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4화 (14/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4화

그레이스는 자신이 뭐라 할 새도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시종들과 시녀들, 그리고 샐리의 모습을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들이 정리를 마치고 침실 밖으로 나가자, 그레이스가 제 곁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샐리를 향해 소리쳤다.

“새, 샐리! 왜, 왜 그랬어요?”

“네? 뭐가요?”

“그, 그 많은 걸 전부 드레스와 구두로 만들라뇨! 게다가 보석들까지! 내, 내가 그만한 걸 다 어떻게 받아요!”

“어머,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마님! 황제 폐하의 외사촌이시자 이 제국 최고의 기사이신 아서 펠릭스 공작 각하의 안사람이신데 겨우 이 정도 양의 드레스와 구두를 갖고 기겁하시면 어째요? 마님께서는 이보다 더 귀한 것도 가질 자격이 충분하세요!”

“……그, 그래도 좀 과한 거 같아요. 샐리. 한 벌이면 충분했을 텐데…….”

“어머, 한 벌이면 충분하다뇨? 이제 성혼 축하 파티에서 폐하께 정식으로 펠릭스 공작 부인으로서 인정받게 되면 마님께 황족들과 귀족들의 초대장이 쏟아질 텐데요! 그 많은 파티를 한 벌의 드레스로 다니실 작정이세요?”

“……날 초대할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요?”

“당연히 많죠!”

그레이스의 소심한 반박에 샐리는 콧방귀를 뀌며 응수했다.

과연 자신을 초대하고 싶은 귀족이 그렇게 많을지, 아니 애초에 자신이 그렇게 많은 파티에 참석할 만큼 이 저택에 머무르게 될지 잘 모르는 것 아니냐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레이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자신의 설득이 먹혀들었다고 생각한 것인지, 샐리는 뿌듯하다는 듯 웃으며 그레이스의 손을 당겼다.

“이제 납득되셨죠? 자, 자. 얼른 팔을 양쪽으로 쭉 벌리고 서세요. 얼른 수치를 재야 드레스를 만들죠.”

“……아, 알았어요.”

“그럼 전 얼른 줄자를 찾아올게요! 그대로 가만히 계세요!”

잔뜩 신이 난 얼굴로 그레이스의 팔을 끄는 샐리의 모습에 결국 진 그레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벌렸다.

그러자 샐리는 경망스럽게 화장대로 뛰어갔다. 그레이스는 그 모습을 어이가 없다는 듯 보다가 곧 배시시 웃어 버렸다.

고작 자신을 꾸며 주는 일일 뿐인데, 그레이스는 마치 제 일처럼 신나 하는 샐리의 모습이 귀엽고 또 고맙게 느껴졌다.

* * *

그렇게 장인과 직인이 만들어 보낸 드레스와 구두를 가봉하고, 장신구를 자신의 몸에 맞게 조정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성혼 파티날 아침이 밝았다.

그레이스는 평소보다 일찍 침대에서 일어나 샐리의 도움을 받아 목욕을 한 후 연한 장밋빛 새틴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그 후 그레이스가 화장대 앞 의자에 앉자 샐리는 그레이스의 머리를 틀어 올려 실크로 만든 장미꽃 장식으로 머리를 고정했다. 그러고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어 주더니 말했다.

“어머나, 정말 아름다우세요.”

“과찬이에요, 샐리.”

“과찬이라뇨! 아마 다들 여신이 내려온 줄 알걸요?”

그레이스는 샐리의 호들갑스러운 칭찬에 살짝 볼을 붉히며 웃고는 어색하게 제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던 그때, 문밖에서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는 다 마치셨습니까, 부인.”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공작님! ……자, 이제 제 손을 잡고 일어나세요.”

그 부름에 대답한 샐리가 천천히 그레이스의 손을 잡고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레이스는 순순히 일어나 샐리의 부축을 받으며 침실 문 앞까지 걸어갔다. 샐리는 문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그녀를 멈춰 세운 후 조심스럽게 닫혀 있던 문을 열었다.

“……!”

그러자 문이 열리고 그 앞에 서 있던 아서의 모습이 그레이스의 눈에 들어왔다.

늘 걸치고 있던 검은 제복이 아닌 고급스러운 진주 단추가 달린 남색 제복을 입고 가슴에 수십 개의 견장을 차고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긴 그의 모습은 평소보다 더 늠름해 보였다.

그리고 멋들어지게 뒤로 넘긴 머리카락과 드러난 가면 너머 보이는 푸르고 붉은 오드아이는 오늘따라 무섭다기보다 신비로워 보였다.

‘이게 바로 마물에 홀리는 기분일까.’

그레이스는 어쩐지 눈앞에 선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레이스를 바라보는 아서 또한 평소와는 달랐다. 늘 매서울 만큼 형형하게 빛나던 푸르고 붉은 그의 오드아이는 어째서인지 몽롱한 빛을 한 채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초점을 잃은 눈으로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는 아서와 그레이스의 모습에 샐리가 소리 죽여 웃었다. 그러더니 살짝 음흉한 표정을 짓다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어머나, 공작님. 아무리 마님께서 아름다우셔도 그렇지, 그렇게 뚫어져라 바라보시면 민망해하셔요.”

“……!”

“그리고 마님도요. 아무리 공작님이 오늘따라 멋져 보여도 그리 쳐다보시면 정숙하지 못한 부인이라 놀림 받는답니다.”

“……새, 샐리! 그, 그런 거 아니에요!”

그 말에 그레이스는 확 얼굴을 붉히며 샐리를 향해 소리쳤다.

샐리는 민망한 감정이 역력한 그레이스와 그 곁에서 평소보다 더 무뚝뚝하게 입매를 굳힌 아서를 짓궂게 바라보며 애써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그러고는 부축하고 있던 그레이스의 손을 제게서 떼어 낸 샐리는 그 손을 끌어 아서의 팔 위에 올려 주며 말했다.

“자, 그럼 저는 마님의 짐을 마저 챙겨 내려갈 테니 공작님께선 마님을 마차까지 에스코트해 주셔요.”

“……내가 짐을 들어도 상관없다만.”

“어머, 어찌 고귀한 공작님께 그런 일을 시킬 수 있겠어요? ……자, 자. 어서 함께 내려가셔요, 공작님. 이러다 늦으시겠어요.”

숫제 등을 떠밀며 재촉하는 샐리의 모습에 그레이스는 아서와 함께 침실 문 밖으로 완전히 밀려났다.

그리고 샐리가 매정하게 침실 문을 닫아 버리자 아서와 단둘이 침실 밖 복도에 남은 그레이스는 어색한 표정으로 시선을 내렸다.

또다시 그와 단둘이 남게 되자 어색하고 긴장이 되어 숨이 막히고 몸이 배배 꼬이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그레이스의 곁에 선 아서도 마찬가지인지, 그는 어색하게 자신의 팔에 달라붙은 그녀의 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레이스는 그런 그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생각했다.

‘그렇게 내가 만지는 게 싫으면 말을 하지. ……아니, 그런데 며칠 전엔 아무렇지 않게 내 허리를 끌어안지 않았나?’

뭐야, 이쪽에서 먼저 만지는 건 불쾌하다 이런 건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괜히 이상하게 기분이 상한 그레이스는 살짝 아랫입술을 내밀며 아서의 팔 위에 올린 제 손을 내렸다.

그런데 그레이스의 손이 아서의 팔에서 완전히 떨어지기 전 아서가 그 손을 단단히 붙잡아 왔다.

“……!”

그 모습에 그레이스가 깜짝 놀라 돌아보자, 아서는 일부러 시선을 피하더니 작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팔 위에 올라온 그녀의 손을 단단히 고정시키며 말했다.

“……늦었습니다. 이만 가시죠.”

“……아, 네.”

굳은 목소리로 자신을 재촉하는 아서의 모습에 그레이스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서가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높은 구두를 신고 있는 그레이스를 배려하는 듯 느린 속도로.

그 모습에 그레이스는 슬며시 잡은 아서의 팔에 힘을 실으며 그의 발걸음에 맞춰 걸었다.

참으로 이상했다. 민망한데 그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넘어질까 봐, 그래서 그래.’

그래. 그래서 그런 거다.

그래서 이렇게 가슴 한쪽이 간질간질해지는 거라고, 그레이스는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 * *

나란히 저택 밖으로 나온 아서와 그레이스는 정원을 지나 저택의 정문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두 사람이 탈 마차의 옆에 두 사람을 마중 나온 펠릭스 성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 중 가장 먼저 아서와 그레이스가 다가온 것을 본 레온이 두 사람을 향해 달려왔다.

“형님! 형수님!”

“레온! 천천히 와! 넘어져!”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휘청거리며 달려오는 레온의 모습에 그레이스가 얼른 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레온이 더 잰걸음으로 달려오더니 길고 넓은 그레이스의 드레스 폭에 폭 파묻히듯 안겼다.

그 귀여운 모습에 그레이스가 소리 내어 웃으며 긴 머리를 쓸어 주자, 드레스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레온이 고개를 쏙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큰 눈동자를 빛내며 그레이스를 향해 감탄사를 내뱉더니 말했다.

“우와, 오늘 너무 너무 예뻐요!”

“정말?”

“네, 꼭 갓 핀 장미 같아요! ……아, 아니다. 반짝거리는 보석, 아니, 요정 여왕님 같아요!”

“어머, 영광이에요, 레온 공자님.”

그레이스는 낯 뜨거울 만큼 솔직한 레온의 칭찬에 일부러 존댓말로 인사하며 살짝 허리를 굽혔다.

그 모습에 레온은 까르르 소리 내며 웃더니 작은 팔로 더욱 꽉 그레이스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꼭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힘주어 안는 아이의 모습에, 그녀의 곁에 있던 아서가 슬쩍 손을 뻗어 레온의 머리를 흐트러트리며 말했다.

“이런, 레온. 이만 부인을 놓아주거라.”

“조금만 더 이대로 있으면 안 돼요?”

“미안하지만 오늘은 안 되겠구나. 나와 네 형수는 폐하께서 주최하시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가야 하거든.”

“……그거 말인데, 저도 같이 따라가면 안 돼요?”

그 말에 다시 쏙 고개를 들어 올린 레온이 울상을 지으며 아서를 향해 말했다. 조르는 듯한 그 시선에 마음이 약해질 법도 하건만, 아서는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것도 미안하지만 안 되겠구나.”

“왜요?”

“초대를 받은 건 나와 네 형수뿐이거든.”

“……폐하께서도 제가 저주받은 아이라서 싫어하세요? 그래서 초대를 안 해 주신 건가요?”

레온은 잔뜩 주눅이 든 채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아서의 표정이 가슴 아픈 듯 찡그려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레이스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이상하다. 내가 봤을 땐 레온도 초대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아서는 레온이 초대를 받지 못했다고 말하며 아이를 데려가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그레이스가 설명을 요구하듯 아서를 바라보며 그의 팔 위에 올려놓은 제 손을 살짝 움직이자 아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더니 손으로 제 눈을 가리켰다.

‘……아. 알겠다.’

그 행동에 그레이스는 모든 것을 납득할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