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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2화 (2/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2화

“……아.”

그 순간, 깨끗해진 그레이스의 시야에 눈앞에 선 남자 아서 펠릭스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레이스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작게 비명 같은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전체적인 형상은 베일 너머로 보였던 모습 그대로였기에 딱히 놀라고 말고 할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낸 까닭은, 가면 너머 선명하게 보이는 그의 양쪽 눈의 색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왼쪽은 여름의 맑은 하늘처럼 푸른 사파이어 색인데, 오른쪽은 꼭 지옥의 업화와도 같이 붉은 루비색을 품은 오드아이였다.

그레이스는 빨려 들 것만 같은 마성을 가진 그의 눈을 본 순간 그가 괴물 공작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도저히 사람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아.’

그레이스는 그 낯설고도 기묘한 눈을 마주한 순간 밀려든 두려움에 마른침을 삼키며 와 닿은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줄곧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그의 눈이 흠칫 떨리는 것 같았다.

“신랑, 아서 그레이엄 펠릭스 경은 그레이스 마리 앨버튼을 신부로 맞아 평생을 함께할 것을 맹세하겠습니까?”

“……네.”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복잡한 시선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교황은 사무적인 목소리로 혼인 서약문을 읽었다.

그러자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그레이스를 바라보던 그가 느릿하게 대답했다. 약간 뜸을 들이긴 했지만, 터져 나온 그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레이스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듣기 좋은 그의 목소리와 그의 대답에 어쩐지 마음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신부 그레이스 마리 앨버튼 양은 신랑, 이서 그레이엄 펠릭스를 신랑으로 맞아 평생을 함께할 것을 맹세하겠습니까?”

그때 아서의 대답을 들은 주교가 곧장 그레이스에게도 혼인 서약을 요구해 왔다.

‘……어떡하면 좋을까.’

신의 대리인인 교황이 주관하는 성스러운 결혼에서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거짓 대답을 해야만 하는 걸까. 그레이스는 지금 이 순간 그냥 도망쳐 버리면 어떨까 생각했다.

‘아냐. 그래서는 안 돼.’

그러나 곧 그레이스는 마음을 다잡았다. 결혼식에서 도망치면, 자신이 겨우 피했던 독살이라는 결말이 도로 자신을 찾아올 것이었다.

‘신이시여, 마지막으로 당신께 거짓을 고하는 것을 용서하소서.’

그레이스는 마른침을 삼키며 짧은 심호흡을 내뱉은 후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줄곧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한쪽은 푸르고 한쪽은 붉은 기묘한 그의 오드아이를 마주 보며 선언하듯 대답했다.

“네, 그리하겠습니다.”

그녀의 대답이 터져 나오자, 마주한 가면 속 그의 눈이 조금 커졌고 주변 하객들에게선 환호가 터져 나왔다.

축복인지, 조롱인지 모를 그 환호에 귀가 웅웅 울리는 것을 느끼며 그레이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이 순간부터, 그녀는 ‘괴물 공작의 신부’가 된 것이었다.

* * *

제국 최고의 기사, 제국에서 가장 큰 영지인 북방의 펠릭스 성의 주인인 아서 펠릭스 공작. 선황제의 조카라는 고귀한 신분과 열일곱에 처음 전쟁터에 나가 공을 세운 이래 참전한 전투에서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무력.

그리고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헌헌한 체구의 그 기사는 그 이력만큼이나 특이한 생김새로 유명했다.

보통 남성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체격, 왼쪽에는 사파이어처럼 푸른 눈, 오른쪽에는 루비처럼 붉은 눈.

뛰어난 능력에 보기 드문 오드아이를 가진 그를, 사람들은 모두 꺼려 했다.

그에게는 저주가 깃들었기 때문이다.

그 저주의 시작은 그와 정략결혼으로 맺어졌던 로이엔느 공국의 공녀 엘렉트라의 불미스러운 죽음이었다.

결혼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찾아온 첫 번째 펠릭스 공작 부인의 죽음에 사람들은 그저 불운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이후 펠릭스 공작의 지위와 재산에 이끌려 접근했던 여인들이 예외 없이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죽거나 미쳐 버리면서 귀족들 사이에서는 그를 향한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아서 펠릭스 공작에게 다가간 이는 어느 하나 예외 없이 죽거나 미쳐 버린다. 그 소문은 그의 흔치 않은 오드아이와 맞물려 귀족들 사이에서 기정사실처럼 퍼져 나갔다.

저 저주의 원인은 뭘까.

펠릭스 공작의 뒤에서 쑥덕거리던 귀족들은 그 모든 저주의 원인이 그의 오드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내를 추모하기 위해 썼던 검은 가면은 그의 저주받은 얼굴을 가리기 위한 방패가 되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선황제의 여동생인 그의 어머니가 목숨 바꿔 낳은 그의 동생인 레온 펠릭스에게도 이어졌다.

역시 저 오드아이에는 ‘저주’가 깃들어 있다.

저 형제와 엮이는 여자들은 모두 죽거나 미칠 것이다.

그 흉측한 소문과 손가락질을 피해 아서 펠릭스 공작은 그와 꼭 닮은 오드아이를 가진 동생 레온 펠릭스와 함께 1년의 반은 눈이 내린다는 북쪽의 펠릭스 영지에 칩거하듯 틀어박혔다.

* * *

결혼식은 제대로 된 약혼 절차도 없이 거행되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끝나 버렸다.

결혼식을 마치고 앨버튼 성에 작별 인사를 할 시간도 주지 않고, 앨버튼 가문은 곧장 그레이스가 펠릭스 영지로 가기를 원했다.

그레이스 또한 한시라도 더 앨버튼 성에 머무를 생각이 없었기에 곧장 펠릭스 성으로 갈 채비를 했다.

제게는 어울리지 않았던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벗고, 마차에 오르기 위해 비교적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그레이스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아서와 조우했다.

그레이스는 성당 벽에 삐딱하게 기대 있던 그를 발견한 후 흠칫 놀라며 말했다.

“……미안해요. 오래 기다리셨나요?”

“아닙니다.”

그레이스의 물음에 짧게 답한 아서는 휙 몸을 돌려 성당 밖으로 길게 펼쳐진 융단으로 걸어갔다.

그레이스는 에스코트도 없이 불쑥 앞으로 가 버리는 그의 무례한 행동에 살짝 인상을 쓰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레이스, 행복하게 잘 살렴.”

“꼭 마법 능력을 가진 후계자를 낳길 바라, 그레이스. 그 아이도 너처럼 불행하게 만들지 말고.”

“마리안느! 크흠. ……앞으로 펠릭스 영지의 안주인으로서 잘 처신하거라.”

“……네, 그럴게요.”

펠릭스 가문을 상징하는 매가 그려진 큰 마차 앞에 서서, 그레이스는 가족들의 배웅을 받았다.

그들은 마치 오랫동안 미뤄 두었던 성가시고 귀찮은 숙제를 끝낸 듯한 얼굴로 그녀를 향해 축복인지 악담인지 모를 말들을 퍼부었다. 그레이스는 그 말을 대충 흘려들으며 곁에 서 있던 시녀들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 올랐다.

“……어?”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족히 여섯은 앉고도 남을 마차 안에는 아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에스코트도 해 주지 않고 먼저 걸어가기에 당연히 먼저 마차에 탄 줄 알았건만.

보이지 않는 아서의 모습에 그레이스는 문을 닫으려 다가온 마부를 향해 물었다.

“저기, 공작님은 마차에 타지 않으시는 건가요?”

“예, 마님. 각하께서는 저 앞에 있는 공작님 전용의 마차에 오르셨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럼 이제 곧 출발하겠습니다. 마님께서는 편히 쉬시지요.”

그 말을 끝으로 마부는 마차의 문을 닫고 조종석으로 가 버렸다.

그레이스는 오로지 자신만 남은 마차 안에서 짧은 한숨을 쉬며, 푹신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펠릭스 영지까지는 말을 아무리 빨리 몰아도 족히 한나절이 꼬박 걸리는 긴 거리라고 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아서와 마주 앉아 어색하고도 불편한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고민했는데, 그것은 기우였던 듯했다.

“……어쩌면 다행이라면 다행이야.”

마차 안에서 그 기묘하고도 무서운 오드아이를 계속해서 마주 보며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는 것이 그레이스는 조금 기뻤다.

그레이스는 팔짱을 끼며 뻑뻑한 눈을 감았다.

펠릭스 영지에 도착할 때까지 짧은 휴식을 청할 작정이었다.

* * *

아서 펠릭스 공작과 그의 새 신부 그레이스 마리 펠릭스 공작 부인을 태운 마차의 행렬이 긴 성도를 달렸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꼬박 한나절을 달린 끝에 드디어 펠릭스 성의 관문에 도착한 마차는 짧은 검문을 거친 후 곧장 저택으로 달려 나갔다.

“……어머.”

그사이 잠에서 깬 그레이스는 몰래 마차의 창문을 열고 펠릭스 성의 풍경을 관찰했다.

이전 생에서도, 지금 생에서도 수도에 위치한 앨버튼 영지와 마지막으로 자신이 머물렀던 수녀원밖에는 가 보지 않았던 그녀에게 있어 펠릭스 성의 풍경은 생경하기만 했다.

가을을 맞아 이제 잎 끝이 조금씩 붉게 물들기 시작한 수도와는 달리 마차의 바퀴 높이까지 쌓인 흰 눈과 거친 느낌의 돌저택, 짙게 어둠이 내려앉은 검은 하늘을 향해 뿜어져 나오는 굴뚝의 뽀얀 연기는 황량하면서도 포근했다.

그레이스는 열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온통 눈으로 덮인 하얀 바깥 풍경에 시선이 빼앗겼다.

“마님, 저택에 도착했습니다.”

“알겠어요.”

이윽고 마차가 멈추고, 문 밖에서 저택의 도착을 알리는 마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닫혀 있던 마차의 문이 열리고, 그사이 그레이스는 흐트러져 있던 드레스 자락을 정리했다.

“……아.”

“……부디, 손을.”

문이 열린 순간, 그레이스의 눈에 보인 것은 자신과 다른 마차를 타고 왔던 아서였다.

그녀의 마차보다 앞서 달린 덕에, 먼저 저택에 도착한 듯한 그는 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차에 탈 때는 에스코트 같은 건 절대로 해 주지 않을 것 같았는데.’

저택에 오면서 자신에게 친절하게 행동하리라 생각한 걸까.

그레이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민 그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고마……!”

그런데, 그레이스가 마차에 내려온 그 순간 아서는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뿌리치듯 놓아 버렸다.

그러고는 그녀가 채 고맙다는 인사도 마치기 전 먼저 휘적휘적 열린 저택의 정문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님. 저는 펠릭스 성의 집사장, 로버트 하인츠라 합니다.”

“로버트, 이 사람의 안내는 내가 할 테니, 그대는 별채로 돌아가 레온의 저녁 식사를 챙겨 줘.”

“……아, 예. 명 받들겠습니다, 각하.”

“날 따라오도록 해요.”

그레이스는 짧게 헛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따라오라는 말만 남기고는 먼저 가 버리는 아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과는 손끝도 닿고 싶지 않다는 듯 매정하게 손을 뿌리치고 멀어지는 아서의 모습은 꼭 자신이 ‘괴물’인 것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혹시 저 사람도 나를 마법 능력도 없는 평범하고 무능한 여자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래서 이렇게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생각이 거기 미치자 그레이스는 확 기분이 상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곧 그레이스는 그런 생각을 털어 내듯 고개를 저었다. 남의 행동과 말에 쓸데없이 의미 부여를 하고 과도한 해석을 하는 것은 그녀의 나쁜 버릇 중 하나였다.

쓸데없이 혼자 의미부여를 하고 혼자 움츠려 드는 것은 이제 이번 생에선 그만하자고 생각하며 그레이스는 마음을 다잡았다.

“……제대로 인사는 나중에 할게요, 로버츠.”

“아닙니다. 어서 각하를 따라가시지요.”

그 후 그레이스는 집사장 로버츠를 향해 짧게 인사를 남긴 후 이미 저만치 앞서 가는 아서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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