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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45화 (45/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45화

이윽고 그 말들이 앨버튼 저택의 정문 앞 공터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 말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말의 안장 위에 앉아 있던 한 남자, 군청색의 제복을 입고 얼굴을 반쯤 가린 검은 가면을 쓴 아서가 가볍게 말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 위에서 내려왔다.

그러더니 그는 눈을 돌려 자신을 마중 나온 이들 사이로 누군가를 찾듯 두리번거렸다.

“부인!”

그리고 단번에 그레이스를 찾아낸 아서가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그레이스는 불과 조금 전 자신이 막연히 상상했던 것과 똑같은 차림을 한 채 자신을 부르는 남편에게로 달려가 기꺼이 그의 활짝 벌린 팔에 가 안겼다.

아서는 마치 나비처럼 자신의 품으로 날아와 내려앉은 그레이스를 다정히 안아 주며 말했다.

“보고 싶었습니다.”

“저도요.”

아서는 마치 자신을 마중 나온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자신의 품에 안긴 그레이스만을 상냥히 내려다보며 그녀의 드러난 이마 위에 짧게 입맞춤했다.

그 행동에 그레이스가 살짝 볼을 붉히자 아서는 그 모습도 사랑스럽다는 듯 다정히 그녀를 응시했다.

“앨버튼 성에 친히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펠릭스 공작.”

그러나 그런 달큰한 분위기는 두 사람에게로 다가온 앨버튼 공작의 말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정중히 웃으며 아서에게 인사를 건네는 앨버튼 공작의 가식적인 미소 뒤에 묘한 기색을 담은 시선이 있음을 아서와 그레이스는 금방 눈치챘다.

그래서 그레이스가 슬쩍 아서의 품에서 떨어지려 하자, 오히려 아서는 보란 듯 그레이스의 허리를 팔로 감싸며 대꾸했다.

“방문을 허락해 주시고, 친히 마중까지 나와 주셔서 나야말로 감사합니다. 앨버튼 공작.”

“하하, 당연한 것을요. 펠릭스 공작께서 오셨는데, 당연히 나와 봐야지요.”

그 후 아서와 앨버튼 공작 사이에서 몇 마디 의례적인 인사가 오갔다.

그레이스는 여전히 묘한 시선으로 자신과 아서를 바라보는 앨버튼 공작의 시선이 꺼림칙하다고 생각하며 슬쩍 아서의 곁에 바싹 붙어 섰다.

그러자 그녀의 기분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세심하게 반응하는 아서가 의례적인 미소를 지으며 앨버튼 공작을 향해 말했다.

“괜한 수고를 끼쳐 드린 것 같군요.”

“하하, 괜한 수고라니요. 아무리 그래도 첫 방문인데, 마중도 나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서의 말에 앨버튼 공작은 일부러 사람 좋게 웃더니 곧 아서의 곁으로 다가가 친근하게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 자. 불편하게 이리 서 있지 말고, 환담은 파티장 안으로 가서 더 나누도록 하지요. 이 저택의 시종들이 펠릭스 공작을 위해 앨버튼 성 최고의 특산물 요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으로 들자고 청하는 앨버튼 공작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서가 슬쩍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더니 그는 곧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앨버튼 공작을 향해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 요리는 여기 계신 다른 분들과 나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예?”

“나는 애초에 조용히 부인만 데리고 펠릭스 성으로 귀환할 생각으로 온 겁니다. 앨버튼 공작도 잘 알다시피, 펠릭스 성은 중앙의 성주들과는 다르게 성주가 자리를 비우면 곤란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국경지대이지 않습니까?”

“……하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끼 식사도 나눌 시간이 없으십니까?”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앨버튼 공작. 펠릭스 성을 목숨 걸고 사수하는 것, 그것이 바로 펠릭스 공작에게 내려진 황명이라서요.”

식사 제안을 거절당한 것에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띤 앨버튼 공작을 바라보며 아서는 뻔뻔하게 미소 지었다.

그레이스는 그런 아서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살짝 입가를 가렸다. 살짝 웃음이 터진 것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가 불편해 보이니, 마음을 써 준 거구나.’

그레이스는 마치 자신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것 같은 아서의 모습에 속으로 기뻐했다.

그의 말처럼 자신은 할 수만 있다면 빨리 펠릭스 성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차피 앨버튼 공작의 노트 중 한 권을 가져온 것 말고 저주에 대한 실마리를 더 얻기도 힘들어졌고, 한시라도 빨리 노트에 적혀 있는 것들에 대해 알아봐야 하는데 굳이 이 불편한 곳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펠릭스 공작 부인, 아니, 그레이스. 네 생각 또한 그러한 것이냐.”

아서를 설득하는 것을 실패한 앨버튼 공작이 이번에는 그레이스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레이스는 대체 무슨 꿍꿍이로 자신을 붙잡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앨버튼 공작의 말에 대답했다.

“네. 이미 저는 펠릭스 공작가의 사람인걸요.”

그러니 더 이상 설득하려 할 생각 말고 자신들을 돌려보내라며, 그레이스는 앨버튼 공작을 향해 눈짓했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가주의 직위에서 그녀를 찍어 누르며 그녀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 시선에 앨버튼 공작의 눈에서 새파란 불꽃이 일던 그때였다.

“그러지 말고 앨버튼 공작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그러나.”

마치 두 사람의 실랑이를 막아 세우듯 누군가가 그들의 대화에 툭 끼어들었다.

그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긴 아서와 앨버튼 공작이 본 것은 자신들을 향해 느릿하게 걸어오고 있는 황태자 오웬이었다.

오웬이 넉살 좋게 미소 지으며 걸어오자 흥미로운 시선으로 아서와 앨버튼 공작의 실랑이를 지켜보고 있던 귀족 여성들이 길을 비켜 주었다.

오웬은 길을 터 주는 그들에게 살짝 눈짓으로 인사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아서와 앨버튼 공작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그는 아서의 팔에 반쯤 안겨 있는 그레이스를 한번 묘한 시선으로 곁눈질했다.

그레이스는 그 시선에 흠칫 놀랐지만 모른 척 시선을 피했다. 하필 왜 이 순간에 황태자가 끼어들고야 만 것일까. 그레이스는 조금 전 일어난 일처럼 생생한 어제의 일을 떠올리며 몰래 가슴을 졸였다.

그런 그레이스를 향해 황태자 오웬의 묘한 눈길이 와 닿았다 떨어졌지만, 너무도 순식간이어서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지금쯤 응접실의 가장 상석에서 동방의 대륙에서 넘어온 고급 차를 마시고 있어야 할 황태자가 친히 이곳까지 나왔다는 것에 집중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하. 평안을 누리시옵소서.”

“……좋은 아침입니다. 전하.”

“전하, 어찌 여기까지 걸음 하셨습니까. 혹여 시종들이 준비한 차가 마음에 차지 않으셨습니까?”

각각 아서와 그레이스, 앨버튼 공작이 오웬에게 예를 표하며 인사를 건넸다.

오웬은 그 인사에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한번 슬쩍 그레이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오웬은 아서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랜만이군, 펠릭스 공작. 황궁 연회장에서 본 이래 처음인가?”

“그렇습니다.”

“여전히 붙임성이라고는 없는 인사로군. 참으로 한결같아.”

얼핏 듣기엔 무뚝뚝하고 고지식한 제 가신을 칭찬하는 듯 웃음기 섞인 그 인사가 묘하게 날이 서 있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착각일까.

그레이스는 무표정하게 고개만 숙이는 아서의 얼굴과 입꼬리는 웃고 있지만 서늘하게 식은 눈으로 아서를 내려다보고 있는 오웬을 살폈다.

그러던 중 그레이스와 오웬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 순간 그레이스는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며 다시 시선을 피했고, 오웬은 그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 기묘한 표정에는 어젯밤 그레이스에게 충동적으로 사랑을 고백했던 때의 진득하고 질척거리는 감정이 묻어 있었지만, 오웬은 능숙하게 숨기며 곧 여상스럽게 앨버튼 공작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 그리고 앨버튼 공작, 나를 위해 준비해 준 차는 더없이 마음에 들었으니 괜히 시종들을 닦달하진 말게. 난 그저 같이 대화를 나눌 이도 없이 홀로 마시던 차가 지겨워지던 참에,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나와 보았을 뿐이니까.”

“이런, 그러셨습니까. 전하. 진작 그리 말씀해 주셨더라면 마리안느를 두고 나왔을 텐데요.”

“아니네. 그랬다면 내 미래의 신부께서 내 미천한 유머 실력을 알고 약혼을 엎자고 나왔을지도 모르니. 나는 숙녀를 재미있게 해 주는 재주가 없어서 말이야.”

그러더니 오페라에 등장하는 바람둥이처럼 능글맞게 대답하는 오웬의 모습에 몰려 있던 귀족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앨버튼 공작은 그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웃음들을 따라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조금 전 황태자의 말은 부드럽게 돌려 말했지만, 뜻은 명확했다. 그것은 네 딸 마리안느는 자신에게 있어 단둘이 대화를 나누기에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앨버튼 공작은 조용히 입안의 여린 살을 씹으며 울컥 치솟아 오른 분노를 갈무리했다. 지금 그 자리가, 그 위치가 누구 때문에 유지되는 것인데. 저 젊은 황태자 놈이 천지를 모르고 날뛰다니.

분하고 또 분했지만 앨버튼 공작은 참아야 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으니까. 계획은 이제 겨우 조금씩 맞물려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앨버튼 공작은 그 모욕에도 애써 웃음 지었다.

“그럴 리가요. 제 딸 마리안느는 음유시인들이나 광대의 재담 따위보다 전하의 진중한 진심이 담긴 대화를 더 즐거워한답니다.”

그러자 제 남편의 언짢은 기분을 눈치챈 앨버튼 공작 부인이 다급히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웬은 마치 제게 매달리는 듯 간절한 표정으로 늘어놓는 아부에 슬쩍 입꼬리를 올린 후, 정중하게 그녀의 장갑 낀 퉁퉁한 손에 짧게 입술을 내리고는 대답했다.

“그리 말해 주다니 기쁘군요, 앨버튼 공작 부인. 아름다운 분답게 칭찬도 아름다운 말로 해 주시는군요.”

“어머나.”

“이리 언사도 몸가짐도 아름다운 부인을 장모님으로 맞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달큰하게 웃는 오웬의 시선은 앨버튼 공작 부인도, 마리안느도 아닌 그레이스에게 닿았다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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