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51화 (51/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51화

그레이스는 아서의 곁을 나란히 걸어 세워 둔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흔들흔들, 붙잡은 그레이스의 손을 가볍게 흔드는 아서의 얼굴은 꽤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레이스는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 아서의 옆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기분이 좋아 보여요, 아서.”

“네, 기분이 좋습니다.”

“왜 기분이 좋은지,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부인께서 내 곁에 있어서 좋고, 부인께서 드디어 펠릭스 저택으로 돌아오게 되어 좋습니다.”

자신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터져 나온 아서의 대답을 들은 그레이스는 양 볼이 빨갛게 물들을 만큼 쑥스러워했다.

태어나 지금껏 자신의 부재에 대해 아쉬워하고, 귀환을 진심으로 기뻐해 준 사람은 없었는데. 이제 자신에게도 돌아갈 곳이 생겼다는 것을 새삼 실감되었다.

그 모습에 아서가 다정한 시선으로 그레이스를 내려다보며 달콤하게 미소 짓던 그때였다.

“펠릭스 성으로 돌아가는 건가?”

망토까지 전부 다 갖춰 입은 오웬이 마차로 돌아가던 아서와 그레이스를 향해 걸어왔다.

‘아직 응접실에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마치 자신들처럼 돌아갈 채비를 마친 듯한 오웬의 모습에 아서가 슬쩍 입매를 굳히며 물었다.

“벌써 환궁하십니까, 전하.”

“그렇다네. 볼일은 이미 끝났으니까.”

“굉장히 이르군요. 환궁 준비도 다 마치신 겁니까?”

“아니. 황궁의 시종들과 시녀들은 자네들만큼 빠르게 움직일 줄 모르거든. 그래서 할 일이 없는 나만 이렇게 덩그러니 남겨졌지. 그러던 중 그대와 그레이스 영애가 보이기에, 이렇게 작별 인사도 할 겸 말을 걸었다네. 마침 그대에게 할 말도 있고 말이야.”

오웬은 아서의 물음에 넉살 좋게 대답하며 슬쩍 그레이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레이스는 오웬의 묘한 시선이 자신의 얼굴과 목을 타고 내려와 꼭 붙잡은 자신과 아서의 손에 머무르는 것을 느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응접실에서도 그랬지만, 자꾸만 자신에게 와 닿는 황태자의 시선이 더없이 불편했다. 몰랐다면 모를까, 그가 자신을 향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알게 되니 더더욱 그랬다.

제 곁에서 점점 표정이 굳어지는 그레이스를 눈치채고, 아서가 잡고 있던 그레이스의 손을 놓고는 오웬을 향해 말했다.

“전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 안사람을 먼저 마차에 태워도 되겠습니까?”

“그리하게. 나와 그대 같은 사내들의 지리멸렬한 대화는 귀한 영애의 귀엔 지루하게만 들릴 테니까.”

“베풀어 주신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전하.”

아서의 청에 오웬은 의외로 흔쾌히 허락했다.

더 이상 그의 집요한 시선을 받는 것이 불편한 참이었기에, 그레이스는 냉큼 두 손으로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며 오웬을 향해 작별 인사를 건넸다.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부디 무사히 환도하시길 빌겠습니다.”

“아아. 다음에 보죠. 그레이스 영애.”

그레이스는 일부러 이어진 오웬의 대답을 못 들은 척하며 마차 앞으로 걸어갔다.

기다리고 있던 마부는 정중히 그녀를 에스코트했고, 그레이스는 무사히 마차에 올랐다. 그리고 그레이스가 앉아 있기 편하도록 드레스 자락을 추스르는 사이 마부는 마차 문을 닫고 마부석으로 걸어가 버렸다.

그렇게 마차 안에 홀로 남은 그레이스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살짝 커튼이 쳐진 마차의 창문을 열었다. 조금 전 황태자의 태도에 마음 한구석이 무언가에 걸린 듯 찜찜했기 때문이었다.

‘……대체 왜 이리 빨리 환궁하시는 거지? 아니, 그건 둘째 치고 굳이 나와 아서에게 말을 걸었을까?’

마치 기다렸다는 듯 환궁 준비를 신속히 완료한 것도 그렇고 그 와중에 굳이 자신들을 불러세운 속내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것도 저렇게 대놓고 아서에게 할 말이 있다는 듯한 얼굴로.

그래서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 그레이스는 살짝 열린 틈으로 보이는 아서와 오웬의 대화를 엿듣고자 했다.

그레이스는 마차 창문을 덮은 커튼으로 최대한 얼굴을 가린 채 들려오는 아서와 오웬의 대화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제게 하실 말씀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전하.”

“정말이지 자네는 돌려 말하는 법이라고는 없군. 기사들이란 다 그런가?”

“죄송합니다, 전하. 목숨을 걸고 나서 싸우는 전쟁터에선 궁중처럼 돌려 말하다간 목숨을 잃기 십상이라서요.”

“그도 그렇겠군. 하긴, 나 또한 황족들과 귀족들이 속내를 감추고 이리저리 빙빙 말을 돌리는 화법을 듣고 있노라면 답답해서 울화통이 치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니까.”

“헤아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본론은 나오지 않은 채 대화가 겉도는 아서와 오웬의 말소리에 그레이스는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그때, 본론을 꺼내기 전 말을 고르는 듯 잠깐 아서에게서 시선을 뗀 오웬의 시선이 정확히 그레이스가 탄 마차 쪽으로 와 닿았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오웬의 시선이 그레이스가 엿듣기 위해 살짝 눈을 빼놓고 있던 마차의 창문에 내려와 꽂혔다.

“……흡!”

그 순간 그레이스는 다급히 숨을 들이켜며 얼른 창문의 커튼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커튼이 닫히기 전 오웬이 마차에서 눈만 내놓고 있던 자신을 본 것 같았다. 그레이스는 순식간에 차오른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사실 말소리만 들을 것이라면 창문을 연 채 커튼만 내려놓았어도 되었을 것을, 괜히 밖을 내다보았다가 그만 황태자에게 자신이 대화를 엿듣고 있다는 사실만 눈치채게 한 꼴이 되었다.

‘……너무 욕심이 지나쳤어.’

빙빙 돌려 말하는 황궁의 예법을 생각해 보면, 말하는 자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알고자 하면 말의 내용을 따지기보다 그 말하는 자의 시선에 담긴 감정을 읽는 것이 더 빨랐기에 습관처럼 눈으로 정보를 수집하려 한 자신의 패착이었다.

그레이스는 뒤늦게 모른 척 커튼을 내리고 자신이 듣지 않는 척했지만, 이미 자신을 눈치챈 오웬이 말소리를 죽인 것인지 더 이상 대화는 잘 들리지 않았다.

결국, 그레이스는 다시 한번 살짝 커튼을 들어 올려 창밖을 주시했다.

그러자 아서의 곁으로 바싹 붙어선 오웬이 묘한 웃음을 띤 굴로 그를 향해 무언가 중얼거리는 듯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연신 무언가 말을 늘어놓는 오웬의 얼굴에는 묘한 웃음과 함께 어떤 승리감이 깃들어 있었다. 그레이스는 그 말을 듣고 있는 아서의 표정이 궁금했지만, 그가 마차를 향해 등을 돌리고 서 있었기에 볼 수가 없었다.

‘대체 뭐야, 뭐냐고.’

그레이스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쩐지 영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레이스는 얼른 저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기를 빌며, 줄곧 초조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조금 전으로 돌아와, 그레이스가 마부의 에스코트를 받아 마차에 올라타는 것을 확인한 후 아서는 오웬을 향해 노골적으로 자신을 불러 세운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오웬이 마음에 든다는 듯 빙글거렸다. 그 또한 핵심을 피해 줄곧 겉돌기만 하는 자신들의 대화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했다.

그러더니 오웬이 할 말을 고르듯 잠깐 눈앞의 아서에게서 시선을 떼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픽 바람 빠지듯 웃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아서는 그 영문을 알 수 없는 황태자 오웬의 태도에 슬쩍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갑자기 왜 웃음 지으십니까. 전하.”

“아, 아무것도 아니라네. 그저 좀 귀엽다는 생각을 했어.”

그 말에 오웬은 또다시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대답을 내뱉었다.

대체 무엇이 그리 귀엽다는 건지 모르겠어서 아서는 노골적으로 인상을 썼다. 할 말이 있다면 빨리해 주면 좋을 텐데, 자꾸만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오웬의 태도에 슬슬 진심으로 신경이 거슬리던 그때였다.

“미안하군. 조금 전까지 돌려 말하는 황족들과 귀족들이 싫다고 내 입으로 말해놓고선 나도 모르게 또 돌려 말하고 말았군.”

“제게 사과하실 것 없습니다, 전하.”

“그래? 그럼, 이제 개탄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사실은 그대에게 꼭 묻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것도 있으니까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형식적인 사과를 건넨 오웬은 갑자기 아서에게로 바싹 붙어 섰다. 그러더니 마치 밀담을 나누는 사람처럼 낮게 소리를 죽여, 아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대는 그대의 아내인 그레이스 영애를 얼마만큼 사랑하지?”

그 질문에 아서는 당황한 표정으로 오웬을 응시했다. 그 질문의 내용이 예상했던 범위 밖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의도와 목적을 알 수 없는 질문에 당황한 것도 잠시, 곧 아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제 진심을 다해서 사랑하고 있습니다.”

“진심이라. 그대의 목숨도 기꺼이 내놓을 만큼?”

“그렇습니다.”

“그렇군.”

이어진 오웬의 질문에도 아서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레이스를 향한 자신의 감정은 굳이 꾸미고 다듬지 않아도 될 만큼 진실했기에 미사여구를 붙일 필요도 또 대답을 머뭇거릴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 대답을 들은 오웬의 표정이 묘해졌다. 금발의 잘생긴 황태자의 얼굴에 뜬 기묘한 감정은 마치 그 대답을 기다린 것 같기도 했고, 그 대답을 절대로 듣고 싶지 않다는 듯 혐오스러워하는 듯도 했다.

그러더니 오웬은 그 얼굴에 떠오른 감정과 비슷하게 묘한 목소리로 아서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말이네. 과연 그대의 아내도 그렇게 그대를 사랑할까?”

“……무슨 뜻에서 하는 말씀이십니까.”

명백히 아서의 마음에 의심을 심고자 하는 의도가 보이는 오웬의 질문에 아서는 으르렁거리듯 대답했다. 그러자 오웬이 노골적으로 미소 지으며 그의 말에 대꾸했다.

“사실은 그대의 아내와 어젯밤 꽤 친밀한 시간을 보냈거든.”

그 말에 안 그래도 굳어져 있던 아서의 입매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