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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89화 (89/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89화

“첩자의 보고에 따르면 로이엔느 대공이 군사를 일으킨 이유가 수도의 신전에 안치된 엘렉트라 공녀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엘렉트라 공녀요? 아니, 잠깐만요. 공녀의 시신이 왜 펠릭스 성이 아닌 신전에 안치된 거예요? 보통은 가족묘에 묻히거나 모국이 요구할 경우, 고향으로 돌려보내게 되어 있잖아요.”

그레이스가 인상을 찡그리며 묻자, 아서는 쓴웃음을 짓곤 대답했다.

“……그녀의 시신이 수도에 있는 신전에 안치된 이유는 나 때문입니다. 그녀의 죽음을 조사하기 위해 본성으로 파견된 앨버튼 공작이 그녀의 사인으로 나의 저주를 거론했으니까요. 그는 저주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또 저주받아 목숨을 잃은 그녀의 시신을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그녀의 시신을 가져갔습니다. 그러고는 돌려주지 않았고요.”

“……세상에.”

“그녀의 시신을 펠릭스 성에 안치하기 위해 몇 번이나 수도의 신전을 찾아갔지만, 그때마다 거절을 당했습니다.

황제 또한 언젠가는 내가 재혼하게 될 텐데, 전 부인의 시신을 펠릭스 성에 안치하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했었죠. 하지만 현 로이엔느 대공은 저와는 다르게 끊임없이 그녀의 시신을 본국으로 돌려달라는 요청을 보냈습니다. 두 사람은 꽤 각별한 남매였거든요.”

“사랑하는 여동생의 시신이 남편의 영지도 아니고 수도의 신전에 있다는데 당연히 그랬겠죠. 저라도 그랬을 거예요.”

아서의 설명을 귀담아들으며 간간이 맞장구를 치던 그레이스는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혔다.

그렇다면 엘렉트라 공녀의 시신을 돌려주겠다는 조건으로 로이엔느 대공에게 플라이엔 성을 칠 것을 요구한 자는 대체 누구인가.

엘렉트라 공녀의 시신. 그것도 저주를 받았다는 이유로 신전에 안치된 시신을 빼낼 힘을 가진 동시에 공국에 그러한 서신을 보낼 수 있는 자.

그레이스는 자신의 머릿속을 스치는 몇 사람의 이름에 인상을 쓰며 아서를 향해 물었다.

“……아서. 혹시, 로이엔느 대공에게 공녀의 시신을 핑계로 이번 일을 꾸민 사람이 황제 폐하라고 생각해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레이스가 말꼬리를 잡듯 되묻자, 아서가 착잡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그 심상치 않은 표정에 그녀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곧 한 가지를 깨닫고 놀라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엘렉트라 공녀의 사인을 저주라고 밝힌 자, 그 시신을 신전으로 옮긴 자,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 하는 자.

그레이스는 한 사람을 떠올리며 말했다.

“……제 아버지로군요.”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아뇨. 어떻게 생각해도 이런 일을 꾸밀 수 있는 사람은 내 아버지, 앨버튼 공작뿐이에요.”

그레이스는 앨버튼 공작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또다시 그 사람의 짓이었다. 첫 번째 생에서도 결혼하고 싶지 않아 몸을 피한 자신을 독살하더니, 두 번째 생에서도 기어코 자신을 독살하려 들었다. 아서가 자신의 목숨을 살려 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또다시 죽었으리라.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내가 그리 미우세요? 살아 있는 것도 싫을 만큼?’

그레이스는 마법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끝없이 죽이려 드는 앨버튼 공작에게 증오를 불태웠다. 또한, 대체 이렇게까지 하면서 자신을 죽이려 드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대체 이유가 뭘까.

첫 번째 생에서의 일은 그렇다 치고, 두 번째 생에서는 그가 바라는 대로 아서와 결혼했는데도 굳이 자신을 죽여야만 하는 그 이유가 뭘까.

“앨버튼 공작 때문에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이제 당신의 가족은 나와 레온이 아닙니까.”

그레이스가 말없이 생각에 잠기자, 그것을 마음이 상한 것이라 염려한 아서가 위로하듯 말했다.

그레이스가 힘없이 웃으며 대꾸했다.

“알아요. 아버지, 아니지.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으니 실망하지도 않아요.”

“그럼 왜 수심이 깃드셨습니까?”

“……그게.”

“답답한 게 있으면 전부 털어놓으세요. 나는 언제든 당신의 짐을 나눠 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우린 부부이니까요.”

아서가 그레이스를 향해 다시 한번 다정한 위로를 건넸다.

그레이스는 그런 아서를 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꿈속에서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꺼내놓아야 할지 고민되었다.

그 꿈속 목소리를 전부 전하자니 아서가 자신을 다시 살려 냈기에 자신은 신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 놓은 정상적인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튕겨져 나왔다는 이야기까지 해야 할 테고, 그러면 아서가 가슴 아파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그레이스는 꿈속에서 들은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만 꺼내 놓자 다짐하며 입을 열었다.

“……깨어나기 직전, 꿈속에서 만난 ‘목소리’에게서 들은 말이 있어요.”

“어떤……?”

“나를 사랑하는 두 남자가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두 명 모두…….”

그레이스는 살짝 아서의 눈치를 보며 잠깐의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다.

“……괴물인데, 한 명은 내가 살아야만 사는 사람이고 또 한 명은 내가 죽어야만 사는 사람이라고요.”

“그랬습니까.”

“전자는 당신이란 걸 알겠는데, 후자는…….”

그레이스는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그간의 일을 더듬어 보면 어렵지 않게 자신을 사랑하는 두 남자가 누구인지 떠올릴 수 있었지만, 아서의 앞에서 황태자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에 죄악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레이스의 모습에 아서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황태자겠군요. 그 후자는.”

“……미안해요.”

“미안해하실 이유는 없습니다. 부인께선 그 누구라도 욕심낼 만한 사람이니까요. 황태자의 심정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순순히 양보할 생각은 없지만요.”

“……아서.”

자신 대신 배려심 있게 먼저 황태자를 언급하며 대화를 건네는 아서의 모습에 그레이스는 수줍게 웃었다.

아서는 그런 그레이스를 향해 가볍게 마주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말했습니까? 당신이 죽어야만 사는 사람이라고요?”

“네.”

“그 목소리가 가리키는 사람이 황태자라고 한다면, 부인께서 목숨을 잃어야 황태자가 살 수 있다는 뜻인데…….”

“저도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제 죽음이 황태자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요?”

그레이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죽음으로 황태자가 살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왜 지금껏 자신을 살려 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아서와 결혼하기 전, 혹은 결혼한 직후 자신을 제거해 버렸다면 이리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 없이 그들은 간다하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왜 지금껏 자신을 살려 두고 아서와 결혼하게 한 건지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렇게 홀로 고민하고 있을 때, 함께 고민에 잠겨 있던 아서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그레이스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만약 부인께서 들은 것이 사실이라면, 앨버튼 공작이 황실을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가 설명이 되는군요.”

“네? 그게 무슨…….”

“꿈속에 나타났던 그 목소리가 부인을 사랑하는 두 남자가 모두 ‘괴물’이라고 했다고요.”

“……네. 그랬죠.”

“그 말을 신뢰한다고 가정했을 때, 황태자 또한 나 못지않은 괴물이란 뜻 아니겠습니까. 분명, 남들에게 알려졌다간 나 이상으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거나 꺼려질 법한 그런 부분 말입니다.”

아서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레이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런 그를 본 순간, 그녀는 단번에 말속에 숨은 맥락을 잡아냈다.

“……그렇다는 건, 황태자 전하에게 숨겨야만 하는 치명적인 비밀이 있고, 앨버튼 공작은 그 비밀을 이용해 황실을 조종하고 있다는 거예요?”

“내 짐작은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상황이 납득이 되네요.”

아서의 말에 그레이스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꾸했다.

확실히 황태자에게 아서의 저주와 같은 것이 존재하고, 그것이 세간에 알려졌다면 황족들과 귀족들은 당장 황태자의 폐위와 황후와의 이혼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뿐인가. 제국의 후계자가 신에게 버림받았다는 소문이 돌면 초대신을 따르는 제국민들이 황태자의 폐위를 주장할 테고, 제국은 혼란에 빠져들 터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제국의 적국이 국경 지대를 침범할 수도 있을 테고.

그리고, 앨버튼 공작은 우연히 알게 된 ‘황태자의 비밀’을 빌미로 황제와 황실에게 갖은 특혜를 요구했으리라.

‘또한, 그 과정에서 내 목숨을 해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아버지는 주저 없이 아서와 나를 해치고자 했을 거야. 황실은 선뜻 그 요구를 받아들였겠지.’

그레이스는 이를 악물었다.

오로지 자신들의 욕심 때문에 자신을 두 번이나 죽음으로 몰아넣고,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공녀의 시신을 이용해 아서를 전쟁터에 내모는 짓까지 불사한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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