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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9화 (19/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9화

잠시 후, 마차에서 돌아온 아서가 내민 약을 마신 그레이스는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그레이스가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할 때쯤, 황좌에 앉아 술을 마시며 황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황제가 갑자기 제 곁에 서 있던 집정관을 불러 귓속말을 건넸다.

잠시 뒤, 집정관은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한 후 곧장 그레이스를 향해 걸어와 말했다.

“펠릭스 공작 부인, 폐하께서 부인의 상태가 어떠신지 여쭈셨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걱정을 끼쳐 드려 송구스럽다고, 저는 이제 괜찮다고 고해 주세요.”

“여전히 안색이 창백하십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폐하께서 부인만 괜찮으시다면 당장이라도 무도회를 재개할 것을 명하셨습니다만.”

“네. 이젠 많이 괜찮아졌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폐하께 그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집정관은 그레이스의 손등에 짧게 입맞춤하는 것으로 예를 표한 후 황제의 곁으로 돌아갔다.

그 후 집정관이 몸을 숙여 황제에게 그레이스의 대답을 전했고, 황제는 웃으며 악단을 향해 박수를 쳐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가장 앞에 서 있던 지휘자가 지휘봉을 흔들었고, 악단은 흥겨운 왈츠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음악을 시작으로 친분이 있는 자들끼리 모여 먹고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황족들과 귀족들이 각각 짝을 지어 파티장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남녀 각각 일렬로 나눠 선 그들은 이 파티의 주인공인 아서과 그레이스가 중앙으로 나와 춤을 시작해 주기를 기다렸다. 아서는 그들을 흘긋 살핀 후 그레이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괜찮으시다면, 감히 춤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부인.”

정중히 손을 뻗은 아서의 모습에 그레이스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선뜻 그의 손을 맞잡아 주지 않는 그녀의 행동에 아서의 표정이 점점 굳어질 때쯤, 그레이스는 마치 큰 결심을 한 듯한 표정으로 아서의 손을 잡았다.

그러더니 아서의 손을 잡은 채 그의 곁에 가까이 다가와 그를 향해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공작님. 미리 사과드릴게요.”

“네? 그게 무슨…….”

“사실 저, 무도회에 참석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라서요. ……게, 게다가 왈츠는 언니가 배울 때 몰래 곁눈질로 배워서 스텝이 엉망일 거예요.”

“그래서요?”

“……발 조심하시라고요. 아마 제가 수없이 공작님 발을 밟아 댈 테니까요.”

자신의 형편없는 춤 실력을 고백하는 것이 부끄러운지, 그레이스는 살짝 볼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그러자 굳은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아서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더니 그녀의 손을 꽉 쥐며 대답했다.

“그런 거라면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서는 그레이스의 손을 잡고 파티장 중앙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비워 둔 그레이스의 자리에 그녀를 세우고 그 맞은편에 선 아서는 정중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것은 ‘첫 번째’ 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악단은 기다렸다는 듯이 경쾌한 왈츠를 연주했고 사람들은 그 음악에 따라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레이스는 허둥거리며 제 곁에서 능숙하게 춤을 추는 다른 레이디들의 움직임을 따라 했다.

한 번도 여러 사람과 함께 춰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스텝은 자꾸 꼬이기만 했다. 이래서야 부끄럽게 발이 꼬여 넘어질 것만 같아, 그레이스는 고개를 숙이고 제 발끝만 바라보며 움직였다.

그러다 결국 아서의 발을 꽉 밟아 버린 그레이스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꺅! 미안해요!”

“부인, 날 보세요.”

당황한 채로 아서에게 손을 뻗는 그레이스의 손을 제지한 아서는 그녀를 능숙하게 이끌며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그 말처럼 그레이스가 아서를 바라보자 그는 가볍게 그녀의 주변을 도는 동작을 취하며 살짝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말했다.

“다른 이들을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오로지 나만 보면서, 내 움직임에만 집중해서 움직이세요.”

“……네? 그, 그러다 또 공작님 발을 밟으면요?”

“조금 전 말했을 텐데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요. 자.”

“어머!”

그레이스가 또다시 발을 밟을까 주저하자 아서는 걱정 말라는 듯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느린 박자에 제 박자를 맞추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동작을 그녀에게 기억시키듯이.

그레이스는 그런 그를 눈으로 좇으며 춤을 추었다. 처음에는 필사적으로 그의 움직임을 좇기 바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레이스는 점점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에 능숙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서는 어느새 표정이 밝아진 그레이스를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꽤 능숙해진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앗, 미안해요. 또 밟혔죠?”

“괜찮습니다. 계속 그렇게 추세요.”

“……이제 다신 안 밟을 거예요. 두고 봐요.”

그레이스는 쾌활한 목소리로 그에게 대답하며, 배운 대로 그의 곁을 한 바퀴 돌았다.

‘처음에는 긴장되어 춤을 따라 하기 급급했는데.’

이제는 들려오는 음악이 즐거웠고, 자신을 이끄는 아서의 배려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것이 재미있었다.

춤을 주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줄은 몰랐다. 그레이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들려오는 음악과 자신에게 내민 아서의 손에 몸을 맡겼다.

* * *

아서를 따라 즐겁게 춤을 추다 보니 어느새 한 곡이 끝나 버렸다.

드디어 ‘첫 번째 춤’이 끝난 것이었다. 음악이 멎고 그레이스는 제 곁에 선 다른 레이디들처럼 맞은편의 아서에게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어 인사를 했다.

그레이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아서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그 덕분에 무사히 춤을 마친 것에 대한 고마움의 의미였다.

“자, 자! 괜찮다면 한 곡 더 추지 않겠나? 이왕이면 조금 전과 같은 왈츠로!”

그런데 그때 황좌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황후와 함께 춤을 추고 있던 황제가 쾌활하게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 악단은 다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장르는 조금 전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왈츠였다.

또다시 온 파티장 안을 채우는 흥겨운 음악에 황족들과 귀족들은 그대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레이스는 살며시 한 걸음 물러나는 아서를 따라 춤을 추는 사람들에게서 빠져나왔다.

여전히 즐거운 여운이 남아 있긴 했지만 무사히 한고비 넘었다는 마음과 이쯤에서 적당히 마무리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렇게 사람들을 지나쳐 파티장 벽 쪽으로 걸어간 그레이스는 눈으로 아서의 모습을 좇았다.

그런데 분명 자신처럼 춤을 추는 사람들에게서 빠져나왔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레이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상하다. 어디로 간 거지?’

조금 전 그녀처럼 잠깐 쉬려는 사람들과 계속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빠져나오느라 그만 그의 모습을 놓친 것이 화근이었다.

혹시 그도 다른 곳에서 자신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레이스는 기대고 있던 몸을 떼어 다시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로 걸어갔다.

“꺅!”

이리저리 살피며 아서의 모습을 찾던 중, 그레이스는 그만 한 신사와 정통으로 부딪치고 말았다.

그레이스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난 후, 조금 전 자신과 부딪힌 그 신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해요. 사람을 찾느라 그만 경황이 없어서.”

“아닙니다.”

그런데 들려온 목소리가 이상하게 그녀의 귀에 익었다.

이 파티장 안에서 그녀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앨버튼 가문의 사람 아니면 아서뿐인데,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레이스는 시선을 올려 제 앞에 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 조금 전의 그분…….”

조금 전, 마리안느와 말다툼을 하고 빠져나올 때 어깨를 부딪혔던 그때 그 남자였다. 그 또한 그레이스를 알아본 듯 살짝 흐트러진 모자를 고쳐 쓰며 말했다.

“또 뵙는군요.”

“……그러네요.”

그레이스는 잔뜩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그의 아는 체에 화답했다. 이 넓은 파티장에서 두 번이나 부딪힐 줄 알았다면, 처음 부딪혔을 때 그리 삐딱하게 말하지 말걸 그랬다.

곁눈질로 그의 챙 넓은 모자 속 숨겨진 표정을 살피며 그레이스는 정중히 사과를 건넸다.

“정말 죄송해요. 제가 사람을 찾느라 그만 앞을 살피지 못해서, 두 번이나 실례를 범했네요.”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그러자 너그럽게 사과를 받아 주는 그의 모습에 그레이스는 드레스 끝을 살짝 쥐고 정중히 인사했다.

“사과를 받아 주셔서 감사해요. 어……. 미스터…….”

“오웬입니다, 레이디.”

“……미스터 오웬,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할게요. 찾는 사람이 있어서요.”

또다시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 후 그레이스는 그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 후 그레이스가 빙글 몸을 돌려 다른 쪽으로 걸어가려던 그때였다.

“누구를 그리 급히 찾으시는 겁니까?”

“네?”

“혹시 레이디께서 찾는 사람이 아서 펠릭스 공작입니까?”

“……!”

자신을 붙잡듯 질문을 건네는 그를 돌아보며 되묻던 그레이스는 이어진 그의 말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가 얼굴을 대부분 가리고 있던 챙 넓은 모자를 살짝 위로 들어 올려 제 얼굴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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