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58화
그녀의 모습에 잠깐 굳어 있던 아서는 곧 마주 팔을 뻗어 그녀를 안아 왔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어깨와 등을 감싸 안는 아서의 팔 안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며 말을 이었다.
“그날 밤, 황태자 전하와 만났던 건 그분께서 내가 아버지의 서재에 숨어들었던 사실을 아버지에게서 숨겨 주셨기 때문이에요.”
“……앨버튼 공작의 서재에 숨어들었다고요?”
그 말에 아서가 깜짝 놀라며 안고 있던 그레이스를 살짝 떼어 놓고는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그레이스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아 보이는 아서의 오드아이를 사랑스럽게 응시하며 대답했다.
“네. 당신과 레온, 그리고 선대 펠릭스 공작 각하와 황녀님까지 전부 관련되어 있는 ‘저주’의 비밀과 그를 풀어낼 방법에 대해 알아내려고요.”
“……아아.”
“미안해요. 궁금해서 샐리한테 물어봤어요. 다 이야기해 주더라고요. ……혹시, 내가 들어선 안 될 일이었나요?”
“……그런 건 아닙니다. 양친의 죽음과 내게 벌어진 일들에 대해 앨버튼 공작이 조사했던 것은 입 놀리기 좋아하는 황족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 같은 것이었으니까요. 나는 부인께서 나와 결혼하기 전 이미 알고 계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난 몰랐어요. 아버지는 집안의 일, 특히 마법과 관련해선 한 번도 나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어요. ……아니, 사실은 아버지와는 그 어떤 이야기도 1분 이상 나눠 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는 날 시종들보다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기셨으니까요.”
그레이스가 일부러 어조를 가볍게 하며 말하자, 그녀를 바라보는 아서의 눈에 희미한 연민이 깃들었다.
그런 그의 시선에 그레이스는 더 표정을 밝게 하며 말을 이었다.
“사실은 그래서 일부러 언니의 초대에 응한 거였어요. 아버지의 서재에 숨어들어서 아버지가 남긴 기록에 대해 살펴보려고요.”
“……그럴 거였다면 차라리 샐리나 다른 사람을 시키시지 그러셨습니까?”
“아뇨. 그럴 순 없죠.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당신과 레온의 일인데. 내 손으로 직접 알아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만에 하나 잠입을 시도하다 들켰을 때 둘러대기도 좋을 거라는 계산에서였고요. 어쨌든, 그래서 나는 파티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언니에게 몰린 틈을 타 몰래 빠져나와 기억을 더듬어 아버지의 서재로 향했어요.
그곳에서 샐리가 언급했던, 조사 기록이 적힌 수첩을 찾았고, 그리고 그것을 드레스 속에 숨겼어요. ……그런데 하필 그때 서재로 누군가가 들어온 거예요.”
“……그게 황태자 전하셨던 겁니까?”
“네. 전하께선 나더러 숨으라고 하셨고, 나는 엉겁결에 아버지의 책상 밑에 숨어들었죠. 그리고 잠시 후, 서재에 아버지가 들어왔고요.”
“……아아.”
“그때 아버지에게 서재에 내가 숨어들었다는 사실을 들켰다면 꼼짝없이 갖고 있던 기록을 빼앗길 것 같았어요. 그래서 황태자 전하가 시키는 대로 했고, 전하께서는 나를 숨겨 주시곤 이후에 이 일을 비밀로 부치고 싶거든 앨버튼 저택의 비밀 정원으로 나오라고 했고요.”
“……그랬군요.”
아서는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고, 그레이스는 그런 아서에게 손을 뻗어 그의 가면에 가려진 푸르고 붉은 오드아이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리고 비밀정원에서 그분은 제게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냐고 묻더니 멋대로 마음을 고백하셨죠. 그리고 전 거절했고, 그분을 피해 도망쳤어요. 정말 그뿐이에요. 그 이상 아무 일도 없었다고요. 그러니까 날 믿어 줘요. 아서.”
“네. 믿고 있습니다, 부인.”
아서는 자신을 믿어달라 말하는 사랑스러운 그레이스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다정히 대꾸하고는 말했다.
“……고맙고 또 미안합니다. 나와 레온 때문에 당신이 그런 일을 겪다니.”
“미안하긴요. 우린 가족인데요.”
“사실 그 ‘저주’와 관련해 나도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요?”
“네. 나라고 나를 낳고 갑자기 변해 버렸다던 어머니와 한날한시에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신 두 분의 죽음과 내게 닥친 불행들에 대해 알아보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정말이지, 내 집무실이 있는 동쪽 탑 지하실이 꽉 찰 만큼 서책과 기록들을 모았었죠.”
“……그런데,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나요?”
그레이스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아서는 쓴웃음을 짓고는 대답했다.
“네. 그저 두 분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내 불행에 ‘진실한 사랑’과 ‘시전해서는 안 되는 마법’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뿐, 그 외에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왜요?”
“그 기록들은 전부 마법사의 언어로 되어 있고, 그 언어를 해석할 수 있는 마법사들은 전부 앨버튼 가문의 사람이거나 앨버튼 가문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기록들을 전부 없애 버리셨나요?”
“아니요. 동쪽 탑 지하실에 전부 보관해 두었습니다. 혹시나 해서요.”
“잘하셨어요.”
아서의 대답에 그레이스는 다정히 그의 얼굴을 가볍게 토닥이며 대답했다. 아서가 그 기록들을 전부 보관하고 있다니, 다행이었다.
‘어떻게든 그 기록들을 내 힘으로 읽어 내고야 말겠어.’
그레이스가 굳은 얼굴로 그렇게 다짐하며 기계적으로 아서의 뺨을 어루만지던 그때였다.
딴생각에 빠져 무심코 그의 얼굴을 만지다 그만 아서가 쓰고 있던 가면의 고정된 부분을 건드리고 말았다. 그레이스는 아서의 가면이 우스꽝스럽게 비뚤어지자, 그레이스는 깜짝 놀라며 아서의 가면이 떨어지지 않게 손으로 받쳤다.
“미, 미안해요! 내가 그만 딴생각을 하다가…….”
허둥지둥 비뚤어진 아서의 가면을 다시 씌우던 그레이스의 손을 아서가 붙잡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댔다.
그레이스는 가면과 함께 자신의 손을 꼭 붙잡아 얼굴에 내리누르는 아서의 손과 묘하게 일렁이는 시선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서의 눈에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서는 그런 그녀를 향해 말했다.
“……기억하십니까, 부인.”
“뭐, 뭘요?”
“나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사라지고 사랑하는 마음만 남게 되면, 이 가면을 부인 손으로 벗기게 해 달라고 했던 말 말입니다.”
“……네, 기억나요.”
어떻게 그때를 잊을 수 있겠는가.
그레이스는 자신의 마음과 그의 마음 모두를 걸고 무모한 내기를 걸었던, 추웠던 그날 밤과 자신을 붙잡았던 아서의 얼굴을 회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서는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부인께서 그리 말씀하셨을 때, 나는 한편으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웠습니다.”
“……왜 두려우셨나요.”
그레이스가 조심스럽게 아서의 얼굴을 살피며 묻자 아서가 맥 빠진 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말을 꺼내기 두렵다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 어렵게 말을 꺼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오전에 황태자 전하와 나눈 이야기는 조금 전 말씀드렸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럼요? 또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전하께서는 가면 밑에 숨겨진 내 얼굴에 대해 말씀하시며 나 같은 괴물을 진정으로 사랑해 줄 이는 없을 거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부인께서도 가면 밑 얼굴을 본다면, 나와 연을 맺었던 여자들처럼 되고 말 거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당신의 얼굴과, 당신을 좋아하는 내 마음이 무슨 상관인데요?”
아서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그레이스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아서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부인께서는 나와 레온이 왜 가면을 쓰고 다니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어느 정도는요. 오드아이 때문 아닌가요?”
“그 말,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네? 가면을 쓰게 된 것에 또 다른 사정이 있었다는 건가요? 그게 뭔데요?”
그레이스가 놀란 얼굴로 되묻자 아서는 여전히 자신의 뺨에 와 닿아 있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 내렸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손을 간절히 붙잡는 아서의 가면 아래 눈이 희미한 두려움으로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가 용기를 내어 자신을 향해 답해 주기를 끈기 있기 기다렸다. 그가 어떤 말을 하든 자신은 그것을 듣고, 그를 믿어 줄 용의가 있었다.
그런 그레이스의 올곧은 시선에 용기가 생긴 것일까. 이윽고 아서는 용기를 얻은 듯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부인께서는 혹 그런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없으십니까? 내게 저주가 붙었다는 걸 알면서도 나에게 혼담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 말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당신의 결혼을 줄곧 주선하셨다고 들었는데,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죠?”
“물론 그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내 결혼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전에도, 부끄럽지만 나와 결혼을 하려는 이가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가진 재산이나 펠릭스 공작 부인이라는 작위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럼요?”
“……이 가면 밑의 얼굴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숙녀분들 때문이었습니다.”
“……소유하고 싶어 했다고요?”
이어진 아서의 말에 그레이스는 노골적으로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얼굴을 소유하고 싶어 했다니, 그게 무슨 뜻인지 구체적으로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잘생긴 그의 얼굴을 좋아해서 여자들이 결혼하고 싶어 했다는 소리를 돌려 말하는 건가?’
그레이스의 머리로는 그런 뜻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레이스는 이전 아서의 얼굴을 보고 반했다던 그녀들을 향한 질투 반, 은근슬쩍 자기 자랑을 돌려 하는 아서를 놀려 주고 싶은 마음 반으로 아서를 향해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경고하는 거예요, 당신? 당신 가면 밑에 있는 얼굴이 아주 잘생긴 미남자니까 보고 놀라지 말라고요? 뭐야, 자랑하는 거죠. 지금?”
“……그,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은 아닙니다. 나는 내 얼굴이 잘생겼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 얼굴이 끔찍하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도…….”
“왜요? 다른 숙녀들이 저주를 무릅쓰고서라도 곁에 있고 싶어 할 만큼 잘생긴 얼굴이 왜 끔찍했는데요?”
당황한 아서의 목소리에 그레이스는 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놀리듯 물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아서가 한 번 쓴웃음을 짓더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시선이 잠시 다른 숙녀를 향해 있다는 것만으로, 내 눈을 파내고 싶다며 내 눈에 단검을 들이대도 말입니까?”
“……네!?”
“내가 레온에게 잠깐 웃어 주었다는 이유로, 마차 안에서 잠깐 잠이 든 내 목을 졸랐던 적도 있었습니다.”
“정말요? 아니, 미치지 않고서야…….”
“……내게 시집와 죽지 않았던 영애들은 다 그런 식으로 미쳐 갔었습니다. 그녀들은 날 한순간도 사랑한 적 없었으면서, 소유하고 싶어 했습니다. 저주가 깃든 이 얼굴을.”
아서는 그렇게 대꾸하며 희미하게 손을 떨었다.
그레이스는 어둡게 가라앉은 아서의 얼굴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사랑은 하지 않고, 소유만 하고 싶은 마음이라. 그것은 예쁜 보석을 탐욕스럽게 갈구하는 수집가의 마음 같은 걸까.’
수집가는 보석을 사 모을 뿐, 그것을 사람처럼 ‘사랑’하진 않으니까.
그레이스는 그런 그녀들 사이에서 수없이 몸과 마음이 다쳤을 아서를 상상하니 마음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