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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37화 (37/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37화

문이 닫히고 그레이스가 나가 버리자 응접실 안은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리안느는 식은 차를 단숨에 들이켠 후 신경질적으로 찻잔을 내려놓으며 앨버튼 공작을 향해 소리쳤다.

“아버지, 저 오만방자한 것을 왜 그냥 내보내셨어요?”

“그럼 어찌했어야 했단 말이냐.”

“한 소리 하셨어야죠! 네 주제에 맞게 굴라고, 어딜 건방지게 말대답이냐고 하셨어야죠! 감히, 감히 황태자비가 될 나에게 따박따박 말대답하는 건방진 저것에게 훈계를 하셨어야죠!”

진심으로 답답하다는 듯한 손으로 가슴을 치며 소리치는 마리안느를, 앨버튼 공작은 서늘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그러더니 그는 짧게 혀를 차며 말했다.

“바보 같으니. 예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제 저 아이는 펠릭스 공작 부인이야. 나나 네 어미와 동등하단 말이다. 아니, 더 높지. 아무리 저주받은 괴물이라고 해도 펠릭스 공작은 황제의 사촌이고 저 아이는 그 사내의 부인이니 예전처럼 그리 대할 수는 없어.”

“그게 뭐 어쨌다고요? 나는, 나는 황태자비가 될 사람이잖아요! 그러니 저 건방진 것보다 내가 더 높은 사람이라고요!”

“……아직 넌 ‘황태자비가 될 사람’이지 황태자비는 아니지 않니. 그 전까진 너 또한 저 아이에게 공대해야 해.”

아버지 앨버튼 공작에 이어, 어머니 앨버튼 공작 부인까지 거들자 마리안느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괴물 공작에게 시집간 후 넉넉잡아도 한 달 안에 죽거나 미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저리 행복한 얼굴로 다니는 것이 영 아니꼬웠다.

자신에 비하면 마법 능력도 없고, 무능력하기 짝이 없다 생각했던 여동생이 시집을 간 이후 사랑받는 티를 팍팍 내며 예쁜 드레스와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하고 다니는 것도 배알이 꼴렸다.

오늘만 해도 수백 개의 다이아몬드와 진주로 만들어진 목걸이에 연하늘색 최고급 실크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오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것을 ‘남편’이 준 것이라 자랑하며 웃는 것 좀 보라지.’

정말이지 그녀로서는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심사가 뒤틀리는 풍경이었다.

그 모습을 다시 떠올리며 마리안느는 연신 씨근덕거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앨버튼 공작이 그녀를 향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아이가 그러는 것이 못 견디게 싫거든 황태자 전하의 마음부터 좀 잡아 두거라. 약혼한 지가 언제인데, 네가 어찌했기에 황태자 전하가 너만 보면 질색을 하는 것이냐.”

앨버튼 공작의 질책에 안 그래도 표정이 좋지 않았던 마리안느의 표정이 더욱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그녀가 눈을 부릅뜬 채 앨버튼 공작을 노려보며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 아버지! 그동안 제가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잘 아시면서, 어찌 그렇게 말씀하세요? 아시잖아요! 전하가 얼마나 냉정한 사람인지, 그리고 어려운 사람인지! 게다가 그분께서는……!”

“어허.”

잔뜩 흥분한 채 소리치던 마리안느를 무심하게 응시하던 앨버튼 공작이 갑자기 그녀의 말을 막아 세웠다. 그러더니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제 딸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쯤 해 둬라, 마리안느. 주변에 듣는 귀가 한둘인 줄 아느냐.”

“……죄송해요, 아버지. 제가 그만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어요.”

그러자 마리안느는 흠칫 놀라더니 곧 주눅 든 표정을 지으며 앨버튼 공작에게 사과를 건넸다.

앨버튼 공작은 그 모습에 말없이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그런 두 부녀의 대화를 곁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듣고 있던 앨버튼 공작 부인이 얼른 제 남편의 곁으로 가 그 굳은 어깨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래요. 마리안느도 적잖이 답답했을 거예요, 여보. 그러니 마음 푸세요.”

앨버튼 공작 부인의 위로에 앨버튼 공작은 알겠다는 듯 깊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그는 기가 죽어 조용히 고개를 떨군 마리안느를 돌아보며 말했다.

“미안하구나, 마리안느. 그간의 네 노력을 내가 모를 리 있겠느냐. 네가 화를 입을 위험까지 감수하며 ‘사랑의 묘약’을 만들 만큼 노력했다는 것 다 안다.”

“……아버지.”

“그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일이 잘못되어선 안 되지 않느냐? 그러니 저 아이가 어떻게 방자하게 굴더라도 조금만 더 참아 보거라. ……어차피.”

마리안느를 향해 다정한 위로를 건네던 앨버튼 공작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더니 그는 제 곁에 앉은 아내와 장녀를 돌아보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몇 달 뒤, ‘저주’가 완성되면 네 앞에서 사라질 아이이지 않느냐.”

그리고 그 저주가 완성될 때, 우리 앨버튼 가문 또한 영원히 멸하지 않는 길을 걸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며 앨버튼 공작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마치 평생 웃는 법이라고는 모르는 듯한 그의 무뚝뚝한 얼굴에 미소가 퍼지자 그 곁에 있던 앨버튼 공작 부인과 마리안느의 얼굴에도 그와 같은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는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될 비밀스러운 음모를 공유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음습하고 어두운 공범자의 것이었다.

* * *

한편, 샐리와 함께 앨버튼 저택의 응접실을 빠져나온 그레이스는 샐리를 이끌고 오늘의 거처인 예전 자신이 쓰던 침실로 향했다.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 만큼 익숙한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오른 그레이스는 낡은 자신의 침실 문고리를 비틀어 그 안으로 들어섰다.

“오오.”

“……어머나.”

그리고 들어온 침실의 풍경에 그레이스는 밝은 목소리로 감탄했고, 샐리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녀들이 그렇게 반응한 이유는 그 방이 불과 몇 달 전, 그러니까 그레이스가 아서와 결혼하기 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누가 특별히 관리한 흔적 없이 낡고 허름한 가구들로 가득한 방이라는 소리였다.

그런 것도 모자라 그레이스가 떠나고는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은 듯 침실 구석에 쳐진 거미줄과 먼지에 샐리는 또다시 인상을 썼다.

그런 샐리와 달리 그레이스는 익숙하다는 듯 침대 옆 낡은 의자에 몸을 기대앉았다. 아니, 오히려 그레이스는 밝은 얼굴로 웃으며 가볍게 발을 굴러 높은 구두를 벗더니 말했다.

“아, 혹시 그 사람들이 내 침실을 건드렸나 했더니만 하나도 안 건드렸네요. 다행이다.”

“……마님, 다행이라니요.”

“왜 그래요, 샐리.”

“아무리 처녀 적 쓰던 방을 그대로 주신 것이라도 그렇지, 이젠 펠릭스 공작 부인이 되신 분을 이리 낡고 허름한 침실에서 주무시게 하다니요. 게다가 보아하니 그동안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네요!”

“……하하.”

“안 되겠어요. 제가 당장 청소라도 해야겠어요.”

씨근덕거리며 샐리가 두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고는 긴 의자에 앉아 있는 그레이스에게 두꺼운 외투를 이불처럼 덮어 준 후 당장 먼지부터 털어 내는 그 모습에 그레이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만류했다.

“안 그래도 되는데.”

“아뇨. 이런 방에서 지내시다간 귀하신 몸이 상하고 말 거예요.”

“정말 안 그래도 돼요. ……고생스럽게.”

“고생은요. 이 정도 좁은 침실은 넉넉히 잡아 30분이면 다 해요.”

“……도와줄까요?”

분주히 움직이는 샐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레이스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샐리가 단번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소리쳤다.

“아니요? 무슨 소리세요! 거기 꼼짝 말고 계세요. 아니다, 오래 마차를 타고 계셔서 피곤하실 텐데 잠깐 의자에서 주무세요. 그동안 제가 침대 시트도 갈고 청소도 좀 할게요.”

“으, 응. 그럼 부탁 좀 할게요.”

“맡겨 두세요! 어휴, 정말이지. 앨버튼 가문 사람들은 주인이고 시종이고 어찌나 무례한지!”

그레이스의 말에 두껍고 주름진 손으로 툭툭 제 가슴을 치며 대답한 샐리는 다시 청소에 돌입했다.

그레이스는 연신 바쁘게 움직이며 간간이 앨버튼 가문의 사람들을 욕하는 샐리의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보니, 샐리의 말처럼 피곤이 몰려왔다.

‘이상하다, 분명히 마차 안에서도 실컷 잤는데.’

꼭 누가 수면 약을 타기라도 한 것처럼 깊은 잠이 몰려왔다.

결국, 덮쳐 오는 수마에 진 그레이스는 덮고 있는 코트를 더욱 푹 눌러쓰고 눈을 감았다. 청소를 마친 샐리가 깨워 줄 때까지 잠깐 잠을 청할 생각이었다.

“어머. 마님, 주무시네.”

잠시 후, 어느 정도 청소를 마치고 창문까지 도로 닫은 샐리가 의자 근처로 걸어왔을 때 그레이스는 곤히 잠이 든 상태였다.

그 모습을 샐리는 안쓰러운 듯 잠시 내려다보며 잠이 든 그레이스의 몸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코트를 도로 끌어 올려 준 후 몸을 돌렸다. 한시라도 빨리 침대를 정리하고, 몇 시간 후 저녁에 그레이스가 입을 드레스를 미리 세팅해 둘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그녀는 보지 못했다.

천장에서 기괴한 문양의 마법진이 그레이스의 머리 위로 잠시 피어올랐다가 사라지는 기괴한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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