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85화
현재 펠릭스 성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정체 모를 신경독소에 당해 쓰러진 펠릭스 공작 부인을 본채 침실로 옮기라 지시한 캐러독 경은 이후, 이 상황을 자신의 주군에게 알리고 성내의 신관과 의사를 전부 불러 모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공작 부인께서 당한 것이 즉사에 이를 만큼 위험한 신경독소가 아니라는 거였지만, 상태가 위태롭다는 것은 자명했기에 한시가 급했다.
캐러독 경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공작 부인이 누워 있는 침실 밖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조금 전, 침실 안으로 들어간 신관과 의사들이 부디 좋은 소식을 갖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대신관과 펠릭스 공작가의 주치의가 차례로 침실을 나왔다. 캐러독 경은 당장 그들에게 달려가 다급히 물었다.
“공작 부인의 상태는 어떠십니까?”
대신관과 공작가의 주치의가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치유력을 퍼붓고는 있으나, 어떤 마법에 걸린 것처럼 공작 부인의 몸이 치유력을 거부하고 있어 진전이 없네.”
“신경독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도무지 독의 정체를 알 길이 없어 곤란한 참입니다. 아무래도 제국의 독이 아니라 이국의 독 같은데……. 독의 정체를 알 수 없으니 함부로 약을 처방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들의 대답에 캐러독 경은 크게 실망하며 고개를 숙였다.
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설령 그 상자에 펠릭스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이 아로새겨져 있었고, 오직 공작 부인에게만 전하라는 명이 있었다고 해도 자신이 먼저 뜯어보았어야 했다.
그래서 차라리 그 신경독소에 당한 것이 자신이었어야 했다. 캐러독 경은 끝없이 자책하며 공작 부인이 누워 있는 침실의 문을 바라보았다.
“캐러독 경!”
그때였다. 아서가 갑옷과 망토조차 벗지 않은 차림으로 다급히 계단을 뛰어올라 그가 서 있는 침실 문 앞으로 달려왔다.
캐러독 경은 아서와 그 뒤를 따라온 올리버 경을 향해 다급히 몸을 굽혀 예를 표했다. 아서는 그런 그에게 다급히 물었다.
“지금 부인의 상태는 어떻지? 치료에는 진척이 없나?”
“……그렇습니다. 치유력도 듣지 않고, 신경독 또한 이국의 것이라 해독제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젠장!”
짧은 보고를 들은 아서는 거칠게 욕설을 내뱉으며 침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해독을 위해 약초를 태우고 있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는 그레이스와 그 주변을 둘러싼 시녀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서는 자신을 보곤 당황하며 몸을 일으켜 예를 표하는 시녀들을 지나쳐 침대에 죽은 듯 누워 눈을 감고 있는 그레이스의 곁으로 다가가 축 늘어진 손을 붙잡았다.
“…….”
그 순간, 그레이스의 손끝이 너무 차갑고 가늘어서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아서는 차갑고 작은 그 손을 자신의 뺨 위로 가져다 대며 작게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누워 계십니까, 부인. 납니다. 당신의 남편이 돌아왔어요. 눈을 뜨고 날 맞아 주셔야죠.”
그러나 고요히 눈을 감은 그레이스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서는 자신의 뺨에 닿은 그레이스의 손을 자신의 생명줄인 양 간절히 부여잡으며 그 위로 짧게 키스하곤 말을 이었다.
“무사히 다녀오라고, 내게 그리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말대로 나는 무사히 돌아왔는데, 왜 부인께선 이렇게 누워만 계십니까. ”
아서는 이를 악물며 서러운 눈물을 쏟아 냈다.
그레이스가 이리 독에 당해 쓰러질 줄 알았더라면, 설령 반역자가 되더라도 출정하라는 황명에 따르지 않았을 거였다.
아서는 아무리 꼭 붙잡고 자신의 온기를 전해도 온기가 돌아오지 않는 그레이스의 차가운 손을 쓰다듬으며 애달픈 한숨을 토해 냈다.
가장 강한 기사인들 무엇하는가. 자신은 사랑하는 이 하나 보호하지 못하는 무력한 놈이다.
아서는 끊임없이 자책했다.
자신에게 걸린 저주 때문에 불안에 떠는 아내를 안심시켜 주지도 못했고, 그녀가 홀로 저주를 풀어 보겠다 동분서주할 때 별다른 도움도 주지 못했다.
결국엔 그녀가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것도 못 했다. 아서는 그런 자신의 무력함과 어리석음이 견딜 수 없이 한심스러웠다.
“……공작님. 캐러독 경과 올리버 경이 각하를 뵙길 청하고 있는데, 어찌할까요?”
아서가 스스로에 대한 원망을 토해 내며 그레이스가 무사히 눈을 뜨길 기도하고 있던 그때, 운 탓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샐리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울며 애달파하던 것이 거짓인 듯 아서가 새파랗게 날이 선 눈으로 샐리에게 대답했다.
“잠시라도 부인의 곁에서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 두 사람 모두 안으로 들라고 전해. 샐리, 너만 남고 나머지 시녀들은 전부 문밖에 나가 대기하도록.”
“알겠습니다, 공작님.”
아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예를 표한 후, 샐리가 다른 시녀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그레이스의 간호를 위해 모여 있던 시녀들이 하나둘 침실 밖으로 나갔고, 열린 문으로 굳은 표정의 캐러독 경과 올리버 경이 들어왔다.
아서는 그들이 들어온 후, 단단히 문을 닫은 샐리가 주변을 살피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냉기가 뚝뚝 흐르는 표정으로 두 기사를 향해 말했다.
“내게 보고할 것이 있는 모양이군.”
“예, 각하.”
아서의 말에 대답한 것은 캐러독 경이었다. 그가 잔뜩 굳은 얼굴로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어렵게 입을 뗐다.
“공작 부인에게 독 묻은 서신을 전한 전령이 사라졌습니다.”
“……뭐?”
“분명 세 겹의 쇠사슬로 온몸을 구속해 지하 감옥에 가둬 두었는데, 조금 전 확인해 보니 그자를 묶었던 사슬만 남긴 채 종적을 감췄습니다.”
“……빌어먹을.”
“모두 제 불찰입니다. 부디 저를 벌해 주십시오, 각하!”
보고를 들은 아서가 험악하게 표정을 구기며 끓어오르는 화를 참듯 손등이 하얗게 변할 만큼 꽉 주먹을 쥐었다.
그 모습에 캐러독 경이 무릎을 꿇으며 제 죄를 청했다. 아서는 그런 그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소중하게 잡고 있던 그레이스의 손을 내려놓고 허리춤에 찬 검을 쥐었다.
당장이라도 사달이 날 것 같은 그때, 두 사람을 살피던 올리버 경이 다급히 소리쳤다.
“자, 잠깐 기다리십시오. 각하! 캐러독 경에게 죄를 묻는 것은 이 일의 배후에 대해 알아낸 뒤로 미뤄 주시지 않겠습니까?”
“……나더러 이런 상황에서도 참으라는 건가?”
“예, 참으셔야 합니다.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캐러독 경은 충직하고 유능한 기사입니다. 그리고 우리 군은 지금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고요. 이런 상황에서 캐러독 경을 벌하는 것은 공작 부인을 이리 만든 자들에게 좋은 일을 시켜 주는 것일 뿐입니다.”
“…….”
“또한, 공작 부인께서 깨어나셨을 때 캐러독 경이 벌을 받았다는 걸 아시면 분명 슬퍼하실 겁니다. 그러니, 제발 화를 가라앉혀 주십시오.”
올리버 경의 간청에 분노로 끓어오르던 아서의 눈이 조금 침착해졌다.
아서는 빼 들었던 검을 내려놓은 후, 감정을 다스리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완전히 냉정해진 얼굴로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캐러독 경을 향해 말했다.
“지금 당장 그 전령 놈을 추적한다. 그놈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탈출한 걸 보면 분명 성내에 조력자를 두고 있을 것이다. 그놈도 같이 잡아 와 지하 감옥에 가둬라.”
“……예, 각하. 명심하겠습니다.”
캐러독 경은 굳은 표정으로 아서를 향해 예를 표한 후, 곧장 몸을 틀어 침실을 나갔다.
아서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곧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올리버 경이 그런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각하.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다. 경 또한 내게 고할 것이 있어 보이는데.”
아서가 화제를 돌리자 올리버 경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갈무리한 후 말했다.
“사실은 조금 전, 로이엔느 공국에 심어 둔 첩자로부터 서신을 받았습니다.”
“로이엔느 대공이 이번 출정을 강행한 이유에 대해 알아냈나?”
“네, 그렇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적혀 있었지?”
아서의 추궁에 올리버 경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로이엔느 대공이 이번 출정을 대가로 엘렉트라 펠릭스, 전 공작 부인의 시신이 담긴 관을 받기로 했답니다.”
“……뭐? 그 사람의 관을?”
아서는 놀란 표정으로 올리버 경에게 되물었고, 올리버 경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서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몇 년 전, 엘렉트라 공녀가 펠릭스 성에서 불미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녀의 아버지인 선대 로이엔느 대공의 요청을 받은 황제가 앨버튼 공작을 시켜 그녀의 죽음에 관해 조사했었다.
그리고 그때, 앨버튼 공작은 그녀의 죽음이 펠릭스 공작가에 내려진 저주와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저주받은 그녀의 영혼이 구제를 받기 위해선 축복 마법이 필요하다 주장했고, 황제는 그 주장을 수용하여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시신을 관에 담아 수도의 신전으로 가져갔었다.
아서는 그 일들을 회상하며 인상을 썼다.
정말이지 떠올리기만 해도 괴로웠다. 그 일은 아서가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선대 펠릭스 공작 부부의 허망하고 슬픈 죽음을 떠올리게 했으니까. 그리고, 그 죽음을 시작으로 자신과 연을 맺은 수많은 이가 죽거나 미쳐 갔다.
‘그녀의 시신을 갖고 거래를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나에게 출정하라고 명할 수 있는 사람. ……설마, 이 모든 일에 폐하께서 개입했다는 건가?’
황제가 왜 그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그 배후가 황제라면 계획은 성공했다. 아주 빌어먹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