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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97화 (97/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97화

샐리와 레온이 나가고, 아서는 눈물에 푹 젖은 그레이스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 주며 말했다.

“이제 내게 전부 말씀해 주세요. 당신이 알아낸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슬퍼하고 계셨는지.”

“……네. 알겠어요.”

그레이스는 꼴 사납게 코를 훌쩍이며 자신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아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서는 그 모습마저 귀엽다는 듯 가볍게 웃으며 그녀를 번쩍 안아 푹신한 침대 위에 앉힌 후, 자신 또한 그 옆에 가 앉았다. 그러자 그의 어깨 위로 그녀가 가만히 머리를 기대 왔다.

가만히 팔을 들어 아서의 허리를 꼭 끌어안은 그레이스는 연신 다정하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는 그의 손길에 용기를 내 천천히 입을 뗐다.

“……그러니까, 그게요.”

아서는 이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말없이 귀를 기울였다. 그레이스가 자신이 알아낸 모든 사실을 전할 때까지, 계속.

* * *

그레이스가 자신이 보고 듣고 알아낸 모든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 아서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에게 오명을 뒤집어씌웠던 그 일들을 꾸민 배후가 지금껏 자신을 중용하고 신임해 왔다고 믿어 온 황제라는 사실을 그는 어렵게 인정해야 했다.

그레이스가 딱딱히 굳은 아서의 입매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안해요. 충격이 크죠?”

아서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당신이 느낀 충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레온이 마법 언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도, 이 모든 일의 배후가 황제라는 것도 말입니다.”

“……아서.”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괜찮으십니까?”

아서는 손을 뻗어 눈물이 말라붙은 그레이스의 볼을 다정히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녀가 살포시 웃으며 대꾸했다.

“전 괜찮아요. 오히려 후련하기까지 한걸요.”

“후련하다고요?”

“네. 그나마 혈연이랍시고 남아 있던 일말의 미련이 전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에요.”

아서에게 그렇게 대답하는 그레이스의 눈은 서늘한 빛을 띤 채 반짝였다.

그까짓 권력을 위해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잔인한 그자들을 강제로라도 멈추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더는 그 탐욕 때문에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이 다치는 꼴은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레이스는 자신을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는 아서에게 비장한 얼굴로 물었다.

“……아서. 날 위해 어디까지 해 줄 수 있어요? 당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다 내줄 수 있을 만큼, 날 사랑해요?”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당신이 원한다면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걸 내줄 겁니다.”

망설임 없는 아서의 대답에 그레이스는 달콤하게 웃었다. 그 미소는 눈앞의 남편을 향한 지극한 사랑의 의미임과 동시에 자신과 눈앞의 이 사람을 죽음과 죽음에 가까운 오명으로 내몰았던 자들을 향한 복수의 다짐이기도 했다.

그레이스가 새파랗게 타오르는 푸른 불꽃 같은 눈으로 아서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날 도와줘요. 도저히 당신에게 오명을 씌우고 날 두 번씩이나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그 사람들을 용서할 수가 없어요.”

“……그레이스.”

“그들에게 나와 당신, 그리고 레온이 겪었던 고통과 수모를 똑같이 갚아 줄 거예요. 아니, 그것만으론 모자라죠. 지금껏 그들이 목숨을 빼앗고 광증에 몰아넣었던 사람들의 몫까지 다 받아 내야겠어요. 아서, 날 도와줄 수 있죠?”

그레이스는 비장함과 초조함이 섞인 얼굴로 아서를 바라보며 물었다.

솔직히, 한편으로는 자신이 없었다. 가족이라 생각했던 자들을 향한 끓어오르는 복수심과 아직은 채 정리되지 않은 복수 계획들을 고려해 보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제 모든 것을 걸어 달라고 묻는 자신의 태도는 좀 무리가 있긴 했다.

만일 일을 벌였다가 실패하면 지금껏 아서가 온갖 고난 속에서 어렵게 쌓아 올린 부와 명성을 한순간에 잃게 된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자신과 그는 물론이고 펠릭스 성내의 사람들까지 황실 모독죄로 전부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레이스는 이 순간, 아서의 대답에 제 모든 것을 걸기로 다짐했다. 만일 그가 조금이라도 난색을 표한다면 자신은 그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그들에게 제 나름의 복수를 안겨 줄 참이었다.

“물론입니다. 나 또한 당신을 이리 만든 그들을 살려 둘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레이스가 마음을 졸인 것이 무색하리만큼 아서는 선뜻 그녀의 복수 계획에 동참할 것을 약속했다. 또한, 자신의 대답에 놀란 표정을 짓는 그레이스를 향해 씩 웃고는, 큰 손으로 제 얼굴을 덮고 있던 검은 가면을 벗어 던졌다.

촛불 아래에서도 마치 태양처럼 환하게 빛나는 잘생긴 얼굴로 그레이스를 올곧이 응시하며 아서가 말을 이었다.

“지금까진 당신이 앨버튼 가문에 조금이나마 정이 남은 것 같아서 참았지만……. 복수를 원하신다고 하셨으니 거리낌 없이 그들의 목을 베어다 당신에게 선물로 가져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서.”

“그러니, 그리 조마조마한 얼굴로 내게 부탁하실 필요 없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지키고자 결심한 그날부터 나는 당신의 검이자 기사였으니까요. 자고로 기사는 주군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은 법입니다.”

“……정말이죠?”

“네.”

“결정을 되돌릴 기회는 지금뿐이에요. 만약, 조금이라도 꺼려진다면 지금이라도 물러나요. 난 괜찮아요.”

먼저 도와달라고 하긴 했으나, 막상 아서가 망설임 없이 목숨 걸고 돕겠다 선언하자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당부하듯 말했다. 지금이라면 괜찮다고, 아직은 이 일에서 발을 뺄 수 있다고 말이다.

아서가 그런 그레이스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왜 마음이 꺼려지겠습니까. 당신의 복수가 곧 내 복수이고, 당신 적이 곧 내 적인데.”

“……아서.”

“그러는 부인이야말로 괜찮으십니까? 한때는 가족으로서 살아온 그들의 피를 보게 될 텐데요.”

자신과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아서에게 그레이스 또한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상관없어요. 이제 내 가족은 당신과 레온, 그리고 이 펠릭스 성 사람들뿐이니까요.”

그 후, 그레이스는 자신을 향해 다정히 웃고 있는 아서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아서의 얼굴에 걸려 있는 미소가 더욱 짙어지더니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푸르고 붉은 오드아이가 묘한 빛을 띠었다.

이윽고 아서의 다정한 얼굴이 천천히 그레이스에게로 가까워졌다. 그 모습에 그레이스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손을 미끄러뜨려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곧이어 맞닿은 입술은 지독히도 달콤했고 짜릿했다. 그들이 계획한 복수의 맛만큼.

9. 반격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 왔다.

지난밤, 서로 손을 맞잡은 채 침실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눈 아서와 그레이스는 조금 흐트러진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마주 웃었다.

계속 이야기만 나눈 게 아니라 중간중간 졸다가 서로의 목소리에 잠이 깨기를 반복한 탓에 두 사람의 얼굴은 다소 부스스했다. 그레이스는 그런 아서의 얼굴도 잘생겼다고 생각하며 그의 뺨에 짧게 키스했고, 아서 또한 귀엽게 부은 그녀의 볼 위에 입을 맞추었다.

똑―. 똑똑―. 똑―.

그렇게 두 사람이 달콤한 시간을 보내던 그때, 침실 밖에서 네 번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암호 같은 노크 소리는 샐리의 것이었다.

아서는 그레이스와 다정한 시선을 교환하더니 일어나려는 그녀를 앉혀 두고 제가 일어나 침실 문을 열었다. 샐리는 침실 문을 열고 나타난 아서를 보곤 조금 놀란 듯 휘둥그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공작님, 어젯밤 이곳에서 밤을 보내셨어요?”

“왜. 그러면 안 되는 건가?”

“……어머나!”

아서가 다소 뻔뻔한 태도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꾸했다.

그러자 샐리가 자신의 앞에 선 아서와 침대에 앉은 그레이스를 번갈아 보며 외마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더니 두 손으로 살짝 달아오른 자신의 볼을 감싸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아이참. 그러셨구나! 그럼 언질이라도 좀 주시지 그러셨어요. 그럼 좀 더 늦게 왔을 텐데.”

묘한 상상이 깃든 샐리의 말에 그레이스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냐, 마침 잘 왔어. 오늘은 좀 바쁘게 움직여야 하거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영문 모를 말에 샐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그레이스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성 사람들에게 내가 깨어났다는 걸 밝히려 해, 샐리.”

“어머! 정말요?”

“응. 그러니까, 오늘은 날 제대로 꾸며 줘. 저택 내 사람들이 내가 깨어났음을 알 수 있게, 최대한 생기 있어 보이도록 말이야.”

그레이스가 마치 거대한 장난을 계획 중인 아이처럼 웃으며 말하자, 아서가 마주 웃으며 한마디를 거들었다.

“부인께서는 아무거나 걸쳐도 아름답고 생기가 넘치십니다.”

“……아이참. 아침부터 낯뜨거운 소리 할 거예요?”

“낯뜨겁긴요. 난 진심을 말했을 뿐입니다.”

어느새 둘만의 세계에 빠진 아서와 그레이스는 듣기만 해도 온몸이 간지럽고 유치한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샐리가 짧게 헛기침한 후 말했다.

“……으흠, 흠. 네, 알겠습니다. 당장 단장을 도와드릴게요.”

“응. 부탁할게, 샐리. 그럼 아서, 우리는 좀 있다 동쪽 탑에서 봐요.”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서는 그레이스의 볼 위에 짧게 입을 맞춘 후, 침실 밖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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