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29화
“뭐라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그 대답에 그레이스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대답했다.
분명 조금 전에 화살을 맞아 유명을 달리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몸에 화살 자국 하나 없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레이스가 설명을 요구하듯 묻자 샐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때 당시 전 공작님을 호위했던 기사님들께서 말씀하시길, 말을 타고 달려 나가시던 전 공작님 쪽으로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드는 소리가 나더니 전 공작님께서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셨답니다. 그래서 기사단의 기사들은 당연히 전 공작님께서 화살에 맞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가슴에는 화살이 남긴 상흔도 화살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요?”
“그래서 기사님들은 곧장 황제 폐하께 전서구를 보냈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전 공작님께서 ‘마법’에 당하신 것 같다고요.”
“……그럼 누군가가 마법을 이용해 선대 펠릭스 공작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건가요?”
그레이스가 슬며시 인상을 찌푸리며 되묻자 샐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저도 모른답니다.”
“왜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해 듣지 못했나요?”
“아니요.”
“그럼요?”
“그 누구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어요.”
“……예?”
어쩐지 이야기를 들을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래서 조금 더 명확한 설명을 요구하듯 그레이스가 또다시 되묻자, 샐리는 그늘진 얼굴로 대답했다.
“그 당시 기사님들과 이 성의 집사장은 누군가가 전 공작님에게 저주 마법을 걸었거나, 혹은 마법을 통해 투명 화살을 만들어 공작님을 시해했다고 주장하며 현재의 폐하께 관련자의 색출과 처벌을 요청했죠. 그래서 황제 폐하께서는 그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앨버튼 공작님을 이곳으로 파견하셨답니다.”
“아버지를요?”
그 대답에 그레이스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설마 이 일에도 자신의 아버지 앨버튼 공작이 개입해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놀라움이 더 컸다.
샐리는 그런 그레이스의 모습을 살피듯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네. 마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이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 능력을 지닌 이는 그때도 지금도 앨버튼 공작님뿐이니까요. 앨버튼 공작님께서는 폐하의 명을 받아 전 공작님의 사인과 그 범인을 색출하는 한편, 큰 마님의 사인 또한 조사하기 위해 직접 펠릭스 성으로 오셨었답니다.”
“저희 아버지가 에일린 황녀님도 조사를 하셨다고요?”
“예. 폐하께서는 하나뿐인 여동생이 또다시 고통스러운 산고 끝에 죽음을 맞았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듯 보이셨다고 해요. 아서 공자님을 낳으시고 레온 공자님을 임신하기 전까진 잔병치레가 잦고 성정이 신경질적으로 변하시긴 했어도 이전에 비하면 많이 건강해지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이건 분명 누군가의 음모일지도 모른다고 하시면서요.”
“……그래서, 아버지는 조사 결과에 대해 어떻게 발표하셨나요?”
그때, 자신의 아버지는 무엇을 보고 또 발견한 걸까.
그레이스가 호기심과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로 묻자 샐리가 힘없이 대답했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전 공작님을 돌아가시게 한 마법과 범인의 정체에 대해, 현재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는 알 수 없다고 하셨죠. 큰 마님 또한 그저 난산과 산욕열로 돌아가신 것뿐이라 하셨고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요?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다고요?”
“네. 다만 한 가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력한 마법의 힘’이 개입되었던 것 같다고는 말씀하셨죠.”
“강력한 마법의 힘이라는 것을 알아냈으면서, 그 마법의 시전자는 찾지 못했다고요? 그 말을,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납득했었나요?”
그레이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한 채 샐리에게 물었다.
무릇 강력한 ‘마법’의 뒤에는 강한 ‘시전자’가 있다. 그래서 마법의 힘을 추적하면 자연히 그 시전자를 추적할 수 있다. 그것은 마법 능력을 타고나지 못해 겨우 기초적인 이론만 깨우친 그레이스조차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그녀의 아버지 앨버튼 공작은 그 분야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직계 황족에게 뻗치는 저주를 막고, 그 시전자를 처벌하는 것에 앞장서며 공을 세운 끝에 황실 마법사까지 된 앨버튼 공작이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다니. 그레이스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샐리도 마찬가지인 듯, 그녀 또한 착잡한 목소리로 그레이스의 말에 동조했다.
“……글쎄요. 황실 분들은 어땠는지 몰라도 펠릭스 성의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그 설명에 납득하지 못했답니다. 하지만 도리가 없었죠. 이 제국에서 가장 강한 마법 능력을 지닌 앨버튼 공작께서도 찾지 못하는 그 힘의 원천을 저희가 어찌 찾을 수 있었겠어요?”
“그래서 그냥 아무 말 없이 납득할 수밖에는 없었던 건가요?”
“……저희도 답답한 나머지 집사장께서 직접 앨버튼 공작을 찾아가 조사한 사항에 대해 조금 더 상세한 설명을 요구했지만, 앨버튼 공작님께서는 ‘미안하네, 나도 더 이상은 말 할 수 없네.’라고 하셨답니다.”
“……더 이상, 말할 수 없다고요?”
“네. 정말이지, 얼마나 답답하고 분통이 터졌는데요.”
“……이해해요.”
그때만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고 덧붙이며 샐리는 분통을 터트리듯 소리쳤다.
그레이스가 시선을 내리깔며 고개를 작게 끄덕이자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샐리가 격정적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사실 전 봤거든요! 앨버튼 공작님께서 두 분의 시신을 수습하시면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작은 서책에 휴대용 깃펜으로 무언가 기록하는 것을요!”
“……네!?”
그 말을 들은 순간, 그레이스는 가슴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샐리가 묘사한 앨버튼 공작의 행동.
그것은 그녀의 아버지 앨버튼 공작이 홀로 서재에 틀어박혀 마법 연구를 통해 무언가를 알아냈을 때와 아주 유사한 행동이었다.
‘……분명히 무언가 있어.’
만약 그 행동이 그녀가 짐작한 대로라면, 앨버튼 공작이 들고 있는 그 서책은 공작의 연구 노트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앨버튼 공작은 펠릭스 공작 부부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을 마쳤고 그래서 그 사항을 노트에 기록한 것이리라.
그리고 아주 높은 확률로 앨버튼 공작은 ‘그 일’을 기록한 노트를 지금도 갖고 있을 터였다. 그레이스는 서늘한 표정을 지으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때 앨버튼 공작님께서 명확히 밝혀만 주셨어도 지금쯤 공작님과 레온 공자님께서 이런 흉측하고 사악한 오명을 뒤집어쓰진 않으셨을 텐데, 그 생각만 하면 복장이 터져 죽을 지경이에요. 대체 불쌍한 두 분께 무슨 저주가 얽혀 있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불행한 일이지만, 출산으로 인해 사망하는 여성이 비단 큰 마님뿐인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
“그리고 그 뒤의 일도 그래요! 공작님의 신부들과 약혼녀들이 죽거나 미쳐간 것이 온전히 공작님 탓이라고 할 수 없다고 봐요, 전! 제 생각엔 무능력한 마법사들의 책임도 있다고 봐요! 그분들께 불행한 일이 생길 때마다 조사한답시고 번번이 앨버튼 공작님이나 그 휘하의 마법사들이 찾아와 조사를 벌였지만, 지금껏 아무것도 밝힌 것이 없…….”
“……잠깐만요, 샐리.”
“네?”
그레이스가 생각에 잠기건 말건 샐리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제 주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답답함과 억울함을 토해 냈다.
생각에 잠겨 그 말을 흘려듣고 있던 그레이스는 그 말 중 자신의 귓가에 콱 박히는 한 가지 말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레이스는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묻는 그녀의 모습에 당황한 샐리를 향해 거듭 추궁했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왜, 왜 그러세요? 혹시, 제가 앨버튼 공작님을 나쁘게 말한 것으로 기분이 상하셨…….”
“아뇨. 그건 상관없어요. 그게 아니라 조금 전에 ‘그분들께 불행한 일이 생길 때마다 조사한답시고 앨버튼 공작이 번번이 찾아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아. 네. 맞아요.”
“정말요? 정말로 아버지가, 앨버튼 공작이 공작님의 신부와 약혼자들이 죽거나 미칠 때마다 찾아와 조사를 했었나요?”
그레이스는 이유 모를 불안한 예감이 마음속에서 번져 가는 것을 느끼며 샐리에게 물었다. 그러자 샐리가 말을 고르는 듯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네. 그분들께 불행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늘 앨버튼 공작님께서 ‘저주’의 원인을 밝히겠다며 찾아오셨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가리는 긴 로브를 뒤집어쓴 휘하의 마법사들과 함께요. ……그 모습이 꼭 명계의 사자들 같아서, 저희 시녀들은 그분들이 온다는 소식만 들어도 두려워했답니다.”
“……그때도, 그때도 아버지는 무언가를 기록하는 모습이었나요?”
“……글쎄요. ……아마도요? 저 또한 그런 일들이 반복되자 그분들이 조사한답시고 성에 오면 도망치기 바빠서…….”
“그래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제가 본 앨버튼 공작님의 손에는 이전에 보았던 것과 비슷한 작은 서책이 들려 있었다는 거예요.”
“……!”
그 대답을 들은 순간, 그레이스는 또다시 심장이 쿵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조금 전까지는 그저 막연한 추측이었다면, 조금 전 그 말로 어느 정도 확신이 서는 기분이었다.
아서와 레온, 그리고 그 두 사람의 부모인 전 펠릭스 공작 부부의 ‘저주’와 관련해 자신의 아버지 앨버튼 공작은 무언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대체 무슨 목적에서인지는 몰라도 그것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는 것도.
그런 확신이 들자 그레이스는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들었다.
‘……아버지는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앨버튼 공작은 이 끔찍한 저주의 원인과 이유에 대해 어디까지 파악한 걸까.
만약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그 주범에 대해 협력한 것이라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 저주에 개입한 걸까.
설마, 정말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앨버튼 공작이 이 ‘저주’를 계획하고 실행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저주’의 원인과 배후에 대해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거라면?
그렇게 생각하자 그레이스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아버지는 또다시 쓸모없는 나를 죽게 할 생각이었나? 만약 지금껏 아서와 레온의 불행의 모든 원인이 아버지에게 있다면, 나는 무슨 염치로 그 두 사람의 곁에 있어야 하지?’
그런 생각에 미치자 그레이스는 극심한 불안감과 절망을 느꼈다. 그리고 그 불안감과 절망은 그녀를 도저히 견딜 수 없게 했다.
‘아니야. 아닐 거야.’
비록 자신의 아버지는 자신을 한 번 죽음으로 몰았던 사람이지만, 황족의 시해와 저주에 가담할 만큼 악랄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아닐 것이다. ‘황족’을 죽게 한다는 건, 같은 ‘신성한 피’를 이은 황족조차도 절대 용서받지 못할 큰 죄이니까.
그레이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자신의 마음속에 드는 불안감을 모른 척했다. 그러나 한 번 피어난 아버지를 향한 의심과 불안은 그리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