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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20화 (20/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20화

그레이스는 슬며시 인상을 찌푸리며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를 관찰했다. 혹시 자신이 아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챙 넓은 모자에 눌려 있는 살짝 붉은 기가 도는 짧은 금발에 밤하늘처럼 짙은 푸른 눈, 그리고 자존심 강해 보이는 높은 코와 선한 입매를 가진 그는 분명 미남이긴 했지만 그레이스의 기억에는 없는 사람이었다.

그레이스는 어느새 자신과 한 발짝 정도 거리를 둔 채 멈춰 선 그를 보며 말했다.

“제가 누굴 찾고 있는지, 미스터 오웬께 꼭 대답해 드려야 할 이유가 있나요?”

“…….”

“죄송하지만, 먼저 실례하겠어요. 대화 상대가 필요하신 거라면 다른 분께 말을 걸어 보시는 게 좋겠네요. 그럼.”

자꾸 자신을 붙잡는 그의 모습에 살짝 삐딱한 어조로 쏘아붙이자 그 남자, 오웬은 별말 없이 그레이스의 얼굴만 빤히 바라보았다.

그레이스는 그런 그의 모습에 대놓고 인상을 구기며 이번에야말로 매정히 돌아섰다.

“그 저주받은 아서 펠릭스 공작 때문에 인생을 망치기엔 당신이 지나치게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레이스 영애.”

그러나 이번에도 그레이스는 그 남자 오웬의 말 한마디에 돌아서던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그레이스는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짙고 푸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오웬을 노려보며 말했다.

“……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말 그대로입니다. 나는 당신 같이 아름답고 선량하며 정의로운 분이 그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것이 싫습니다.”

“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당장 도망치세요.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가 영애를 돕겠습니다.”

대체 이 남자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걸까.

이젠 숫제 자신을 완전히 가로막고 터무니없는 소리만 늘어놓는 오웬을 그레이스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던 그때였다.

“어머! 이게 누구세요? 황태자 전하 아니신가요?”

“세상에! 정말이네! 전하셔!”

음악이 멈추고, 잠깐 휴식을 취하기 위해 쉴 곳을 찾아 움직이던 사람 중 한 무리의 여성들이 그레이스와 오웬이 서 있는 쪽을 향해 그렇게 소리쳤다.

그 소리에 그레이스는 멍청한 표정으로 제 앞에 선 오웬과 빠르게 다가오는 한 무리의 여성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시선을 느낀 오웬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뭐라 말하려는 듯 입을 벙긋거렸다.

“세상에!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오랜만이네요, 전하!”

“펠른 제국에서 수학하고 계신 것 아니었나요? 잠깐 휴가를 받아 돌아오신 건가요?”

그러나 오웬이 그레이스를 향해 뭐라고 말하기도 전, 여성들이 빠르게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재잘거리며 떠들기 시작했다.

그레이스는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자신의 눈앞의 남자 오웬을 바라보았다.

‘황태자 전하? 저 사람이?’

조금 전까지는 긴가민가했었지만, 저 여성들의 반응을 보니 확신이 섰다.

저 무례한 남자가 바로 황제의 하나뿐인 늦둥이 아들인 황태자 ‘에우제니우스 클라이브’이자, 장차 자신의 언니 마리안느 앨버튼의 남편이 될 사람이라니.

그레이스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여성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레이스를 돌아보며 난감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를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내가 바보였어. 오웬, ‘고귀한 탄생’을 의미하는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얼른 아서를 찾겠다는 생각에 급급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레이스는 조금 전 그에게 삐딱하게 굴었던 것을 반성하다가, 곧 그가 자신에게 했던 ‘무례한’ 말들을 떠올리며 인상을 썼다.

[―――괴물. ‘그’는 괴물이야.]

“……!”

그런데 그때, 그레이스의 귓가에 또다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 그 끔찍한 목소리였다. 그레이스는 깜짝 놀라며 두 손으로 제 귀를 틀어막았다.

[괴물을 ―――하기 위해서는 ‘신부’의 피를 뒤집어써야 합니다.]

[……꼭 그래야만 하는가.]

[네. 유감스럽지만 ――――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레이스가 귀를 아무리 강하게 틀어막아도 그 기괴한 목소리는 멈추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또한 그 목소리가 커질수록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쾌한 소음 또한 커졌다.

―지직. 지직. 끼이익.

[대체 언제까지 ――――야 하는가! 이러다가 정말 ――――해 버릴지도 몰라!]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은 진짜입니다.]

[하지만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단 말일세!]

[―――걱정 마십시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점점 더 커지는 그 기괴한 소음과 두 남자가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에 그레이스의 온몸은 공포로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더 듣고 싶지 않은데, 계속해서 이어지는 소음에 그레이스는 이제 제 귀를 잡아 뜯고 싶다는 흉폭한 충동마저 들었다.

도망쳐야 한다. 어떻게든, 이 소리에서 멀어져야만 했다. 그레이스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되뇌며 비틀비틀 뒷걸음질 쳤다.

[―――기뻐하십시오! 드디어 찾았습니다. 그 ‘신부’를!]

그런데, 갑자기 뒷걸음질 치던 그녀의 눈앞이 새까맣게 변했다. 그러더니 번쩍하고 진녹색 불꽃이 타오르더니 그녀의 코앞에 로브를 뒤집어쓴 흉악한 사내의 얼굴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꺄아아악!”

그 흉악한 얼굴은 마치 먹이를 앞둔 짐승 같은 시선으로 그녀를 보고 웃고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그레이스는 심장을 산 채로 떼어 내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에 그레이스의 의식은 자연스레 툭 끊어졌고 그녀의 몸은 말라 죽은 나뭇가지처럼 힘을 잃고 툭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 * *

그레이스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파티장 안은 순식간에 공황상태에 빠졌다.

오웬은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여성들을 다급히 밀치며 쓰러진 그레이스의 곁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그녀의 늘어진 몸을 껴안고 그 뺨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레이스 영애! 정신 차리십시오!”

“……부인!”

그러던 그때, 사람들 사이에 섞여 줄곧 그레이스를 찾고 있던 아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첫 번째 춤이 끝나고, 파티장 안을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그레이스를 놓쳐 버렸던 그는 줄곧 넓은 파티장을 헤매며 그녀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편에서 여성들의 비명과 들려온 그녀의 이름을 듣고 쫓아온 것이었다.

아서는 그레이스와 오웬의 주위를 동그랗게 둘러 싼 사람들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

그 후 쓰러진 그레이스의 모습을 발견한 아서는 표정을 굳히며 다급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던 중, 아서는 쓰러진 그녀가 오웬의 품에 반쯤 안겨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우뚝 걸음을 멈춰 섰다.

아서는 순간 영문을 모르겠다는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다 곧 서늘하게 내려앉은 시선으로 오웬을 바라보며 정중히 예를 표했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오랜만이군, 펠릭스 공작.”

오웬이 자신의 인사를 받자 아서는 얼른 몸을 굽혀 쓰러진 그레이스의 앞에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여전히 그레이스를 반쯤 껴안고 있는 오웬을 향해 두 팔을 내밀며 말했다.

“이제 제가 왔으니, 그 사람은 제가 돌보겠습니다. 그 사람을 제게 주십시오.”

그런데 아서의 채근에도 오웬은 그레이스를 안은 팔을 풀려 하지 않았다.

아서는 그런 오웬을 불경하다 싶을 만큼 서늘한 시선으로 노려보며 재촉하듯 팔을 더 가까이 뻗었다.

그러나 주지 않겠다는 듯 그레이스를 더욱 단단히 붙잡는 오웬의 모습에 아서가 불쾌한 표정으로 입매를 일그러뜨리던 그때였다.

“그, 그래요. 전하! 어서 그 저주받은 여자를 괴물 공작에게 넘겨줘 버리세요!”

“맞아요! 그러다가 그 끔찍한 저주가 전하께 향하면 어떡해요!”

“……뭐?”

조금 전 오웬을 둘러싸고 있던 귀족 여성들이 호들갑을 떨며 오웬을 향해 소리쳤다.

아서는 놀라 되물었고, 오웬은 그녀들을 차갑게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로렌 영애, 레베카 영애. 무례한 말을 삼가시오.”

“전하! 제발 소녀의 간언을 귀담아들어 주세요! 조금 전 그 반응, 행동! 저주가 깃든 거라고요! 틀림없어요!”

“맞아요, 전하! 가, 갑자기 허공을 보며 비명을 지르더니 갑자기 쓰러졌잖아요? 그게 저주가 아니면 뭐겠어요?”

오웬의 경고에도 그녀들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조금 전 그레이스의 모습을 설명하며 소리쳤다. 그런 그녀들의 말에 사람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수군거리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세, 세상에. 그런 일이!”

“……전하! 어, 얼른 공작 부인을 펠릭스 공작에게 넘겨줘 버리세요!”

그중 몇몇 남자들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오웬의 옷깃을 끌어당기며 그 품에 안긴 그레이스를 놓으라 소리쳤다.

그 혼란한 틈에 오웬이 그만 그레이스를 안고 있던 손을 놓치자, 아서는 얼른 그 벌어진 틈에 손을 넣고 쓰러진 그레이스의 몸을 제 품으로 빼앗아 왔다.

그 후 아서는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품에 안긴 그레이스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아서는 여전히 어정쩡하게 주저앉아 있는 오웬을 잠깐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그를 향해 짧게 목례하며 말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황태자 전하. 폐하께는 먼저 돌아가게 되어 송구하다 전해 주십시오.”

그 후 아서는 미련 없이 돌아서서 파티장 밖으로 향하는 문으로 걸어갔다.

오웬은 점점 제게서 멀어지는 아서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번 신부는 참으로 괜찮은 사람이더군. 경의 신부가 된 것이 아깝다고 생각될 만큼 말이야.”

아서는 그 말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고는 마치 혼잣말처럼 대답했다.

“소신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아서는 더욱 걸음을 빨리하더니 파티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오웬은 돌아온 아서의 대답에 분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대답이 마치 ‘내게도 과분하지만, 너에게도 과분한 사람이다’라고 대답한 것처럼 느껴진다면 착각일까.

오웬은 서늘한 시선으로 조금 전 아서가 서 있던 자리를 노려보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부축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지만, 오웬은 그 손길들을 전부 무시했다.

“……전하.”

제 앞을 가로막은 사람들을 향해 비키라 눈짓하며 자리를 벗어나는 그에게 굳은 표정의 마리안느가 말을 걸었다.

오웬은 무심한 표정으로 제 앞에 선 약혼녀 마리안느를 응시하며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어째서 제게 연락도 없이 귀국을…….”

“내가 왜 그대에게 그따위 연락을 해야 합니까.”

“……전하!”

돌아온 싸늘한 말에 마리안느가 경악하며 소리쳤지만 오웬은 그런 그녀를 무시하며 지나쳐버렸다.

마리안느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제 앞을 스쳐 지나는 그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은 도무지 곧 결혼을 앞둔 약혼자를 보는 것이라 볼 수 없을 만큼 싸늘한 증오와 탐욕스러운 미련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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