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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41화 (41/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41화

“……이런, 황태자 전하셨군요.”

그러자 조금 전까지 험악한 목소리로 제 서재에 침입한 자를 추궁하던 앨버튼 공작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그러더니 책과 서류를 헤집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앨버튼 공작이 또다시 말을 걸었다.

“그런데 어쩌다 제 서책과 서류를 이리 다 헤집어 놓으신 겁니까? ……꼭 누군가 이곳을 뒤진 것 같은 모습이로군요.”

그 의미심장한 목소리는 마치 책상 밑에 자신이 숨은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들렸다.

그레이스는 이제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자신을 숨겨 주려는 듯한 오웬에게 의지하는 방법뿐이었다. 그레이스는 속으로 경솔했던 스스로를 자책하며 오웬을 간절히 올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제발, 제발 말하지 마요.’

오웬은 그런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앨버튼 공작에게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그게 말일세, 내가 조금 전에 이곳에서 발이 미끄러져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네. 그래서 그만 이리 자네의 서재를 어지럽히고 말았지.”

“저런, 그러셨습니까? 어디 다치신 곳은 없고요?”

그 능청스러운 대답에 앨버튼 공작의 목소리는 대번에 걱정스러운 기색을 띠었다. 오웬은 염려스럽다는 듯한 그의 물음에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다행히 난 멀쩡하다네. 이것 참, 미안하네. 앨버튼 공작. 길을 잃은 것도 모자라 자네의 서책과 서류까지 엉망으로 헤집어 놓았으니.”

“무슨 소리십니까. 저야말로 저택을 깨끗이 해놓지 못해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감히 전하를 제대로 안내하지 못할 만큼 엉망으로 시종들을 교육시킨 잘못도 제게 있고요. 죄송합니다, 전하. 전하의 안내역을 맡은 시종은 곧장 해고하여 이 저택에서 내쫓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네. 내가 앞으로 내 아내의 친정이 될 앨버튼 저택을 구경하고 싶으니 물러나 있으라고 했으니까.”

“그러셨습니까. 제게 직접 말씀하셨다면 좋았을 것을요.”

“어디 그럴 수 있겠나. 앨버튼 공작은 이 제국에서도 손꼽힐 만큼 바쁜 사람인데. 그런 자네의 노력 덕분에 이 제국이 이리 잘 굴러가고 있는데, 염치없게 자네가 한숨 돌려야 할 시간에 내 저택 안내까지 부탁할 수는 없지.”

“하하, 과찬이십니다. 전하.

오웬이 앨버튼 공작에게 조금 낯 뜨겁다 싶을 만큼 칭찬을 퍼붓자 어느새 앨버튼 공작의 목소리에 섞여 있던 의심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레이스는 어느새 자신이 숨어 있는 책상에서 걸음을 옮겨 천천히 앨버튼 공작이 서 있는 문가로 걸어가는 오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볼 건 다 보았겠다. 앨버튼 공작, 나 좀 파티장으로 안내해 주겠나?”

“아, 예! 물론입니다.”

파티장으로의 안내를 부탁하는 오웬에게 앨버튼 공작은 기꺼이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그레이스는 그 대답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그들이 나가려는 모양이었다. 그레이스는 떨리는 손으로 드레스 폭에 감춘 작은 서책을 꼭 끌어안았다.

“……아, 잠깐만. 조금 전에 넘어지느라 마리안느에게 줄 반지를 저기 떨어뜨린 모양이야.”

그런데 앨버튼 공작의 안내에 따라 밖으로 나가야 할 오웬이 다시 자신이 숨어 있는 책상 쪽으로 걸어오는 것 같은 기척이 느껴졌다.

그 모습에 그레이스가 다시 긴장하던 그때, 무언가를 줍는 척 그레이스의 곁으로 다가온 오웬이 그레이스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조용히 입을 움직여 말을 건넸다.

“……잠시 후, 앨버튼 저택의 비밀정원 가장 안쪽의 벤치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그대를 도와준 대가는 그곳에 나와 주는 것으로 받죠.”

그러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놀란 표정을 짓는 그레이스를 두고 오웬은 태연히 몸을 일으켰다.

조금 전 그가 댄 핑계대로 손에 작은 반지 상자를 손에 쥔 채 말이었다. 그러고는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더니 곧 그레이스의 귓가에 서재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

이윽고 서재는 다시 어두워졌고, 더 이상 서재에는 누군가의 발소리 나 인기척이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된 이후에도 한동안 서재의 책상 밑에 숨어 있던 그레이스는 자신의 귓가에 자신의 숨소리만 들려오게 되고 나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여전히 긴장감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얼른 눈치를 살펴 서재 밖으로 나왔다. 더 이상 뒤지다가 이번에야말로 들키면 그 땐 이번처럼 요행을 바랄 수가 없으리라. 그레이스는 혹여 누가 볼 새라 더욱 걸음을 빨리했다.

“허억, 허억…….”

그리고 저택 밖에 완전히 나오고 나서야, 그레이스는 거칠어진 숨을 겨우 고를 수 있었다.

그레이스는 식은땀에 젖은 이마를 손으로 훔친 후 제 품에 꼬옥 안겨 있는 먼지 묻은 서책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비밀을 알아내려 했는데, 머리만 더 복잡해진 기분이야.’

게다가 서재를 뒤지고 있는 장면을 황태자 오웬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레이스는 복잡한 심경이 가득한 얼굴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대체 왜 그는 잠시 후 정원으로 나오라고 한 걸까. 그것도 숨겨 준 대가 운운하면서까지. 아니, 그보다 왜 자신을 거짓말까지 하며 숨겨 준 걸까. 도대체 그 속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혹시 비밀정원에 앨버튼 가문의 기사들이라도 불러놓은 거라면 어쩌지?’

만약 그런 것이라면 도망치는 것이 더 나을 터였다. 하지만.

‘……그 속셈을 모르겠어도,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

어찌 되었든 황태자는 조금 전 일로 자신의 약점 하나를 움켜쥐게 되었으니까. 그런 그의 입막음을 위해, 일단 그가 하자는 대로 따르는 것이 맞을 듯했다.

그리고 그가 앨버튼 가문의 기사들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란 막연한 확신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또한 자신을 숨겨 주는 것에 일조했으니까.

결국, 그레이스는 조금 전 오웬의 말대로 조심스레 비밀정원으로 향하는 길로 걸어갔다.

* * *

밤이 내려앉은 앨버튼 공작 가의 비밀정원 안은 고요했고 또 을씨년스러웠다.

그레이스는 혹여 누가 들을세라 발소리를 죽여 오웬과 약속한 벤치로 걸어갔다. 그 후 그 벤치에 앉아 오웬을 기다리는 그레이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정말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아무리 오웬이 자신을 숨겨 주었다고 해도, 그로 인해 약점 아닌 약점을 잡혔다고 해도 이곳까지 나오진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괜히 이 일로 인해 또 다른 오해를 사는 건 아닐까.

그레이스는 또다시 복잡해지는 생각과 긴장감으로 초조해졌다.

‘……역시 안 되겠어.’

역시 이런 곳에서 오웬과 단둘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만두어야겠다.

그레이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다시 발소리를 죽여 비밀 정원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였다. 그레이스는 그늘진 곳에 몸을 숨긴 채 조심스레 비밀정원의 문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비밀 정원에서 앨버튼 저택으로 들어서는 입구 앞에 도달한 그레이스가 문을 열려던 그때, 그레이스는 그 맞은편에서 자신이 선 쪽을 향해 걸어오는 오웬과 딱 맞닥뜨렸다.

그레이스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가오는 오웬을 바라보았다.

“어딜 가십니까. 그레이스 영애.”

조금 전보다 더 화려한 차림을 한 황태자 오웬은 당황한 그레이스를 향해 낮게 웃으며 추궁했다. 그레이스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그의 집요한 시선을 피하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죄송해요. 아무래도 제가 생각을 잘못한 것 같아서요.”

“뭘 말입니까? 레이디께서 무슨 생각을 어떻게 잘못하셨다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곤란한 듯 몸을 비틀며 빠져나가려는 그레이스를 막아 세우며 오웬은 집요하게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레이스는 질문을 하며 자꾸만 자신과 말을 이어 나가려는 오웬의 모습을 노려보며 말했다.

“전하께서도 제가 왜 이러는지 잘 아실 텐데요? 신사가 이 늦은 시간에 숙녀와, 그것도 유부녀와 비밀정원에서 만난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상상을 불러일으키는지 잘 아실 것이라 생각해요.”

“……상상이라. 나와 레이디가 곧 가족이 될 사이라도 말입니까?”

“네. 오히려 입 놀리기 좋아하는 귀족들은 더욱 재미있는 가십 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할 테죠.”

“…….”

“저를 곤경에서 구해 주신 것은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하지만 그 감사의 대가를 이런 식으로 받으시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레이스는 자신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며 묵묵히 듣고만 있는 오웬을 잠시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후 그레이스는 더 이상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담아 정중히 드레스 끝을 쥐고 들어 올려 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오늘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해서는 제가 어떤 방식으로든 갚을게요.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어요.”

그레이스는 미련 없이 오웬에게서 등을 돌려 비밀정원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그때, 오웬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그레이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툭 한마디 했다.

“지금 이대로 돌아선다는 건, 내가 오늘 있었던 일을 앨버튼 공작에게 말해도 된다는 뜻입니까?”

“……뭐라고요?”

그 말에 그레이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제 뒤에 선 오웬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다시 그녀와 시선을 마주한 오웬이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러고는 그레이스가 서 있는 곳으로 척척 걸어와 다시 그녀의 앞을 막아 세우며 말했다.

“분명 나는 그대를 숨겨 준 대가로 그대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대가를 받지 못했는데 내가 왜 굳이 거짓말을 해 가며 그대를 숨겨 줘야 하는지요.”

“……죄송하지만 전 숨겨 달라고 한 적 없어요, 전하. 그리고 전 거짓말을 해 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곳에서 저를 본 것을 발설하지 말아 달라고 했죠.”

“비단 그뿐만이 아닐 텐데요.”

“죄송하지만, 무슨 뜻이죠? 전하?”

“지금 그대의 드레스의 허리 부분에 몰래 숨긴 그것.”

“……!”

“그것에 대해서도 그대는 내가 함구하길 원하는 것 같은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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