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그는 몇 번인가 달래는 시늉을 하다가 나디아가 울음을 멈추지 않자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나디아는 조금이라도 빨리 모든 것이 끝나길 바라고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에드윈은 쉽게 끝내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가 손을 뻗어 나디아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일으켜 세웠다. 마구잡이로 아래를 들쑤시던 성기가 빠져나가고 무엇인지 모를 액체에 젖어 번들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도 전에 몸이 돌아갔다.
흐릿한 시야로 고개를 숙인 채 살짝만 건드려도 폭발할 듯이 긴장하고 있는 붉은 머리의 남자가 선명히 보였다. 나디아는 급하게 숨을 들이켜며 허리를 뒤틀었다. 에드윈에게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보고자 한 행동이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디아를 자신의 앞에 앉힌 에드윈이 억세게 그녀의 다리를 잡아 벌렸다. 다리를 오므리려는 나디아의 힘은 어린아이의 것만도 못했다.
축축하게 젖어 충혈된 음부가 여과 없이 드러났다. 나디아는 묶인 손으로 그곳을 가려 보려 애쓰며 흐느꼈다.
“에드윈… 에드윈, 제발….”
그가 천박하다 느껴질 만큼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왜? 얼른 넣어 줘?”
여전히 단단하게 서 있는 성기로 음부를 함부로 문지르다 손으로 살짝 누르며 다시 삽입해 왔다. 뜨거운 살덩이가 쑤욱 파고 들어왔다. 나디아는 또 입술을 깨물었다.
상처가 난 자리가 따끔거렸지만 작은 고통은 이내 사라졌다. 에드윈이 다시 추삽질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세가 바뀐 탓인지 그의 성기는 이전보다 더욱 깊숙하게 파고 들어왔다.
에드윈이 그녀의 몸을 한껏 내리누를 때면 그의 성기가 자궁을 뚫고 들어가기라도 할까 봐 겁에 질려야 했다. 잇자국이 나도록 입술을 깨문 것도 소용없게 힉, 힉, 하는 숨소리가 샜다.
“깊, 아앗, 너무… 으응, 너무 깊, 힛!”
그가 양 허벅지를 강하게 움켜쥔 채 허리를 거세게 뒤흔들자 창백하고 가느다란 다리가 허공에서 마냥 흔들렸다. 접합부에서 철퍽철퍽하는 소리와 함께 성기가 드나들었고 등 뒤로 에드윈의 단단한 가슴팍이 스쳤다.
잦아들었던 쾌감이 다시 피어올랐다. 에드윈이 그녀의 귓가에 자꾸만 음란한 말을 속삭였다.
“좋아? 보지 쑤셔 주니까?”
귀를 막거나 그게 아니라면 에드윈의 입이라도 틀어막고 싶었지만 둘 다 할 수 없었다.
“하아, 쑤셔 주기만 하면 누구라도 상관없지? 나, 없는 동안은 붙여 준 기사들이랑, 읏, 붙어먹었어?”
나디아는 그저 고개를 젓기만 했다. 평소에는 또 시작이구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만한 음담패설도 바로 앞에 아실을 세워 두고 들으니 끔찍했다.
그녀는 새삼스레 화들짝 놀랐다. 여전히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 아실이 버티고 서 있었다. 에드윈의 입에서 나가도 좋다는 말이 떨어지기 전에는 언제까지고 그리 서 있을 테지.
“쿠르쉬드, 고개 들어. 왜? 지금은 보기 싫은가?”
보게 해 줄 때 봐야지. 부드러운 말투를 가장했지만 그 말이 명령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힘 따위는 두 사람 모두에게 없었으므로, 나디아는 아실을 탓할 수도 없었다.
발치를 배회하던 시선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짙게 가라앉은 그의 눈빛은 일견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나디아는 알 수 있었다. 이를 악문 듯, 바짝 굳어진 턱 근육과 고통이 배어나는 눈빛과 당장 휘두르고 싶다는 듯이 꽉 쥐어진 주먹 사이로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그의 시선이 나디아를 향했다가 에드윈을 바라보더니 아래로 향했다. 추잡한 소리를 내며 성기가 들락거리는 접합부에 찰나 머물렀던 시선이 추락했다. 기어코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에드윈은 그것으로 만족했는지 더는 고개를 들라며 닦달하지 않았다.
에드윈은 기어코 아실을 세워 둔 채 나디아의 안에 사정했다. 그녀는 한껏 달아오른 점막 안이 정액으로 젖어 드는 희미한 감각을 느끼며 절정과 굴욕감에 몸을 떨었다.
길게 늘어지는 교성에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던 아실은 아직도 에드윈의 것이 틀어박혀 있는 접합부로 흰 액체가 새어 나오는 것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육중한 나무 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혔지만 그것은 에드윈의 즐거워하는 웃음소리에 묻혔다.
며칠 남지도 않았던 바캉스는 엉망이 되었다. 평소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낮잠을 자고, 해변을 걸었지만 그 모든 일정에 에드윈이 함께하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상한 태도였지만 나디아는 그렇게 대할 수가 없었다. 그와 손끝이라도 스칠 때면 몸이 저도 모르게 흠칫흠칫 튀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에드윈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은 아실과 마주치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아직 그를 볼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디아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가시방석과도 같았던 바캉스가 끝나고 성으로 돌아가면서 나디아는 한시름 놓았다. 그 넓은 엘란츠 성에서는 며칠 내내 얼굴 한 번 못 보는 일도 잦았으니 홀로 있을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디아는 방에 틀어박힌 채 생각을 거듭했다. 몇십 년이 될지 모를 앞으로 남은 삶 동안 그녀는 에드윈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함부로 장담할 수 없었다. 본디 주어진 몫이니 감당해야 하겠지만 겁이 났다.
그녀는 깊게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변명과도 같은 말을 읊조렸다. 나는 원한 적 없어.
멀찍이서 희미하게 걸걸한 기합 소리가 들렸다. 최근 들어 병사들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느끼고 있긴 했다. 외부인이 많으니 혼자서 돌아다니지 말라고 던지듯 말하던 에드윈이 떠올랐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뒤이어 생각나는 귀족들의 대화가 있었다. 용병을 고용하니 어쩌니 하던, 제법 심각해 보이던 목소리들이. 그러고 보니 기사라고 보기엔 어려운 행동거지의 사내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의아하게 여겼던 적이 있기에 쉬이 납득했다.
용병이라 추측되는 그네들은 갑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채 성안을 어슬렁어슬렁 휘젓고 다니거나 지나다니는 하녀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저들끼리 시비가 붙어 쌈박질을 하는 등 성의 분위기를 어지럽게 하는 데 크게 한몫하고 있었다.
평민일 뿐이지 기사와 그리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 막연하게 상상하던 나디아에게는 놀랍기만 한 일이었다. 그녀의 눈에 용병들은 그저 무뢰배로만 보였다.
“너는 뭐 들은 거 없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찻잔에 차를 따르던 수잔이 부자연스러울 만치 깜짝 놀라 찻물이 튀었다.
“죄, 죄송해요, 마님.”
“조심하지 않고선.”
수잔이 허둥지둥 찻물이 튄 테이블보를 거두는 것을 지켜보던 나디아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얘, 내 말 못 들었니?”
“네, 네? 뭐라고 하셨어요?”
“용병들 말이야. 언제 떠날지 들은 게 있냐고 물었어.”
“그게… 저는 잘….”
주근깨가 가득한 자그마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디아는 관대한 주인이었으므로 하녀가 말을 한 번 못 알아들었다고 해서 가혹한 벌을 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방금 전 실수는 싹싹하게 맡은 일은 잘 해내던 수잔답지 않은 태도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간 내내 그랬다. 꼭 어딘가 정신을 빼놓은 것처럼.
깨닫는 것이 늦었던 이유는 생각이 복잡했기에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나디아는 제법 다정하게 수잔의 앳된 뺨을 쓸어 주었다.
“무슨 일 있니? 안색이 창백해.”
그녀는 머뭇거리는 아이에게 평소라면 궁금해하지도 않았을 거면서 고민을 털어놓으라 종용했다. 조금이라도 다른 것에 신경을 쏟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몇 번이고 아무것도 아니라며 얼버무리던 수잔은 다정함을 가장한 나디아가 몇 번이고 캐묻자 기어코 울먹이기 시작했다.
“으흑… 흑… 다, 달거리가 안 와요….”
수잔이 털어놓는 자초지종은 우려했던 일이었다.
용병들이 어리고 세상물정 모르는 하녀들을 꿰어내 감언이설로 속여 밤을 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자기가 하녀들을 잘 단속시킬 것이라 말하던 밀라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분명 신신당부를 하였을 터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잔이 그 당부를 어겼을 줄이야. 나디아는 당혹한 낯으로 수잔을 바라보다 서둘러 일어났다.
“그래서 그 놈팡이가 널 책임지겠다고 하던?”
“아뇨, …만나 주지도 않아요.”
나디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똘똘하다고 생각했건만 이런 짓을 저지를 줄이야.
“너 설마 낳을 생각인 건 아니겠지?”
수잔이 숨넘어갈 듯이 놀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밀라한테 말을 해 둬야 할지, 에드윈을 찾아가 한소리 해야 할지를 두고 저울질을 하던 나디아는 하녀를 데리고 문을 나섰다. 도와줄 만한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눈물을 적당히 수습한 어린 하녀가 조금은 겁먹은 낯을 한 채 얌전히 따라왔다.
“타샤!”
기별도 없이 찾아간 거였지만 마법사는 다행히도 제 연구실에 있었다. 시종일관 불안한 낯으로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는 하녀를 달고 왔는데도 그녀는 표정 없는 얼굴로 무슨 일이냐 물어올 따름이었다.
나디아는 타샤가 안내해 준 자그마한 의자에 앉았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아이를 지우는 약도 만들 수 있어요?”
옆에서 자그마하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수잔이 저를 감추고 싶기라도 한 듯, 나디아의 뒤로 와서 섰다. 무슨 말을 해도 무표정할 것 같았던 마법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시선이 수잔과 나디아 사이를 배회했다.
나디아는 그제야 제 말이 어떤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잠시 당황했다가 조금 침울해졌다. 애써 잊으려 했던 배 속의 아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무리 누구의 아이인지 알 수 없다고 해도 아이를 지울 수는 없었다. 그동안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마음 졸여야 하는 걸 생각하면 굉장히 유혹적이기는 했지만 그녀의 양심과 후폭풍에 대한 불안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속삭였던 것처럼 에드윈의 아이이길 바라는 수밖에. 나디아는 손을 내저었다. 그런 다음에야 마법사는 급하게 표정을 수습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약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