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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6화 (16/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6화

마차 안에서 화장을 고친 그레이스는 아서의 에스코트를 받아 마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그 앞에 기다리고 있던 은색 예복을 입고 허리춤에 검을 찬 남자가 다가와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아서 펠릭스 공작 각하. 그리고 그레이스 펠릭스 공작 부인. 저는 이 황실의 근위대장, 트리스탄 메피스라 합니다. 금일 파티의 주인공인 두 분을 안내하게 되었지요.”

“오랜만입니다, 트리스탄 경.”

“처음 뵙겠어요. 트리스탄 경.”

“그럼 이제 파티장으로 드시지요. 많은 황족과 귀족분들께서 두 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서와 그레이스는 자신을 트리스탄이라 소개한 기사와 짧은 인사를 나눈 후 그의 안내에 따라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그레이스는 아서의 에스코트를 받아 길게 이어진 복도를 걸으며 슬며시 시선을 돌려 화려한 황궁의 내부를 구경했다.

‘황궁이란 이렇게 화려한 곳이었구나.’

마법 능력을 갖고 태어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금껏 한 번도 황실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해 보지 못한 그녀에게, 눈이 핑핑 돌 만큼 화려한 황궁의 모습은 그야말로 별천지 같았다.

그렇게 멍하니 황궁의 높은 천장과 수정으로 만든 샹들리에, 조각들을 구경하며 걷던 그레이스는 조심스럽게 자신을 멈춰 세우는 아서의 행동에 발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고개를 들어 올리지 않으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문 앞에 선 트리스탄 경의 모습이 보였다.

트리스탄 경은 걸음을 멈춘 아서와 그레이스를 확인한 후 살짝 문을 열어젖히며 말했다.

“이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해요.”

아서와 그레이스는 문고리를 잡고 선 트리스탄을 향해 짧은 감사 인사를 한 후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밤임에도 낮처럼 밝고 눈부신 빛이 쏟아지며, 그 안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그곳은 조금 전 그레이스의 시선을 빼앗던 황궁의 복도와는 또 다른 별천지였다.

수천 개의 촛불과 반짝이는 수정이 알알이 박힌 화려한 샹들리에가 족히 수십 개는 매달린 높은 천장, 도무지 끝이 가늠되지 않는 긴 벽에 붙은 명화들, 길게 드리워진 커튼과 그 너머로 보이는 유리문과 테라스. 그리고 그 넓고 화려한 공간을 가득 채운 화려한 제복과 드레스로 온몸을 치장한 황족들과 귀족들까지.

그 모습에 그레이스는 저도 모르게 멍청히 입을 벌렸다.

‘마치 어릴 적에 봤던 동화 속 그림 같아.’

그레이스는 자신이 꼭 그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두둥실 떠올랐다.

“어머, 저분이 그 새로운 펠릭스 공작 부인이로군요.”

“그래 보이네요. 이번에는 얼마나 버티려나요?”

그러나 곧이어 들려온 귀족들의 목소리에 그레이스는 들떴던 기분이 순식간에 식는 것을 느꼈다.

그레이스는 아서를 따라 파티장 안 깊숙이 들어서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지나갈 때마다 자신과 아서를 향해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글쎄요, 현 앨버트 공작님의 둘째 영애니까. ……다른 영애들보다는 좀 더 오래 버티지 않을까요?”

“이런, 잊으셨어요? 저 영애, 아니지. 새 펠릭스 공작 부인은 좀 평범하다는 걸요.”

“아, 그랬죠? 맞아. 오직 저 영애만이 앨버튼 가문의 ‘마법 능력’을 타고 나지 못했다고 했죠?”

“맞아요. 호호, 그래서 집안에서 골칫거리였다나 봐요.”

“그러니까 저 저주받은 괴물 공작, 펠릭스 공작에게 시집보냈겠죠. 아무리 황제의 명령이라고 해도, 아끼는 딸을 죽거나 미치라고 시집보내는 아버지가 어디 있겠어요?”

“그럼요, 그럼요. 만약 저 혼약의 상대가 마리안느 영애였다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반대했겠죠. 물론, 그 전에 황제께서 혼약을 명하지도 않으셨겠죠?”

“물론이죠. 마법 능력을 갖고 태어난 귀한 영애가 죽거나 미치게 할 리 있나요? 저렇게 아무 능력이 없이 태어났으니 기꺼이 괴물 공작에게 시집보낸 거죠.”

“호호호. 골칫거리도 치우고, 황제에게 신임도 얻고. 이 결혼으로 앨버튼 공작은 이래저래 득을 본 셈이로군요.”

“여러분, 우리 내기할까요? 저 영애가 얼마나 죽거나 미치지 않고 버틸지? 전 두 달에 걸겠어요.”

“저는 한 달요. 소문에 저 영애, 그 괴물 공자와도 친하게 지낸다던걸요? 이전 영애들보다 아마 저주를 두 배 더 받고 있을 거예요.”

“정말요? 어머나, 용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모르겠네요. 그 어린 괴물에게 정을 주다뇨.”

그레이스의 귓가에 들려온 말들은 하나같이 조롱과 경멸 섞인 것들뿐이었다.

그레이스는 피가 나도록 붉게 화장한 아랫입술을 깨물며 꽉 주먹을 쥐었다. 어쩌면 저렇게 비열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는 말들만 하는지.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신경을 거슬리고 화를 돋우는 말뿐이었다.

특히 아직 어린 레온에게도 잔인하게 쏟아 내는 그 말에 눈앞이 분노로 빨개지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저 가벼이 놀려 대는 입을 확 찢어 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데.’

그레이스는 고개를 숙인 채 이를 갈며 아서의 팔 위에 올려놓은 제 손에 무심코 힘을 실었다.

“……!”

“못 들은 척하십시오. 귀담아들을 필요 없는 말들뿐입니다.”

“……공작님.”

“나 때문에 이런 말을 듣게 해 미안합니다.”

아서가 힘을 실어 끝이 새하얗게 된 그레이스의 손을 다정히 붙잡았다. 그러더니 창백한 그레이스의 손을 한 번 다정히 쓸어내린 후, 그는 무심히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태연해서 그레이스는 놀랍기도 했고 또 답답하기도 했다.

‘본인에 대한 모욕은 그렇다 쳐도, 어린 동생을 희롱하잖아! 저 사람은 화도 안 나나?’

그런 생각에 그레이스가 홀로 분통이 터지던 그때, 고개를 돌린 그의 옆모습을 본 그녀는 아, 하고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화가 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화를 내도 변하지 않는 시선과 현실에 포기한 것이었다.

‘……꼭 죽기 전의 나 같잖아.’

마치 어릴 적 가족들의 사랑을 갈구하다, 지쳐서 포기해 버렸던 그때의 나처럼.

그레이스는 무심한 듯 무뚝뚝한 그의 모습이 실은 깊은 상처에 무뎌져 버린 것이라는 걸 깨닫고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펠릭스 공작 각하,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그런데 그때 기사 정복을 입은 한 남자가 다가와 아서를 향해 말을 걸었다. 아서는 제 곁에 선 그레이스를 막아 세우며 제게 말을 건 남자를 향해 대답했다.

“폐하께서 말입니까?”

“네. 파티장은 소란스러워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기 힘드니, 곁에 딸린 내실로 불러 달라 명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서는 남자의 말에 머뭇거리며 대답하더니, 제 곁에 선 그레이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자신 때문에 자리를 비우는 것을 주저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그레이스는 안심하다는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전 괜찮아요. 다녀오세요.”

“……알겠습니다.”

아서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부르러 왔던 남자를 따라나섰다.

그레이스는 조금씩 사람들 사이에 섞여 멀어지는 아서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곧 길게 한숨을 내쉬며 파티장 안을 이리저리 살폈다.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과 말들을 피해 혼자 조용히 있을 만한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를 위해 일부러 키가 큰 기사들의 등 뒤에 서 있다가 걷기를 반복하며 시선을 피한 그레이스는 드디어 테라스 한 곳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미소 지었다.

아서가 돌아오기 전까지 저기서 시간을 때우면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레이스가 살금살금 기척을 죽여 움직이던 그때였다.

“어머! 그레이스! 여기 있었니?”

하필 그녀의 귓가에 자신을 부르는 언니 마리안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레이스는 시선을 돌려 마치 진심으로 반갑다는 듯한 얼굴로 다가오는 제 언니 마리안느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언니. 잘 지내셨나요?”

“난 잘 지냈단다. 그러는 너도 잘 지냈니?”

“네. 덕분에요.”

마리안느의 의례적인 안부 인사에 그레이스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겉으로 보기엔 멀리 시집간 동생의 안부를 묻는 다정하고 세심한 언니 같은 마리안느의 시선은 차가운 경멸을 품은 채 노골적으로 그레이스의 차림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더니 불쾌하다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 그녀는 더욱 노골적인 시선으로 그레이스를 훑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정말 잘 지낸 듯 보이는구나. 드레스하며, 보석하며, 그 얼굴까지 말이야. 펠릭스 공작님께서 네게 잘해 주시는 모양이지?”

“네. 보시다시피, 과분할 정도로 잘해 주신답니다.”

“그것참 다행이구나. 무섭지는 않고?”

“무섭기는요. 오히려 덕분에 아주 마음이 편하답니다. 앨버튼 저택과는 달리, 펠릭스 가문의 사람들은 절 귀하게 대해 주시거든요. 이럴 줄 알았다면 더 빨리 결혼해서 가문에서 벗어날걸 그랬어요.”

그레이스는 행복의 취한 새 신부 같은 얼굴을 연기하며 마리안느의 말에 대답했다.

그러자 마리안느의 얼굴이 아주 잠깐이었지만 노골적으로 일그러졌다. 그러나 곧 표정을 수습한 마리안느는 갑자기 걱정 어린 얼굴로 그레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그레이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언제 우리가 널 귀하게 여기지 않은 적 있었니?”

“글쎄요. 잡아먹기 위해 키우는 가축처럼 밥 안 굶기고 아무 옷이나 던져 주며 입혀 키우는 것도 귀한 대접이라 하신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지금의 넌 잡아먹기 위해 키우는 가축 같은 처지가 아니라는 거니?”

“적어도 천덕꾸러기 공녀의 신세에선 벗어났죠. 황족의 아내가 되었으니까요.”

“……하. 우습구나. 고작 1년도 버틸지 말지 알 수 없는 저주받은 황족의 아내가 된 것이 그리도 좋아?”

“제가 1년을 버틸지, 10년을 버틸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이죠. 혹시 아나요? 제가 100년을 버틸지.”

그레이스가 태연히 웃으며 받아치자 마리안느는 금세 가식을 벗고 노골적으로 검은 속내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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