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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55화 (55/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55화

그 말을 들은 순간 오웬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오웬은 순간 비명이 새어 나갈 것 같은 기분을 삼키며 황제를 향해 말했다.

“……저, 저주를 끊어 낸다니. 아버지.”

“다행히 내 누이의 몸속에서 나온 그 괴물의 씨앗이 이번에 맞이한 신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잖느냐. 그 계집을 이용해 그 괴물의 힘을 이끌어 낸 후, 네가 그 계집의 심장에 무사히 칼을 찔러 넣는 순간 너와 네 진짜 숙원이 이루어질 게다.”

“…….”

“이런, 이렇게 말하고 보니 앨버튼 가문 놈들이 참 고맙구나. 우리를 위해 그 가주와 큰딸은 펠릭스 공작의 꼴 보기 싫은 짝눈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알아낸 것도 모자라 네 저주를 풀기 위해 쫓아다니고, 그 작은 딸은 제물이 되어 네게 얽힌 저주를 풀어 주게 되다니. 그놈들로부터 이리 큰 은혜를 입었으니, 장차 그들을 숙청할 때 좋은 묫자리라도 알아봐 주어야겠는걸.”

상상만 해도 즐겁다는 듯 표정을 한 황제의 얼굴에는 희열과 함께 잔악함이 감돌았다.

그 모습에 오웬은 심장이 툭 떨어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그 끔찍한 여자 마리안느와의 파혼만을 주장하느라 그만 간과하고 있었다. 자신을 괴물로 만든 이 저주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펠릭스 공작이 가장 사랑하는 자’의 희생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을 상기한 순간, 오웬의 머릿속에 지금껏 자신의 눈앞에서 비참하게 죽어 갔던 펠릭스 공작 부인과 그 약혼녀들의 얼굴 위로 그레이스의 얼굴이 겹쳐지는 것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그 순간, 오웬은 자신의 얼굴 위에 머물러 있는 제 부황의 손을 꽉 잡으며 소리쳤다.

“아,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음? 무엇이냐? 마리안느 영애와의 파혼 건에 관한 이야기는 네가 조금 더 참아 넘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있더냐.”

“아뇨.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저.”

“그래. 말해 보아라.”

황제가 얼른 말해 보라 채근하자, 오웬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의 펠릭스 공작 부인을 내쫓고 다른 제물을 그놈에게 붙여 주면 안 되겠습니까?”

“뭐라?”

그러자 오웬의 말을 들은 황제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일그러졌다. 갑자기 제 아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줄곧 제 아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그 얼굴을 기민하게 살피고 있던 마리아 황후는 오웬의 말을 들은 순간 곧장 그의 말뜻을 알아채고 표정을 굳혔다.

마리아 황후는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려 버린 얼굴로 다급히 제 아들의 어깨를 꽉 움켜쥐며 소리쳤다.

“그건 안 된다, 얘야.”

“……어머니.”

“안 돼, 안 되고말고.”

마리아 황후는 불안으로 가득한 얼굴로 오웬을 올려다보았다.

조금 전 현재 펠릭스 공작 부인인 그레이스 펠릭스를 언급하며 그 눈에 떠오른 진득한 오웬의 감정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어머니인 자신은 알 수 있었다.

그 감정이 더 크기를 키우기 전에, 아예 애초부터 싹을 잘라야만 했다. 마리아 황후는 고개를 돌려 간절히 제 곁의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황제 또한 엄숙한 목소리로 오웬을 향해 말했다.

“황태자, 그럴 수는 없다. 이젠 늦었어. 너도 보았지 않느냐. 그 괴물이 자기 아내를 바라보는 그 눈을. 그리고 그 제물 또한 그 괴물에게 정을 붙인 것 같다고 들었다.”

“……그래서 더 떼어 놓고 싶습니다, 아버지. 지금껏 제 앞에서 한 번도 제대로 얼굴을 보여 주지도 않는 그따위 괴물에게 진심을 다할 여성이라면 나 같은 괴물 또한 진심으로 아껴 줄 테니까요.”

그러나 황제의 말에 오웬은 즉각 반박했다.

황제는 어느새 그레이스 펠릭스 공작 부인을 향한 풋사랑에 빠져 열정으로 타오르는 오웬의 눈을 노려보며 거칠게 소리쳤다.

“어리석은 소리 마라, 황태자! 네가 왜 괴물이더냐! 너는 괴물이 아니다! 이 제국에서 가장 귀한, 짐의 하나뿐인 후계자이니라!”

“……아니요, 아버지. 저는…….”

“약한 소리 말거라! 오웬, 대체 왜 자꾸 약한 소리를 하는 것이냐!”

황제는 자신보다 한 뼘 정도 큰 오웬의 어깨를 두 손으로 움켜쥐며 다그쳤다.

이제 늦어도 두 달이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텐데, 자꾸만 약한 소리를 하고 준비된 계획을 망치는 소리만 하는 오웬의 모습이 참으로 답답했다.

황제는 그런 아들의 마음을 돌려놓고자, 지금껏 그에게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던 사실 하나를 털어놓기로 마음먹고는 입을 열었다.

“네 마음은 안다. 그 펠릭스 공작 같은 놈도 진심으로 보듬어 주는 그런 여인이라면, 네 모든 비밀을 알고도 널 아껴 줄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하나, 이미 늦었단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도 알고 있을 테지. 우리 황실에, 너에게 이어진 저주를 끊어 내기 위해서는 펠릭스 공작 부인의 피와 펠릭스 공작에게 걸린 ‘저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펠릭스 공작의 ‘저주’가 발동되기 위한 조건도 아느냐?”

“……아니요. 그것은 잘…….”

갑자기 펠릭스 공작의 저주를 언급하며 묻는 황제의 말에 오웬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황제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오웬을 향해 말했다.

“그것은 바로 ‘펠릭스 공작이 펠릭스 공작 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품었을 때’이다.”

“……예?”

“내가 왜 내 권력에 위협이 되는 줄 알면서도, 그놈에게 끊임없이 아내와 약혼녀를 만들어 준 줄 아느냐? 바로 그 저주를 발동시키기 위해서였느니라. 그놈에게 왜 황실의 예산을 써 가며 성대한 성혼축하 파티를 열었겠느냐? 다 그놈이 자신의 아내 될 사람을 얼마나 마음에 들어 하는지 확인함과 동시에 앨버튼 공작을 시켜 그 몸에 또 다른 저주를 걸기 위해서였지.”

“……그렇다면 그레이스 영애 이전의 펠릭스 공작 부인과 다른 영애들은, 그녀들은 왜 제게…….”

황제의 말에 오웬은 멍해진 얼굴로 황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그녀들은 대체 왜. 오웬은 순식간에 머릿속에 그간 수없이 벌어졌던 끔찍한 광경들이 생생히 펼쳐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이지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끔찍한 그 순간들.

‘아버지의 말처럼 그녀들에겐 저주가 실패했다면, 왜 그녀들을 그렇게…….’

오웬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의문점에 다시 황제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아버지…….”

“더 이상 말을 보태지 말거라. 쓸데없는 의문도 갖지 말고. 이 순간 네가 명심해야 할 것은 오직 단 하나, 이젠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너무 멀리 와 버렸다는 것. 그것뿐이니라.”

“…….”

그러나 더이상은 말하기 싫다는 듯 한마디로 일갈하는 황제의 말에 오웬은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러자 황제는 그것을 오웬이 납득한 것으로 해석하며 피로로 젖은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렸다.

“예상보다 환담이 더 길어졌구나. 나는 이제 좀 쉬어야겠어. 황후, 침실까지 같이 가 주겠소?”

“……물론이죠, 폐하.”

“황태자, 너도 그만 네 궁으로 돌아가 쉬거라.”

그러더니 황제는 황후에게 자신의 팔에 팔짱을 끼게 한 후 나란히 태양의 방 밖으로 나가 버렸다.

오웬은 그들과 그 뒤를 조용히 따르는 시종, 시녀들의 뒷모습을 망연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곧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늦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미 늦어 버렸다니.’

그렇다면 이대로, 그레이스 영애를 ‘그들’과 똑같이 만들어야만 하는가.

오웬은 제 머릿속 끔찍한 광경들의 주인공이 그레이스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몸서리쳤다. 안 돼, 그럴 수는 없었다. 괴물을 사랑할 수 있을 만큼 다정한 여인은 이 세상에 그녀 하나뿐이리라.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그 괴물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자신에게도 향했으면 했다.

오웬은 이를 악물며 낮게 중얼거렸다.

“……방법이 있을 거야. 찾아보면, 반드시.”

그 후 오웬은 곧장 몸을 돌려 태양의 방을 나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궁으로 향하는 대신, 본 궁의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으로 향했다.

탁, 탁. 구둣발을 거칠게 구르며 계단을 뛰듯 내려가는 오웬의 눈에 반드시 방법을 찾겠다는 잘못된 열의가 깃들어 있었다.

푸드득.

어두운 계단을 비추는 창가에 어둠을 가르는 새의 날갯소리가 일었다.

* * *

아서 펠릭스 공작과 그레이스 펠릭스 공작 부인을 태운 마차는 태양이 서쪽 산으로 뉘엿뉘엿 기우는 시각이 되어서야 펠릭스 성에 도착했다.

그사이 두 사람은 마차에 오르기 전 언급했던 ‘서로가 숨기고 있는 것들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기로 한 약속’ 따위는 잊은 사람처럼 별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거나 잠깐씩 서로의 어깨에 기대 잠을 자거나 했다.

그레이스는 홀로 펠릭스 성을 떠나올 때와는 달리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던 귀환길에 만족해했다. 다음부터 다른 성을 방문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아서와 함께, 더 욕심을 부린다면 아서와 레온 모두 함께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도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아서의 어깨에 기대어 있던 그때, 조금 전부터 눈에 띄게 느려지던 마차가 완전히 멈춰 섰다. 그러더니 마부석에 앉은 시종장이 마차에서 내려 문 앞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똑, 똑―.

“각하, 마님. 성에 도착했습니다.”

그 말에 그레이스에게 어깨를 빌려준 채 눈을 감고 있던 아서가 조용히 눈을 떴다. 그러더니 가만히 제 어깨에 기대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레이스와 다정히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그럼 이만 내릴까요, 부인.”

“네. 좋아요.”

그레이스의 허락이 떨어지자 아서는 곧장 몸을 일으켜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 후 그레이스를 위해 아서는 손을 내밀었고, 그레이스는 기꺼이 그 손을 잡고 마차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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