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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60화 (60/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60화

“……그렇다면 그날, 나는 당신에게 미안한 짓을 저지르고 만 거군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그날도 말했듯, 나는 당신이 붙잡으러 올 거라 믿었어요. 날 조건 없이 따르는 레온을 두고 떠나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고요.”

그 말에 그레이스는 곧장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는 아서 당신을 좋아해서 떠나지 않았어요. 이젠 당신을 사랑해서, 누가 뭐라고 해도 떠날 수 없게 되었어요.”

“……그레이스!”

“그래서 이제 나는 도망치지 않아요. 그리고 당신과 레온을 괴롭히는 그 빌어먹을 저주의 망령과 맞서 싸울 거고, 또 그 저주의 배후에 있는 자들에게 칼을 겨눌 참이에요. 난 이제 당신의 곁에 있으면서 저주를 받아 죽거나 미치는 것보다, 이곳을 떠나 당신과 헤어지는 것이 더 두려워졌으니까요.”

“…….”

“어때요? 한 번 죽었다 다시 살아난 것도 모자라, 나 살자고 레온의 순수한 호의를 무시하고 당신의 저주를 이용하는 이기적인 마음까지. 나 또한, 당신 못지않게 괴물인 것 같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당신이 내게 스스로를 괴물이라 부르며 미안해할 것 없다고, 당신은 나에게 ‘괴물’이 아닌 ‘사랑하는 아서’일 뿐이라고 그레이스가 그렇게 말하려던 그때였다.

여전히 젖은 눈으로 그레이스를 애타게 바라보고 있던 아서가 팔을 뻗어 그레이스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그러더니 그는 감격에 찬 목소리로 그녀를 향해 말했다.

“아닙니다, 부인. 당신은 나 같은 자가 감히 바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나 같은 자라뇨. 나야말로 당신 같은 사람을 갖기에 과분하죠.”

“한순간이나마 당신을 생각하는 내 마음이 당신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보다 크다고 생각한 것을 용서해 주세요.”

“네, 기꺼이 용서해 줄게요.”

그레이스는 기다렸다는 듯 아서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대답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잠시 서로의 몸에 안겨 서로의 체온을 잔뜩 만끽했다. 잠시 후 다정히 자신의 품에 안긴 그레이스를 살짝 떨어뜨린 아서는 애틋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감히 한 가지 청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게 뭔데요?”

“부디, 당신의 앞에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있을 수 있게 부인의 손으로 이 가면을 벗겨 주세요.”

자신의 가면을 가리키며 벗겨달라 청하는 아서의 입매는 쑥스러운지 어색하게 굳어 있었다.

그런 그의 말이 꼭 서로의 마음을 처음으로 확인했던 그날 자신이 했던 고백과 비슷한 것 같아서, 그레이스는 괜스레 웃음이 났다.

그렇게 그레이스가 웃고만 있자, 아서가 자신의 등을 끌어안은 그레이스의 손을 붙잡고는 자신의 가면 위에 올려놓았다. 그 재촉에 그레이스는 웃고 있던 것을 멈추고 천천히 아서의 가면 쓴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쿵, 쿵.

단순히 가면을 벗기는 것뿐인데, 이상하게 심장이 귀에 달라붙은 것처럼 시끄럽게 뛰었다.

그레이스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떨리는 손으로 겨우 가면을 쥐고는 그것을 아서의 얼굴에서 떼어 냈다.

이윽고 아서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이 그녀의 손 아래로 떨어지고, 온실 안을 비추는 밝은 달빛 아래 아서 펠릭스 공작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

그리고 그 순간 그레이스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그 남자는, 그레이스가 지금껏 봤던 그 어떤 남자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미남이었다.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이는 검은 머리카락이 가진 아름다움이야 그레이스 또한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 머리카락과 대비되는 깨끗한 흰 피부는 그녀가 전혀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이었다. 줄곧 가면 아래 가려져 있어 보기 싫은 흉터라도 있는 것일까 멋대로 상상했던 그 아래 얼굴은 작은 점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뿐인가. 진주처럼 투명하고 매끄러운 이마 아래 자리 잡은 남자답고 굵은 선의 눈썹과 그 아래 자리 잡은 오드아이는 꼭 똑같은 크기의 사파이어와 루비를 깎아서 박아 놓은 것처럼 빛이 났다.

그리고 그 두 눈 사이를 채운 주름 하나 없는 미간과 높게 솟았다 날카롭게 떨어지는 높은 코는 줄곧 가면 아래 드러나 있던 모양 좋은 입술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꼭 예술품 같았다. 특별히 신이 공을 들여 만든 것 같은, 그런.

그 보기만 해도 황홀해지는 아서의 얼굴을 본 순간, 그레이스는 그를 사랑하기보다 그를 소유하고 싶어 미쳤다던 그녀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과 달리 그레이스가 가장 먼저 홀린 것은 그의 눈이 부실 만큼 잘생긴 얼굴보다 그녀를 향한 아서의 따뜻한 시선이었다.

그의 얼굴을 대부분 가리고 있던 가면이 사라지자 아서의 서로 색이 다른 두 눈동자가 자신만을 비추고 있는 그 모습에 그녀는 다시 한번 깊은 사랑을 느꼈다.

그레이스는 천천히 손을 뻗어 두 눈 가득 자신을 담은 아서의 눈을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렇게 예쁜 눈 속에 나만이 비치다니 행복하네요.”

그 말에 살짝 눈을 크게 뜬 아서는 곧 바라보는 사람이 아릴 만큼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서는 자신의 눈에 와 닿은 그녀의 손을 잡아 내린 후 그 손끝에 살짝 키스를 남기며 대꾸했다.

“앞으로도 부인 외엔 그 어떤 사람도 담지 않을 눈입니다.”

그레이스는 담담히 터져 나온 그 고백과 자신을 향해 미소 짓는 아서의 얼굴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풍경과 그보다 더 비현실적인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그리고 도무지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것 같은 그의 사랑에 숨이 막힐 만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찬가지인 듯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 또한 똑같은 온도를 띄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를 뜨겁게 바라보던 두 사람의 얼굴은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아서는 조심스럽게 그레이스의 아름다운 얼굴 위로 고개를 숙였고, 그레이스는 점점 가까워지는 아서의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윽고 서로의 따뜻한 입술이 느릿하게 맞닿았을 때, 두 사람은 서로의 심장이 서로를 향해 얼마나 빠르게 뛰고 있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온통 겨울뿐인 바깥과는 달리, 유일하게 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온실 안. 아서와 그레이스는 그곳에서 피어난 꽃들만큼 아름다운 봄의 색을 띤 사랑을 확인했다.

* * *

서로가 감추고 있던 진실을 확인한, 짧고도 긴 밤이 지나갔다.

어두웠던 온실이 희미하게 밝아 오는 새벽, 아서와 그레이스는 두 손을 꼭 맞잡은 채 온실 밖을 나왔다. 그레이스는 맞잡은 아서의 손을 가볍게 흔들며 반대편 손에 들고 있던 아서의 가면을 살피고는 말했다.

“꽤 무겁네요, 이거. 매일 쓰고 다니기 불편하진 않았어요?”

“그리 불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것을 쓰고 있는 것이 불편한 말이나 불편한 상황을 견디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편했으니까요.”

“……아, 하긴. 그랬겠네요.”

아서의 대답에 그레이스는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새벽 햇살 아래 드러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정말이지 봐도 봐도 질리지 않을 만큼 잘생긴 얼굴이었다. 아서가 가면을 벗기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 그레이스는 왜 그녀들이 그를 사랑하지 않아도 욕심을 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레이스의 마음속에 괜한 짜증과 함께 희미한 질투심이 일었다. 딱히 미추에 구애받지 않는 성격인 자신이 봐도 절로 황홀해지는 얼굴인데, 사교계의 숙녀들이 보게 된다면 또다시 일대의 파란이 일 것 같아서였다.

그레이스는 슬쩍 표정을 굳히며 아서를 향해 말했다.

“……저기, 아서. 할 말이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그 전에 속 좁다고 놀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요.”

“그런 일은 절대 없을 테니 마음 놓고 말해 보세요.”

놀리지 않겠다 약속해 달라는 그레이스의 말에 아서는 다정히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그레이스는 잠시 머뭇거린 후 대답했다.

“……앞으로 가면을 벗은 얼굴은 내 앞에서만 보여 주면 안 될까요?”

“……네?”

“아, 아니. 딱히 당신에게 꼭 그러라고 강요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하지만 그…… 당신의 가면 벗은 얼굴이 생각보다 잘생겨서, 아니 아주 많이 잘생겨서 당신의 가면 밑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숙녀분들이 보면 첫눈에 사랑에 빠질 것 같기도 하고. ……아, 진짜.”

“……부인?”

“돌려 말하지 않을게요. 솔직히 당신 얼굴을 보고 황홀해할 다른 영애들을 생각하면 좀 질투가 나네요.”

“……아.”

스스로 말하면서도 스스로의 속이 참 좁다고 자조하며 그레이스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자신도 죽었다 살아나 어렵게 잡은 행복이고 남편인데 그런 사람을 다른 사람이 욕심낸다고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싫었다. 그래서 어렵게 부탁도 투정도 아닌 말을 내뱉었는데, 그 말을 들은 아서의 반응이 그녀로서는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레이스는 다정한 시선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며 은은하게 웃고 있는 아서를 향해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웃으시는 거예요? 분명히 조금 전에 나랑 약속했잖아요. 놀리지 않겠다고요.”

“놀리는 것 아닙니다, 부인. 내가 어찌 부인 같이 귀한 사람을 놀리겠습니까. ……그저 좋아서 그렇습니다. 당신이 나를 위해 질투를 해 주는 것이 말입니다.”

“……뭐, 부인인데 당연하잖아요.”

“맞아요. 부인께선 내 부인이시니, 당연히 질투할 수 있고 또 내게 무언가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남편으로서 기꺼이 부인께서 요구하시는 대로 다 따를 거고요.”

“…….”

“부인의 말씀대로, 다른 이들 앞에서는 그대로 가면을 쓰고 있겠습니다. 나로서도, 이젠 그편이 편하기도 하고요.”

아서는 그렇게 대답하며 그레이스를 향해 그녀의 손을 잡고 있지 않은 손을 뻗었다. 그녀가 손에 쥔 가면을 달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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