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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23화 (23/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23화

그레이스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자신과 같은 표정을 한 아서를 노려보며 말했다.

“공작님은 내가 그리 차갑고 매정한 사람으로 보이세요? 어딜 가든 공작님의 그 시선이 내게 닿고 있다는 걸 느낄 텐데, 공작님께서 어떤 얼굴로 나를 보는지 보지 않아도 느낄 텐데 날더러 그걸 그냥 모른 척하라고요? 난 그렇게는 못 해요!”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나더러 당신을 먼발치에서 보는 것마저 포기하라는 말입니까?”

그러자 슬픔과 절망에 빠진 목소리로 되묻는 아서의 말에 그레이스는 단호히 고개를 젓고는 대답했다.

“아니요. 계속 날 바라봐 주세요. 딱 이 정도, 서로의 손이 닿는 가까운 거리에서 서서요.”

“……!”

“그리고 내게 가지 말라고, 멀어지지 말라고. 앞으로 힘들지도 모르지만 내 곁을 떠나지 말라고. 그렇게 한마디만 해 주세요. ……그러면 가지 않을게요.”

“……부인.”

“이렇게까지 말해도 모르겠어요? 나도 당신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잡아 주길 바란다고요!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면 일부러 공작님 집무실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는 정원을 일부러 지나치는 수고스러운 일을 했겠어요?”

점점 언성을 높여 소리치는 그레이스의 모습에 아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떨리는 손을 뻗어 그녀의 몸을 끌어안고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당신이 정말, 나를?”

“네. 정말이에요.”

“……정말, 내가 당신을 잡아도 되겠습니까?”

“네. 잡아 주세요. 그래 줬으면 좋겠어요.”

“……나와 가까워지면 저주는 더욱 강해질 텐데, 그래도 괜찮습니까.”

자신을 꽉 끌어안은 아서의 품에 가만히 안겨 있던 그레이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아서의 말에 살며시 그를 밀어냈다. 그러고는 자신을 애달픈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그와 눈을 맞추며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은 무서워요. 아직도 파티장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무섭고 두려워서 손이 다 떨리는걸요.”

“…….”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당신을 좋아하는 만큼 그 저주가 무섭다는 마음이 커요. 한 반반 정도?”

분위기를 띄우듯 일부러 장난스레 웃는 그레이스의 모습에 아서 또한 맥없이 마주 웃어 보였다.

그레이스는 그런 그의 얼굴에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자신의 뺨에 와 닿은 그녀의 손길에 놀라면서도 그 위로 다정히 제 손을 포개는 아서를 바라보며 그레이스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 내기를 하나 건 거예요.”

“……내기라뇨?”

“과연 공작님이 날 붙잡으러 올까, 아닐까. 그렇게요. 만약 공작님이 날 붙잡으러 와 준다면, 그래서 곁에 있어 달라고 한다면 두려워도 한번 용기를 내 보려고요.”

“……부인.”

“그러니까 지금처럼 계속 내 곁에서 변함없이 좋아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어떻게든 함께 저주를 풀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고 해 주세요. ……그렇게 약속해 주세요. 그 한 마디만 약속해 주면, 떠나지 않을게요.”

그렇게 말하며 그레이스는 아서를 향해 활짝 미소 지었다.

아서는 그 모습을 가슴이 벅차 견딜 수 없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제 손 아래 놓인 그녀의 손을 깍지 껴 잡았다.

“……정말 그것만 약속하면 되겠습니까.”

“네. 그 약속 하나면 있으면 무서워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이 목숨을 걸고 약속하겠습니다.”

아서는 굳은 표정으로 약속하며 그녀에게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고는 한 팔로 그녀를 끌어 다시 자신의 품에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들리지 않게, 마음속으로 한 가지 더 굳은 맹세를 했다.

만일 저주를 풀 방법을 끝내 찾지 못해 그녀의 저주가 강해지게 되면, 이 손으로 제 목숨을 끊어서라도 막겠다, 고.

그렇게 맹세하며 아서는 제 품에 안긴 그녀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레이스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아서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뻗어 그의 가면 쓴 부분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공작님, 한 가지만 더 약속해 주실 수 있어요?”

“뭘 말입니까?”

“언젠가 내게서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전부 사라지고 당신을 좋아하는 이 마음만 남게 되면요.”

“……?”

“그땐, 당신이 쓴 이 ‘가면’을 내 손으로 벗기게 해 주세요.”

하나만 더 약속해 달라는 그레이스의 말에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아서는 이어진 말에 애달픈 눈으로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해 주세요.”

그리고 아서는 더욱 강한 힘으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레이스는 깊게 그 품속으로 파고들며 그의 넓은 등에 팔을 감았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 위에서 낮게 웃음을 터트리는 그의 목소리와 함께 툭하고 뜨거운 몇 방울의 눈물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레이스는 그런 아서의 등을 다정히 쓸어내리며 짧게 미소 지었다.

그에게 말했듯 아직도 자신에게 찾아올 저주가 무서웠고, 두려웠다. 그리고 겨우 되찾은 두 번째 생을 저주로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마냥 개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에게 처음으로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울고 있는 이 강하지만 약한 사람을 두고 혼자 살겠다 도망칠 수가 없었다.

‘이런 사람을 잃고, 오로지 ‘나’로서 사는 것이 의미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이 남자와 똑 닮은, 그 불쌍하고 작은 레온 또한 이번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레이스는 쉽게 주눅 들고 마는 그 귀여운 얼굴을 떠올렸다.

‘……어제 산책도 같이 못 나가 줬는데. 많이 속상해하고 있을까?’

그레이스는 분명 기분이 많이 상했을 레온의 화를 풀어 줄 방법을 고심하며 자신을 안은 따뜻한 아서의 품에 더 깊게 파고들었다.

어느새 하늘에서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의 품에 안겨 있어 그런지 조금도 춥지 않았다.

* * *

그렇게 한참을 내리는 눈을 맞으며 한참을 꼭 껴안고 있던 아서와 그레이스가 저택으로 돌아온 것은 이미 어슴푸레 하늘이 밝아진 때였다.

두 사람은 밤새 쌓인 새하얀 눈을 나란히 밟으며 여전히 고요한 본채로 걸어왔다. 혹여 누가 깰 새라 발소리를 죽여 계단을 올라온 두 사람은 곧 그레이스의 침실 문 앞에 나란히 섰다.

아서는 침실 문 앞에 멈춰 서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레이스의 머리에 쌓인 눈을 다정히 털어 주며 말했다.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니, 침실에 들어가면 꼭 더운물로 씻고 벽난로 앞에 앉아 계세요.”

“공작님도요. 나처럼 침실로 가실 거죠?”

“아닙니다. 나는 일단 집무실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왜요? 일이 그렇게 바빠요?”

“네. 그동안 집무실에 있어도 창가만 바라보느라 그만 집무가 밀렸거든요.”

“……아.”

그 말에 그레이스가 살짝 얼굴을 붉히자 아서가 나지막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꿀이 뚝뚝 떨어지는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은 집무고 뭐고 다 그만두고 계속 부인만 바라보고 싶지만요.”

“……하하, 농담도, 참.”

“농담처럼 들리십니까.”

“……아니요.”

어느새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그레이스가 잔뜩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서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다정히 쓸어 준 후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얼른 집무를 마치고 오겠습니다. 괜찮다면 저녁을 함께하고 싶은데 부인 생각은 어떠십니까?”

“좋아요.”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은 없으십니까.”

“……어, 없어요. 다 잘 먹어요.”

“그렇습니까? 레온이 부인의 모습을 보고 배우면 좋겠군요. 그 녀석은 조금만 향이 강하거나 식감이 낯설면 입에서 뱉어 버리거든요.”

“어머, 정말요?”

“네. 몇 번이나 고치려고 해 봤지만 잘되지 않더군요.”

그렇게 한동안 레온의 이야기를 하며 두 사람은 마주 웃음을 터트렸다.

이윽고 복도의 창밖에 이른 아침의 햇살이 조금씩 새어 들어오자 아서는 여전히 미련 가득한 눈으로 그레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정말 가 보겠습니다, 부인.”

“네. ……다녀오세요.”

“저녁을 함께하자는 약속, 잊지 마세요.”

그 말을 끝으로 아서는 느릿하게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갔다.

그레이스는 점점 멀어지는 아서의 뒷모습이 애틋하게 응시했다. 그러다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뒤늦게 침실 안으로 들어온 그레이스는 격하게 재채기를 했다.

이러다 정말 감기에 걸릴 것 같아 그레이스는 얼른 젖은 코트를 벗고 타오르는 벽난로 앞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침실 안 한편에 놓인 벽시계를 확인했다. 마침 곧 샐리가 자신을 깨우러 올 시간이니, 그녀가 오면 뜨거운 목욕물을 부탁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문밖에서 몇 번의 노크 소리와 함께 샐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님, 일어나셨어요?”

그 부름에 그레이스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네. 들어오세요.”

그러자 샐리가 간단한 아침 식사와 뜨거운 물이 담긴 은쟁반이 담긴 트레이를 밀며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나, 벌써 일어나셨네요? ……아니, 그런데 왜 외출복을 입고 계세요?”

당연히 그레이스가 침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눈으로 침대 쪽만 살피던 샐리는 벽난로 앞에 주저앉아 몸을 데우는 그레이스의 모습에 후다닥 그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그레이스가 옆에 벗어 놓은 코트를 집어 들다가 그것이 젖은 것을 확인한 후 경악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머! 코트는 또 어쩌다가 이렇게 흠뻑 젖은 거예요? 혹시 지난밤에 밖에 나갔다 오셨어요?”

“……으, 응. 잠깐, 잠이 안 와서…….”

“세상에! 왜 그러셨어요? 혹시 못 들으셨어요? 밤에는 흉악한 짐승과 마물들이 돌아다닌답니다! 그런데 저도, 호위도 없이 혼자 나가셨다고요? 그러다 다치시면 어쩌시려고요?”

식겁하며 다그치는 샐리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염려로 가득했다. 그레이스는 도무지 잔소리가 끝나지 않을 기세인 샐리를 향해 어색하게 웃으며 머뭇거리듯 대답했다.

“……그게 있잖아요, 샐리. 혼자가 아니었어요.”

“네? 그게 무슨…….”

그 말에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인상을 쓰던 샐리가 곧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두 손으로 제 입가를 가리며 말했다.

“……어머. 어머, 어머. 세상에.”

“……하하.”

“죄송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그분과 함께 다녀오신 것 맞으시죠?”

“……아마도요.”

당장이라도 호들갑을 떨고 싶은 것을 애써 참으며 조심스레 묻는 샐리의 모습에 그레이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샐리의 얼굴이 화사하게 밝아졌다. 샐리는 두 손을 꼭 모으며 그레이스를 향해 말했다.

“그런 거라면 미리 언질이라도 주시지 그랬어요. 제가 예쁘게 꾸며 드렸을 텐데요.”

“……어떻게 그래요. 샐리도 피곤한데.”

“아뇨. 괜찮습니다, 마님. 다음부터는 꼭 저를 불러 주세요. 아무리 깊은 한밤중이라도 일어날게요.”

그러니 다음부터는 말없이 밤에 혼자 나가시면 안 된다고 샐리는 그레이스에게 신신당부했다.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레이스는 갑자기 올라오는 한기에 또다시 크게 재채기를 했다. 그러자 샐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 어머! 내 정신 좀 봐. 이러다 감기 걸리시겠네! 죄송해요, 지금 당장 뜨거운 물과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 드릴게요!”

“고마워요. 그럼 부탁 좀 할게요. 그 뒤에 단장하는 것도 좀 도와줘요……. 에취!”

샐리는 연신 재채기하는 그레이스의 어깨에 모포를 가져와 덮어 주고 뜨거운 차를 만들어 내민 후 침실 옆에 딸린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레이스는 그 정신없는 모습에 낮게 웃음을 터트리며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목을 타고 들어가는 차만큼이나 마음도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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