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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70화 (70/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70화

그레이스는 멍한 눈으로 제 눈앞에 보이는 조금 전 ‘연회장’의 모습과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종들과 시녀들, 그리고 아서와 레온의 모습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그레이스는 다시 그 ‘환상’ 속에서 강제로 밀려난 것이었다. 그녀는 느릿하게 숨을 고르며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아서를 향해 말했다.

“……아서, 이게…….”

“부인, 갑자기 왜 자리에서 일어나신 겁니까?”

“네?”

“뭐 못 볼 것이라도 보신 겁니까.”

그레이스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채 자신에게 묻는 아서를 향해 멍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봤어요. ‘눈의 공작’을요.”

“예? 부인,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아, 그러니까. 그게. 아서, 샐리. 샐리를 좀 불러줘요!”

그레이스는 허둥거리며 아서의 팔을 붙잡고 소리쳤다.

분명 그날 그렇게 쓰러지고 나서, 그 환상에 대해 캐내고 다녔을 때 샐리가 말했었다. 자신이 보았던 그 환상은 아마도 선대의 펠릭스 공작일 것이라고.

그 말이 떠오르자, 그레이스의 머릿속은 지금껏 샐리에게 들었던 것과 앨버튼 공작의 서재에서 몰래 훔쳤던 수첩 속 정보들로 이리저리 엉켰다.

‘만약 그 모습이 아서의 아버님과 어머님, 선대 펠릭스 공작님과 에일린 1황녀님이라면……. 그리고 그분들이 눈의 공작이라는 동화 속 눈의 공작과 같은 마법을 사용했다면?’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아버지인 앨버튼 공작이 알아냈다면? 그래서 아버지가 그 비밀을 이용해 황실이 가진 약점에 대해 파고들었다면?

생각을 연결하자 지금껏 안갯속을 걷는 듯 막막하기만 했던 펠릭스 공작가의 저주에 대한 ‘진상’의 실마리를 드디어 찾아낸 것 같았다.

당장 샐리를 불러 자신이 그녀에게 들었던 것이 맞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레이스가 다급히 샐리를 찾자, 아서가 그레이스의 어깨를 한 팔로 끌어안으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진정하세요. 샐리는 식사를 마친 후 따로 응접실로 불러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확인할 것이 있는데……!”

“레온이 부인 모습에 많이 놀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다른 이들의 눈도 많고요. 그러니 잠깐만 평정을 되찾으세요.”

“……아.”

아서의 말에 그레이스는 그제야 자신이 완전히 환상에서 빠져나온 기분이 들었다.

그레이스는 놀란 눈으로 자신을 흘금거리는 시종들과 시녀들, 그리고 잔뜩 울상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는 레온을 돌아본 후 맥없이 온몸의 힘을 풀었다.

아서의 말처럼, 일단 자리를 정리한 후 따로 조용한 곳에서 했어야 할 이야기였는데. 저주의 실마리를 드디어 찾아낸 것 같아 괜히 마음만 조급해져 여러 사람을 당황하게 한 것 같았다.

그레이스는 눈썹을 축 늘어뜨리며 아서를 향해 사과를 건넸다.

“……미안해요, 아서.”

“괜찮습니다.”

그 후 그레이스는 놀라 눈에 눈물까지 맺힌 채 앉아 있는 레온의 곁으로 다가가 작은 몸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미안해, 레온. 많이 놀랐지? 내가 미안해.”

“……또, 또 그 저주가 형수님을 찾아온 거죠? 내, 내가, 형님이, 가면을 벗어서…….”

“아냐! 그런 게 절대 아니야!”

그레이스는 울먹이는 레온의 어깨를 두 손으로 꽉 쥐고는 아이와 시선을 맞추며 단호히 말했다. 그러자 레온이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곧 작은 팔을 들어 그레이스의 목을 꼭 껴안으며 말했다.

“……정말요? 또, 또 그날처럼 형수님께서 쓰러지시지 않을 거죠?”

“그럼! 조금 전에 그건, 그러니까……. 음. 내가 중요한 사실을 알아낸 것 같아서! 그래서 그런 거야?”

“……중요한 사실이요?”

“응. 아주 중요한 사실.”

어쩌면 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을지도 모를, 대단히 강력하면서도 신비한 마법과 그를 이용하는 자들에 대해.

그레이스는 그 말을 삼키며 울먹이는 레온의 등을 토닥였다. 그러면서 그레이스는 혹여 레온의 말처럼 자신에게 또다시 저주의 힘이 미친 것은 아닐까 염려하는 시선으로 자신을 살피는 아서를 향해 말했다.

“……정말 미안해요. 모처럼 가족끼리 오붓한 식사 자리를 망쳐서.”

“아닙니다. 부인이야말로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만약 레온의 말처럼 또다시 저주가…….”

“아뇨. 그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걱정 마요. 아서. 그리고…….”

“……그리고?”

그레이스는 되묻는 아서에게 레온을 안은 채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레온을 달래 별채로 보낸 후에, 괜찮다면 잠깐 내게 시간을 내주시겠어요? 그리고 샐리도 불러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식사는 이쯤 해야겠군요.”

그녀의 말에 아서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아서의 말에 눈치 빠르게 식사 자리를 정리하며 움직이는 시종들과 시녀들을 살피며, 그레이스는 훌쩍이는 레온의 등을 다정히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자신이 알아낸 것과 알아낼 것들에 대해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생각을 이어 나갔다. 바로 아직 한참을 더 알아내고 파헤쳐야 할 ‘비밀’들과 ‘음모’들에 대해서였다.

* * *

정오를 조금 넘은 시각, 조회를 마치고 이른 점심을 먹은 후 태양의 방으로 돌아온 황제는 시종장, 로쉬 백작으로부터 한 통의 서신을 전달받았다.

서신을 보낸 이는 앨버튼 공작이었다. 앨버튼 공작가를 상징하는 올빼미 인장이 박힌 그 서신에는 오늘 급히 황제를 알현하고 싶다는 뜻을 담은 정중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그 서신을 무표정한 얼굴로 읽어 내려가던 황제는 서신을 다 읽자마자 그것을 심드렁하게 로쉬 백작을 향해 내밀며 말했다.

“알현 요청은 무슨. 요청을 가장한 협박이겠지.”

마치 자조하듯 혼잣말을 내뱉는 황제의 모습에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로쉬 백작이 민망한 듯 시선을 내리깔았다. 황제는 그런 로쉬 백작을 흘긋 바라보다 또다시 심드렁한 어조로 그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우리의 대공작 각하 앨버튼 공작께서는 지금 어디 계신가?”

“조금 전 황성 성문을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았으니, 아마도 곧 도착할 겁니다.”

“또 어떤 소리로 짐의 노쇠한 심장을 놀라게 할지 참으로 기대되는군.”

그렇게 말하는 황제의 목소리는 조금도 기대되지 않는다는 듯 냉소적이었다.

로쉬 백작은 황제의 심기가 불편함을 기민하게 눈치채고는 황제의 왕좌 옆에 놓인 테이블에 뜨거운 홍차가 담긴 찻잔을 내려놓았다. 지금 속이 시끄러울 황제에게 로쉬 백작이 내밀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다.

“드셔 보십시오, 폐하. 황후님께서 폐하를 위해 친정이신 베쳇 대공작가에 친히 사람을 보내 구해 오신 최상급 홍차입니다.”

“굳이 그럴 것까진 없었는데 고맙네. 황후궁에 수표를 보내게. 마리아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살 수 있을 만큼의 액수를 적어 재정관에게 보내라고 전해.”

“예. 폐하.”

황제는 로쉬 백작이 내민 뜨거운 홍차를 후룩 들이켰다. 황후가 친히 사람을 보내 가져온 마음이 기꺼워서인지, 홍차는 제법 풍미가 좋았다.

마치 황제인 자신 또한 멋대로 쥐고 흔들 수 있다고 자신하며 서슴없이 자신의 권력욕을 드러내는 악마 같은 앨버튼 공작을 기다리는 시간이 끔찍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황제가 불편한 심기를 뜨거운 홍차 한 잔으로 달라고 있던 그때였다.

똑똑―.

굳게 닫힌 태양의 방의 문에서 짧은 노크 소리가 나더니, 바이언 근위대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황실 근위대를 상징하는 검은 망토에 황금 독수리가 수 놓인 망토를 펄럭이며 걸어오더니, 왕좌에 앉은 황제를 향해 무릎을 꿇고 고했다.

“폐하, 앨버튼 공작이 폐하를 알현하고자 청하는데, 어찌할까요.”

“들라 하라.”

“예, 폐하.”

황제의 명령에 부복하던 바이언 근위대장은 목례한 후 일어나 태양의 방의 문 앞으로 걸어가 그 문을 열었다.

황제는 문이 열리고, 거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앨버튼 공작을 차가운 시선으로 응시했다.

태어날 때부터 제국의 사교계에 익숙해 웬만해서는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황제의 평판과는 사뭇 다르게 노골적이었다. 앨버튼 공작은 그런 황제의 불편한 기색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양 은은한 미소를 띤 얼굴로 왕좌 앞 황제를 향해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신 앨버튼 공작, 폐하를 뵙습니다.”

“그래, 오늘은 또 무슨 일로 바쁘신 앨버튼 공작께서 친히 황궁까지 걸음하셨나.”

정중히 예를 표한 앨버튼 공작을 향해 황제는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마치 슬럼가의 구걸하는 이를 대하는 듯한 황제의 태도에 잠깐 앨버튼 공작의 미간이 찌푸려졌으나,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앨버튼 공작은 은은히 미소 띤 얼굴로 돌아와 황제를 향해 말했다.

“폐하께서 들으시면 아주 기뻐할 만한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호오, 그래? 그 소식이 대체 무엇이지?”

“드디어 제물에게 저주가 걸려들었습니다.”

“뭐라?”

“이제 그 제물을 ‘한 번’ 죽이기만 하면, 폐하께서 그토록 바라셨던 ‘황실의 저주’를 걷어 낼 수 있습니다.”

“그, 그것이 정말인가?”

“예. 폐하.”

줄곧 마뜩잖은 표정을 한 채 심드렁한 목소리로 앨버튼 공작의 말을 듣던 황제의 얼굴이 그 말을 들은 순간 화색을 띠었다.

그러더니 황제는 친히 왕좌에서 내려와 거만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앨버튼 공작의 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으며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네, 앨버튼 공작. 정말로 고마워.”

“참으로 지난한 시간이었습니다. 폐하.”

“그랬지. 참으로 그러하였다.”

앨버튼 공작의 말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듯 대꾸한 황제는 황태자 오웬이 태어난 이후 줄곧 아들의 비밀을 지키고 아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렸다.

황후와 국혼을 치른 후 아주 오랜 기간 태어나지 않았던 후사. 그 긴 기다림 끝에 태어난 후사는 바랐던 대로 준걸한 아들이었으나 ‘태초신의 저주’를 타고 태어난 탓에 스무 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 했다.

신관으로부터 그 신탁을 전해 들은 황제는 절망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고작 선조가 받은 저주 때문에 마흔을 넘어 겨우 얻은 외동아들을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었다. 황후는 차라리 자신과 이혼 후 젊고 아름다운 새 황후를 얻으라 했지만 황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오랜 기간 난임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던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고 다른 황후를 맞을 마음도 없었거니와, 신탁 또한 현 황제에게는 현재 태어난 어린 황태자 오웬이 죽고 나면 더 이상의 후사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손을 잡은 것이었다. 눈앞의 이 악마 같은 앨버튼 공작과 하나뿐인 아들이 무사히 이 왕좌에 앉을 수 있다면, 그 아이가 이 제국의 후사를 무사히 이어 초대신이 존재할 때부터 이어진 이 혈통을 다음 대로 넘겨줄 수 있다면 그 어떤 방법이든 쓸 수 있었다.

설령 그 방법이 고모님이 시집간 공작가의 일족을 파멸로 이끄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었다.

그렇게 누군가를 죽이고, 또 속여 가며 보내온 지난 시간들이 드디어 결실을 맺다니, 황제는 감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고지가 눈앞이었다. 황제는 조급한 목소리로 앨버튼 공작을 향해 말했다.

“그럼 이제 짐은 무엇을 하면 되는 거지? 응? 얼른 말해 보게, 앨버튼 공작.”

“제 여식 마리안느와 황태자 전하의 결혼을 서둘러 주십시오, 폐하.”

그러나 이어진 앨버튼 공작의 말에 황제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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