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다음 날, 나디아는 에드윈의 부름을 받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다.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걱정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피곤했지만 거절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기껏해야 집무실이나 그의 침실로 불려가 희롱을 당한다는 것 외의 상황은 떠오르지 않았던 탓에 앞장 선 하인을 따라가 도착한 곳이 마구간이었을 때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싹 마른 짚과 축축한 흙냄새, 그리고 조금은 쿰쿰한 짐승의 냄새가 풍겨 왔다. 그래도 잘 관리된 편이라 지저분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왜 이런 곳으로 불러냈는지에 대한 의문만 떠올랐다.
마구간지기들의 인사를 받고 돌아보니 저만치 에드윈이 말 앞에 서 있었다. 새하얀 몸에 커다란 담황색 얼룩을 두른 비교적 자그마한 말이었다. 그는 말의 갈기를 몇 번 쓰다듬더니 나이 든 하인에게 무어라 지시를 했다. 그러자 누군가 안장을 들고 와 말의 등 위에 얹기 시작했다.
“에드윈.”
“때맞춰 왔군.”
그는 여전히 말을 쓰다듬으며 인사했다. 그사이에 커다란 검은색 말 한 마리를 더 데려온 마구간지기가 그 말 위에도 안장을 얹었다. 에드윈은 조금의 지체도 없이 가벼이 흑마에 올랐다.
작은 말이 투레질을 했다. 나디아는 조금 당황했다. 마구간지기가 작은 말을 그녀의 곁으로 데려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흠칫 놀라며 몇 걸음 물러섰다.
“승마할 줄 아나?”
에드윈이 사색이 된 나디아를 내려다보더니 혀를 찼다.
“못 해? 알 만하군.”
갑자기 왜 승마 타령인지 모를 일이었다. 나디아는 지금껏 말 타는 법 정도는 몰라도 문제없이 잘 살아왔다.
게다가 수도에서는 귀족 여성이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 말에 오르는 것은 음탕한 일이라고 여겼다. 말이 뛸 때마다 몸이 들썩이거나 얼굴이 상기되고 숨이 차는 모습이 그렇다는 이유였다.
승마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말을 타는 법을 모르는 게 혀 차는 소리 따위를 들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반박하기도 전에 기가 죽었다. 그는 말에서 내리더니 나디아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직접 작은 말의 고삐를 쥐었다.
“순한 녀석이야. 친하게 지내도록 해. 개나 고양이와 다를 게 없다고. 훨씬 쓸모 있기도 하고.”
고삐를 살짝만 끌어당기는 것으로도 말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천천히 다가왔다. 나디아는 저도 모르게 에드윈의 팔을 쥐며 그의 뒤로 숨었다가, 말이 얌전히 있는 것을 보자 조금 안심했다.
그의 말대로 정말 순한 녀석이었다. 말은 그저 커다란 눈을 끔뻑이며 나디아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녀석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새하얀 속눈썹이 팔랑거렸다.
에드윈이 나디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얼떨결에 이끌려 굳은 손길로 말의 콧잔등을 쓸었다. 손바닥 아래로 짧은 털과 짐승의 온기가 느껴졌다.
나디아는 움츠리고 있던 손가락을 펴고 조심조심 말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걱정과 달리 말은 여전히 얌전하게 그녀의 손길을 받아 주고 있었다.
크고 검은 눈동자 위로 나디아의 모습이 비쳤다. 제법 아름다운 동물이라는 생각이 등줄기를 뻣뻣하게 만들던 긴장을 조금 풀어 주었다.
“내 아내라면 말 타는 법 정도는 배워 둬.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에드윈의 뒷말은 제법 의미심장했다. 나디아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손짓하자 하인들이 흑마의 등에 얹어 두었던 안장을 거둬 갔다.
말이 불만스럽게 발을 굴렀지만 에드윈이 매끈한 갈기를 쓰다듬으며 달래자 잦아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오늘은 넘어가는가 보다 하며 안심했던 나디아의 생각은 가까이 다가온 그가 갑작스레 그녀의 허리를 안아 들어 말 위로 올림으로 인해 가볍게 깨어졌다.
나디아는 가까스로 비명을 삼켰다. 말 위로 올라앉자 시야가 말도 안 되게 높아졌다. 놀라 크게 뜨인 눈이 에드윈의 것과 마주쳤다. 그는 그녀가 겁먹은 것이 즐거운 기색이었다. 나디아는 그가 손을 놓아 버리기라도 할까 봐 필사적으로 에드윈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렇게 긴장하면 떨어져.”
나디아는 새하얗게 질린 채 그에게 매달리기만 했다. 안장이 있다고는 하지만 다리에 닿는 짐승의 근육이 꿈틀거리는 느낌이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오른쪽 다리를 건너편으로 넘겨야지.”
“못 해, 못 해요…!”
나디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에드윈이 직접 그녀의 몸을 움직이며 앉는 자세를 잡아 준 덕분에 간신히 올바른 자세를 취할 수 있었지만 그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아서 자꾸만 몸이 앞으로 기울며 말의 등 위에 납작 엎드리고 싶어졌다.
에드윈은 고개를 내젓더니 그녀의 뒤로 올라탔다. 등 뒤로 그의 단단한 가슴팍이 닿았다. 에드윈은 나디아의 허리를 바짝 끌어당겨 저에게 기대게 만들더니 고삐를 쥐는 법과 방향을 바꾸는 법, 멈추는 법 등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긴장이 풀리지 않은 탓인지 머릿속에 반도 채 남지 않았다.
“손이 왜 이렇게 차?”
나디아의 손을 붙잡은 남자가 차게 식은 손등을 매만졌다.
“이렇게 무서워할 줄은 몰랐는데.”
에드윈의 말은 조금 곤란해하는 것처럼 들렸다. 두 사람은 말에 탄 채 고작 몇 걸음 걸었을 뿐이었다. 에드윈은 나디아가 쉬이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두려워하자 이내 말에서 내리고 그녀도 내려 주었다.
나디아는 땅에 발을 딛자 순간적으로 속이 울렁이기까지 했다. 휘청이는 나디아를 받아 안으며 들으라는 듯 한숨을 쉰 에드윈이 신랄한 어조로 그녀를 탓하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바쁜지 모르는 게 아닐 텐데. 귀한 시간을 내서 가르쳐 주려 하면 따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미, 미안해요….”
그는 잔뜩 굳은 얼굴로 나디아를 내려다보았다. 에드윈의 얼굴은 화가 난 것 같기도 했고 조금 당황한 것 같기도 했다.
나디아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제 옷자락을 매만지는 것을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던 남자는 고문하듯 제 입술을 질근질근 씹다가 내일은 좀 다르길 바란다고 말한 뒤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무슨 바람이 들어서 승마를 가르쳐 주겠다며 나서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애초에 그녀가 가르쳐 달라 한 것도 아니고 자기 멋대로 가르쳐 주겠다며 불러내 놓고 짜증이라니.
에드윈은 여전히 멋대로였다. 한 번 죽을 뻔했어도 사람의 성격이 쉬이 바뀌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나디아는 그를 걱정했던 순간이 아깝게 여겨졌다.
그녀가 볼썽사납게 굳어 있던 것을 얌전히 참아 준 말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나마 쓰다듬어 준 나디아는 허둥지둥 방으로 돌아왔다.
벌써부터 내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말을 타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가 실수할 때마다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심한 말을 할 에드윈도 두려웠다.
적어도 내일까지는 그를 보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디아가 안심했지만 그 생각은 잠들기 직전에 깨어졌다.
그녀가 슬슬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을 때쯤 찾아온 에드윈은 내일도 오늘처럼 덜덜 떨기만 할 수는 없으니 예습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영문 모를 소리를 지껄이더니 다짜고짜 나디아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가 입 맞추더니 불쑥 입 안으로 혀가 파고들었다. 꽤 오랜만이었던 탓인지 갑작스러운 접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뱃속에 불이 붙었다. 기대감에 가슴이 뭉치고 단단해진 유두 끝을 쥐어 비트는 손길에 어깨가 튀어 오르며 숨이 터져 나왔다.
에드윈은 나디아의 입 안을 휘저으며 제 옷을 벗어 던졌다. 아무렇게나 구겨진 옷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디아는 희미한 주홍색 불빛 아래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흉터를 발견했다. 완전히 아물어 옅은 갈색이 된 흉터는 참혹했던 상처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 주듯이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매끈했던 그의 허리 한쪽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반적인 자상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갈기갈기 찢어진 자국들.
나디아는 망설이다 손을 뻗었다. 그녀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흉터 위를 스치듯 쓸었다. 이미 다 아물었다지만 함부로 만지면 아플까 봐. 에드윈의 시선이 나디아의 손끝을 좇았다.
‘이젠 아프지 않아요?’
나디아는 질문을 삼켰다. 몸의 상처가 아물었을지는 몰라도 다른 곳에 남은 상처가 그를 괴롭힐 것이다. 자존심 같은.
에드윈이 나디아의 손을 잡아 깍지를 껴 왔다. 처음으로 뺨에 닿는 그의 시선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잠깐의 변덕이겠지만 그 미약하기 짝이 없는 온기가 기꺼워서 그녀는 먼저 안겨 들었다.
그는 제법 다정스러운 손길로 이젠 제법 부풀어 오른 그녀의 배를 어루만지고 이전보다 훨씬 커진 가슴을 주무르며 애무했다.
귓가를 핥는 혀가 연한 살을 척척하게 적시며 뭉클하게 문지르는 감각에 그녀는 온몸의 솜털이 곤두설 만큼 느꼈다. 아래가 미끈거릴 만큼 젖은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에드윈은 모른 척 넘어가질 않았다.
“자지가 그리웠나?”
“그, 그런….”
“아주 흠뻑 젖었는데, 혼자 만져 보진 않았고?”
그는 천박한 말을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에드윈은 제 손으로 반쯤 일어선 것을 문질러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마주 보고 앉은 자세로 파고 들어왔다. 아래가 벌어지며 성기가 파고드는 느낌은 몇 번을 겪어도 버겁기만 했다.
에드윈은 느릿하게, 하지만 나디아의 안에 자신을 모두 욱여넣은 다음에야 허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그녀의 골반께에 희미하게 붉은 손자국이 남았다.
“하아….”
둘의 하체가 틈 없이 맞붙었다. 맞닿은 살갗이 뜨겁고 미끈거렸다. 나디아는 삽입 행위만으로도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배 속이 저절로 조여들었다가 풀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얼마나 예민해졌는지 내벽을 조였다 푸는 것만으로도 안에 품고 있는 성기에 일어난 핏줄의 요철마저 느껴졌다. 먼저 참을 수 없게 된 건 그녀였다.
“음, 으응… 흣, 으읏… 응, 읏.”
나디아는 어설프게 허리를 들썩였다. 허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내릴 때마다 아래쪽으로 반짝거리는 액체에 뒤덮인 검붉은 성기가 드러났다 삼켜지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절로 얼굴이 붉어질 만큼 음란한 광경이었지만,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다리에 힘에 풀린 나디아가 저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체중 때문에 순식간에 깊숙이 파고든 성기가 자궁 근처를 짓눌렀다.
나디아는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 절로 고개가 젖혀지고 몸이 경련했다. 절정이었다.
나디아가 절정의 여파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에드윈이 그녀의 허리를 낚아채고는 아래에서부터 급하게 쳐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
절정이 멎기는커녕 치솟기만 했다. 어디까지 치달을지 알 수 없을 만큼 자꾸만 올라가는 감각을 더는 버틸 수 없어 벗어나려 몸부림쳤지만, 그의 강인한 팔에 붙잡혀 그럴 수 없었다.
에드윈은 아예 침대에 반쯤 드러누운 채로 나디아의 허리를 붙잡고 아래에서 위로 쳐올리기 시작했다. 아래에서 퍽퍽 소리가 날 만큼 거칠게 파고 들어오는 성기가 배 속을 함부로 때렸다.
그녀의 의지와 관계없이 흘러나온 눈물이 속눈썹을 흠뻑 적시고도 모자라 줄줄 흘러내렸다. 그의 성기가 내벽을 벌리고 들어와 안쪽 깊숙한 곳을 치고 예민한 점막을 문지르며 다시 빠져나갈 때마다 번개가 내려치듯 강렬한 쾌감이 그녀의 손끝과 발끝까지 저리게 만들었다.
나디아가 간신히 앞으로 엎어지지 않고 버티는 내내 에드윈은 말을 탈 때는 리듬이 있어야 한다며 그녀의 허리를 위아래로 흔들고 허벅지에 힘을 줘서 더 조여야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등 가르침을 빙자한 음담을 속삭여 댔다.
그러나 그 말들의 대부분은 나디아의 머릿속까지 제대로 닿지 못했다. 그녀는 간헐적으로 몰아치는 절정에 울거나 헐떡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에드윈의 어깨를 부여잡고 있던 손이 미끄러지며 흰 피부 위로 붉은 손톱자국을 남겼다.
모든 일이 끝난 이후에 그녀는 너무 지쳐 버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에드윈의 부추김으로 인해 그의 허리에 꽉 매달렸던 허벅지 안쪽은 근육이 뭉친 듯 뻐근했고 배 속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둔통과 쾌감의 잔재가 몸을 나른하게 만들고 있었다.
모로 누운 채 늘어진 그녀의 등 뒤로 에드윈이 몸을 붙여 왔다. 땀에 젖어 미끈한 가슴팍이 등에 달라붙고 굵은 팔이 허리를 끌어안자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의 품에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