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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77화 (77/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77화

두 사람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마주쳤다. 그레이스는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다정히 미소 짓는 아서의 얼굴에 살며시 볼을 붉혔다. 아서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귀엽다는 듯 여전히 꼭 쥐고 있던 그레이스의 손바닥에 짧게 키스하며 말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에요. 아서.”

“어제 제가 베고 잔 탓에 손바닥이 저리거나 하진 않으십니까?

“아뇨, 괜찮아요. 그런데 어젯밤 줄곧 이 상태로 여기서 잠을 청한 거예요?”

줄곧 허리를 굽힌 채 자신이 누운 침대 옆에 엎드린 채로 잠이 든 아서가 걱정된 그레이스가 묻자, 아서는 별 대답 없이 그저 가볍게 웃기만 했다. 그레이스는 그 모습에 주책맞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면서도 조금 속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리 불편하게 자고 있지 말고, 그냥 내 옆에 누웠으면 됐을 텐데. 우리가 남도 아니고, 부부인데.’

신이 축복하고 제국이 인정한 사이인데 이리 자신을 조심스럽게 대할 이유가 뭐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그레이스는 괜히 혼자 부끄러워져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에 아서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부인? 조금 전보다 볼이 더 붉어졌습니다.”

“……아, 네?”

“혹시 열이 있는 거라면, 당장 의사를 불러올까요?”

“아, 아뇨! 정말 괜찮아요!”

그레이스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불쑥 고개를 가까이하는 아서의 모습에 당황해하며 소리쳤다.

그동안 늘 가면을 쓴 모습에 익숙해져서일까, 가면을 벗은 아서의 잘생긴 얼굴에 그레이스는 자꾸만 첫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고 설레 했다.

그러던 중 긴 머리가 옆얼굴로 흘러내리자, 그레이스는 무심코 늘어진 머리를 올리려다 손등이 따끔하는 느낌에 그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얏!”

“부인? 왜 그러십니까? 손이 아프십니까?”

“그러게요? 왜 아프지? 딱히 다친 곳도 없는데……!?”

그러자 자신보다 더 소스라치게 놀라는 아서의 모습에 그레이스는 괜히 민망해하며 따끔거리는 왼손을 눈앞에 펼쳤다.

그 순간, 그레이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상처 없이 깨끗했던 왼손이 날카로운 것에 긁힌 것 같은 생채기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레이스는 어느새 딱지가 앉기 시작한 손등의 상처를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어, 이게 어쩌다 이렇게 다친 거지?”

“……젠장, 그때 어두워서 차마 보지 못했군.”

아서는 얼른 꼭 잡고 있던 그레이스의 오른손을 내려놓고, 다친 그녀의 왼손을 살피며 짧게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선뜻 알아듣기 힘든 그 말에 그레이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네? 뭘 보지 못했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응?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아무래도 상처에 약을 발라야 할 것 같습니다. 당장 샐리를 불러올 테니, 잠시 이대로 계세요.”

아서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말을 돌리며 침실 문 밖으로 나갔다.

그레이스는 그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뭔가 수상했다. 자신의 물음에 대답 대신 화제를 돌리고, 굳이 테이블 위에 종을 두고 직접 샐리를 부르러 나가는 그의 행동이 영 석연치 않았다. 그런데 또 굳이 콕 찝어 말하기에는 애매한 그런 느낌에 그레이스는 괜히 다친 자신의 왼손만 만지작거렸다.

‘대체 어디서 다친 거지? 자다가 부딪혔다고 넘기기엔 자꾸 아서의 태도가 마음에 걸리는데.’

그레이스가 곰곰이 어제 하루 동안 자신의 행적을 더듬어 보고 있던 그때였다.

“마님! 다치셨다고요?”

침실 문이 열리고 아서와 샐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레이스는 놀란 얼굴로 자신이 앉아 있는 침대 앞으로 다가와 눈으로 빠르게 그레이스를 훑어 내리는 샐리를 향해 말했다.

“별건 아니고 손등을 좀 다쳤어.”

“어쩌다가요?”

“글쎄, 그게 나도 잘 모르겠어. 어제 동쪽 탑 지하실에 들어갔다가 다쳤나?”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레이스가 가볍게 자신의 왼손을 이리저리 흔들며 발랄하게 말했다.

샐리는 그런 그레이스의 말을 듣고는 슬며시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네? 그럴 리가요! 어젯밤에 제가 마님 목욕시중을 들어 드릴 때,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는걸요!”

“……그랬어?”

“대체 어쩌다가……. 아, 혹시 밤에……!”

샐리는 여전히 의혹으로 가득 찬 얼굴로 그레이스의 왼손을 내려다보다,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아서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아서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더니, 샐리를 향해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샐리는 그 모습에 잠시 말을 잃고 입을 벙긋거렸다.

‘혹시, 어젯밤 일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는 뜻이신가? 아, 그러고 보니 어젯밤 두 분이서 밤늦게 밀회를 즐기고 계셨었지.’

그럼 저 손등의 상처는 그때 생긴 것인가. 샐리는 지레짐작하다 갑자기 피식 웃었다.

혹시 두 분께서는 어젯밤의 밀회에 대해 자신에게 말씀하시기 부끄러워하시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납득도 되었다.

샐리는 굳은 표정의 아서를 향해 걱정말라는 듯 곰살맞게 미소 지었다. 분부대로 어젯밤 일을 언급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밤? 샐리,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어?”

한편, 그레이스는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아서와 눈짓을 주고받는 샐리의 모습에 답답해하며 물었다.

대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냥 자신은 푹 잠들었다 깨어난 기억밖엔 나지 않았다. 그래서 답답해하던 그때 샐리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그냥 어젯밤에 마님 잠버릇이 유독 심했겠구나 싶어서요?”

“잠버릇? 이상하다. 나 잠버릇 없는데.”

“없기는요. 피곤하신 날이면 꼭 잠꼬대하시는걸요? 가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몸을 뒤틀기도 하시고요.”

“……아, 정말?”

그 대답에 그레이스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샐리의 말을 들으니 짐작 가는 것이 좀 있어서였다. 샐리가 언급한 잠꼬대는 분명 자신이 처음으로 죽음을 맞이했던 그 순간의 악몽을 꿀 때 있었던 일이겠구나 생각하니 납득이 되었다.

‘혹시 어젯밤에도 내가 그런 잠꼬대를 해서 아서가 잠든 내 손을 잡고 잠이 들었던 걸까? 내가 악몽을 꾸지 않았으면 해서?’

그리 생각하니 그레이스는 확 부끄러워졌다. 혹시 어제 자신이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흉한 잠꼬대를 한 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을 아서가 전부 본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걱정이 들어서였다.

만약 그래서 아서가 자신의 곁에 눕는 대신 자신의 손을 잡고 불편한 잠을 청한 것이라면, 그레이스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당분간 아서의 얼굴을 똑바로 보기 힘들 것 같았다.

그레이스가 그렇게 혼자 생각을 부풀리고 있을 때, 아서가 샐리를 향해 말했다.

“그건 그렇고, 연고와 붕대는 가져왔나?”

“아, 네. 공작님. 붕대는 가져왔고, 연고는 마님의 화장대 서랍장 안에 있어서 따로 가져오진 않았어요.”

“그럼 연고를 가져와. 발라 주는 것은 내가 하지.”

“알겠습니다. 공작님.”

아서의 명령에 샐리는 곧장 그레이스의 화장대 쪽으로 걸어갔다. 그 후 샐리는 화장대 서랍을 열고 연고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금방 물건을 찾아 가져오던 것과는 달리, 샐리는 화장대 앞에서 한참을 헤매는 듯했다. 그레이스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화장대 서랍 전부를 열어 보는 샐리를 향해 말했다.

“왜 그래, 샐리? 못 찾겠어?”

“그게 참 이상하네요, 마님. 평소 제가 넣어 뒀던 자리에 연고가 없는……. 아! 찾았어요, 마님!”

다행히 화장대의 가장 밑 서랍에서 연고와 연고용 스푼을 찾아낸 샐리는 곧장 그것을 가져와 아서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공작님.”

“붕대는?”

“그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고마워, 샐리.”

아서는 샐리에게서 붕대와 연고를 받아 든 후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그 후 아서는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침대에서 한 발짝 정도 떨어진 채 대기 중인 샐리를 향해 말했다.

“아, 부탁할 것이 한 가지 더 있는데.”

“네? 뭐든지 말씀하세요.”

“주방장에게 말해, 나와 이 사람분의 아침 식사를 가져와 주겠어? 그리고 괜찮다면 따뜻한 물과 수건도 부탁하지.”

“아, 그럼요! 당장 준비해 오겠습니다.”

샐리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한 후 침실 밖으로 나갔다.

그레이스는 종종걸음으로 멀어지는 샐리의 등을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곁에 앉은 아서에게 말했다.

“……아서, 아직 아침을 먹기엔 좀 이른 시간이지 않아요?”

그 물음에 아서는 잠깐 무표정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아서는 곧 은근한 장난기가 어린 눈으로 그레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맞습니다. 아직 아침 식사는커녕, 침대에서 벗어나기에도 이른 시간이죠.”

“그런데 왜……?”

“서운합니다. 내가 왜 그랬는지 정녕 몰라서 물으십니까?”

그레이스의 질문에 아서는 갑자기 짙은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그러더니 그는 그레이스의 생채기 가득한 왼손을 잡아 올린 후 그 손끝에 쪽 소리 나게 입맞춤하며 대답했다.

“물으시니 솔직히 대답하겠습니다. 부인과 둘이 있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아.”

“그럼 샐리가 식사를 가져올 동안, 부인의 손을 치료해야겠습니다. 다소 따끔하더라도 참아 주세요.”

“……내가 바를 수 있는데.”

“그런 말씀 마세요, 부인. 모처럼 부인을 돌볼 수 있는 기쁨을 제게서 앗아 갈 작정이십니까?”

아서는 그 얼굴에 걸린 잘생긴 미소만큼이나 다정하고 낯 부끄러운 말을 태연히 내뱉었다. 그레이스는 그런 그를 살며시 흘겨보았지만 그 시선은 하나도 사납지 않았다.

아서는 그런 그녀가 귀엽다는 듯 잡은 그녀의 왼손을 한 번 꼭 쥐고는 조심스럽게 작은 스푼에 연고를 덜어 그레이스의 손등에 펴 발랐다.

그레이스는 손등 위를 가볍게 쓸고 지나가는 간지럽고 따가운 감촉에 이따금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자 낮게 웃음을 터트리는 아서를 향해 그레이스는 괜히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웃지 마요.”

“부인께서 귀여워서 그런 것입니다.”

“귀엽긴요. ……참, 나. 스스로도 이해가 안 돼요. 잠꼬대가 얼마나 심하면 손등이 이 지경이 될 수 있죠? 그리고 얼마나 깊이 잠이 들었으면 손이 이렇게 됐는데도 잠에서 깨지 않을 수 있죠? 아무리 생각해도 전 너무 둔한 것 같아요.”

“……하하.”

“혹시 내가 그러는 거 아서도 봤어요? 솔직히 말해 줘요. 보고 실망하지 않았어요?”

“실망이라뇨. 부인께서 얼마나 예쁘게 주무시는데요. 꼭 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았는걸요.”

“……거짓말하지 마요.”

“거짓이 아닙니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연이은 투정에도 다정히 웃으며 받아넘기는 아서의 모습에 겨우 표정을 좀 풀었다. 자신이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그런 모습조차 귀엽고 예쁘다고 말해 주는 사람 앞에서 더 이상의 투정을 부리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마음속에 왠지 모를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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