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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56화 (56/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56화

“형님! 형수님!”

“레온!”

그때, 마차 밖에서 아서와 그레이스를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속에서 레온이 달려 나왔다.

그레이스는 오랜만에 보는 레온의 모습이 반색하며 자신에게로 달려오는 레온을 향해 몸을 숙이고 팔을 벌렸다. 그러자 냉큼 품 안으로 꼭 안겨 매달리는 레온을 안아 들며 그레이스는 말했다.

“잘 있었어?”

“네! 근데 형수님이 안 계셔서 심심했어요. ……산책도 하나도 재미가 없고.”

“그랬어? 이제 나 왔으니까, 또 매일 같이 산책하자.”

“네!”

성을 잠시 떠나기 전 그랬듯, 다시 매일 같이 산책을 하자는 그레이스의 말에 레온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스는 가면으로 가려져 있지 않은 레온의 통통한 아래 빰을 보며 오랜만에 보는 귀여운 레온의 모습에 참을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느끼며 쪽 소리 나게 입맞춤했고, 레온은 그레이스의 입술이 와 닿은 부분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아서는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아내와 동생이 나누는 애틋한 재회를 가만히 지켜보다 곧 슬쩍 서운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네 형수만 반겨 주다니, 이 형님은 좀 서운하구나.”

“앗, 형님! 형님도 무사히 돌아오셔서 기뻐요.”

“정말이냐? 아닌 것 같은데.”

“아니에요. 형님!”

그러더니 유치하게 말싸움을 하는 아서와 레온의 모습에 그레이스는 낮게 킥킥거렸다. 똑같은 머리 색에 똑같은 가면을 쓰고서는 같은 수준으로 대화를 나누는 두 형제의 모습은 마음 한구석이 뜨끈해질 만큼 보기 좋았다.

아서는 자신들을 바라보며 즐겁게 웃고 있는 그레이스를 바라보며 그 앞으로 두 팔을 내밀고는 말했다.

“팔 아프시겠습니다. 레온을 이리 주시고 이만 별채로 들어가 여독을 푸세요.”

“네? 괜찮은데……. 아서야말로 쉬어야죠. 나는 앨버튼 성에서 하룻밤 머무르며 잠깐 쉬기라도 했지, 당신은 아침부터 계속 마차를 탔잖아요.”

“싫어요, 형님! 저는 형수님이랑 있을 거예요!”

그러자 레온은 아서에게 가기 싫다며 그레이스의 품에 매달려 투정을 부렸다. 아서는 레온이 떼를 쓰자 슬쩍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레온, 네 형수는 좀 쉴 필요가 있어. 귀찮게 하면 안 된다.”

“으응, 싫은데. 형수님께서 괜찮으시면 오늘 밤 형수님이랑 같이 별채에서 자고 싶어요.”

거듭된 설득에도 고집을 꺾지 않는 레온의 모습에 아서의 시선이 엄해지던 그때, 그레이스가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그럼 오늘 밤만 별채에서 같이 잘까?”

“네!”

“……부인.”

“미안해요, 아서. 오늘만요, 네?”

기어코 레온의 응석을 받아주고 마는 그레이스의 모습에 아서의 살짝 찌푸려진 눈은 그레이스를 향했다.

그레이스는 그런 아서를 향해 애교를 부리듯 눈웃음을 지으며 졸랐다. 그 모습에 아서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짧게 웃으며 찡그려진 미간을 폈다.

“알겠습니다. 부인 뜻대로 하세요.”

“고마워요. 아서.”

“……다만.”

선뜻 떨어진 아서의 허락에 그레이스가 감사의 뜻을 전하자 아서는 마주 미소 지었다.

그러더니 아서는 갑자기 불쑥 레온을 안고 있는 그레이스의 귓가에 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레이스는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 댄 아서의 행동에 귀를 새빨갛게 물들이며 다가온 아서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모습도 귀엽다는 듯 낮게 웃은 아서는 그레이스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마차에 타기 전, 서로 한 약속은 지켜 주셔야 합니다.”

“……아!”

“그럼 난 오늘 밤, 우리가 처음으로 밤 산책을 했던 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부인께서는 레온을 재우고 천천히 나오세요. 나 또한 미뤄 두었던 일을 마치고 나가겠습니다.”

빠르게 그 말을 속삭인 아서는 드러난 그레이스의 볼에 짧은 키스를 남긴 후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후 아서는 이미 말에서 내려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기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집무실로 간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성 내에 있었던 일에 대해 상세히 보고하도록.”

“예, 각하.”

“그럼, 부인. 저녁에 뵙겠습니다.”

“네. 그때 봐요.”

“레온, 얌전히 있어야 한다. 알겠지?”

“네, 형님!”

그레이스와 레온에게 각각 다정한 인사를 건넨 아서는 곧 기사들과 함께 집무실이 있는 탑 쪽으로 걸어갔다.

그레이스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여전히 발그레한 자신의 볼을 한 손으로 문질렀다.

그러자 그 모습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던 레온이 작은 손으로 빨갛게 물든 그레이스의 뺨을 콕 누르며 말했다.

“형수님, 볼이 빨개요. 열나요?”

“어? 아니? 괜찮아. ……저기, 레온. 배고프지 않아? 우리 같이 간식 먹을까?”

“네! 좋아요!”

레온의 지적에 그레이스는 레온의 주의를 돌리려 말을 돌렸다. 다행히 순진한 레온은 그레이스가 의도하는 대로 주의를 돌렸다. 그레이스는 품에 안긴 레온의 머리를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뭐 먹고 싶어? 말해 봐. 주방장에게 당장 준비해 달라고 할 테니까.”

“음, 뭐가 좋지이.”

그레이스의 물음에 레온은 고민에 빠졌다.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어느새 생각에 잠긴 레온을 고쳐 안으며 그레이스는 별채를 향해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 * *

그렇게 레온을 안은 채로 그레이스는 별채로 향했다.

정문에서 별채까지 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샐리를 비롯한 주변의 시종들과 시녀들이 힘드실 텐데 레온을 제게 안겨 달라 성화였지만 그레이스는 웃으며 거절했다.

그들이 그럴 때마다 응석을 부리며 매달리는 레온 때문이었다. 늘 어른스러운 아이였는데 이틀 정도 떨어져 있던 것이 자기 딴엔 적잖이 보고 싶고 그리웠던 모양이라, 그레이스는 차마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이제 내려 주세요.”

“그럴래?”

결국, 별채 안에 있는 자신의 침실에 와서야, 내려 달라 요청하는 레온의 말에 그레이스는 안고 있던 아이를 내려놓았다.

아직 작기는 하지만, 그래도 꽤 무거운 아이를 안고 오느라 팔이 살짝 뻐근했다. 그래서 그레이스가 침대 옆 창가에 놓인 소파에 앉아 살짝 저리는 팔을 주무르자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던 레온이 쪼르르 다가와 그녀를 향해 말했다.

“팔 많이 아프세요? 제가 주물러 드릴까요?”

“어머, 나 하나도 안 아픈데. 주물러 줘서 고마워 레온. 그런데 뭐 먹고 싶은지는 정했어?”

“……아! 저는 자허토르테 먹고 싶어요!”

미안했는지 작은 손으로 그레이스의 팔을 쪼물딱거리는 레온의 모습이 귀여워 그레이스는 손을 뻗어 아이의 통통한 볼을 아프지 않게 살짝 꼬집었다.

그러면서 슬쩍 먹고 싶은 간식을 묻자 여기까지 오며 고민을 끝낸 건지 곧장 먹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는 아이의 모습에 그레이스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입구에 선 샐리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샐리는 곧장 그녀의 뜻을 알아듣고는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한 후 문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확인한 그레이스는 여전히 제 팔을 작은 손으로 주무르고 있는 레온을 향해 말했다.

“간식이 준비될 때까지, 우리 동화책 읽을까?”

“좋아요!”

“올리버 경, 레온이 좋아하는 책을 몇 권 가져다주겠어?”

“네, 부인.”

그레이스의 말에 올리버 경은 기다렸다는 듯 방 밖을 나가더니 곧 얇은 몇 권의 동화책을 가져와 그레이스를 향해 내밀었다.

그레이스는 슬쩍 레온의 눈치를 살피며 가장 많이 읽어 손때가 탄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레온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외쳤다.

“어? 그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인데!”

“그래? 그럼 이거 읽을까?”

“네!”

레온은 예쁜 오드아이를 반짝이며 그레이스의 무릎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곁에 있던 시종들이 눈치 빠르게 조금 전 레온이 앉아 있던 의자를 그레이스가 앉은 소파 옆에 바짝 붙여 주었다.

그레이스는 그들의 배려에 고맙다는 듯 살짝 눈짓하고는 레온을 그곳에 앉히고 느릿느릿 동화책을 읽어 내렸다.

“……옛날 옛적에, 눈의 왕국에 사는 한 공작님이 있었습니다. 그 공작님은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잘생긴 남자였지만, 선뜻 그의 아내가 되겠다고 나서는 숙녀는 없었답니다. 왜냐하면 공작님이 살고 있는 눈의 왕국은 세상에서 가장 춥고 위험한 곳이었거든요.”

마침 그 동화책은 예전에 그레이스 또한 가장 좋아했던 동화책 중 하나였다.

강하고 잘생긴 눈 왕국의 공작이 우연히 아름다운 봄의 왕국의 공주를 만나 여러 위기를 극복한 후 행복한 결말을 맞는 내용의 그 책은 꽤 재미있었다.

이미 책에 손때가 묻도록 읽었으면서, 그래도 그레이스가 읽어 주는 것은 각별한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듣는 레온이 모습에 신이 나 책을 읽던 그레이스는 그 책 속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나오자 활짝 웃으며 레온을 돌아보았다.

“있지, 레온. 나는 여기, 눈의 왕국의 공작님이 마녀의 저주를 받아 죽어 가는 봄의 왕국의 공주님을 살리는 부분을 제일 좋아해. 자기 생명을 공주님의 생명과 묶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고 맹세하는 부분 말이야.”

“저도 그 부분이 제일 좋아요!”

그레이스는 자신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레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후, 그레이스는 다시 책을 읽어 내려갔다. 자신을 향해 눈을 반짝이는 작고 귀여운 독자 레온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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