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아실과 나디아는 몇 가지 암호만을 가지고 다른 대륙, 다른 나라의 낯선 땅 위를 떠돌았다. 바다를 건너고, 낮은 산을 넘고, 숲길을 지나는 동안 겨울은 점점 깊어 갔다.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푹신한 침대와 보드라운 이불도 없었고, 해가 중천에 뜨도록 늘어지게 자는 늦잠도 없었다.
식사는 거친 빵과 스튜, 버터 조금과 손톱만 한 치즈 몇 조각이라도 있으면 다행일 지경이었고 대체로 딱딱하게 마른 빵과 육포가 전부였다.
값비싼 향유와 꽃잎을 띄운 물로 목욕을 할 수도 없었다. 부드럽던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이기 시작했고, 손등은 거칠어졌고, 머리카락 끝이 갈라졌다. 나디아는 또다시 그 모든 것들을 꾹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이 여정이 사랑의 도피라도 되는 양 매사에 달콤하게 구는 아실에게 끌리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그녀가 도망갈 수 있게 계획을 세워 두고 정작 그 자신은 생사조차 확실치 않은 에드윈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이대로 안주하는 것도 괜찮지 않냐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속삭이는 유혹의 목소리 또한.
그녀와 아실의 관계를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에드윈은 이리될 걸 예상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어찌 되든 상관없다고 여겼던 걸까?
사흘간 노숙을 해 여기저기 쑤시지 않는 곳이 없는 몸을 겨우 발견한 허름한 여관 침대 위에 뉘인 날이었다. 나디아와 아실은 좁은 침대 양 끝에 떨어지지 않을 만큼만 거리를 벌려 누웠다.
방 안에는 타닥거리며 장작 타들어 가는 소리만 들렸다. 오랜만에 개운하게 목욕을 해 푹 잠들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지만 나디아는 그러지 못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고른 숨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는 울컥울컥 올라오는 울음을 참기 위해 애썼다.
막연하게 등 뒤를 쫓아오던 두려움이 쌓이고 쌓이다 흘러넘쳤다. 그들은 어디서부터 뻗어 오는지 모를 손을 피해 도망치는 중이었고, 아마도 이 모든 일의 원흉일 황제가 죽기 전까지는 단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왜 제가 노려지는지도 모른 채 발각될까 봐 두려워하며 사는 삶이 언제 끝이 날지, 과연 끝이 있긴 한 건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졌다.
나디아는 입술을 꾹 깨물고 이불을 코까지 끌어 올렸다. 그럼에도 멋대로 차오른 눈물은 이내 베갯잇을 적셨다. 그녀는 헐떡이는 소리를 참으려 숨까지 멈췄지만 어깨가 들썩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눈치채지 못한 사이 굵은 팔이 나디아의 허리를 감싸더니 끌어당겼다. 안착한 곳은 아실의 뜨거운 품속이었다. 정수리 위로 깃털 같은 입맞춤이 내려앉았고, 그의 손이 어린아이를 달래듯 나디아의 배 위를 부드럽게 토닥였다.
잠시 망설였던 나디아는 반대로 돌아누워 아실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야윈 몸을 끌어안는 팔은 든든했다.
조심스럽게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에 울음이 멎기는커녕 부추기기라도 한 것처럼,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실이 잠옷으로 입은 헐렁한 셔츠의 앞섶이 흠뻑 젖을 만큼 운 나디아는 한결 후련해진 기분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부드럽게 그녀를 응시하고 있는 녹색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등을 쓸던 손이 올라와 뺨에 남은 눈물 자국을 쓸고 젖은 속눈썹 아래를 훑었다.
약간 메말라 보이는 그의 입술이 다가와 그녀의 입술에 입 맞추었을 때, 나디아는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아실의 팔이 그녀의 몸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입맞춤은 깊어지지 않았다. 그저 위로를 하는 것처럼 입술의 얇은 표피만을 문지르는 간지러운 감각이 일다가 멎었다.
서로의 숨에 살짝 젖어 든 입술이 떨어져 나가고 그는 조금 불편하다고 느껴질 만큼 나디아의 몸을 품에 안았다. 그녀는 그의 넓은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거세게 뛰는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나디아는 그의 가슴을 밀어 눕히며 이불을 젖히고 일어났다. 아실이 의아해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이제껏 한 번도 한 적 없었던 대담한 행동을 실행에 옮겼다. 그녀는 반듯하게 누운 남자의 허리 위로 올라탔다.
허벅지 안쪽으로 단단한 근육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녀가 손을 댄 복부가 급하게 수축하고 커다란 손이 그녀의 팔뚝을 붙잡았다.
“귀부인.”
묘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나디아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망설임은 아실의 눈 속에 숨기지 못하고 드러난 격정을 마주하자 자취를 감추었다. 남자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후회하실 겁니다.”
그 말을 듣자 손끝이 멈칫했다. 지금 이 행동 역시 훗날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매 순간 나중의 후회를 걱정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지긋지긋했다.
“잊고 싶어.”
멎은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줄줄 흘러내렸다. ‘무서워’ 하고 울먹이며 중얼거린 말을 들은 아실의 얼굴 위로 어려 있던 망설임이 느리게 물러났다.
아실이 상체를 일으켰다. 허리를 꽉 끌어안는 팔 힘이 얼마나 강하던지 숨이 턱 막혔다. 나디아는 조금 당황스러워하며 아실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가 이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랫배가 맞닿고 몸이 꼭 맞춘 것처럼 그의 품에 끌어 안겼다.
“괜찮아. 이용해. 내가 잊게 해 줄게.”
입술이 달려들었다. 붉은 머리카락이 턱을 간질이고 높게 솟은 콧대가 뺨을 비껴 눌렀다. 입술이 맞물렸고 살짝 벌어진 점막 안쪽을 핥는 혀는 뜨겁게 달아오른 숨과 다르게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나디아는 그의 혀끝을 입술 사이에 물었다. 살며시 제 혀를 그 끝에 대고 문지르자 남자가 급하게 숨을 들이켜는 것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그의 혀가 밀려들자 입 안이 꽉 차 버렸다. 나디아는 흘러드는 타액을 삼키며 어설프게 아실의 혀를 빨았다.
짙은 입맞춤을 이어 가는 동안 남자의 커다란 손이 허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실린 숨길 수 없는 욕망을 느끼자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뱃속에 불이 붙은 것처럼 순식간에 몸이 달아올랐다.
나디아는 저도 모르게 그의 품에 가슴을 들이밀었다. 단단한 가슴팍에 짓눌린 가슴 끝에서 감질나는 감각이 일었다. 그녀는 제 팔꿈치를 가볍게 붙잡고 있던 아실의 손을 제 젖가슴 위로 이끌었다.
커다란 손이 예민해진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얇은 옷이 흘러내리고 드러난 어깨 위를 깨무는 감각이 선연했다.
“으응….”
나디아는 콧소리를 흘리며 아실의 목덜미에 입술을 비볐다. 그의 남성적인 체취를 가득 들이마시며 어설픈 손길로 단단한 몸 위를 더듬었다. 그녀의 가볍기 짝이 없는 손짓 한 번에도 격렬하게 반응하는 상대를 보는 것은 제법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지금 그녀가 처한 앞날이 불확실한 상황과 알고 있던 사람들의 생사를 알 수 없다는 두려움 따위를 잠시나마 잊기엔 충분했다.
단추를 몇 개 푸는 것만으로 헐렁한 옷이 허리 아래로 흘러내렸다. 아프지 않을 만큼 조심스럽게 나디아의 가슴을 주무르던 아실이 그녀의 가슴을 양손으로 모아 끌어 올렸다. 고개 숙인 그의 입술이 솟아오른 가슴 위로 경건하게 입을 맞추다가 강하게 빨아들였다.
새하얀 눈밭에 처음 생기는 발자국처럼 붉은 자국이 피부 위로 흩어졌다. 나디아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그 간지럽고도 달콤한 감각에 신음했다.
아실이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맛보는 동안 나디아는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그의 가슴팍을 더듬으며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드문드문 흉터가 새겨진 근육질의 몸이 벽난로에서 흘러나오는 주홍색 불빛 앞에 드러났다.
엉덩이 아래로 그의 것이 단단해지며 존재감을 피력하는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지금 그녀가 얼마나 대담한 짓을 벌이고 있는지 새삼스럽게 자각이 되었다. 예전이라면 상상조차도 못했을 행동이었지만 그녀도 이제 마냥 순진한 소녀가 아니었다.
나디아는 손을 들어 올려 그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단단한 근육이 손바닥 아래에서 꿈틀거렸다. 그녀의 손이 근육이 섬세하게 갈라진 복부를 감질날 만큼 느릿하게 쓰다듬으며 헐렁한 하의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가슴과 목덜미 위로 입 맞추던 그가 헉, 하며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 느껴졌다. 약간의 망설임을 떨쳐 낸 그녀는 이미 뜨겁게 열이 오른 살덩이를 조심스럽게 손안에 쥐었다.
그녀가 남자의 성기를 옷 밖으로 끄집어내 쓰다듬는 사이 아실이 다시 입 맞춰 왔다. 집요할 만큼 혀를 문지르고 입 안의 연약하고 예민한 부분들을 핥는 감각에 자꾸만 몸이 흠칫거리며 튀어 올랐다.
그의 크고 뜨거운 손이 어깨와 등의 뼈가 도드라진 부분과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를 쓰다듬으며 내려와 엉덩이를 콱 움켜쥐자 몸 깊은 곳에 고여 있던 액체가 울컥거리며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아래가 흠뻑 젖으며 허벅지까지 미끌미끌해졌다.
아실의 손이 엉덩이를 주무르다 이내 거침없이 다리 사이로 들어왔다. 그의 손은 덩치만큼이나 커서 한 손으로도 음부를 모두 덮었다.
손바닥의 우묵한 곳에 나디아가 흘린 애액이 흥건할 만큼 고였다. 열이 오른 귀끝이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아실은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손을 움직이고 그녀의 음부를 벌려 문질렀다.
그의 손이 부드러운 점막을 헤치고 들어왔다. 손끝이 음핵을 짓누르자 바들바들 떨면서도 애써 일으켜 세우고 있던 몸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나디아는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흐느끼듯 신음했다.
“앗, 아응. 그, 그거, 그렇게 하지, 읏….”
아실은 꼭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말은 아랑곳 않고 살짝 부풀어 오른 붉은 살점을 둥글게 문질렀다. 나디아는 그때마다 몇 번이고 허리를 떨며 튀어 오르다 짧고 강렬하게 다가온 절정에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