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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26화 (26/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26화

앞장선 샐리와 제 손을 잡아끄는 레온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비밀정원의 입구가 보였다.

그레이스는 새하얀 자작나무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대문과 그 주변 벽을 타고 내려오는 눈 덮인 덩굴의 조화에 감탄했다.

“……세상에, 눈이 이렇게 많이 내렸는데 어떻게 덩굴 잎이 이렇게 생생하지? 너무 신기하다.”

“아직 감탄하긴 일러요! 안은 더, 더 대단해요!”

“정말?”

“응! 샐리, 샐리! 얼른 문 열어 줘!”

“네, 공자님.”

그레이스의 반응에 레온은 눈을 반짝이며 신나 하더니 제 주머니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어 샐리에게 내밀었다.

샐리는 냉큼 그 열쇠를 받아 든 후 대문 앞으로 걸어가 단단히 잠긴 문에 열쇠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양옆으로 벌어졌다.

“얼른 가요!”

“어? 응, 알았어. 천천히, 천천히 가자. 레온! 그러다 넘어져!”

그러자 레온이 그레이스를 잡아끌며 먼저 정원 안으로 발을 내디뎠고, 그레이스는 얼른 발걸음을 빨리 해 아이를 따라잡았다.

그렇게 정원 안으로 들어선 그레이스는 자신을 잡아끈 레온을 밉지 않은 눈으로 흘겨보며 말했다.

“……레온, 너. 아무리 신이 나도 그렇지. 내가 넘어질 뻔했잖아.”

“죄송해요. 그치만, 한시라도 빨리 보여 드리고 싶었어요.”

“뭘 그리 빨리 보여 주고 싶었는데?”

“저기요!”

그녀의 힐난에 헤헤 웃으며 사과를 건넨 레온은 이어진 물음에 작은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 작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린 그레이스는 곧 자신의 눈에 들어온 풍경에 저도 모르게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그레이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작지만 화려한 얼음궁전이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진주처럼 희고 연한 분홍빛을 띤 신비한 색의 돌로 만들어진 분수대였다. 그 위에는 덩굴장미 모양의 유리 조각이 복잡하게 얽힌 채 장식되어 있었는데, 그 덩굴 사이사이로 맑은 물이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 분수대 양옆에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울타리와 그 너머 겸손하게 고개를 숙인 흰 꽃이 주변을 더욱 아름답게 했다.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을 한눈에 바라보기 좋은 중앙에는 흰 지붕이 덮인 작은 가제보와 테이블,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레이스는 그 아름다운 풍경에 연신 감탄했다.

“정말 아름답다. 꽃이 피지 않는 추운 겨울에도 이리 아름다운 모습을 한 정원은 오직 이곳뿐일 거야.”

“그쵸, 그쵸!”

“응, 정말 멋지다. 보여 줘서 고마워, 레온.”

그레이스가 레온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으며 말하자, 어느새 곁에 다가온 샐리가 살포시 웃으며 말을 거들었다.

“이곳 펠릭스 지방은 사계절 중 겨울이 가장 긴 곳이니까요. 그러니 비밀정원도 자연히 이렇게 꾸밀 수밖엔 없었다고 하지요.”

“그렇구나.”

“두 분 다 추우시죠? 자, 얼른 가제보로 가 앉으세요. 제가 따뜻한 차를 따라 드릴게요.”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하는 그레이스에게, 샐리가 가제보 쪽을 가리키며 재촉했다.

그 말에 그레이스는 얼른 레온과 함께 작은 가제보 아래 놓인 테이블 쪽으로 향했다. 샐리는 그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가 나란히 의자를 빼 준 후 바구니 안의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족히 두 뼘은 넘을 것 같은 주전자와 찻잔, 그리고 말린 과일이 가득 박힌 쿠키와 초콜릿까지, 어느새 테이블 위에는 작은 티파티가 열렸다.

그레이스는 꾸며진 테이블을 보며 감탄하다, 자신에게 뜨거운 홍차가 담긴 찻잔을 내미는 샐리를 돌아보고는 말했다.

“고마워요, 샐리. 잘 마실게요.”

“천만에요.”

“나도! 나도!”

“네. 공자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레이스는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며 샐리가 레온에게 차를 따라 주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후 샐리가 레온의 차 시중을 마치고 한 발짝 물러나자, 그레이스는 차를 마시기 위해 잔을 제 입가로 가져갔다.

[――――안 돼!]

그때였다.

그녀의 귓가로 갑자기 한 남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한 절규에 그레이스는 깜짝 놀라 그만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어머나!”

“혀, 형수님?”

쨍그랑―!

그레이스의 손에서 미끄러진 찻잔은 비밀정원의 바닥에 떨어져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산산이 깨어졌다.

그 소리에 덩달아 놀라 소리치는 샐리의 목소리와 잔뜩 겁에 질린 레온이 그레이스를 불렀지만, 그레이스의 귓가에는 더 이상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조금 전, 그건 뭐야? 누구야?’

그레이스는 점점 자신의 눈앞이 검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이상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점점 귀가 멀고 비명을 지르고 싶어도 목소리는 새어 나오지 않았다.

마치 온몸이 검고 거대한 물에 잠긴 것처럼 온 감각이 마비되는 느낌에 그레이스가 극심한 공포에 휩싸인 그때였다.

[―――, 제발! 눈을 떠!]

[―――나는 안 될 것 같아요, ――. 신께서, 그 고귀한 분께서 날 부르고 있어요.]

[안 돼! 정신 차려! 난, 나는 당신을 이대로 보낼 수 없어!]

갑자기 그녀의 눈앞이 밝아졌다.

그러더니 그녀의 눈앞에 흰 드레스와 주변을 온통 피로 물들인 채 죽어 가는 한 여자와 그런 그녀를 껴안고 절규하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연신 제 품에 안긴 여자를 끌어안고 울며 어떻게든 그녀를 살리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여자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연신 피를 토하던 여자의 몸이 움직임을 멈췄을 때,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안 돼―――――!]

남자는 이미 영혼이 떠나 버려 껍데기만 남은 여자의 시체를 끌어안고 울며 절규했다.

[하, 하하……. 하하하하!]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울며 제 가슴을 쥐어뜯던 남자는 얼마 후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 광기 어린 웃음소리는 마치 악마의 것과도 같았다.

그레이스는 그 모습에 마치 온몸이 얼어 버린 것과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도망치고 싶은데, 도무지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지금 순간, 그레이스는 자신이 사람이 아닌 하나의 사물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레이스는 완전히 미쳐 버린 얼굴의 남자가 이미 싸늘하게 식어 가는 여자의 피 묻은 입술에 입맞춤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는 없었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어.]

그러더니 남자는 광기 어린 얼굴로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죽어 버린 여자의 배로 제 손을 가져갔다.

그러고는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 그녀의 배를 자신의 억센 손으로 꽉 움켜쥐더니 갑자기 그레이스가 서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그 순간 그레이스는 남자의 핏발 선 눈과 마주했다.

그레이스는 자신을 노려보는 그 광기 어린 남자의 눈이 누군가와 아주 닮았다고 생각했다. 누굴까, 어디에서 봤을까. 본능적인 두려움에 휩싸여 자신을 노려보는 그가 누구일까 고민하던 그레이스의 머릿속에 한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아서?’

그렇게 생각한 순간, 갑자기 그녀의 눈앞은 또다시 까맣게 변해 버렸다. 그러더니 겨우 지탱하고 있던 몸의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꼭 누군가 그녀의 영혼을 몸속에서 강제로 꺼내 버린 것처럼.

결국, 그레이스는 더 버티지 못하고 쿵 소리를 내며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마님! 마님! 정신 좀 차려 보세요!”

그 모습에 다급히 그레이스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를 안고 흔드는 샐리의 목소리와 놀라 울음을 터트리는 레온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녀는 도무지 반응할 수가 없었다.

‘……괜찮다고, 나는 멀쩡하다고 말해 줘야 하는데.’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그레이스의 의식은 완전히 끊어졌다.

* * *

검게 변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시야가 밝아졌다.

‘대체 여기가 어디지?’

그레이스는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그녀를 둘러싼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레이스는 마치 흰 천으로 온 세상을 감싼 것처럼 그저 하얗기만 한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그때, 그녀의 귓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보낼 수 없어.]

그것은 그레이스가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들었던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레이스는 그 자리에서 얼어 버린 듯 몸을 굳히며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를요? 대체 누굴 보낼 수 없다는 거예요?’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당신을 살려 내겠어.]

그러나 ‘남자’는 그레이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또다시 절망 섞인 독백을 늘어놓았다.

그레이스는 답답해하며 거듭 소리쳤다.

‘대체 누구를 살리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치러야 할 대가는 또 뭐고요?’

[……마침 저기 좋은 ‘제물’이 있어!]

그 순간 남자의 목소리에서 진득한 살기가 느껴졌다. 그러더니 허공 속에서 뻗어 나온 크고 억센 손이 그레이스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목을 강하게 틀어쥐는 그 손을 할퀴며 몸부림쳤지만, 살기로 가득 찬 그 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는 걸까.

점점 자신의 목을 옥죄는 억센 힘에 눌려 저항할 힘을 잃어 가던 그때.

“허억―――!”

그레이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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