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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24화 (24/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24화

그 후 그레이스는 샐리의 시중을 받으며 뜨거운 물에 목욕을 마치고 단장도 완벽히 마쳤다.

그동안 그레이스로부터 오늘 아서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함께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은 샐리는 더욱 의욕적으로 그레이스를 꾸미는 것에 임했다.

그레이스는 한껏 집중한 얼굴로 화장을 마친 후 푸른 드레스에 걸맞게 사파이어로 된 머리 장식을 공들여 꽂는 샐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샐리.”

“네? 말씀하세요.”

“레온이 기거하는 곳은 어디예요?”

“레온 공자님이요? 공자님께서는 별채의 두 번째 층 가장 안쪽의 침실을 쓰고 계시죠? 그런데 그건 왜 물으셔요?”

“괜찮으면 레온을 보러 가고 싶어서요. ……아마 지금쯤 나한테 많이 화가 나 있겠죠?”

“……네? 아.”

그레이스의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샐리는 곧 아, 하고 짧게 감탄사를 내뱉은 후 말했다.

“확실히 그러네요. 마님께서 산책도 않고 침실에 틀어박히셨던 날, 레온 공자님께서는 직접 여기까지 찾아오셔서 제게 마님을 뵙게 해 달라고 하셨거든요.”

“……어머, 정말요?”

“네. 그래서 당부하신 대로 ‘지금 마님께선 누구도 뵙고 싶지 않아 하신다’ 전하니 공자님께서는 잔뜩 주눅이 든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돌아가셨답니다.”

“……어떡해. 많이 속상해했어요?”

그날 레온의 모습을 설명하는 샐리의 말에 그레이스가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그러자 샐리는 다정히 미소 지으며 그레이스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이고는 대답했다.

“마님께서 사과하시면 기꺼이 받아 주실 거예요. 레온 공자님께서는 마님을 아주 많이 좋아하시잖아요.”

“정말 그럴까요?”

“그럼요. 제가 장담할게요.”

그러니 자신을 믿으라며 샐리는 두꺼운 손으로 제 가슴께를 쳤다.

그 모습에 조금이나마 안심이 된 그레이스는 거울에 비치는 제 모습을 한 번 확인한 후 몸을 일으키고는 말했다.

“그럼 샐리, 레온의 거처까지 안내 좀 부탁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샐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섰다.

그레이스는 잰걸음으로 그 뒤를 따르며 레온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금 혼자 속상해하고 있을 레온이 어떻게 하면 풀어질까 고민하면서.

* * *

그렇게 샐리의 뒤를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높은 계단을 낀 푸른 지붕의 별채 앞에 멈춰 선 샐리는 제 뒤를 따라오는 그레이스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레이스는 샐리의 부축을 받으며 눈이 얼어 미끄러운 계단을 오른 끝에 마침내 별채 안에 들어섰다.

그러자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 한 시녀가 다급히 두 사람의 곁에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세상에, 공작 부인이 아니십니까. 별채까지는 어쩐 일로…….”

“레온을 만나러 왔어요. 지금 침실 안에 있나요?”

“아, 아닙니다. 레온 공자님께서는 지금 저기 서재에 계세요.”

“그렇구나. 고마워요.”

그레이스는 시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후 시녀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걸어갔다.

그러자 같은 층의 다른 방들보다 두 배는 더 큰 문이 보였다. 그레이스는 그 문을 가리키며 샐리를 향해 물었다.

“여기가 서재 맞나요, 샐리?”

“네. 그렇답니다.”

샐리가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자, 그레이스는 긴장된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막상 레온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자신을 보고 많이 화를 내면 어떡하나 싶어 긴장이 되었다.

그레이스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벼운 한숨으로 진정시키고는 벌컥 문을 열었다.

“……응?”

그러자 큰 창문이 있는 벽을 제외하고는 전면이 책장으로 뒤덮인 그 안에서 작은 책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던 레온이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레온과 그레이스의 눈이 허공에서 정확히 부딪혔다. 그레이스는 자신을 발견하자 입술을 삐죽 내미는 레온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으며 그 앞으로 가까이 걸어갔다.

“……저기, 레온. 바빠?”

레온은 말없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레이스는 그런 레온의 앞에 몸을 숙여 앉으며 말을 이었다.

“……미안해, 레온. 바쁜데 찾아와서.”

그러자 레온이 이번에는 고개를 양 앞으로 도리도리 저었다. 그 모습에 그레이스는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으며 목을 가다듬은 후 말했다.

“이틀 전에 직접 내 침실까지 찾아왔다면서?”

“…….”

“그날 같이 산책 못 나가 줘서 정말 정말 미안해, 레온. 사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거든.”

“……사정이요?”

그레이스가 두 손을 모으며 사과하자 그 모습을 빤히 보고 있던 레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레이스는 손을 뻗어 긴 레온의 앞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응. 그래서 그랬어. 미안해. 레온.”

“…….”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 없을 거야. 약속할게. ……그러니까 사과, 받아 주면 안 될까?”

여전히 뚱한 레온의 표정을 살피며 그레이스가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던 레온이 입꼬리를 아래로 쭉 내리더니 보고 있던 책을 탁 소리 나게 덮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앞에 몸을 굽히고 있는 그레이스에게로 달려가 그 몸을 꼭 끌어안으며 매달렸다.

그레이스가 그 작은 몸을 마주 안아 주자 레온은 웅얼거리듯 말했다.

“……괴물인 내가 보기 싫어진 줄 알았어요.”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레이스는 제 품에 안긴 레온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긴 앞머리를 뒤로 넘기자 드러난 아이의 푸르고 붉은 눈동자는 지난밤 자신에게 애원하던 아서의 눈과 꼭 닮아 있었다. 그레이스는 그 모습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애틋함을 느끼며 아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쓰다듬었다.

“내가 이렇게 귀여운 널 보기 싫다고 할 리가 없잖니.”

“……정말요?”

“그럼. 시간이 많이 지나서 레온이 나보다 더 크게 자라도, 내 눈엔 언제나 지금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일 거야.”

그레이스는 그 모습을 상상하며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레온의 입꼬리가 아래로 축 내려앉았다. 레온은 작은 손으로 그레이스를 안은 팔에 힘을 실으며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그레이스에게 말했다.

“……때까지 제 곁에 있어 주실 거예요?”

“응?”

“제가 형님만큼 자랄 때까지, 제 곁에 있어 주실 거예요?”

“……레온.”

“아버지, 어머니처럼 레온만 혼자 남겨 두고 떠나지 않으실 거죠?”

잔뜩 울상을 지으며 그렇게 묻는 레온의 모습을 그레이스는 가슴 아프다는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아직 다섯 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작은 아이인데 벌써부터 이별의 아픔을 알고 그것을 무서워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것도 모자라 그 가슴 아픈 이별로 인해 억울하게 저주받은 아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왔던 것을 생각하니 속상함에 절로 한숨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레이스는 간절한 시선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레온을 향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응. 계속 레온이랑 함께 살 거야.”

“……진짜요?”

“그럼.”

“……약속.”

그 대답에 레온은 그레이스를 안고 있던 팔을 풀더니 새끼손가락을 펴 그레이스를 향해 내밀었다.

그레이스는 아주 잠깐 그 작은 손가락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곧 조심스레 자신의 손가락을 레온의 손가락에 감았다. 그 후 장난스럽게 아이와 얽힌 손가락을 위아래로 흔들자 레온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레이스는 그런 레온의 몸을 번쩍 안아 들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우리 화해한 기념으로 좀 있다 같이 산책하자. 내가 따뜻한 차랑 달콤한 과자도 준비하라고 할게.”

“왜 지금이 아니라 좀 있다 해요?”

“응? 그야 조금 전에 레온이 바쁘다고 했잖아. 저기 있는 공부 다 끝내야 하지 않아?”

그 말에 갑자기 레온의 얼굴이 또다시 시무룩해졌다. 그러더니 고개를 떨구며 작은 손을 꼬물거리던 레온은 머뭇거리듯 대답했다.

“……사실은 하나도 안 바빴어요.”

“응?”

“거짓말해서 죄송해요.”

그레이스는 잔뜩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를 건넨 후 입술을 꾹 다무는 레온을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한테 속상해서 투정 부리고 싶어서 그런 거구나?”

“……네. 죄송해요.”

“괜찮아. 내가 더 미안해. 그럼, 지금 당장 나갈까?”

“네!”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대답하는 레온을 고쳐 안으며, 그녀는 문 앞에 선 샐리를 향해 눈짓했다.

그러자 샐리는 기다렸다는 듯 큰 서재의 문을 열어 놓고는 간식 준비를 위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레이스는 그런 그녀의 뒤를 따르며 자신의 품에 안겨 웃고 있는 레온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이런 아이를 떼놓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무릇 정을 주고 관계를 맺는 것엔,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법. 그것도 그 상대가 자신의 애정이 간절한 아이라면 더더욱 그 손길을 내미는 것에 신중했어야 했다.

그레이스는 처음 가벼운 마음으로 레온에게 손을 내밀었던 때를 떠올리며 스스로의 경솔했던 태도를 반성했다.

‘신이시여, 부디 제가 오래 건강하게 이 아이와 그 사람 곁에 있게 해 주세요.’

이제 자신은 저주로 고통받다 어렵게 찾은 삶을 잃는 것만큼이나, 자신으로 인해 또다시 아서와 레온이 상처받게 되는 것도 두려워졌다.

그래서 그레이스는 신에게 빌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령 그것이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었다.

* * *

기세를 잃고 실처럼 가늘어진 초승달의 희미한 빛마저 짙은 구름에 가려진 어두운 밤.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태초의 숲, 그 중심부에 위치한 작은 별장 앞에 화려한 마차 한 대가 멈춰 섰다.

그 마차 안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한 남자가 내렸다. 그는 익숙한 듯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헤치며 작은 별장으로 걸어가 그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허리가 굽은 노인이 작은 등을 든 채 문을 열고 나오더니 문 앞에 서 있는 그를 향해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모두 도착하셨나?”

“네.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해.”

남자가 차갑게 명령하자, 노인은 고개를 숙이며 느릿하게 몸을 돌려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따르며 남자는 짧게 혀를 찼다. 깊은 숲속에 위치해 있어 대낮에도 그리 햇빛이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혹여 희미한 달빛마저 저택 안으로 들어올세라 한 치의 틈도 없이 내려진 겹겹의 커튼과 한 면 가득 세워진 책장에 꽂힌 낡은 서적에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와 감히 숨을 들이쉬기 어려울 만큼 짙게 쌓인 먼지까지.

그에게는 이 저택의 어느 것 하나 불쾌하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남자는 인상을 쓰며 자신의 앞을 걸어가는 노인을 빠르게 따라갔다.

“안으로 드시지요.”

이윽고 이 저택의 응접실 문 앞에 멈춰 선 노인은 남자가 제 곁에 선 것을 확인한 후 문을 열어 주었다.

남자는 그런 노인에게 살짝 눈짓한 후 열린 응접실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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