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73화 (73/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73화

“……전하,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떠오르신 겁니까?”

그 모습에 로쉬 백작이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오웬이 열망에 가득 찬 목소리로 그 물음에 대꾸했다.

“그래. 꽤 괜찮은 방법이 떠올랐어.”

“……어떤?”

“로쉬 백작. 지금 당장 마법사를 찾아 줘.”

“마법사를요?”

“그래. 단, 앨버튼과 관련 없는 자로.”

“……예? 전하. 그것은 불가합니다.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제국의 모든 마법사들은 다 앨버튼 공작가의 사람이거나, 혹은 앨버튼 공작의 명령이라면 죽는시늉도 기꺼이 할 수 있는 공작의 제자들뿐입니다.”

오웬의 명령에 로쉬 백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웬의 말이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오웬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마치 그가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오웬은 로쉬 백작을 응시하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니. 찾아보면 분명히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것은…….”

“앨버튼 공작에게 앙심을 품은 마법사가.”

“……예!?”

“앨버튼 공작은 자신의 피를 이은 자식도 이용 가치가 없다면 버리는 냉혹한 자야. 그런 자가 적이 없을 리 만무하잖나? 분명 마법사 중 그놈에게 겉으로는 충성하면서 뒤로는 배신의 칼을 가는 마법사가 있을 거야.”

“……화, 확실히 앨버튼 공작은 적이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아군도 많지요. 그것도 자식들을 유력 가문과 정략결혼시켜 얻은 혈맹 관계의 아군들이요. 그리고 그 세력은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습니다. 마법사들도 그를 잘 알기에, 겉으로는 하나같이 앨버튼 공작에게 충성을 하고 있는 걸 텐데요.”

로쉬 백작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한 채 반박하자 오웬은 제 앞에 놓인 다 식은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 후, 오웬은 은근해진 목소리로 로쉬 백작의 반박에 대꾸했다.

“그러니 이 제국을, 아니 전 대륙을 샅샅이 뒤져서 찾아내야지. 앨버튼 공작을 증오하고, 또 기꺼이 나를 위해 힘을 빌려줄 수 있는 능력 있고 야망으로 가득 찬 자를 말이야.”

“……전하.”

“자네는 할 수 있어. 아니, 우리는 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오웬은 손을 뻗어 로쉬 백작의 손을 꽉 부여잡았다.

로쉬 백작은 자신의 손을 쥔 깡마른 황태자의 손에 담긴 악력에서 강한 의지와 음험한 증오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독사 같은 앨버튼 공작의 함정에 순순히 빠져 죽을 수 없다는 일종의 발버둥이었다.

그 강렬한 의지를 느낀 로쉬 백작은 곧 오웬을 바라보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은 황실을 위해 존재하는 몸. 황실이 원한다면 손을 더럽혀지더라도 태연히 수행해 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시종장의 운명이었으니.

그런 로쉬 백작의 모습을 보며 오웬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신이 자신의 운명에 저주를 퍼부었다면, 자신 또한 그 신에게 똑같이 저주를 퍼부을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원하는 바를 손에 넣을 것이었다. 아주 보란 듯이.

* * *

그레이스의 부탁으로 만찬처럼 이어지던 점심 식사는 예상보다 더 빨리 끝이 났다.

그레이스는 갑작스레 끊겨 버린 사랑하는 형님 부부와의 시간을 못내 아쉬워하는 레온을 다정히 끌어안으며 사과를 건넸다.

“요즘 난 레온에게 사과할 일만 생기네. 미안해, 레온.”

“……아니에요, 형수님.”

“대신 내일 점심도, 저녁도! 아니지, 앞으로 쭉.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나랑 형님이랑 레온이랑 이렇게 셋이서 같이 점심을 먹는 걸로 하자. 어때?”

“좋아요!”

그레이스가 사과와 함께 제안을 건네자 레온은 토라져 꽁해 있던 얼굴을 풀고 활짝 웃었다.

그런 레온의 볼에 짧게 입맞춤한 후 그레이스는 제 곁으로 다가온 올리버 경에게 레온을 인계했다.

“그럼 레온을 부탁할게요.”

“걱정 마세요, 공작 부인.”

“레온, 저녁에 보자!”

“네!”

그 후 올리버 경의 품에 안겨 손을 흔드는 레온을 향해 그레이스는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다, 그레이스와 똑같이 레온에게 손을 흔들어 주던 아서는 레온이 멀어지자 그레이스의 어깨 위에 자신의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응접실에 샐리를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믿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경비 인력을 제외하고는 전부 주위를 물리라고 했고요.”

“고마워요, 아서.”

그레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서의 품에 반쯤 안긴 채 연회장 밖을 나왔다.

지난번 비밀정원에서와는 달리 끔찍한 두통이 생기지도 않았고 정신을 잃지도 않았건만, 그레이스는 연신 자신을 깨지기 쉬운 유리인형처럼 안고 부축하는 아서의 모습이 좋으면서도 내심 부끄러웠다.

그렇게 단 몇 발짝 되지 않는 걸음을 옮겨 연회장에서 응접실로 온 아서와 그레이스는 문 앞에 서 있던 기사가 문을 열어 주자 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응접실 안에서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불편하게 앉아 있던 샐리가 벌떡 일어나 두 사람의 곁으로 걸어왔다. 그러더니 아서의 부축을 받고 있는 그레이스를 살피며 물었다.

“어머, 마님!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또, 지난번처럼 쓰러지셨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샐리.”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전 본채에서 저를 다급히 찾는다기에, 또 마님께서 쓰러져 정신을 잃으셨거나 아니면 마님 신변에 큰 문제가 생긴 줄 알고…….”

그레이스가 다정히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을 하자 샐리는 한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서는 그런 샐리를 흘긋 바라보다 긴 소파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가서 앉아, 샐리. 우리도 가서 앉을 테니.”

“……예. 알겠습니다, 공작님.”

아서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샐리는 곧 조금 전과 비슷하게 불편한 자세로 길고 푹신한 응접실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아서는 그레이스를 샐리의 맞은편 소파에 앉힌 후 자신 또한 바로 그 옆에 붙어 앉았다.

샐리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주인 부부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로 저를 급히 찾으셨어요?”

“……그게, 있잖아. 샐리.”

“네. 말씀하세요.”

“그때, 기억해? 내가 시부모님이신 선대 펠릭스 공작님과 에일린 1황녀님의 일을 물었을 때 말이야.”

그레이스의 말에 잠시 생각을 더듬는 듯 멍한 얼굴을 하던 샐리는 곧 짧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말했다.

“아, 예. 그럼요! 그런데 그건 왜 물으셔요?”

“그때 일로 물을 것이 있어.”

“샐리, 이 사람에게 기억나는 건 뭐든지 숨기지 않고 전부 말해 줬으면 좋겠군.”

“……음, 예. 얼마든지 물으세요.”

샐리는 조금 긴장한 얼굴로 아서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러자 아서는 그레이스의 손을 꼭 잡으며 다정히 눈짓했고, 그 모습에 그레이스는 머릿속에 정리해 두었던 질문들을 꺼내 놓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서가 태어났던 날, 선대 펠릭스 공작님께서 에일린 황녀님을 안고 성안의 가장 높은 탑으로 올라가 버렸다고 말했었지? 그 이후 3일 동안 두 분께선 그 탑에서 내려오지 않았다고도 했고.”

“……아, 네. 맞습니다.”

“그 후 두 분이서 내려오실 때까지 아무도 그 탑에 사람이 오가지 않은 건 확실해?”

“……글쎄요.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그 가장 높은 탑에 대해선 저희 시종들이나 시녀들은 아는 바가 없답니다. 예전부터 기사들이 망루처럼 사용하던 곳이라, 그곳의 청소며 관리까지 전부 기사들께서 하셨거든요. 저택 본채와는 멀리 떨어진 외진 곳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곳에 두 분 외의 다른 사람들이 들락였는지는 저도 모른답니다.”

그레이스의 물음에 샐리는 기억을 더듬듯 살짝 미간을 찌푸린 얼굴로 대답했다. 지난번 그레이스에게 했던 대답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그 대답을 들은 아서의 얼굴이 의미심장하게 굳어졌다. 그 모습에 그레이스는 아서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서는 그 탑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죠? 어때요? 저택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르게 사람들이 들락거릴 수 있는 곳인가요?”

“아뇨. 그럴 수 없습니다. 외진 곳인 것도 맞고, 기사들이 관리를 도맡아 하는 곳인 것도 맞지만 이 저택의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사람을 들일 수 있는 그런 곳은 아닙니다. “

“기사들을 이용해 은밀히 저택 밖의 사람을 그곳으로 부를 수도 없었을까요?”

그 말을 들은 아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불가능합니다. 이 저택으로 들어오려면 반드시 본인의 신분과 방문 목적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성공했다 해도, 낯선 사람이 그 당시 두 분께서 칩거 중인 탑에 들어가려 한다면 그 어떤 기사도 가만있지 않았을 겁니다. 아버지에게 연락을 넣어, 그자의 신분을 확인하고자 했을 테죠.”

“……그렇다는 건, 그 탑에는 사흘 동안 정말 두 분만 계셨다는 소리네요. 아서, 혹시 아버님께서 치유 마법을 쓸 수 있으셨나요?”

“그럴 리가요. 아버지는 마법과는 무관한 사람이었습니다. 의술을 배운 적도 없었고요. 아버지에겐 기껏해야 검에 찢긴 상처에 붕대를 감아 두는 정도의 지식밖에는 없었습니다.”

아서의 대답을 들은 그레이스는 살짝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온몸이 피로 젖을 만큼 상태가 위태로웠던 선대 펠릭스 공작 부인 에일린 펠릭스와 그런 그녀를 안고 성 내 가장 높은 탑에 칩거한 선대 펠릭스 공작. 그리고 사흘 뒤 ‘살아난’ 아내를 안고 탑을 내려온 선대의 펠릭스 공작.

사흘간, 그 누구도 그 탑을 오른 이는 없었고 펠릭스 공작은 의술에 조예도 깊지 않다.

‘그렇다는 건, 정말 아버님께선 그 눈의 공작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되살릴 수 있는 힘이 있으셨던 건 아닐까?’

정말이지 스스로 생각해도 좀 허황되다 싶을 만한 생각이었으나, 그렇게 설명하지 않고는 어떻게 난산으로 죽어 가던 에일린 황녀가 멀쩡히 살아난 건지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레이스는 옆에 앉은 아서를 돌아보며 샐리에게는 들리지 않게 그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그렇다면, 아서. 아버님께서는 ‘눈의 공작’ 같은 힘을 갖고 계셨던 것 아닐까요? 죽어 가는 누군가의 목숨을 살아 있는 자신의 목숨과 연결해 소생시키는 힘 말이에요.”

“……부인.”

그러나 그레이스의 말을 들은 아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그런 힘이 아버지에게 있었다면, 분명 내게 어떤 언질이라도 해 주셨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면 도무지 상황이 납득이 되질 않아요. 죽어 가던 에일린 황녀님이 기적적으로 살아나신 것도 그렇고, 결정적으로 두 분이 돌아가시던 날의 정황도 그렇고요.”

아서는 단호히 부정했지만, 그레이스는 도무지 그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