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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5화 (15/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5화

아서는 레온이 파티에 참석해 또다시 제 오드아이 때문에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는 것을 피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서와는 달리 레온은 아이였기에 적당히 아프다든가 먼 거리를 이동하기 힘들다든가 하는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기 쉽기도 했다. 그러니 굳이 황제의 명을 따르느라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그런 속셈이라면 적당히 말을 맞춰 주지 못할 것도 없다. 납득한 그레이스는 레온을 향해 몸을 굽히고는 아이와 시선을 맞추며 다정히 말했다.

“그런 게 아니야. 레온이 아직 어려서 그래.”

“……어려서요?”

“응. 레온은 아직 어려서 밤에는 자야 하잖아? 그런데 이번에 폐하께서 초대해 주신 파티는 아주 늦―은 밤에 열리거든.”

“그렇게 늦게 열려요?”

“응. 그래서 폐하께서 레온을 초대하지 않으신 거야. 레온 또래의 아이는 밤에 잠을 자지 않으면 몸이 약해지니까, 그래서 그래.”

“……그래도……. 가고 싶은데…….”

그레이스의 설득에 레온이 어느새 찡그렸던 얼굴을 폈다.

그녀의 설명에 어느 정도 납득은 했지만, 여전히 미련이 남은 듯한 레온의 모습에 그레이스가 재차 설득하려던 그때, 어느새 곁에 다가온 올리버 경이 레온을 번쩍 안아 들며 말했다.

“이제 그만 조르세요, 레온 공자님. 공작님과 공작 부인께서 곤란해하시지 않습니까.”

“……그치만……. 불안하단 말이야.”

“레온 님께서 두 분과 계속 함께하고 싶은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두 분께서는 파티만 참석하시고 곧장 성으로 돌아오실 겁니다. 그렇죠?”

“……정말요?”

올리버 경의 설득에 레온이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그레이스를 향해 말했다. 그레이스는 다정히 미소 지으며 올리버 경의 품에 안긴 레온에게 다가가 대답했다.

“그럼. 파티에 얼굴만 비추고 바로 돌아올게.”

“……꼭, 꼭 곧장 돌아오셔야 해요? 혹시 누가 같이 가자고 불러도 따라가시면 안 돼요?”

“하하, 뭐?”

잔뜩 찡그린 얼굴로 걱정을 늘어놓는 레온이 귀여워, 그레이스는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 모습에 울 것처럼 찡그리는 레온에게 그레이스는 얼른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레온의 손가락을 감싸 쥐고는 말했다.

“알겠어, 레온. 걱정 마. 약속할게. 절대로 누가 불러도 따라가지 않을게.”

“그래. 걱정하지 마라. 네가 걱정하지 않게, 내가 곁에서 지키마.”

그러자 손가락을 살짝 흔들며 레온에게 약속하는 그레이스에게 아서가 불쑥 대답했다.

그 말에 레온은 자신과 똑같은 색을 가진 아서의 오드아이를 말없이 응시했다. 그러더니 머뭇거리며 말했다.

“……약속하신 거예요?”

“그래. 내 명예를 걸고 약속하마.”

굳은 아서의 대답에 레온은 그제야 안심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서는 그런 레온의 머리를 손으로 가볍게 흐트러트리고는 제 곁에 서 있는 그레이스를 향해 눈짓했다.

“그럼 마차로 가시죠, 부인. 시간을 너무 지체했습니다.”

“아,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응!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아서의 재촉에 그레이스는 얼른 레온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준 후 그를 따라 서 있는 마차 앞에 걸어갔다.

자연스럽게 마차 문을 열고 손을 내미는 아서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그레이스는 푹신한 마차의 안장 위에 올라탔다. 아서는 그레이스가 드레스 자락을 다 정리하고 편히 앉기를 기다린 후 마차에 올라탔다.

그 후 곁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부가 마차의 문을 닫았고, 마차 안에는 오롯이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마차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레이스는 살짝 열린 창문 너머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시하는 아서를 흘긋 바라보다 곧 고개를 돌렸다.

흐르는 침묵이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딱히 뭐라고 먼저 말을 꺼내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그레이스 또한 별말 없이 마차 안에 새겨진 문양이나 살피고 있던 그때였다.

“……부인.”

갑자기 아서가 말을 걸어왔다.

그레이스는 깜짝 놀라며 그를 향해 되물었다.

“네?”

“감사합니다.”

“……뭐, 뭐가요?”

“조금 전 말을 맞춰 주신 것 말입니다.”

“……아.”

대뜸 감사의 인사부터 하는 아서의 말에 그레이스는 순간 당황했지만, 곧 이어진 그의 말에 그녀는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레이스는 자신을 뚫어질 듯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쑥스럽다는 듯 말했다.

“고마워하실 것 없어요. 저도 공작님이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하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으니까요.”

“……그렇습니까.”

“네.”

이어질 것 같던 대화는 그레이스의 짧은 대답으로 또다시 끊겨 버렸다.

다시 한번 침묵이 흐르고, 어느새 아서의 시선은 또다시 그레이스를 떠나 살짝 열린 창밖을 향해 돌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출발 준비를 끝낸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레이스는 슬며시 창을 열어 조금씩 멀어지는 펠릭스 성의 풍경을 바라보다 슬쩍 맞은편의 아서를 관찰했다.

그 짧은 사이에 잠이 든 건지, 그는 어느새 맞은편에서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뭐야, 자는 건가?’

함께 수도로 가는 동안, 딱히 정다운 대화를 나누는 것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막상 그가 잠이 들자 약간 서운함이 드는 건 왜일까.

스스로도 참 알 수 없는 기분이라고 생각하던 그레이스는 곧 그에게 졸음이 전염된 건지 긴 하품을 쏟아 냈다.

‘그래, 뭐. 서로 말없이 눈치만 보며 갈 바에야 도착할 때까지 자고 있는 게 나을지도.’

그레이스는 이참에 잠깐 자고 일어날 작정으로 편히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잠의 파도가 순식간에 그녀를 덮쳐 왔다.

* * *

울창한 숲길 사이로 여러 대의 마차가 속도를 높였다.

그중 가장 앞서 달리는 펠릭스 공작의 마차 안, 완전히 잠이 들었는지 그레이스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려오자 아서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무릎을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그녀의 모습에 아서가 슬며시 눈을 찌푸렸다. 높게 틀어 올린 머리가 망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인지 삐딱하게 고개를 틀고 자는 모습이 영 불편해 보였다.

아무래도 자세를 고쳐 줘야겠다. 아서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혹여 그녀가 깰 새라 숨소리조차 죽이며 그레이스의 옆에 앉은 아서는 삐딱하게 돌아간 그녀의 머리를 살짝 내리눌렀다.

안장이 목을 받칠 수 있도록 위함이었다.

“……!”

그런데 아서의 의도와는 달리, 그레이스의 머리는 툭 기울더니 그 곁에 앉아 있던 아서의 어깨로 쓰러졌다.

그 순간 아서는 심장이 떨어질 듯 놀랐지만, 감히 함부로 숨조차 급히 들이켤 수 없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면 색색 고른 소리를 내며 잠이 든 그녀가 깨어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두면 그녀가 깨어났을 때 목이 아플 것 같았다.

어떡하면 좋을까. 그녀를 깨우는 게 좋을까. 아서는 고민에 빠진 얼굴로 그녀를 살피다, 곧 낮은 한숨과 함께 어깨를 늘어뜨렸다.

아무래도 이대로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차마 평온하게 잠이 든 그녀를 깨울 수가 없었다.

* * *

덜컹, 덜컹―.

줄곧 부드럽게 흔들리던 몸이 갑자기 덜컹거리는 마차에 제자리에서 살짝 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 거친 움직임에 그레이스는 천천히 잠에서 깨어나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초대장을 보여 주십시오.”

“여기 있습니다.”

“아, 펠릭스 공작님과 공작 부인! 파티의 주인공께서 오셨군요. 당장 파티장 안으로 안내할까요?”

“두 분께서 먼 거리를 오시느라 곤하신 듯합니다.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그러지요.”

들려온 것은 낯선 남자의 목소리와 펠릭스 저택의 집사장인 로버츠의 목소리였다.

‘벌써 도착했나?’

웅성거리며 지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발소리, 그리고 멈춰 선 마차.

게다가 이미 창밖에는 어둠이 내려와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마차가 이미 황성 안에 도착한 듯했다.

대체 자신은 얼마나 깊게 잠이 들어 있었던 걸까. 그레이스가 뻑뻑한 눈을 꽉 감았다가 완전히 뜬 그때였다.

“일어나셨습니까, 부인.”

“꺅!”

바로 옆에서 아서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레이스는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자신은 아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그레이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향해 더듬더듬 말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

“꽤 곤히 주무시던데, 간밤에 잠을 설치셨던 겁니까?”

“아니,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어머나! 옷에!”

지금 자신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당황스러운데, 너무나도 태연히 잘 잤는지 묻는 아서의 모습에 그레이스는 허둥거렸다.

그러다 문득 바라본 아서의 남색 제복의 어깨 부분에 흰 분가루가 묻어 있는 것에 그레이스는 더욱 경악했다. 그레이스는 다급히 손으로 아서의 어깨를 탁탁 털며 소리쳤다.

“미, 미, 미안해요! 어머, 어떡해! 하필 남색 제복에! 이를 어쩌면 좋아!”

“괜찮습니다. 망토로 가리면 됩니다.”

“뭐가 괜찮아요! ……아, 물을 묻혀서 닦으면 지워질까요?”

“나는 정말로 괜찮습니다. 그러는 부인이야말로 화장이 지워졌습니다.”

아서는 당황하며 자신의 어깨 부분을 털어 대는 그레이스의 손을 부드럽게 만류하더니, 살짝 화장이 지워진 그레이스의 뺨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뺨으로 다가오는 아서의 손에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자 그 모습에 흠칫 놀란 아서는 다급히 손을 떼고는 목을 울리며 말했다.

“……당장 샐리를 부르겠습니다.”

“……아, 네. 고마워요.”

그 모습에 그레이스 또한 화장이 지워진 제 뺨을 어루만지며 어색하게 대답했다.

아서는 얼른 마차의 문 옆으로 다가가 창을 열고 밖을 향해 소리쳤다.

“로버츠! 거기 있나?”

“네, 공작님.”

“당장 샐리를 불러오게.”

“알겠습니다.”

아서의 부름에 로버츠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급히 마차로 다가오는 발소리와 함께 벌컥 마차의 문이 열리고 샐리가 생글거리며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마님. 오시는 길은 평안하셨……! 어머나! 화장이 지워지셨네요?”

“아, 응. 미안. 샐리.”

“어쩌다가 이러셨어요?”

“……응? 아, 어쩌다……, 보니?”

그레이스를 보자마자 그녀의 망가진 화장을 확인한 샐리는 호들갑을 떨며 어깨에 멘 가방에서 분 상자를 꺼냈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추궁하는 샐리의 말에 그레이스는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샐리는 뭐라 더 물으려는 듯 입을 벙긋거렸지만 이내 입을 닫고서 화장을 고쳐 주었다.

그레이스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민망함으로 화끈거리는 볼을 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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