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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28화 (28/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28화

“전 펠릭스 공작 부인이신 에일린 1황녀님께서는 태어날 때부터 건강이 썩 좋지 않으셨답니다. 황의는 갓 태어난 큰 마님을 보고 스무 살을 넘기시는 것이 기적이라고 할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그러셨어요?”

“네. 그래서 이 제국 황제의 고명딸이자 황태자의 하나뿐인 여동생이라는 중요한 위치였음에도 정략결혼을 강요받지 않으셨답니다. ……다른 제국이나 왕국의 황족, 왕족들 또한 병약해서 후계자를 낳는 것도 어려운 황녀와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아하기도 했고요.”

“…….”

“그런데 전 황후님께서 지극정성으로 돌보신 덕분인지, 황의의 예상과는 달리 에일린 님께서는 스무 살이 되셨죠. 여전히 건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엿하게 성인이 된 황녀님께 늦게나마 약혼자를 찾아주려 하셨죠. 그러다 마침내 이웃 제국의 3황자와의 약혼을 진행하려던 그때, 에일린 님께서 전 펠릭스 공작님이신 제임스 카터 펠릭스 공작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하셨답니다.”

“……그러면, 두 분께서는…….”

“네. 에일린 님께서는 전 공작님이신 제임스 공작님과 남몰래 열렬히 연애 중이셨던 거죠. 그 선언에 황실은 발칵 뒤집혔고 선황 폐하께서는 진노하셔서 당장 제임스 공작님을 황궁으로 불러들이셨답니다. ……정말이지 그땐 펠릭스 성에 전 공작님 목이 내걸리는 줄 알았다니까요.”

샐리는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는 듯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레이스는 흥미로운 얼굴로 샐리를 바라보며 재촉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다행히 에일린 님의 눈물 섞인 애원과 후계자를 얻지 못해도 좋으니 에일린 님과의 결혼만 허락해 달라 간청하는 전 공작님의 모습에 선황 폐하께서는 그 두 분의 결혼을 허락하셨답니다.

……뭐, 그렇지 않으셨겠어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해서 늘 마음이 쓰이던 고명딸이 ‘황녀로서 가진 모든 권리를 포기할 테니 이 사람과의 결혼만 허락해 달라’ 애원하는데, 어느 부모가 허락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두 분께서 결혼하시게 된 거로구나.”

“……네. 정말이지, 두 분께서는 황족 부부답지 않게 사이가 좋으셨답니다. 늘 서로만을 눈으로 좇을 만큼 서로 사랑하셨죠. 그런 부부의 모습을 신께서도 어여삐 여기셨는지, 두 분께서 결혼하신 지 3년 만에 큰 마님깨서는 회임을 하셨지요.”

“……그게 공작님이고?”

그레이스가 조심스럽게 묻자 샐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어둡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시선을 내리깔며 힘없이 대답했다.

“결혼한 지 3년 만에 찾아온 회임 소식에 큰 마님도, 전 공작님도 아주 기뻐하셨답니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큰 마님을 진찰한 펠릭스 성의 주치의 로튼 자작은 큰 마님께 ‘공작 부인께서 살기 위해서는 배 속의 아이를 포기하셔야 한다’고 했답니다.”

“……네? 아니, 왜…….”

“지금까지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기적인 몸 상태로 아이를 품고 출산하는 것은 어렵다면서요. 그 말대로, 사실 큰 마님깨선 결혼 후 펠릭스 성의 혹독한 기후에 안 그래도 약한 몸에 병을 얻으신 상태셨죠. 큰 마님께서는 줄곧 그 사실을 숨기셨고요.”

“……세상에.”

“그것을 알게 된 전 공작님께서는 당장 아이를 포기하자고 큰 마님을 설득하셨죠. 하지만 큰 마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셨답니다. ……어쩌면 자기 피를 이은 아이를 낳을 마지막 기회라고 고집하시면서요.”

이어진 샐리의 대답을 들은 그레이스 또한 덩달아 표정이 어두워졌다.

샐리는 그런 그레이스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전 공작님은 제발 아이를 포기하라 눈물로 애원했지만, 결국 사랑하는 아내의 고집을 이기진 못하셨답니다. 그렇게 큰 마님의 배 속에서는 아기님이 자라났고, 배가 불러 올수록 큰 마님의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갔죠. 펠릭스 성의 사람들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얼른 열 달이 지나가 큰 마님의 배 속에 있는 아가님이 태어나시길 간절히 빌었답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해산일을 코앞에 둔 어느 날, 비밀정원을 산책하시던 큰 마님이 갑자기 격렬한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하며 쓰러지셨답니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때마침 큰 마님의 밑에서 하혈이 쏟아졌고요. 그때 근처 별채에서 청소하고 있던 저는 전 공작님의 절규 섞인 음성을 듣고 비밀정원으로 달려갔답니다.”

다시 떠올리는 것도 끔찍하다는 듯 샐리는 진절머리를 치며 말했다.

그레이스는 표정을 찡그리며 그 말을 경청했다. 자신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피를 토하며 죽어 가다니, 정말이지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어?’

그런데 그때, 전 펠릭스 공작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에 공감하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레이스는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그레이스는 멍한 얼굴로 이어지려는 샐리의 말을 멈추었다.

“……잠깐만.”

“……네? 왜 그러세요?”

왜 이렇게 샐리의 말이 익숙하게 느껴질까, 잠깐 고민하던 그레이스의 머릿속으로 한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 제발! 눈을 떠!]

[―――나는 안 될 것 같아요, ――. 신께서, 그 고귀한 분께서 날 부르고 있어요.]

[안 돼! 정신 차려! 난, 나는 당신을 이대로 보낼 수 없어!]]

자신이 착각한 것이 아니라면 샐리가 설명했던 상황은 자신이 쓰러지기 전 보았던 ‘환상’ 속 모습과 아주 유사했다.

그레이스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기억을 더듬으며, 샐리를 향해 물었다.

“……샐리, 물어볼 것이 있는데…….”

“네? 뭐든지 말씀하세요.”

“혹시 그때, 에일린 님이 흰 드레스를 입고 계셨어?”

“……어, 네! 맞아요! 그걸 어찌 아셨어요?”

“……그리고 공작님과 전 공작님은 얼마나 닮았어? 눈이라든가, 코라든가. 전체적인 느낌이 비슷하진 않아?”

“네, 맞아요. 마님. 두 분께서는 꼭 틀에 찍어 놓은 듯 닮으셨답니다. 레온 공자님께서는 눈을 빼놓곤 큰 마님을 닮으셨고요.”

“……세상에.”

샐리의 대답에 그레이스는 나지막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두 손으로 제 입가를 가렸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자 조금 전 보았던 그 ‘환상’이 선명해진 기분이었다.

그랬다. 그 환상 속 아서와 꼭 닮은 ‘남자’의 눈은 양 쪽 모두 푸른색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환상을 보고 쓰러졌다는 것에 관한 당황함과 유치한 질투로 기억이 흐려졌던 모양이었다.

‘바보 같아. 질투로 이성이 끊겨서는 공작님, 아서를 밀어내고 샐리에게는 마구 하대를 하고.’

그레이스는 뒤늦게 찾아온 민망함과 부끄러움에 몸서리를 치며 마른세수를 했다. 정말이지 어른이 돼서는 레온보다 더 유치하게 굴었다.

샐리와 이야기를 마치고 꼭 샐리에게도 사과하고, 아서에게도 사과하러 가겠다고 결심하던 그때 또다시 그녀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그건 그렇고 ……왜 나에게 그 두 분의 모습이 보였던 거지?’

조금 전 자신이 본 것이 ‘저주’와 관련이 되어 있다면, 그 ‘저주’는 왜 자신에게 그 모습을 보여 준 걸까. 아니, 애초에 조금 전 자신이 경험한 것이 ‘저주’가 맞기는 한 걸까.

그레이스는 또다시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드는 기분이었다. 답답한 기분에 그레이스가 제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쥐어뜯자, 샐리가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향해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님?”

“그, 그래서 어떻게 되었죠? 에일린 님께서는 그때 무사히 회복하셨던 거죠?”

그레이스가 황급히 말을 돌리자,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샐리가 재촉하는 그녀의 모습에 말을 이었다.

“네. 하지만 그때 제가 보았던 큰 마님의 모습은, 도저히 소생이 가능할 것이라 보이지는 않았답니다. 흰 바닥은 온통 큰 마님의 쏟아 낸 피로 낭자했고,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 정신을 잃은 큰 마님과 그 피를 뒤집어쓴 채 탯줄도 떨어지지 않은 갓난 아서 님을 안고 있는 전 공작님의 눈은 정말이지 쳐다보기도 무서울 정도였거든요. 저와 그 광경을 보았던 모든 펠릭스 성의 시종, 시녀들은 전 공작님 품에 안겨 있는 큰 마님께서 돌아가신 줄 알았답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피를 그렇게 쏟아 냈는데…….”

“그래서 시신처럼 안겨 있는 큰 마님을 수습하고자 저희가 다가가자, 전 공작님께서는 분노와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만지지 마라’ 소리치시더니 탯줄도 떨어지지 않은 갓난 아서 님을 저희에게 맡기시곤 그대로 큰 마님을 안고 성안의 가장 높은 탑으로 올라가 버리셨죠.”

“……네? 의사를 부른 게 아니라요? 대체 왜 그러신 거죠?”

“글쎄요,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그 탑은 외진 곳이라, 전 공작님께서 저희 모르게 의사를 부르셨을 수도 있으셨겠지만……. 어쨌든 자세한 사정은 그 누구도 모른답니다. 그저 전 공작님께서 3일 만에 ‘살아 계신’ 큰 마님을 안고 내려오셨다는 것밖에는요.”

“……아니, 어떻게…… 정말 기적이네요.”

그레이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샐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임신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할 만큼 몸이 약한 상태였는데, 그 와중에 각혈과 하혈을 동시에 경험하고도 살아나다니 그것은 기적이라고 표현하기도 모자랄 정도였다.

이걸 사랑의 기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레이스가 연신 감탄하자 샐리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요. 저희 중 그 누구도 마님의 소생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답니다. 그야말로 기적, 아니, 기적 중 기적이라고 할까요.”

“……정말 그러네요. 도무지 믿기 힘들 정도예요.”

“……그렇게 소생하신 분인데. 에휴, 또다시 아이를 낳겠다고 고집만 하지 않으셨어도 아마 지금쯤 두 분 다 무사하셨을 거예요.”

“아, 그러고 보니 레온을 낳다 산욕열로 돌아가셨다고 했……. 잠깐만요, 샐리.”

“네?”

“……지금 두 분 다라고 했죠. 그게 무슨 뜻이에요? 설마, 그날 또 다른 사람이 잘못된 건가요?”

그레이스는 샐리의 말 중 툭 마음에 걸리는 부분에 관해 물었다. 그러자 샐리가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재촉하는 그레이스의 시선에 순순히 대답했다.

“큰 마님께서 산욕열로 돌아가신 그날, 전 공작님께서는 급히 펠릭스 성으로 돌아오시다 그만 괴한이 쏜 화살에 유명을 달리하셨답니다.”

“……네!? 아니, 어떻게…… 그, 그럼 같은 날 두 분께서 모두 돌아가셨다고요?”

“……네. ……그런데 그것이 참 돌아가신 공작님의 모습이 좀 이상했답니다.”

“……무엇이요?”

“그게…….”

그레이스가 마른침을 삼키며 묻자, 샐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전 공작님의 몸 어디에도 화살을 맞아 몸이 상처를 입은 흔적이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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