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아, 하앗, 흐….”
길쭉한 손가락이 빠른 속도로 질내를 드나들자 찔꺽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나디아는 허벅지 사이에 가둔 꼴이 되어 버린 에드윈의 팔을 붙잡았다. 기어코 그녀가 절정에 몸부림치는 꼴을 봐야겠는지 그의 손놀림은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은 충격과 함께 그녀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길게 늘어지는 교성을 집어삼킨 에드윈의 잡아먹을 듯 사나운 입맞춤에 숨이 막혔다.
여운이 긴 절정에 경련하던 나디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를 밀어냈다. 어느새 그녀는 소파에 누운 채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만하라고 했는데….”
“나는 당신이 곤란해하는 게 좋아서 큰일이야.”
그가 장난스레 씨익, 하고 웃었다. 얼핏 소년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청량한 미소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정욕에 퇴폐로 물들었다.
“괴롭히고 싶어.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그만해 달라고 엉엉 울 때면 겁이 날 지경이야. 내가 못 참고 망가트릴까 봐….”
나디아는 허둥지둥 그의 아래에서 빠져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흘러내린 애액으로 축축하게 젖은 엉덩이가 불쾌함을 불러일으켰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방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그녀는 서둘러 매무새를 정리했다.
더 지체했다가는 에드윈이 달려들어 그녀를 집어삼키려 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캉스에서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방에 틀어박혀 정사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새침하게 그를 노려보면서도 제법 기분이 좋았다. 손가락 마디 하나만큼 벌어졌다고 느낀 애매한 거리감은 모두 그녀의 불안한 마음이 빚어낸 착각인 듯했다. 제게 열을 올리는 남자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알량한 만족감이 차올랐다.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요?”
잔뜩 흐트러진 차림을 정리할 생각도 없는지 엉망진창인 꼴의 에드윈은 한심하기는커녕 매력적이기만 했다. 눈에 뭐가 씌기라도 했는지, 정말로 그런 건지. 제가 한 생각에 고개를 젓는 나디아의 모습을 본 그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느릿하게 바지춤을 정리했다.
“이리 와.”
기울인 얼굴 위로 헝클어진 금발이 흘러내렸다. 고작 두 걸음. 나디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단정하게 정리된 허리 아래에 눈길을 주었다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굵은 팔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푹신하게 파묻히는 얼굴을 보며 멈칫했던 나디아는 손을 들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바쁘다면서요.”
쑥스러움에 되레 더 퉁명스러운 말투가 튀어나왔다.
“바쁘지.”
몇 번 숨을 몰아쉬던 남자가 그녀를 놓아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겨진 셔츠가 자꾸만 눈에 걸렸다. 정리하려 손을 뻗자 에드윈이 그것을 피하듯 한걸음 물러섰다. 놀라 고개를 든 그녀는 느물거리며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신…!”
“나중에 치료사를 보내 줄게. 쉬고 있어.”
무어라 더 따지고 들 새도 없었다. 혹시 누군가가 본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불순한 상상을 불러일으킬 만한 꼴을 하고는 방을 나서는 모습이 어찌나 당당한지. 나디아는 이마를 짚었다.
쫓아내려 들었다고 심술을 부리는 게 분명했다. 한숨 대신 웃음이 흘러나왔다.
에드윈이 떠나고 홀로 방에 남은 나디아는 미지근한 물로 목욕을 하고 치료사를 맞이했다. 별다른 이상은 없다는 말과 이미 한 번 유산 경험이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 외에는 그녀가 크게 신경 쓸 만한 일이 없었다.
안주인이 손을 대야 했던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잠시 쉬는데 어느새 해가 기울었다. 하루는 짧았다. 나디아는 여느 때처럼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에드윈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는 다시 그의 음란한 손장난에 어울려 주어야 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날은 빠른 듯싶기도 했고 느린 듯싶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하는 나디아의 모습을 본 에드윈은 그녀의 차가워진 손을 붙잡고 웃으며 말했다.
“왜 그렇게 긴장하는 거야? 설마 다른 놈과 붙어먹기라도 했어?”
그 웃음에는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 저를 놀리려 한 말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디아는 애써 웃어 보려 했으나 얼굴 근육이 굳은 것처럼 어색했다.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애초에 당신이 불안해하는 게 싫어서 한 일이었어.”
에드윈의 손에서 옮겨 온 온기가 손을 데웠다.
“다른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하지도 않지만, 만에 하나 그렇더라도 상관없어. 내 말을 잊은 거 아니지?”
아주 은밀한 비밀을 말하듯 그가 속삭였다. 은근한 시선이 집요하리만치 그녀의 눈을 좇았다. 나디아는 그가 보여 주는 농도 짙은 집착과도 같은 감정에 안심했다. 참지 못하고 에드윈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에드윈과 나디아는 때때로, 이렇게 서로의 감정이 여전히 변하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했다. 은연중에 그런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그만둘 수가 없었다.
나디아는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게 아닌 이상, 다른 연인들도 비슷한 행위를 반복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어떻게 확인하지 않고 마냥 믿게 될 수 있는지, 그게 가능한 일인지 생각하다 보면 기분이 가라앉았지만 깊게 파고들고 싶지 않았다.
그의 품에 안겨 이제는 익숙해진 체취를 폐부 가득히 들이마시자 복잡한 심상들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나디아는 아쉬움을 삼키며 에드윈의 품을 빠져나왔다.
“각하, 여기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마법사였다. 결과가 나왔다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디아는 에드윈을 따라 소파에 앉았다.
“같이 들으셔도….”
“상관없어.”
그 말이 꼭 자신이 들으면 안 될 이야기를 하겠다는 뜻 같아서 심장이 덜컹거렸다. 애써 잠재운 불안이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을 알아챘는지 혀를 찬 에드윈이 그녀의 손을 붙잡아 제 허벅지 위로 이끌었다.
차근차근 결과를 풀어놓는 마법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마구 흩어졌다. 지나치게 긴장한 탓인지 귀로 들은 말을 머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마른침을 몇 번이나 삼키고 남몰래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각하의 생식 능력은 일반적인 수준의 4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임신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확률이 현저하게 낮을 뿐이지요.”
“음.”
마법사의 말을 끊은 에드윈은 제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긴 척했다.
“생각보다 양호한데.”
그는 필요한 대답은 모두 들었다는 듯 마법사를 돌아가게 했다. 돌아가기 전, 에드윈이 귓가에 무언가 속삭이자 마법사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목이 떨어져라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증이 일어 무슨 말을 했느냐며 물어보려 했던 나디아는 제법 기대에 찬 얼굴로 저를 돌아보는 에드윈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이름은 뭐로 지을까?”
‘내 말이 맞지?’라거나, 그도 아니면 ‘이제 안심했느냐’고 물을 거라 생각했던 그녀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말에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한 사람 같았다. 이미 몇 번이나 이야기한 것처럼, 불안을 느끼는 건 그녀뿐이라는 듯.
“너무 이르지 않아요?”
“그래?”
‘그래?’라니. 평소답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제법 기분이 괜찮았다.
“아직 남자애인지 여자애인지도 모르고….”
나디아는 느린 걸음으로 에드윈에게 다가갔다. 에드윈이 성큼 거리를 좁혔다. 그 사소하고도 자연스러운 배려를 기껍게 여기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남자의 뺨을 매만졌다. 올라간 입꼬리와 부드럽게 패인 볼우물 그리고….
“당신, 굉장히 기뻐 보여요.”
그는 잠시 멈칫했다가 이윽고 긍정했다.
“그래.”
커다란 손이 나디아의 배를 짚었다. 옷 위로도 뜨거운 체온이 느껴졌다.
“이런 기분은 뭐라고 불러야 하지? 처음으로… 가득 찬 기분이 들어.”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그의 눈 한구석에 여전히 자그맣게 남아 있던 공허가 메워지는 광경을 응시했다. 맞닿은 피부를 통해 전염되듯 흘러 들어오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나디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꽃이 피는 것처럼 환하게 물들었다.
이제야 온전히 아이가 생겼다는 기쁨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떤 생김새를 가지고 있을지, 어떤 목소리를, 또 어떤 성격일지 상상하는 건 꽤 설레는 일이었다.
이른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녀는 아이가 에드윈과 저를 딱 반씩 섞은 모습이기를 바랐다. 때때로 흔들리는 두 사람 사이의 결실이 견고한 연결 고리가 되어 주기를. 불순한 기쁨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처음으로 불안하지 않았다. 그녀의 태양이 환하게 빛났다. 그가 기뻐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항상 흐릿하게 드리웠던 먹구름이 물러갔다. 머리 위에서부터 퍼져 나가기 시작한 온기가 발끝까지 퍼져 나갔다.
다시 누군가를 다시 믿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던 마음조차도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믿음은 한순간에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은 앞으로도 천천히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야겠지만 그 과정조차도 달콤할 것이 분명했다.
“있지, 나… 행복해요.”
느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밀려왔다. 어느 여름, 스르르 밀려와 발을 적시던 따뜻한 바닷물처럼. 나디아는 그의 가슴을 짚었다.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 박동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당신이 느끼는 그 충만함도 행복이에요. 그러니까….”
눈을 마주 보며 어린아이를 가르치듯 또박또박 말했다. 잘 듣고 기억해 두라고 말하고 싶은 것처럼.
“우리는 행복한 거예요.”
그 말은 현재를 말하는 것이기도 했고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으며 미래에 대한 확신이기도 했다. 결핍되지 않은 충만함을 처음으로 느껴 본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용케도 그늘진 곳을 찾아 숨어들던 불안의 그림자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는 들판에 거센 폭풍이 밀려들더라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생각이 차올랐다. 눈이 부시다는 듯 저를 바라보는 남자를 마주 보며 나디아는 확신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