린 것 같아 죄송스럽네요.”

마리안느가 언제 표정을 굳혔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하나도 와닿지 않는 황제와 황후의 위로를 들었다.

제 대답에 표정이 한결 밝아진 황제와 황우의 모습에 마리안느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멍청하긴! 그깟 위로로 내 상처받은 마음이 녹을 것 같아? 지금껏 황태자가 날 어떻게 대했는데!’

자신을 벌레만도 못한 것을 보는 눈으로 바라보고, 혹여 손끝이라도 닿으면 털어 내기 바빴던 그 잔인한 남자.

그 차갑고 냉정한 태도에 받은 상처는 고작 말뿐인 위로에 녹을 만큼 얕고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마음의 상흔은 끊임없이 고통을 호소했고, 벌어진 틈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

마리안느는 웃으며 이를 갈았다.

‘이제 나도 저따위 괴물에게 사랑을 구걸하지 않아.’

결혼만 무사히 성사된다면, 그래서 어떻게든 저 괴물 놈과 첫날밤을 보내고 아이만 갖게 된다면, 그래서 ‘일단은’ 황실의 피를 이은 아이를 낳게 되면,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사라진 저 괴물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여 버릴 것이다.

‘저 자존심 강한 얼굴이 내 앞에서 어떻게 일그러지는지, 이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면서 비웃어 줄 거야.’

눈앞에 선명히 그려진다.

저 높은 왕좌에 앉아 자신에게 권력의 날개를 달아 줄 아이를 안은 ‘여왕’이 된 자신의 모습, 그리고 그런 자신을 올려다보며 피눈물을 쏟으며 지난날의 행동을 반성하는 건방진 괴물의 모습.

마리안느는 상상만 해도 즐거운 그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 * *

제국의 수도 외곽에 위치한 애플튼 수도원.

제국민들에게 ‘정화의 신전’이라 불리는 그곳은 예로부터 저주를 받아 죽은 이들의 다친 영혼을 정화하고, 저주로 인해 미쳐 버린 자들을 성스러운 힘으로 치료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이곳을 설립한 애플튼 신관은 그가 가진 강한 신성력으로 환자들의 몸에 깃든 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광증을 치료해 주었다.

그러나 애플튼 신관이 죽고, 초대 신의 분노를 불러왔던 ‘저주의 피’가 희석되면서 저주 받은 이들이 줄어들자 애플튼 수도원은 기나긴 암흑기를 맞았다. 무려 몇백 년간 이어진 그 암흑기는 그대로 애플튼 수도원을 역사의 뒤안길로 내모는 듯했다.

그런 애플턴 수도원이 다시 중흥기를 맞은 것은 선대 펠릭스 공작 부처의 갑작스럽고 불행한 죽음과 그 아들인 현 펠릭스 공작이 받은 ‘저주’로 인해 그와 연을 맺은 아내와 약혼녀들이 죽거나 미치면서부터였다.

황족들과 귀족들은 미쳐 버린 그녀들을 수용하고 치료할 곳을 필요로 했고, 애플튼 수도원은 그런 그들의 요구를 흘려듣지 않았다.

애플튼 수도원은 펠릭스 공작의 저주로 인해 피해를 본 전 펠릭스 공작 부인의 시신을 안치하고, 저주로 광증에 휩싸인 그녀들을 수도원에 수용했다.

또한, 그들은 그 저주가 다른 이들에게 향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수도원 주변의 대지를 사들인 후 높은 담을 쌓았고, 외부인의 출입 또한 금지시켰다.

심지어 비밀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수도원 안에 상주하는 신관들마저 외출을 금했으며, 그를 어긴 신관들은 계율을 어겼다는 명목으로 파문시켰다.

그 엄격한 비밀 준수는 물론, 그곳에 수용된 이들 중 지금까지 그 누구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에 실상은 수도원이 아니라 저주받아 미친 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감옥이 아니냐는 흉흉한 소문마저 돌 만큼, 그곳의 실상은 세간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마치 감옥과도 같은 애플턴 수도원의 드높은 문 앞에 두 사람과 한 대의 수레가 서 있었다. 그들은 애플턴 수도원의 신관들이 입는 후드로 온몸을 가린 채 서로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 후, 둘 중 작은 덩치의 사내가 신관치고는 투박한 손으로 굳게 닫힌 철창문을 흔들었다.

“누구냐!”

문 안에 있는 작은 초소에서 그들과 똑같은 후드를 입은 신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철창문을 쥐고 흔드는 작은 덩치의 사내와 수레의 손잡이를 잡고 선 큰 덩치의 사내를 번갈아 노려보며 말했다.

“형제들인가? 그렇다면 정체를 밝혀라.”

“하하, 형제여. 나일세. 디아크.”

작은 덩치의 사내가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신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디아크? 자네, 목소리가 이랬던가?”

“허허, 자네가 그간 내 목소리를 들을 일이 있었겠는가? 나는 지금껏 삿된 인간의 언어를 삼가라는 신탁에 따라 묵언 수행 중이었는데.”

신관의 의심 섞인 목소리에 자신을 디아크라 밝힌 작은 덩치의 사내가 매끄럽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오랜 경험상 매끄러운 말이 반드시 진실일 리 없음을 잘 알고 있는 문지기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그렇다면 저 덩치 큰 사제는 누구이고, 수레는 또 뭔지에 대해 말해 주겠나?”

“아, 이자 말인가? 그게…….”

“왜? 대답하기 곤란한가?”

덩치 작은 사내가 머뭇거리며 말끝을 흐리자, 신관이 더욱 의심스럽다는 듯 그들을 바라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만약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한다면 지금 당장 초소 안으로 들어가 신관 기사들이 있는 연병장으로 연결된 종을 흔들 작정이었다.

그때, 덩치 작은 사내가 손사래를 치더니 철창문 앞에 달라붙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게 말일세! 다 사정이 있어서 그렇다네!”

“사정? 무슨 사정 말인가?”

“……사실, 저자는 우리 수도원의 형제가 아니라, 앨버튼 공작가의 기사님이라네.”

“……앨버튼 공작님의?”

그 말에 한껏 의심을 품고 작은 덩치의 사내를 바라보던 신관의 눈이 살짝 커졌다. 작은 덩치의 사내는 그 모습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를 치고 신관을 향해 은밀히 속살거렸다.

“자네도 알잖나. 수도원의 대신관님께서 ‘알려지면 다소 불미스러운’ 비밀 하나를 갖고 계신 것 말이야.”

“……아, 혹시?”

“그래! 저 수레 아래엔 ‘앨버튼 공작님께서 대신관님을 위해 준비한 여인’이 누워 있다, 이 말일세.”

작은 덩치의 사내가 그렇게 속살거리며 슬쩍 수레를 향해 곁눈질했다.

그 시선에 수레를 쥐고 있던 큰 덩치의 사내가 보란 듯 두꺼운 천이 덮인 수레의 중심부를 살짝 찔렀다. 그러자, 그 안에 누워 있던 ‘누군가’가 두꺼운 천 아래에서 꿈틀거렸다.

그 모습에 신관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고, 작은 덩치의 사내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게다가, 그분의 취향에 맞게 특별한 것까지 먹여 놓은 상태지.”

“……이런.”

“때문에 앨버튼 공작님께서 우리더러 한시라도 빨리 이 ‘수레’를 대신관님께 전하라고 명하셨다네. 특별한 것의 효력이 반나절밖에 이어지지 않는다고 덧붙이면서 말이야.”

“……반나절?”

“그래. 앨버튼 공작가에서 출발한 게 오후 여섯 시였으니, 아마 약 한 시간 후엔 효력이 떨어질 걸세. ……만약 효력이 다 떨어진 채로 저 여인을 데려가면, 모르긴 몰라도 대신관님께서 무척 진노하시며 그 책임을 물으려 하시지 않을까 싶은데.”

작은 덩치의 사내의 목소리엔 은근한 협박이 실려 있었다. 이 이상 쓸데없는 취조를 하며 자신들을 막아 세웠다간, 대신관의 분노를 사 수도원 생활이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그런.

“쯧.”

그 협박을 기민하게 알아들은 신관이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누구는 지금 낮이고 밤이고 이 어둡고 음침한 초소에 틀어박혀 오가는 사람이나 경계하는데, 대신관은 한가롭게 수도의 대귀족으로부터 선물이나 받는 것이 부럽고 얄미워서 배알이 뒤틀렸다.

어느 정도 경계를 푼 신관이 제 솔직한 심정을 고스란히 담긴 목소리로 작은 덩치의 사내를 향해 말했다.

“……빌어먹을. 그 돼지 같은 늙은이, 팔자 한번 좋군그래.”

“그러게나 말이네! 어휴, 그 늙은이 때문에 나도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어. 고작 이 일 때문에 내 지난 7년간의 묵언 수행이 전부 수포로 돌아갔으니 말이야.”

작은 덩치의 사내가 맞장구를 치자, 완전히 경계심을 푼 신관이 안쓰럽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가 고생이 많아.”

“자네만 하겠는가.”

“대체 언제쯤 이 좁아 터진 초소에서 벗어날 수 있을는지, 원.”

연신 한탄을 늘어놓는 신관의 말에 작은 덩치의 사내는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그 후, 그가 신관의 눈치를 보더니 넌지시 물었다.

“그럼, 이제 이 문을 좀 열어 주지 않겠는가?”

“이런, 내 정신 좀 봐! 당장 문을 열어 주겠네.”

신관이 닫힌 문고리에 허둥지둥 두 손을 올려놓고 제 신성력을 개방했다. 그러자 굳게 닫혀 있던 철창문이 열렸고, 문밖에 서 있던 두 사내가 그 안으로 들어왔다.

작은 덩치의 사내는 짙은 안개에 가려져 희미하게 보이는 수도원 건물을 흘긋 올려다보고는 고개를 돌려 다시 철창문을 닫는 신관을 향해 말했다.

“고맙네. 그럼, 수고하게!”

“자네도 고생하게, 형제여!”

그 후, 작은 덩치의 사내는 신관의 배웅을 받으며 수레를 끄는 큰 덩치의 사내와 함께 수도원으로 뻗은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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