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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50화 (50/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50화

“하필! 하필 그 비루먹은 그레이스라뇨? 마법 능력도 타고나지 못해 집안의 수치일 뿐인, 얼굴이 좀 반반한 그것에게 꽂혀 있던 전하의 시선을, 어머니께서도 눈치채셨을 테죠!”

“……그래. 아주 노골적으로 그것만 보고 계시더구나.”

“게다가 그것이 케이크를 먹지 못하게 직접 막아 세우기까지 하셨죠! 하! 어떻게, 어떻게 그래요? 지금 누구 때문에 직접 초대장까지 보내 그 비루먹은 것을 데려왔는데요!”

“그래, 전부 전하 때문이지. 그럼, 그렇고말고.”

제 품에서 울분을 토해 내는 마리안느를 토닥이며 앨버튼 공작 부인 또한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레이스 그것이 케이크를 한입이라도 먹었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일은 쉽게 풀렸을 터였다. 왜냐하면 그 케이크 안에는, 앨버튼 공작이 제조한 마법약이 들어가 있었으니까.

그것이 그레이스 그것이 몸속에 들어갔다면, 지지부진한 저주의 힘에 날개를 달아 주었을 텐데. 앨버튼 공작 부인으로서는 이리 그레이스를 돌려보는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었다.

앨버튼 공작 부인은 마리안느를 위로하듯 꼭 껴안으며 제 속내 또한 드러냈다.

“적어도 그때 전하께서 비 맞은 생쥐처럼 떠는 그것의 편을 들지만 않았어도 일은 쉬웠을 텐데.”

“맞아요. 그 케이크만 먹었어도! ……그런데 어머니, 그때 그레이스 그것의 반응이 너무 수상하지 않았나요? 케이크를 보고 벌벌 떠는 것이 꼭 그 안에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 것 같은 반응이었잖아요.”

조금 전 그레이스의 행동을 반추하며, 마리안느가 의구심을 품고 묻자 앨버튼 공작 부인은 코웃음을 치고는 대답했다.

“그 무능력한 것이 그 케이크 안에 든 마법약의 힘을 감지했을 리 없잖니.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란다.”

“……그렇겠죠?”

“그럼! 그게 아니면 뭐 그 몸속에 흐르는 우리 앨버튼 가문의 선조들의 피의 영향이겠지. 아무 능력도 갖고 태어나지 못했어도 일단 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고 내 배 속에서 태어난 것은 맞으니까.”

“……그건 그렇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앨버튼 공작 부인의 말에 마리안느 또한 마음속에 피어올랐던 의구심을 걷어 냈다.

‘빌어먹도록 운 좋은 계집애.’

마리안느는 또다시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그레이스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아무래도 그 망할 것이 마법 능력 대신 넘치게 운을 타고난 모양이에요. 성혼 축하 파티에서의 ‘축복 주문’ 속에 숨겨져 있던 ‘저주 마법’을 피해 간 것도 모자라, ‘그분’이 직접 설계한 ‘저주 증폭 마법진’ 아래에서 이틀 밤을 자도 멀쩡하니 말이에요.”

“그러게 말이다. 정말이지, 악마의 운이라고밖엔 할 수가 없어.”

“……혹시 펠릭스 공작이 무슨 수를 쓴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 그자가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제게 씌워진 ‘저주받은 공작’이라는 이름부터 지우려 들었을 게다.”

“하긴. 세간의 시선과 손가락질을 피하고자 제 동생에게도 상복 같은 까만 가면을 씌운 겁쟁이가 그런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하죠. 정말이지, 그자야말로 아버지께서 밝혀낸 ‘그 비밀’의 가장 큰 수혜자인 것 같아요.”

“그래. 네 말이 맞다. 우리 예쁜 딸.”

“그런데 그것들이 주제를 모르고 감히 우리를 향해 대들고, 마치 윗사람처럼 군림하니 화가 안 날 수가 없어요! 어머니도 들으셨죠? 어젯밤 파티의 일을요! 정말 그 일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그 망할 것을 저주로 죽여 버리고 싶을 지경이에요!”

아서 펠릭스 공작이 황족만 아니었더라면, 그 강한 무력으로 이 제국의 가장 강한 변경백이 아니었더라면 진작 그 두 사람을 쥐도 새도 모르게 이 제국에서 사라지게 했으리라.

마리안느는 요 이틀 사이 그들로 인해 자신이 겪어야 했던 짜증스러운 일들을 떠올리며 인상을 썼다.

그러자 앨버튼 공작 부인이 그 마음 안다는 듯 마리안느를 토닥이며 말했다.

“네 마음 다 안단다, 마리안느. 하지만 걱정 말렴. 그 아이에게 기다리고 있는 건 허무한 죽음과 끔찍한 파멸뿐이란다.”

“……어머니.”

“꼭 네 아버지와 내가 그렇게 만들 거란다.”

그렇게 말하며 상냥하게 웃는 앨버튼 공작 부인의 푸른 눈에는 케케묵은 미움과 증오가 가득했다.

대체 어떻게 자신의 배 속에서 그따위 것이 튀어나왔을까. 밉고, 밉고 또 미운 것. 앨버튼 공작 부인은 몇십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생생한, 그레이스를 낳느라 겪어야만 했던 나흘 간의 진통을 겪으며 이를 갈았다.

제대로 먹고 마시지도 못한 채, 배를 칼로 찢어발기는 듯한 고통을 오롯이 혼자 버텨야만 했던 그 순간.

제 손으로 목을 조르고 싶을 만큼 흉악한 그 고통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진통이 길고 힘겨울수록, 난산일수록 태어나는 아이는 강한 마법 능력을 타고 태어난다’는 전승 때문이었거늘.

그랬는데 그 고통을 버티고 태어난 것은 아무 능력도 타고나지 못한 무능력자였다.

그를 알았을 때 남편 앨버튼 공작의 실망 어린 시선, 그리고 일족들의 동정 어린 시선 속 은근히 깃든 비웃음은 생사를 넘나든 고통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앨버튼 공작 부인의 마음속에 갓 태어난 아이를 향한 강렬한 증오를 아로새기기에 충분했다.

‘저 쓸모없는 핏덩이만 내 배 속에 없었더라면.’

저것만 낳지 않았더라면, 그 끔찍한 고통을 겪을 일이 없었을 텐데.

고작 저따위 무능력한 여자아이를 낳기 위해 죽을 만큼 버텨야만 했던 스스로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레이스, 그 아이가 하나도 예쁘지 않았다. 하루하루 자라날수록 더 그랬다. 시궁쥐처럼 살살 다른 사람들의 눈치만 보며 사랑을 받고자 노력하는 그 모든 모습이 다 꼴 보기 싫을 만큼 미웠다. 세간의 시선만 없었다면 진즉에 어떻게 해 버렸을 정도로.

‘뭐, 그래도. 그나마 이렇게라도 써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지 뭐야.’

그래. 그 쓸모없는 것의 목숨 하나쯤 희생해서 귀한 큰딸과 남편, 그리고 자신을 지탱해 줄 가문을 지킬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것만으로 지난 고통과 모멸감에 대해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생각하며, 앨버튼 공작 부인은 서늘한 푸른 눈을 빛냈다.

‘이제 몇 달만 더 참으면 돼.’

그 저주받은 괴물 공작이 그 쓸모없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아하니,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저주’의 발동 조건이 갖춰질 듯 보였다. 그러면 드디어 자신들은 이 고통을 끝내고 영화를 맞이하게 될 터였다.

앨버튼 공작 부인은 자신들에게 찾아올 그 화려한 화양연화의 순간을 상상하며 서늘하게 미소 지었다.

* * *

응접실을 나온 아서와 그레이스가 향한 곳은 앨버튼 공작가의 정문이었다.

아서는 그곳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던 샐리에게 눈짓한 후 부드럽게 그레이스의 곁에서 떨어지며 말했다.

“잠깐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부인. 당장 출발 준비를 하라 일러두겠습니다.”

“네, 그럴게요.”

“샐리, 부인을 부탁한다.”

“걱정 마세요, 각하.”

그러더니 아서는 타고 온 말들을 묶어 둔 곳에 시립해 있던 기사들과 시종들의 곁으로 다가가 무언가 지시하는 듯했다.

그러자 기사들은 예를 표하며 각자 흩어졌고, 시종들은 그레이스의 짐을 챙기고 그녀가 타고 온 마차를 몰고 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사이 그레이스는 샐리와 함께 나란히 공터에 남아 모두가 준비되기를 기다렸다. 샐리는 그 곁에서 그레이스의 어깨에 코트를 덮어 주고, 손에 새 비단 장갑을 끼워 주는 등 시중을 들며 말을 걸었다.

“응접실에서 별일 없으셨지요?”

“……글쎄.”

그레이스가 어색하게 말을 흐리자 샐리가 어두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저도 따라가고 싶었는데, 빌어먹을 앨버튼 성의 집사장 늙은이가 ‘가족 간 환담을 방해할 셈이냐’고 절 막아 세우지 뭐예요.”

“그랬구나.”

“정말 별일 없으셨죠? 설마, 거기서 또 무슨 말을 들으신 건 아니에요?”

“하하.”

“……들으셨구나.”

차마 그곳에서 있었던 소란에 대해 시시콜콜 말할 수가 없어서 그레이스는 또다시 말을 흐렸다. 샐리는 그녀의 그런 모습에 눈치 좋게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공작님께서 잘 막아 주셨죠?”

“그럼. 물론이지.”

“다행이에요. 또 그런 일이 있거든 참지 말고 대응하세요. 이제 마님의 뒤엔 각하와 펠릭스 공작 가가 있잖아요?”

그러니 기죽으실 것 없다며, 샐리는 밝은 목소리로 그레이스를 다독였다. 그레이스는 그 말에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 재미있게 나누십니까, 부인.”

그렇게 잠깐 샐리와 환담을 나누는 사이, 귀환 준비를 마친 듯 아서가 그레이스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레이스는 살포시 웃으며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아서를 향해 물었다.

“벌써 출발 준비가 끝난 거예요?”

“그렇습니다. 사실 내가 먼저 지시를 내리기 전에 어느 정도 출발 준비를 마쳐 두었더군요.”

“어머, 그래요?”

“그래서 딱히 더 지시할 것도 없기에, 나는 이렇게 부인을 데리러 왔습니다. 부인을 마차까지 안내해 주려고요.”

아서는 그렇게 대꾸하며 그레이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레이스는 기꺼이 그 손을 잡았고, 아서는 맞잡은 그레이스의 손에 깍지를 끼며 샐리를 향해 말했다.

“부인의 짐가방은 빠짐없이 확인했겠지?”

“네, 물론입니다.”

“혹시 빠진 것이 있거나, ‘부인의 것’이 아닌 것이 섞여 있을지도 모르니 다시 한번 확인을 부탁하지.”

“네, 알겠습니다.”

아서의 명령에 샐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짐이 실린 마차 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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