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나디아는 아주 조금이라도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지도 모르는 여지를 남겨 두고 싶지 않았다. 힘들게 얻은 안온함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여전히 제 결백을 그에게 납득시키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하녀가 방을 떠나고 둘만 남은 방 안에서 에드윈이 물었다.
“마법사에게 뭐라고 하려고?”
말문이 막혔다.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곤 하던 나쁜 버릇이 다시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냉정하게 굴자고 생각한들, 그와 엮이기만 하면 마음이 조급해졌다.
뒤늦게 제 머리를 쥐어박고 싶을 만큼 어처구니가 없었다. 에드윈의 말대로였다. 무어라 말한단 말인가? 에드윈의 아이라는 걸 증명해 달라고? 말만 들어도 머릿속으로 수십 가지 불유쾌한 상상들을 불러일으킬 만한 말이었다.
나디아가 당혹스러움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사이에 에드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 생각인지 알겠어. 하지만 나디아.”
소파 뒤로 돌아온 남자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몸 상태를 살펴야 하는 건 당신이 아니라 나인 것 같군.”
마치 위로하듯 어깨를 토닥인 그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나디아는 멍하니 그의 말을 곱씹었다. 믿는다는 뜻일까? 여전히 흐릿한 잔상처럼 남은 불안이 의문을 내비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가 들렸다.
“들어와.”
에드윈은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로 소파에 기댄 채 마법사를 맞이했다. 무릎 위에 늘어진 하얀 손가락이 의미 없이 까딱거렸다.
“각하, 귀부인.”
정중하게 인사하는 남자는 몇 번인가 스쳐 지나가며 본 기억이 있는 얼굴이었다. 에드윈이 뭔가를 하려 든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었던 나디아는 얌전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음.”
그가 말의 서두를 떼듯 목을 울렸다.
“검사를 좀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무슨 검사 말씀이십니까?”
“내 생식 능력에 대한 검사지.”
무표정한 낯을 하고 있던 남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는지 당황을 내비쳤다. 금방 표정을 수습했지만 이미 나디아와 에드윈은 그 얼굴을 본 뒤였다. 평정을 가장했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보였다.
나디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에드윈의 아이가 확실했다. 아닐 리가 없었다. 그러니 이 검사 결과도 에드윈의 말과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음에도 긴장이 목덜미를 뻣뻣하게 만들었다. 만에 하나라는 가능할 리가 없는 가능성이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일단… 정액이 필요합니다. 시간 차를 두고 두 번에 걸쳐….”
마법사는 당황했으면서도 어떤 궁금증도 내비치지 않고 덤덤하게 방법을 제시했다. 항상 품속에 상비하고 다니는 듯한 빈 유리병을 두 개 꺼내 놓은 마법사가 에드윈의 성의 없는 손짓에 방 밖으로 나갔다.
그는 실수로라도 나디아에게 의구심 섞인 시선을 보내는 짓은 하지 않았다. 현명한 행동이었다. 처음에도 당황한 티를 내지 않았더라면 완벽했을 텐데.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에드윈은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바지춤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나디아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뭐 하는 거예요?”
그리 물으면서도 무슨 짓을 하려는지 짐작이 갔던 터라 목덜미가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어째서 저 남자는 저리도 뻔뻔하고 부끄러움은 죄다 제 몫인지 모를 일이었다.
“설마 못 들었어? 정액이 필요하다잖아.”
“몰라서 물어본 게 아니에요!”
잠시 눈을 돌린 사이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쉽게도 풀어낸 남자의 손이 성기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저도 모르게 자위를 시작한 그의 모습을 곁눈질해 버린 그녀는 불에 덴 것처럼 놀라며 아예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까지 질색할 일인가? 자주 봤잖아.”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그리 물었다. 나디아는 진저리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을 나가 버릴 셈이었으나 뜨겁게 열이 오른 손바닥이 그녀의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가면 어떡해.”
“나, 나더러 어쩌라고 그럼….”
확 끌어당기는 힘에 몸이 소파에 푹 파묻혔다. 강인한 팔이 어깨를 끌어안고 몸을 밀착시켰다. 뜨끈하게 끓어오른 체온이 닿자 전염되듯 순식간이 열이 옮겨 왔다.
에드윈이 나디아의 손을 쥐고 끌어당겼다. 이번에도 그녀는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하지만 꼭 덫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했다. 그와 몸을 맞대고 있을 때 느껴지는 긴장감이 짜릿했으니까.
뻔뻔하고 변태 같은 남자라며 매도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반기게 되었다. 그녀조차도 깨달은 본심을 에드윈이 알아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긴장인지 기대감인지 모를 것으로 잘게 떨리는 손끝이 뜨거운 살덩이에 닿았다. 이윽고 에드윈의 커다란 손에 들어찬 자그마한 손이 남자의 성기를 감싸 쥐었다.
남자의 발기한 성기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가 없는 크기였다. 아름다워서 일견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외모와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흉악한…. 몇 번이고 반복했던 진부한 감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만져 줘.”
에드윈이 그녀의 귓가에 신음처럼 속삭인 말에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 나디아는 살며시 눈을 뜨고 그의 요구대로 손을 움직였다. 하얀 손이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붉고 매끄러운 귀두가 드러났다. 서서히 선단이 젖어 들었고 손바닥이 끈적해졌다.
그녀의 귓가에 딱 붙은 입술이 헐떡이는 소리를 흘릴 때마다 나른하게 눈이 감겼고 피부 위로 전류가 흘렀다. 애무를 받고 있는 것도 아니건만 배 속이 뜨거워졌다.
남편의 불임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위라고 생각하며 진정하려 애썼지만 쉽지가 않았다. 에드윈은 독을 품은 꽃 같았다. 그는 지나치게 매력적이었고 나디아는 거부할 수도,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도 없었다.
“입 맞춰 줘.”
태연한 낯으로 이것저것 요구해 대는 그의 말을 도무지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짙게 가라앉은 보라색 눈이 나디아의 입술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입을 살짝 벌렸다. 그리고 고개를 기울이며 그의 입술 위로 제 것을 포갰다. 입술을 오므려 살며시 그의 입술을 빨자 그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나디아는 다시 한번 입술을 약하게 빨고 혀를 내밀었다.
에드윈은 곧장 잡아먹을 것처럼 달려드는 대신 재롱을 보듯 얌전히 부드러운 입맞춤을 받았다. 순순히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가 얽혔다. 그의 손가락이 나디아의 손등을 두드렸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멈추었던 손을 다시 움직였다.
새삼스럽게 그의 자위를 돕고 있다는 깨달음이 찾아와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어딘가를 만질 때마다 바로바로 오는 반응이 제법 신기했다. 그가 급하게 숨을 들이마시거나 끓는 듯한 신음을 뱉어 낼 때면 어쩐지 성취감 비슷한 것마저 생겨났다.
“아, 아….”
그녀에게 혀를 빨리며 에드윈이 신음했다. 나디아는 본능적으로 그의 절정이 가까워졌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손을 감싸 쥔 남자의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해졌고 성기에서 흘러나온 끈적한 액체가 윤활유가 되어 움직임이 더욱 매끄러워졌다.
입술이 떨어졌고 그가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나디아는 에드윈 대신해 떨리는 손으로 유리병을 집어 들었다.
마개를 열고 입구를 그의 성기 끝에 가져다 대는 일은 몸서리칠 만큼 부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러지 않으면 같은 짓을 한 번 더 해야 할지도 몰랐다.
어깨를 끌어안고 있던 에드윈의 손이 미끄러지듯 내려와 가슴을 움켜쥐었고 그의 허벅지 근육이 바짝 긴장했다. 손바닥만 한 투명한 유리병 안에 차오르는 걸쭉한 액체의 모습에 얼굴이 당장이라도 타오를 것처럼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하필 투명한 병일 게 무어란 말인가? 충격적일 정도로 음란한 광경이었다. 남자가 사정하는 순간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목격하는 건 처음이었다.
흘리기라도 할까 봐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얇은 옷 위로 도드라진 유두를 꼬집는 감각에 나디아의 몸이 움찔 튀어 올랐다. 그 탓에 정액이 흘러내려 손을 적셨다.
그의 몸을 지배하던 긴장이 슬그머니 풀리는 것을 보며 나디아는 참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절정에 이르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말 못 할 아쉬움이 남았다. 정사 중에는 항상 몰려오는 쾌락에 잠겨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었으니까.
사정할 때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말한다면 에드윈은 분명 부끄러움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처럼 보여 주려 들겠지만, 나디아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낼 만큼 뻔뻔하지 못했다.
아직 가쁜 호흡을 가다듬지 못한 에드윈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병을 빼내 마개를 닫았다. 그가 헐떡이며 말했다.
“이거… 아쉽네.”
“…뭐가요?”
그가 입술을 귓가에 바짝 붙였다. 고르지 못한 숨과 더불어 살짝 거칠어진 목소리가 애무하듯 귓바퀴를 타고 흘러 들어왔다.
“당신 안에 쏟아부으면.”
나디아는 어깨를 움츠렸다. 평소 같았으면 질색을 하며 그의 어깨를 때렸겠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강렬하게 남은 기억이 반사적으로 떠올라 딴청을 부렸다. 남자의 손이 슬그머니 허벅지를 움켜쥐고는 더 안쪽으로 미끄러졌다.
“흘러나오는 게 절경일 텐데.”
조금이라도 이런 분위기가 되면 귓가에 속삭여지는 천박한 말들은 어느새 그녀를 자극하는 것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 미끈거릴 만큼 젖은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 다리를 힘껏 붙였지만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손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만….”
“그만?”
만류한다고 해서 쉬이 그만둘 남자가 아니었다. 기어코 속옷 안으로 파고든 손끝이 잔뜩 민감해진 음핵을 문질렀다.
“이렇게 흠뻑 젖었는데 그만해?”
거절은 말뿐이라는 걸 다 안다는 듯이 ‘정말?’ 하고 속삭였다. 나디아는 에드윈이 제 말뿐인 거절을 무시하고 멋대로 휘둘러 주는 게 좋았다. 비겁했지만 평생을 정숙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 왔던 그녀가 제 안의 욕망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건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남자의 입술이 뺨을 타고 내려가 목을 물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몸을 뒤흔드는 자극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렸다. 순식간에 열이 오르고 발끝이 힘이 바짝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