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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68화 (68/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68화

그 후, 지하실의 문을 잠근 두 사람은 꼭 소풍을 다녀온 아이들처럼 두 손을 꼭 붙잡고 1층으로 올라왔다.

마지막으로 지하실로 통하는 1층의 문까지 단단히 걸어 잠근 후 복도의 모퉁이를 돈 두 사람은 그곳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던 샐리와 펠릭스 저택의 집사장 로버츠와 조우했다.

샐리와 로버츠는 아서와 그레이스의 모습을 보자 깊게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고는 말했다.

“각하께서 명하신 대로 당장 두 분께서 식사하실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습니다.”

“고맙네, 로버츠.”

“그런데 마님의 차림이 영 엉망이시군요. 당장 목욕물을 준비할까요?”

“……아.”

로버츠의 지적에 그레이스는 어색한 표정으로 시선을 내려 자신의 차림을 살폈다.

조금 전 아서가 털어 준 머리카락은 그나마 상황이 좀 나았지만, 입고 있는 드레스가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로 엉망이었다.

이런 모습을 아서에게 보였다니, 그레이스는 민망함에 잡고 있던 아서의 손을 놓고는 대답했다.

“으, 응.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

“알겠습니다. 샐리, 마님을 2층으로 안내하세요.”

“네. 로버츠. 마님, 절 따라오세요.”

“응. 샐리.”

그레이스는 지난번 샐리의 당부대로 어색하지만 단호하게 집사장 로버츠를 향해 하대했다.

그 후 자신을 2층으로 이끄는 샐리를 따라나서려 하자, 아서가 슬쩍 그레이스의 손을 붙잡더니 로버츠를 향해 말했다.

“부인께서 많이 허기가 지실 텐데. 먼저 식사부터 하면 되지 않나?”

“……아니에요, 아서. 괜찮으면 좀 씻고 오고 싶어요. 아서야말로 배가 고프지 않아요?”

“아닙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그럼 잠깐만 기다려 줘요. 샐리, 나 시중 좀 들어 줄래?”

“네, 얼마든지요.”

그레이스는 자신을 붙잡은 아서의 손등을 다정히 토닥이고는 샐리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샐리의 시중을 받아 준비된 따끈한 목욕물에 간단히 목욕을 했다.

그 후 진홍색의 이브닝드레스로 갈아입은 그레이스가 1층으로 내려오자 집사장 로버츠는 그녀를 연회장으로 안내했다. 연회장 안으로 들어선 그레이스의 눈에 미리 도착해 있던 아서와 레온의 모습이 보였다.

레온은 연회장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오는 그레이스의 모습에 반색하며, 식탁 의자에서 뛰어 내려와 그녀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어머, 레온! 수업은 마쳤어? 식사는?”

“네! 식사는 그냥 별관에서 혼자 먹으려고 했는데, 형님께서 같이 먹자고 하셔서요! 마침 형수님도 동쪽 탑에 계신다고요!”

“그랬어? 잘했어!”

그레이스는 허리를 굽혀 레온과 눈을 맞추고는 안부를 물었다.

레온이 해맑게 웃으며 재잘재잘 말을 쏟아 냈다. 그레이스는 그런 레온이 귀여워, 통통하게 드러난 뺨을 가볍게 토닥인 후 레온의 작은 손을 잡고 아서가 있는 긴 식탁으로 걸어갔다.

의자에서 일어나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것을 기다리던 아서는 다시 식탁 근처로 돌아온 레온을 안아 자신의 옆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자신의 다른 쪽 옆 의자를 빼며 그레이스에게 말했다.

“여기 앉으세요, 부인.”

“고마워요. 아서.”

그레이스는 기꺼이 아서가 베푼 호의를 받아들이며 그가 빼 준 의자에 앉았다.

그레이스가 자리에 앉아 무릎 위에 냅킨을 까는 것까지 확인한 후 그녀의 옆에 있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아서는 제 곁에 있는 작은 종을 흔들었다. 그러자 시종들은 기다렸다는 듯 세 사람이 앉은 긴 테이블에 준비한 음식들을 내려놓았다.

그레이스는 족히 서른 명은 너끈히 앉을 수 있을 법한 긴 테이블에 놓이는 수십 가지 음식들에 살짝 질린 표정을 하며 아서를 향해 말했다.

“겨우 세 사람이 먹을 음식치곤 너무 많지 않아요?”

“원래는 이렇게까지 준비를 하라 일러두진 않습니다.”

“그런데요?”

“……부끄럽지만 부인께서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다양하게 음식을 준비해 두라고 명했더니 그만 이렇게…….”

“……아아.”

“명색이 남편인데 부인이 좋아하는 음식 하나 몰라서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을 내놓았다가 부인께서 식사하기 불편해하시는 것보다는 낫다 싶어서 그랬습니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이 긴 식탁을 전부 채울 만큼 많은 음식을 내놓은 것에 대해 해명하는 아서의 모습에 그레이스는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멋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또 쑥스럽기도 한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러자 아서가 조심스럽게 그레이스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그렇게 묻는 아서의 모습은 혹시 그레이스가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닐까 살피는 듯했다. 그 모습에 그레이스는 풋, 하고 가볍게 웃고는 손을 뻗어 식탁 위에 놓인 아서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개며 말했다.

“아뇨. 그냥, 음. 기쁘기도 하고 또 어색하기도 해서요. 누군가가 날 위해 이렇게 많은 음식을 내온 건 처음이거든요.”

“그랬습니까?”

“네. 앨버튼 성에선 늘 부모님이나 언니가 식사를 다 마친 후에 남은 것들을 먹어야 했거든요. ……부끄럽지만 사실, 그래서 음식이라면 가리지 않고 다 잘 먹어요. 감히 제 주제에 음식 맛이나 질을 따질 수는 없었어요.”

이어지는 그레이스의 말을 듣던 아서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졌다.

아서는 자신의 손을 뒤집어 제 손등 위에 올라온 그레이스의 손을 꽉 맞잡고는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앞으로는 음식 맛이든 양이든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언제든 샐리를 통해 말씀하세요. 부인께서는 얼마든지 까다롭게 구셔도 됩니다. 입맛에 맞지 않으시면 요리사를 불러서 당장 다시 만들어 오라 명을 내려도 좋고, 드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구해 오라 명하면 됩니다.”

“……아서.”

“취향을 파악할 때까지 계속 이리 내오라고 별채에 일러둘까요?”

“아, 아뇨! 그러지 마세요! 이 음식을 준비하는 시종들과 시녀들의 노고도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이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드는 재원은 또 어떻고요! 다 우리 성 서민들의 세금이잖아요! 난 공작님께서 악덕 영주라는 소리를 듣는 게 싫어요. 절대, 절대 그러지 마세요.”

“……그리 말씀하신다면, 네. 알겠습니다.”

그레이스가 기겁하고 말리자 아서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순순히 그녀의 말을 따랐다.

그 모습에 그레이스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고집을 꺾어 주어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매 끼니 이렇게 긴 식탁에서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받을 뻔했다.

그레이스는 혹여 아서가 생각을 바꿔 별채에 자신의 식사와 관련해 말을 넣을세라, 다급히 화제를 돌리듯 말했다.

“레온! 레온은 오늘 뭘 배웠어?”

“오늘은 웰싱턴 자작님이랑 제국의 역사에 대해 배웠어요!”

“그랬어? 재미있었어?”

“네! 웰싱턴 자작께서 초대 신께서 어떻게 이 세상을 만드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제국에 마법이 생겨났는지 알려 주셨어요. 그리고 선조이신 펠릭스 공작께서 어떻게 이 땅에 자리를 잡으셨는지도요!”

“웰싱턴 자작이 우리의 선조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니?”

“네, 형님! 초대 펠릭스 공작께서 얼마나 용맹한 기사였는지, 설산 지대에 사는 얼음 마물을 어떻게 퇴치했는지도 말씀해 주셨어요!”

“그랬어? 재미있었겠다!”

“네!”

그레이스가 대화의 물꼬를 트자, 레온은 연신 재잘거리며 오늘 배웠던 것들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서 또한 레온의 말에 흥미가 생긴 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레이스는 자신이 의도한 대로 자연스럽게 화제가 넘어간 대화에 만족하며 레온의 말에 계속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사이 시종들과 시녀들은 긴 테이블 위를 빼곡히 덮은 음식들을 먹기 좋게 손질해 세 사람의 앞으로 가져왔다.

겉이 바삭한 멧돼지 구이, 갖은 견과류와 과실들로 속을 채운 사슴 구이, 그리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크림 수프와 와인식초와 향신료로 맛을 낸 찹샐러드 등이 가득 쌓인 접시가 앞에 놓이자 그레이스는 얼른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음식들을 맛보며 신이 나 조잘거리는 레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리고! 또 웰싱턴 자작이 그것도 이야기해 줬어요!”

“어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눈의 나라의 공작님’ 이야기가요! 실은 우리 선조님의 이야기래요!”

“……어머! 그 동화가 이곳 펠릭스 성에서 내려오는 이야기였어?”

레온의 말에 그레이스는 놀라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지난밤 레온이 잠들기 전 읽어 달라고 내밀었던 그 동화책 속 이야기이자 자신이 어릴 적 가장 좋아했던 그 이야기, 눈의 왕국에 사는 공작님이 갖은 위기를 겪은 끝에 봄의 왕국의 공주를 만나 행복한 결말을 맞는 그 이야기가 펠릭스 성의 이야기였다니.

그레이스는 제 곁에 앉은 아서를 돌아보며 말했다.

“정말이에요, 아서?”

그러자 아서는 잠깐 그 동화가 어떤 것인지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 짧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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