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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81화 (81/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81화

그 후, 아서는 얽혀 있는 서로의 손가락을 애틋하게 바라보다 살짝 힘을 줘 그녀의 손등을 자신의 앞으로 오게 하곤 그 위에 짧게 입맞춤을 내리며 말했다.

“……그럼, 돌아올 때까지 레온을 부탁합니다.”

“레온에게는 인사 없이 가는 건가요?”

“네. 그 녀석은 내가 출정할 때마다 울며 가지 말라고 떼를 쓰니까요.”

아서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한 후, 마지막으로 그레이스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네, 무사히 다녀오세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인사를 끝으로 아서는 뒤돌아섰다.

그레이스는 조금 전 나눈 긴 인사가 무색할 만큼 올리버 경이 간 길을 따라 빠르게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아…….”

이윽고 아서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레이스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더니 그 자리에 털썩 쪼그려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마음속에 자꾸 차오르는 이유 모를 불안함과 당장이라도 멀어진 그를 붙잡아 가지 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서였다.

* * *

아서가 출정한 후, 거처에서 공부를 하다 그의 출정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그레이스의 별채로 온 레온의 얼굴은 당장 울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그레이스는 눈물을 참느라 입술을 삐죽이는 레온을 발견하고는 그 곁으로 다가갔다.

“……레온.”

그레이스의 부름에 고개를 쑥 들어 올린 레온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짧은 팔을 양옆으로 쫙 펼쳤다.

그레이스는 얼른 허리를 굽혀 레온을 꽉 끌어안았다. 그러자 아이의 얼굴이 닿은 그녀의 드레스 자락이 조금씩 젖어 들었다.

작은 손으로 드레스 자락을 꼭 쥔 채 소리 죽여 우는 모습이 안타까워 그레이스가 다정히 머리를 쓰다듬자 레온이 울음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께선 언제쯤 돌아오신다고 하셨어요?”

“미안해. 경황이 없어서 물어보지 못했어.”

“……형님은 강한 분이시니 무사히 돌아오시겠죠? 다른 기사님들처럼 죽거나 크게 다쳐서 돌아오시진 않겠죠?”

“……레온.”

“……저, 봤어요. 출정을 다녀온 기사님들이 하얀 천에 덮여서 성에 들어오는 모습을요. 그때마다 올리버 경이 제 눈을 가려 줬지만, 그래도 무서웠어요. 만약 천을 덮고 있는 사람이 형님이면 어떡하지, 걱정이 돼서…….”

얼굴을 폭 파묻은 채 두려움을 토해 내는 레온의 작은 손이 덜덜 떨렸다.

그레이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레온을 안은 팔에 힘을 실었다. 어른인 자신도 마음이 이리 불안한데, 한참은 어리고 작은 아이가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을지 감히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레이스는 겁먹고 주눅이 든 아이를 위로하기 위해 애써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레온. 모두 무사히 돌아오실 거야. 이번 전투는 펠릭스 성의 기사들뿐만 아니라 플라이엔 후작의 군대도 참전했다고 하니까.”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평소처럼 잘 먹고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지내자. 그래야 아서가 돌아왔을 때 레온을 보고 속상해하지 않지.”

“……네.”

레온이 축 처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반응에 그레이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몇 마디에 단숨에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레온은 지금껏 이런 상황을 너무나 많이 보고 겪었을 테니 말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 함께 지내던 기사가 전사하여 흰 천에 덮여 돌아오는 그 기분이 어떨지……. 난 감히 가늠도 안 돼.’

그래서 그레이스는 억지로 레온의 기분을 띄우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품에 안긴 레온과 다정히 시선을 맞추며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는 말했다.

“미안,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무리한 말을 했어. 걱정이 되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 그치?”

“……아, 아니에요.”

“아냐, 내가 생각이 짧았어. 미안해, 레온. 걱정해도 괜찮고, 주눅 들어도 괜찮아.”

“…….”

“다만, 레온이 너무 울고 주눅 들어서 식사도 제대로 안 하고 웃지도 않으면 내가 너무 속상해. 그러니까 마음껏 먹고, 잠도 실컷 자고, 나랑 산책도 다니면서 걱정하자. 같이 신께 기도도 하고. 그건 괜찮지?”

레온의 눈이 살짝 커졌다. 마치 이런 위로는 처음 받아 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레이스는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레온과 눈을 맞춘 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싫어?”

“……아뇨. 좋아요.”

레온은 고개를 도리도리 젓더니 다시 그레이스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품으로 파고들기 전, 레온이 희미하게 웃은 것을 보곤 자신 또한 그제야 살짝 미소 지었다.

‘그래. 불안해하지 말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자. 동쪽 탑으로 가서 더 열심히 조사도 하고. ……겁먹을 것 없어. 난 아직 미치지 않았고, 죽지도 않았으니까. 그건 아서 또한 마찬가지고.’

사실 조금 전 레온에게 한 말은 아이 못지않게 겁을 집어먹은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아서가 언제 어떤 모습을 돌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환상에 사로잡히거나 가끔 정신을 잃곤 하는 자신이 그가 없는 사이에 완전히 미쳐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그러나 그레이스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 모든 걱정과 불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겁을 먹거나 주눅 들지 말자고 재차 다짐하며 그녀는 레온의 등을 토닥였다.

#8. 교전, 그리고 독살

제국 북동쪽에 위치한 라이에슨 황무지.

오랜 기간 개척되지 않아 버려진 땅이라고도 불린다.

제국의 북동쪽 국경인 플라이엔 성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인 라이에슨 황무지는 지금 펠릭스 공작과 기사들을 태운 말이 자아내는 뿌연 흙먼지로 가득했다.

그들의 선봉에 선 아서 펠릭스 공작이 검은 가면 아래 오드아이를 날카롭게 빛내며 제 곁을 달리는 올리버 경에게 소리쳤다.

“우리가 보낸 전서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네, 각하!”

“그렇다는 건 또다시 로이엔느군과 교전에 돌입했다는 거로군. 알겠다, 더욱 속도를 낸다. 로이엔느군이 플라이엔 성벽을 넘기 전, 한시라도 빨리 플라이엔 성에 도착해야 해.”

“알겠습니다!”

아서는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하며 더욱 빠르게 달려 나갔다. 올리버 경을 포함해 그의 뒤를 따르던 기사들 또한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아서의 뒤를 쫓았다.

이윽고 그들의 귓가에 아득한 함성과 병장기들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플라이엔 성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아득히 높은 회색빛 플라이엔 성벽과 맞은편 로이엔느 공국의 간이 망루에서 쏟아지는 화살이 온 하늘을 가렸다.

그리고 그 아래, 몸통에 붉은 가죽을 덧댄 플라이엔 성의 기사들과 노란 바탕에 푸른 다이아몬드 문양의 망토를 두른 로에엔느 공국의 기사들이 날카로운 검날을 번뜩이며 거침없이 서로를 베어 내고 있었다.

아서는 젖혀 놓았던 은 투구를 뒤집어쓴 후,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제1기사단과 제2기사단은 나를 따라 로이엔느 대공이 이끄는 돌격대를 친다. 그리고 제3기사단과 제4기사단은 로이엔느군이 구축한 진지로 침투해 후방 공격에 대비하도록 있도록. 알겠나?”

“예, 각하!”

“그럼, 모두 검을 빼 들어라.”

“돌격한다!”

아서는 자신의 뒤에서 함성을 지르며 쫓아오는 기사들을 이끌고 플라이엔 성의 돌격대와 대치 중인 로이엔느군을 향해 뛰어들었다.

아서는 가장 먼저 자신을 향해 돌격하는 로이엔느 돌격대의 기사의 목을 단칼에 날리며 거칠게 말을 몰아 달려드는 로이엔느군의 돌격대를 저지했다.

아서가 고삐를 틀고 검을 휘두를 때마다 붉은 피가 튀고 주인을 잃은 말이 쓰러졌다. 펠릭스 성의 기사들은 괴물 공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쟁터를 종횡무진하는 그의 뒤를 따라 적들을 유린했다.

그러자 위치를 사수하며 플라이엔 성의 기사들과 팽팽하게 싸우던 로이엔느 공국군이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이상한데.’

아서는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뒤집히는 형국에 살짝 인상을 썼다.

황제가 직접 원군을 요청하기까지 한 전투라기에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있어 적잖은 난항을 겪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돌격대 기사들의 목을 몇 번 베어 내자 로이엔느 공국군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돌격대를 뒤로 빼내기 시작했다.

그것이 각자의 전투에 여념이 없는 기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오랜 기간 선봉에서 수많은 전투에서 이끈 아서의 눈에는 단박에 파악할 수 있는 움직임이었다.

‘혹시, 계책을 숨겨 놓았나?’

아서가 경계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살피던 그때였다. 휘익―! 무거운 바람을 가르며 날카로운 화살이 아서를 향해 날아왔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머리 위로 살기를 품은 긴 검날이 번뜩였다.

아서는 빠르게 몸을 튼 후, 쥐고 있던 검으로 자신을 향해 날아온 화살대를 부러뜨렸다. 그 과정에서 튕겨 나간 화살이 그의 팔에 생채기를 남겼지만, 그 상처를 살필 새도 없었다. 자신의 목으로 날아오는 검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서는 자신의 목을 베려다 공격이 막히자 그가 쥔 검을 떨어뜨리기 위해 자신의 검으로 그의 검을 내리누르는, 푸른 깃털을 단 투구를 쓴 기사에게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이군, 로이엔느 대공.”

그의 말에 푸른 깃털을 단 투구를 쓴 기사가 목을 울려 웃더니 대답했다.

“그래. 너무 오랜만이라 반가워서 그만 찔끔 눈물이 날 뻔했지 뭐야.”

푸른 깃털을 단 투구를 쓴 기사, 로이엔느 대공이 아서를 내리누르던 검을 거칠게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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