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나디아는 몰려오는 절정의 강렬함에 이기지 못해 눈을 반쯤 감은 채 고개를 돌렸다. 남자의 목덜미를 덮고 있던 손이 그의 뺨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나디아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채지 못할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도톰하게 부풀어 예민해진 입술과 참지 못하고 흘러나오던 교성이 뜨거운 숨결에 잠식당했다.
몸이 한껏 조여들고 그녀가 내려오기를 기다릴 여유는 없다는 듯이 안쪽을 빠르게 드나드는 남자 역시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짜릿한 감각이 밀려들자 나디아는 마구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굵은 팔 안에 끌어안긴 상태로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단단한 팔뚝을 마구 긁었다.
일순 모든 움직임이 멈추었다. 가장 깊숙한 안쪽에 성기를 처박은 남자가 가쁜 숨을 내쉬며 정액을 쏟아 냈다.
“하아….”
나디아는 한껏 예민해진 질 안에 차오르는 뭉클한 액체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멍한 눈으로 거울을 응시했다. 에드윈은 사정하면서도 몇 번쯤 허리를 쳐올렸다. 움찔거리는 음부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드러나는 남자의 성기를 타고 희뿌연 액체가 흘러내렸다.
에드윈이 천천히 그녀의 몸을 내려 주었다. 거울 속에서 적나라하게 보이는 접합부를 더는 눈에 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과 수치스러운 자세가 주던 부담감 역시 사라졌다.
미지근한 타일 바닥에 발이 닿고 느릿하게 성기가 빠져나갔다. 나디아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분홍빛으로 물든 전신을 비추는 거울로부터 고개를 돌린 그녀는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가 바닥에 점점이 떨어진 흰 액체를 마주하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직도 피부 위로 전류가 흐르는 듯했고 엉덩이와 배 속이 실컷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얼얼했다. 가시지 않은 절정의 잔향이 은은하게 남아 자꾸만 몸이 떨렸다.
나디아는 홀쭉한 배 위를 짚었다. 이윽고 그녀의 손은 에드윈의 커다란 손에 가려졌다.
그의 손끝이 악기를 연주하듯 나디아의 피부 위를 미끄러졌다. 나디아는 숨을 들이켰다. 몸이 에드윈의 품속으로 끌려 들어가 폭 안겼다.
말랑한 가슴을 움켜쥔 손은 뜨겁고 습했다. 진분홍빛으로 물든 유두를 꼬집는 손길에 움찔하고 몸이 튀었다. 나디아는 서둘러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만해요. 물이 다 식는데….”
“으음.”
대답을 하는지 마는지 모를 소리가 들렸다. 에드윈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선을 간지럽게 깨물었다.
“짜.”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디아는 있는 힘껏 그를 밀어내고 욕조를 향해 절뚝거리며 걸었다. 허벅지를 타고 무언가 줄줄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그녀가 세 번째 걸음을 딛기도 전에 몸이 번쩍 들렸다.
“뭐 어때서 그래? 나는 더할 텐데.”
무신경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지만 참을 수 없이 부끄럽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에드윈은 한참이나 방치되었던 욕조에 발을 들였다. 나디아를 안아 든 채 자리에 앉자 기분 좋을 만큼 미지근하게 식은 물에 몸이 잠겼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으로 물을 떠 몸에 끼얹었다. 땀범벅이 되었을 게 분명한 얼굴을 씻고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대충이나마 정리했다. 그사이 에드윈 역시 얼굴을 씻었는지 하얀 얼굴을 타고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의 것과 같이 붉게 부푼 입술이 곡선을 그렸다.
“싫지 않았는데 왜 운 거야?”
눈을 깜빡이며 물에 흠뻑 젖은 남자의 아름다운 얼굴을 올려다보던 나디아는 그의 질문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 뒤늦게 깨닫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기어코 그녀의 입으로 답을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
부끄러워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도망가곤 하던 습관을 고치려 노력 중이었으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건, 그… 창피하잖아요.”
“남들 앞에서 만진 게?”
에드윈이 저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할 수 없을 만한 이야기는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창피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그것 하나뿐이 아니었다. 나머지 이야기를 모조리 꺼내 놓으려니 입이 딱 달라붙은 것처럼 떨어지질 않았다.
나디아가 망설이느라 입술만 우물거리는 모습을 놓치지 않은 에드윈이 눈을 빛냈다. 그가 아주 은밀한 이야기를 하듯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붙였다.
“…아니면, 남들 앞에서 만져져서 느낀 게?”
나디아는 숨을 들이켰다. 눈치가 어쩌면 이렇게 빠른지 모를 일이었다.
그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그녀의 허리를 바짝 끌어당겨 몸을 밀착한 남자가 쿡쿡거리고 웃으며 뺨을 깨물었다. 나디아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이라도 어딘가 숨어 버리고 싶었다.
“귀엽긴.”
뺨에서부터 턱으로 그리고 목을 타고 쇄골까지 내려온 입술이 천천히 붉은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커다란 손이 양쪽 가슴을 움켜쥔 채 주물렀고 그의 입술이 붉게 부푼 정점을 삼키는 건 금방이었다. 순식간에 몸에 힘이 들어갔다.
나디아는 가늘게 신음하며 그의 머리를 붙잡았다. 아프지 않을 만큼 깨물고 핥고 빨아들이는 감각에 허리가 움찔거렸다.
“에드윈, 핫, 아으, 씻어야….”
“씻고 나서 더럽힐 수는 없잖아.”
반박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남자의 손이 허리를 붙잡고 끌어당겼다. 에드윈의 얼굴에 서린 정욕이 나디아를 다시 집어삼키려 했고 그녀는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 물이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또다시 시작된 격렬한 정사 후 기진맥진한 나디아를 손수 씻긴 에드윈은 그녀를 걷게 할 생각이 없는 듯 안아 들고 침대에 내려 주었다.
그 뒤에는 바쁘다며 옷을 입고 방을 떠나리라 생각했으나 예상과 달리 그는 침대 안으로 들어와 나디아에게 한쪽 팔을 내주었다. 서늘한 침대에 나란히 누운 두 사람은 얕은 잠에 빠져들었다.
먼저 깨어난 것은 나디아였다. 그녀는 에드윈의 팔을 베고 모로 누운 채 벗은 그의 가슴팍을 노려보았다.
몸은 나른했고 운동을 실컷 했을 때처럼 뻐근했다. 그의 품속에선 그녀와 같은 달짝지근한 향유 냄새가 났고 창밖에선 미지근한 바람과 함께 무르익은 오렌지 향이 밀려 들어왔다. 모든 것이 완벽했고 평화로웠으나 나디아의 마음은 또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얼굴을 조금 찌푸린 채 손바닥으로 아랫배를 문질렀다. 이번 달에는 속옷에 피가 비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데.
에드윈은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에 대해 그 어떤 감흥도 없는 듯 보였다. 은근슬쩍 물어보거나 재촉한 적도 없었다. 정말도 후계자에 관심이 없어서 그러는 건지, 그게 아니면 그녀에게 부담을 짊어 주기 싫어서 그러는 건지 쉬이 구분할 수 없었다.
나디아는 고개를 들고 잠들어 있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살며시 감긴 눈꺼풀에 매달린 금빛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윽고 그녀의 시선을 알아차린 것처럼 에드윈이 눈을 떴다. 미약하게 잠기운이 남아 있는 보랏빛 눈동자가 그녀를 응시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에드윈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직하게 물었다. 나디아는 아주 잠시 동안 맹렬하게 고민했다.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고 어느 쪽이냐고 물어야 할지, 혹시라도 지금 물어봤다가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건 아닐지.
멋대로 추측하는 것 역시 그녀의 나쁜 버릇이었지만 사람이 단시간에 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나디아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당연한 일이라는 듯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아 더욱 끌어당기는 손길이 좋았다.
그녀는 뺨에 닿는 가슴팍에서 들려오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의지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니 마음을 좀 더 느긋하게 먹는 수밖에 없지. 홀로 낸 결론을 납득하고 한쪽으로 밀어놓자 잊고 있던 노곤함이 찾아왔다.
몇 달간 마음을 졸인 탓인지 월경 없이 한 달이 지나갔다. 나디아는 침착하려 애썼다. 괜히 기대했다가 실망하면 안 되니까. 평소에도 주기가 굉장히 불규칙했으니 이번에도 그런 걸 테지. 그리 여기며 하루하루를 보냈으나 날이 갈수록 마음이 초조해졌다.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붙잡고 의사를 불러오라고 닦달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딱 한 번이었다고 해도 유산이 그녀의 몸에 어떤 씻을 수 없는 후유증을 남긴 것은 아닌지,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 사실을 숨긴 것은 아닌지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디아는 초조하게 테라스 근처를 거닐던 것을 멈추고 소파에 앉았다.
“이러다가 생겼던 아이도 떨어지겠어.”
한숨처럼 중얼거린 말에 급하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혼자 있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화들짝 놀라 소리가 들린 곳을 돌아보았다.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란 수잔이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아이요?”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게 만들어서야 곤란했다.
“안 생겼으니 호들갑 떨지 마.”
손을 내저으며 부정하자 기쁨이 차오르던 얼굴이 바로 시무룩해졌다. 나디아는 한숨을 내쉬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하녀들도 알게 모르게 그녀의 임신 소식이 들려오길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던 모양이었다. 그걸 깨닫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힐 만큼 부담스러웠다.
에드윈과 결혼하고 1년이 좀 넘었을 뿐이니 지나치게 조급해하는 셈이었지만 마음이라는 게 뜻대로 되었더라면 힘들 일도 없을 테지.
“너무 부담 가지지 마세요.”
뒤늦게 수습하려는 듯 어색하게 웃은 수잔이 다과를 내려놓으며 그리 말했다.
“회복하신 지 얼마나 됐다고요.”
“그렇지.”
나디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아이를 가졌을 때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잊기는 어려웠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아이 아버지가 누군지 고민하면서 벌벌 떨 필요도 없었고 아이를 낳지 않을 방법이 없을지 걱정하며 밤을 지새울 필요도 없었다. 그때는 그리도 달가웠던 유산이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 알았더라면….
나디아는 홀로 떠올린 생각을 털어 내듯 고개를 저었다. 그 아이를 낳았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순식간에 머릿속이 진탕이 되었다.
상황이 달라졌다고 해서 조금도 두렵지 않을 리는 없었다. 몸이 변하는 것도, 기분이 제멋대로 오락가락하는 것도 달가운 일이 아니었고 출산에 대한 공포는 더 심했다.
아이를 낳다 죽은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려왔고 몇 시간을 고통에 몸부림쳐야 한다던 이야기들은 겁에 질리기 딱 좋았다.
공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디아에게는 수단이 필요했다. 만에 하나 저에 대한 에드윈의 감정이 변하더라도 관계를 이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함부로 끊어 낼 수 없는 견고한 연결 고리가. 그렇게 생각하면 두려움도 참을 만했다.
아이. 여전히 낯설었지만 그래도 지금에 와서는 때때로 상상하게 됐다. 에드윈을 쏙 닮아 금발에 보라색 눈을 가진 아이가 품 안에서 꼬물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두려움 사이로 작은 기대감 같은 게 피어올랐다.
나디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에 대한 생각을 그만해야겠어. 그리 결심하고 의식적으로 다른 일들에 신경을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