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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47화 (47/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47화

“이, 이것이……!”

그러자 마리안느가 끓어오른 화를 참지 못하고 손을 파들파들 떨었다.

그레이스는 다혈질에 이기적이고 모욕을 참지 못하는 자존심 강한 그녀가 당장이라도 끼고 있는 장갑이나 손에 쥔 부채를 제게 던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리안느가 낀 장갑을 벗으려 손을 움직였다.

그때였다.

“그레이스 영애에게 사과해요, 마리안느.”

지금껏 싸늘한 시선으로 마리안느를 바라보고 있던 오웬이 장갑을 벗으려는 그녀의 행동을 저지하며 말했다.

마리안느는 그 말에 더욱 화가 나 붉어진 얼굴로 오웬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전하!”

“영애가 하지 못하겠다면 내가 하죠.”

“……허.”

“미안하오, 펠릭스 공작. 그리고 그레이스 영애. 약혼자의 무례를 용서하시게.”

싸늘한 오웬의 말에 마리안느는 기가 차다는 듯 더욱 얼굴을 붉혔다. 모름지기 약혼자라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편을 들지 않고,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며 망신을 준단 말인가.

이것은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편이 되어 주어야 할 배우자로서의 예가 아니었다. 정말이지 화가 나 참기 어려웠지만, 그녀의 약혼자는 무려 황태자였기에 그녀는 차마 반발하지 못한 채 그저 살짝 시선을 내린 오웬의 옆얼굴만 노려볼 뿐이었다.

“제게 고개를 숙이실 것은 없습니다, 전하.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은 안사람이기에.”

그 사과에 먼저 대꾸한 것은 그레이스 대신 아서였다.

원래 예법대로라면 그레이스가 오웬의 사과에 화답하도록 두는 것이 옳았지만, 아서는 모른 척 대신 사과를 받았다.

그 이유는 그레이스와 오웬이 대화를 나누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지난 성혼 축하 파티에서 자신에게 한 말도 있거니와, 저택의 정문에서 불쑥 나타나 자신들을 붙잡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레이스에게 와 닿는 황태자 오웬의 시선이 더없이 거슬리기도 했다.

그리고 줄곧 그레이스를 ‘펠릭스 공작 부인’이 아닌 ‘그레이스 영애’라 부르는 저 언사도 거슬렸다. 사내의 질투가 여인의 것보다 몇 배는 더 강하다고 하더니만,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닌 듯했다.

아서는 줄곧 그레이스에게만 와 닿는 오웬의 묘한 시선을 당장 가로막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오웬을 서늘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자, 자. 모두 그쯤 해 두세요.”

“……!”

“이제 막 가족이 된 사이이니 어느 정도 갈등이 생기는 것이 무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늙은이들 앞에서 볼썽사납게 싸움을 벌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네 사람 사이로 엇갈린 시선이 오가던 중, 분위기를 환기시킨 것은 줄곧 묘한 얼굴로 아서와 그레이스를 살피던 앨버튼 공작이었다.

그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더없이 자애로운 아버지와 같은 말로 분위기를 바꾼 후 마리안느를 돌아보며 질책했다.

“마리안느, 결혼을 앞두고 심리가 불안정한 것은 이해하지만 조금 전 언사는 너무도 큰 실례였다. 나중에 꼭 사과하거라.”

“아버지, 제가 왜!”

“마리안느.”

“……알겠어요.”

그 말에 발끈하며 반박하던 마리안느는 곧 엄중한 앨버튼 공작의 시선에 기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맞은편에 앉은 그레이스를 노려보는 눈빛에는 여전히 가시지 않은 앙금과 짜증이 가득했다. 그레이스는 가볍게 코웃음 치며 그 시선을 무시했다. 그 시선이 거슬리긴 했지만 굳이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그레이스의 행동에 더 짜증이 치민 건지 그레이스를 노려보는 마리안느의 표정이 한층 더 험악해졌다. 그 모습에 오웬은 인상을 쓰며 시선을 돌려 버렸고, 마리안느는 약혼자의 싸늘한 태도에 한층 더 화가 끓었다.

그런 마리안느의 기분을 유일하게 살펴준 사람은 줄곧 짜증이 난 큰딸의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

“결혼 문제도 그렇고, 요사이 드레스를 맞추느라 제대로 먹지 못했으니 괜히 예민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네 마음 다 안단다.”

“……어머니.”

“이럴 땐 혀가 아릴 정도로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며 기분을 좀 풀렴. 톰! 내가 준비해 두라고 일렀던 케이크를 이리로 가져와!”

“예, 마님.”

잔뜩 신경질이 난 마리안느를 다정히 위로한 앨버튼 공작 부인은 집사장을 불러 케이크를 가져오라 지시했다.

그러자 집사장 톰은 깊숙이 허리를 숙인 후 곧 응접실 옆에 딸린 별실로 가 그곳에서 은으로 된 트레이를 밀고 나왔다.

그 후 트레이를 그들이 앉은 테이블 가까이에 세운 톰은 덮여 있던 은 뚜껑을 열고 삼단으로 된 생딸기 케이크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은으로 된 칼로 능숙하게 자르기 시작했다.

“……!”

그 순간, 마리안느의 따가운 시선을 무시한 채 잡고 있는 아서의 손만 내려다보다 무심코 곁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레이스는 트레이에 놓인 케이크를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그 딸기 케이크가.

자신이 첫 번째로 죽음을 맞았던 그날, 앨버튼 공작 가에서 자신을 독살하기 위해 보낸 케이크와 냄새도 모양도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변변한 케이크 한 조각 없이 싸구려 쿠키와 멀건 스프로 맞아야만 했던 생일. 집안이 제시한 정략결혼을 거절한 후, 수도원으로 와서 처음으로 맞았던 생일에 집안에서 보내온 딸기 케이크.

비록 뭉개진 딸기로 청을 만들어 속을 채운, 특별할 것 없는 케이크였지만 처음으로 가족이 자신에게 선물했다는 것으로 그녀에게는 충분히 특별했던 그 케이크.

그것에 감격하며 남김없이 한 조각을 비웠을 때, 찾아왔던 끔찍한 고통과 목구멍에서 올라온 검은 피. 그리고 죽음.

마치 잊고 있던 그레이스의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그 케이크의 향과 모습에 그레이스는 굳어진 채 긴 속눈썹만 파들파들 떨었다.

“펠릭스 공작 각하, 그리고 마님. 드셔 보십시오. 두 분과 황태자 전하를 위해 저희 마님께서 특별히 만드신 것입니다.”

“고맙네.”

이 자리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오웬부터 자른 케이크 조각을 차근차근 나누어 주던 톰이 이윽고 아서와 그레이스에게도 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내밀었을 때였다.

톰으로부터 접시를 받은 아서는 조심스레 그것을 그레이스의 앞에 내려놓았다.

“윽!”

그리고 그 순간, 그레이스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첫 번째로 죽음을 맞았던 그날의 것’과 마치 찍어 낸 양 똑같은 그 케이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쥐고 있던 부채를 떨어뜨렸다.

떨어진 부채는 그레이스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찻잔 위로 떨어졌고, 당연하게도 찻잔이 엎질러졌다. 순식간에 좁은 테이블 위로 진득한 차가 흘러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마리안느와 그 곁의 작은 소파에 앉은 앨버튼 공작 부인은 자신들의 드레스에 찻물이 튈 새라 얼른 드레스 자락을 여몄다.

그러나 그레이스는 드레스에 찻물이 쏟아져도 그저 초점 잃은 멍한 눈으로 케이크만 바라보았다.

“부인!”

케이크를 본 순간 그 끔찍한 기억 속으로 빠져든 그레이스의 모습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아서였다.

아서는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멍한 표정으로 굳어 버린 그레이스를 한 팔로 꼭 껴안고는 큰 손으로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부인? 뭐 못 볼 것이라도 본 겁니까?”

“…….”

“부인.”

아서는 연신 멍해진 그레이스를 큰 손으로 다정히 쓸어내리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 다정한 손길에 겨우 조금 정신을 차린 그레이스는 그제야 느릿하게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걱정스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서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 후 그레이스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미, 미안해요. 나, 나는 괜찮아요.”

“괜찮긴요. 안색이 창백한데요.”

아서는 여전히 창백한 그레이스의 볼을 살짝 쓰다듬은 후 싸늘하게 집사장 톰을 노려보며 말했다.

“집사장, 혹시 이 케이크에 무슨 짓을 했나?”

“예!?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귀하신 분들이 드실 케이크에 삿된 짓을 할 리 있겠습니까!? 게다가 이 케이크는 여기 계신 앨버튼 공작 부인께서 직접 만드신 것인데요!”

아서의 추궁에 톰은 순식간에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슬쩍 책임회피를 제 주인인 앨버튼 공작 부인에게 돌리는 그의 말에 앨버튼 공작 부인 또한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럼요. 케이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답니다.”

“정말입니까?”

“당연하죠! 보세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은 아서가 되묻자 앨버튼 공작 부인은 보란 듯 제 몫의 케이크를 포크로 떠 제 입가로 가져갔다.

그러더니 마치 먹이를 기다리던 두꺼비처럼 날름 그것을 먹고 앞에 놓인 밀크티로 입가심한 앨버튼 공작 부인은 재빨리 제 남편과 큰딸을 향해 눈짓했다.

그러자 그녀의 남편인 앨버튼 공작과 마리안느 또한 각각 제 앞에 놓인 케이크를 떠먹었다. 그 모습에 앨버튼 공작 부인은 보라는 듯한 표정으로 아서를 돌아보며 말했다.

“보셨죠? 케이크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답니다.”

“……글쎄요. 모를 일이죠. 혹여 압니까? 혹여 이 안에 효과가 지연되어 나타나는 독이 있을지.”

“어머, 그 무슨 흉측한 소리를! 펠릭스 공작님께선 내가 친딸을 해치려 그런 짓까지 벌이는 사람으로 보이시나요?”

“펠릭스 공작, 말씀이 너무 심하시군요.”

“맞아요! 대체 그레이스가 뭘 보고 그리 놀란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놀라 호들갑을 떤 정도로 우리 가족을 독살이나 사주하는 사람으로 몰아가시는 건가요? 하! 평소 흉한 일들을 너무 자주 겪으셔서 그러신지 좀 지나치게 예민하시네요!”

심상치 않은 그레이스의 반응에 날카롭게 반응하는 아서와 그 반응에 발끈하는 앨버튼 가문의 사람들 간의 언쟁으로 응접실 내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은근히 아서와 펠릭스 가문의 저주를 언급하며 빈정대는 마리안느의 말에 아서의 오드아이가 서슬 퍼렇게 눈을 빛내며 검을 찬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 모습에 마리안느가 겁먹은 여우 같은 얼굴로 몸을 움츠리며 당장이라도 마법을 시전하겠다는 듯 손바닥을 펼쳤다.

그레이스는 당장이라도 사달이 날 것 같은 분위기에 얼른 잡고 있던 아서의 손에 힘을 실으며 그를 말렸다.

“괜찮아요, 공작님. 내가 괜히 호들갑을 떨었나 봐요. 응?”

자신을 본 순간 날카로운 표정을 싹 지우고 다정한 얼굴을 한 아서를 향해 살짝 미소 짓는 것으로 그를 안심시킨 그레이스는 곧 표정을 굳히며 앞에 있는 마리안느를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그리고 언니도 사과하세요.”

“내, 내가 뭘?”

“‘평소 흉한 일들을 너무 자주 겪으셔서 예민하다’니, 감히 그 무슨 언사예요? 앞으로 황태자비가 되실 분이, 남의 약점을 붙잡고 비열한 말을 하는 것 너무 격 떨어지네요.”

언쟁 상황에서도 최대한 부드럽게 말을 풀어 왔던 그레이스답지 않게 강한 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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