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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93화 (93/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93화

오웬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황제와 그 뒤를 따르는 시종들을 멍하니 눈으로 좇다가 그들이 사라지자 곧장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건만, 운명은 그런 자신의 노력을 비웃으며 보란 듯이 발목을 붙잡았다. 오웬은 홀로 남은 태양의 방에서 악을 쓰며 절규했다.

그저 자신의 민낯마저 아껴 줄 이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삶을 위해선 사랑을 죽여야 하고, 사랑을 위해선 삶을 죽여야 하는 운명 앞에 자신은 너무도 무력했다.

황제이든 신이든, 그 누구라도 좋았다. 자신의 비통한 절규를 듣고 이 빌어먹도록 끔찍한 운명에서 꺼내 줄 이라면, 그 누구든.

그러나, 그 절규를 들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절망에 찬 오웬의 목소리가 또다시 공허하게 울려 펴졌다.

* * *

새벽이 지나고 무거운 아침이 찾아왔다.

펠릭스 저택은 며칠 전 독살 기도로 인해 아직도 의식을 찾지 못한 공작 부인의 일로 분위기가 무거웠다. 시종들과 시녀들은 잔뜩 울상을 한 채 저택을 돌아다녔고, 기사들 또한 굳은 표정으로 무구를 챙겨 연병장으로 걸어갔다.

그중에서도 특히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은 공작 부인이 독에 당하던 순간에 있던 이들이었다.

캐러독 경은 스스로 죄를 청하겠다며 펠릭스 공작이 지시한 업무를 수행할 때를 제외하곤 기사단 내 징벌방에 틀어박혔고, 공작 부인의 샤프롱인 샐리의 눈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어젯밤 아서 펠릭스 공작이 내보낸 이후 침실로 돌아갔지만, 한숨도 자지 못한 샐리는 성내 일과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초췌한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 후, 곧장 저택 내에 머물고 있는 의사에게서 약초와 약초를 태울 작은 화로를, 저택의 주방장에게서는 간단한 요깃거리를 받아 온 샐리는 작은 트레이에 그것을 싣고 그레이스가 있는 침실로 갔다.

이윽고 문 앞에 도착한 샐리는 또다시 주책맞게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것을 꾹 참으며 노크했다.

“공작님, 안에 계십니까? 아침 식사와 약초를 준비해 왔습니다.”

“들어와.”

그러자 침실 안쪽에서 잔뜩 잠긴 아서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자신처럼 한숨도 자지 못한 듯 들리는 아서의 목소리에 그레이스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그토록 서로를 향한 애정이 넘치는 부부인데 부인이 독에 당해 쓰러진 곁을 제정신으로 지킬 수 있었겠는가.

샐리는 그 두 사람을 떠올리기만 해도 자꾸만 눈물이 터지려는 것을 꾹꾹 참으며 애써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정작 울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는데, 자신만이라도 희망을 가지고 밝게 주인을 대해야 했다.

잠시 후, 어느 정도 표정을 수습한 샐리는 조심스럽게 침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애써 공작 부부가 있는 침대 쪽을 쳐다보지 않고자 노력하며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이에요, 공작님! 어젯밤은 제대로 주무셨나요? 오늘은 아침부터 날이 쌀쌀하기에 주방장님께 따뜻하고 부드러운 수프와 흰 빵을 아침 식사로 준비해 왔……!”

허리를 굽힌 채 트레이에 올려져 있던 약초와 화로를 꺼내 준비를 마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크림 수프와 흰 빵을 담은 접시를 든 후, 어렵게 고개를 들어 침대 쪽을 바라본 샐리는 그만 그대로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이유인즉 침대의 등받이에 기댄 아서의 품속에 안긴 그레이스가, 눈을 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샐리는 그레이스의 맑고 푸른 눈이 다정한 빛과 생기가 깃들어 있는 것을 본 순간, 손에 힘이 빠져 들고 있던 접시들을 전부 떨어뜨려 버렸다.

와장창!?

시끄러운 소리가 바닥을 울리며 수프와 빵이 담긴 접시가 사방에 흩어졌지만, 샐리는 그것을 치울 정신도 없다는 듯 다급히 아서와 그레이스가 앉은 침대로 다가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대, 대체 어떻게……!”

“쉿. 조용히. 호들갑 떨지 마라.”

아서는 그런 샐리를 향해 검지를 입술 위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할 것을 명했다. 눈치 빠른 샐리는 얼른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곤 두어 번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놀라고 기쁜 마음을 수습한 샐리는 아서의 품에 안긴 그레이스의 손을 꼭 포개 쥐며 말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아프거나 어지럽진 않으시고요?”

“응. 난 괜찮아, 샐리.”

“……다행이에요, 정말. 정말, 다행이에요.”

그레이스가 웃으며 대답하자, 샐리는 더욱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사히 눈을 뜨고, 말도 잘하는 그레이스의 모습에 기쁨을 참을 수 없어 눈물을 글썽이던 샐리는 한참을 애틋한 눈으로 그레이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허둥지둥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에구머니나! 내가 지금 이, 이럴 때가 아니지! 잠깐만 기다리세요! 당장 신관과 의사들을 불러올―!”

“아, 안 돼! 샐리!”

그 모습에 그레이스는 밖에서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다급히 샐리를 붙잡았다. 그러자 우뚝 행동을 멈춘 샐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왜 그러세요, 마님! 무사히 의식을 찾으셨다 한들 아직 몸에 독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 얼른 진찰을 받아 봐야죠!”

“아니, 괜찮아. 더 이상의 치료는 필요 없어. ……그렇죠, 아서?”

“……정말요?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응.”

“그래, 의사를 불러올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공작님.”

그레이스는 거듭된 샐리의 권유를 거절하며 걱정 말라는 듯 그녀를 안심시켰다. 샐리는 여전히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아서까지 그리 말하자 곧 군말 없이 주인 부부의 뜻을 따랐다.

그렇게 도로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침대 곁으로 다가온 샐리는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누워만 있느라 더욱 마른 그레이스의 손과 얼굴을 살피며 속상하다는 듯 말했다.

“……어휴, 깡마르신 것 좀 봐. 시장하진 않으셔요? 뭐 드시고 싶은 건 없으시고요? 당장 뭐라도 만들어 올릴까요? 뭐든 말씀만 해 주시면 당장 주방장과 집사장에게 일러둘게요.”

“……그게 말인데, 샐리.”

“네, 말씀하세요.”

“당분간은 그 누구도 내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쳤으면 좋겠어. 샐리나 올리버 경처럼 믿을 만한 사람 말고는 말이야.”

“……네에? 대체 그게 무슨 소리세요?”

이어진 그레이스의 말에 샐리는 더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 그녀에게 그레이스는 현재 자신이 처한 사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낱낱이 설명했다.

왜 독에 당하게 된 건지, 그리고 아서는 왜 그때 출정하게 된 건지, 그리고 동쪽 탑에서 펠릭스 공작 가에 얽혀 있는 저주의 비밀에 관해 조사한 것까지.

단 하나, 아서가 자신을 되살려 낸 것과 황태자의 비밀과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곤 대부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중간중간 아서가 한마디씩 거들며 샐리의 이해를 도왔다. 이윽고 모든 정황을 알게 된 샐리가 분노를 터트리듯 소리쳤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제 목적을 위해서 피를 이은 친딸에게 독살 기도를 하나요? 게다가, 일부러 적국과 전투를 일으켜서 공작님을 전쟁터로 내몰았다고요? 그게 사람이 할 짓인가요!?”

“쉿! 목소리가 커, 샐리.”

“……죄, 죄송해요. 흥분한 나머지…….”

“아냐. 괜찮아.”

혹여 누군가 밖에서 들을세라 그레이스가 다급히 주의를 주자, 샐리가 얼른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사과했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워서 그레이스는 작게 미소 지어 주었다.

샐리는 그런 그레이스에게 다정히 웃어 준 후, 잠시 머릿속으로 조금 전 들은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곧, 비장한 표정으로 그레이스를 향해 말했다.

“……그러니까, 저는 마님께서 그놈들의 비밀을 알아내실 때까지 마님께서 깨어나셨다는 사실을 감춘 채 시중을 들면 된다는 거죠?”

“응. 정확해, 샐리.”

“알겠어요. ……공작님, 올리버 경에게도 이 사실을 전할까요?”

“아니. 그에게는 내가 말하지. 이제 곧 성내 회의를 할 시간이니까.”

“알겠습니다.”

아서의 말에 샐리는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그 후, 조금 전 깜짝 놀란 바람에 깨뜨린 접시와 더럽혀진 바닥을 청소하겠다며 허둥지둥 움직이는 샐리를 잠시 응시하던 그레이스는 자신의 뺨을 다정히 쓰다듬는 아서를 향해 말했다.

“이제 집무실로 갈 거예요?”

“네. 성을 비운 사이 쌓였을 집무도 처리하고, 이번 일로 그들에게 어떻게 책임을 물을 것인지도 의논해야 하니까요.”

“그래요. 잘 다녀와요.”

그레이스는 선뜻 아서를 배웅하며 다가온 그의 뺨에 짧게 입맞춤했다.

아서는 자신의 볼에 닿은 가볍고 간지러운 입술 감촉에 다정하게 웃다가, 문득 걱정스럽다는 듯 그레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여 혼자 계시는 것이 불안하다 싶으면 언제든 말해 주세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부인 곁에 있겠습니다.”

“아뇨, 난 괜찮아요. 빨리 바쁜 일 마무리하고 오세요.”

“네. 그리하겠습니다.”

이서는 그레이스의 옆얼굴로 내려온 긴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귀 뒤로 넘겨 준 후,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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