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변덕스러운 에드윈이 그날의 의심을 모두 지웠을 거라는 생각은 그녀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바로 그날 밤이었다. 오랜만에 나란히 앉아 식사를 끝낸 두 사람은 꽃잎과 거품을 가득 채운 욕조에서 함께 목욕을 했다.
잔뜩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목욕은 손장난 한 번 하지 않고 조용히 끝난 탓에 나디아는 뒤늦게 긴장을 풀었다. 엘란츠 성에서 랑카드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으니 피곤하기도 하겠지. 오늘은 얌전히 잠만 잘지도 모르겠다.
방 안에는 적은 수의 램프가 켜져 은은한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에드윈은 잠시 나갔다 들어오나 싶더니 침대 옆의 테이블에 술병을 하나 꺼내 놓았다. 그가 마시려 하는가 했으나 술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침대로 다가와 앉더니 나디아를 제 무릎 위로 끌어당겼다.
예상과 달리 그는 그리 피곤해하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노릇이었다.
입술이 맞물리고 그가 아주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을 핥아 왔다. 그녀의 가운을 벗겨 내는 손길이 어찌나 부드럽고 다정한지 나디아의 머릿속으로 왜 이러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평소에도 그리 거칠지는 않았지만 그저 상대가 녹진하게 젖어 있는 것을 좋아해서 애무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는데, 오늘은 마치 과시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방 안에는 그들 외에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으응….”
평소보다 이르게 삽입이 시작되었다. 멍한 머리로 급한가 보다 생각했던 그녀는 아주 느릿하게 푹 젖은 내부를 문지르며 파고 들어오는 성기의 감각에 애가 타서 매달렸다.
그는 웃으면서 애액이 흘러내려 미끈미끈하게 젖은 엉덩이를 주물러 댔다. 이윽고 그의 것이 끝까지 들어와 배 속을 가득 채우고 통통한 음핵이 그의 치골에 눌릴 지경이 되자 나디아의 입술을 타고 저도 모르게 만족스러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녀의 위로 드리운 단단한 몸의 무게감이 기분 좋았다. 그의 어깨에 대충 걸쳐져 있던 가운 자락이 커튼처럼 늘어져 허벅지 안쪽을 간지럽게 쓸었다.
에드윈이 느릿하게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젖가슴이 쓸리며 유두가 곤두섰다.
나디아는 그의 것을 한가득 품고 있는 제 배 속이 그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조여들었다 풀어내는 움직임을 반복하는 것을 느꼈다. 그때마다 간지러운 듯, 애가 타는 감각이 피어올랐다.
나디아는 그의 어깨를 끌어안고 허리를 들썩였다. 그녀의 말 없는 재촉에 그가 다시 허릿짓을 하기 시작했다. 쾌감이 부드럽게 출렁출렁 밀려들었다. 나디아는 반쯤 눈을 감은 채 앓듯이 신음했다.
귓가로 에드윈의 숨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그는 그녀의 목 위로 입술을 떨어트리더니 수를 놓듯이 잔 키스를 이어 갔다.
“들어와.”
에드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디아는 몽롱한 머리로 한 박자 늦게 그의 말을 이해하고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오라니?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라도 했던가?
기억을 되짚어 보자 희미하게 노크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이 시간에 부부가 있는 방으로 아랫것들이 들어오려 했던 적은 없었는데. 나디아가 당황을 감추기도 전에 문이 작은 소리를 내며 열렸다.
침대는 휘장도 내리지 않아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그들의 모습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디아는 비명을 지르며 에드윈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그리하면 제 몸을 숨길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둑한 와중에 키가 훌쩍 큰 남자가 들어오다가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멈칫했다.
“뭐 해? 들어오래도.”
태연하게 손짓하는 그를 올려다보며 나디아는 울먹였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일까?
“에, 에드윈, 뭐 하는 거예요…?”
나디아는 에드윈을 팔을 붙잡으며 물었지만 그는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이 그녀를 내려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나, 나가라고 해요. 아읏!”
그의 짙은 보랏빛 눈동자 안쪽으로 잔인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잠시 멈춰 있던 움직임이 재개되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신음하며 그의 아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에드윈은 눈 하나 깜짝 않고 반복적으로 파고들 뿐이었고, 남자는 한참을 망설이다 에드윈이 다시 한번 재촉하자 다가오기 시작했다.
팔을 들어 가슴을 가려 보려 애쓰다가 얼굴을 밀어내고 가슴팍을 긁어도 조금도 개의치 않던 그는 결국 나디아의 몸부림이 잦아들 기미가 안 보이자 가느다란 손목을 한 손에 쥐고는 얇은 실크 가운을 이용해 묶어 버렸다.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로 고개를 젓던 그녀는 테이블 앞까지 다가온 커다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가라앉은 녹색 눈이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디아는 눈을 크게 떴다.
이러려고 그를 데려온 걸까. 바로 몇 분 전까지 나른한 쾌감에 젖어 에드윈에게 매달려 울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충격으로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렸다.
믿을 수가 없었다. 아실의 앞에서 에드윈과 몸을 섞는 것을 낱낱이 드러내야 한다니.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눈물과 함께 원망까지 솟아올랐다.
“보지 마, 앗, 안… 안 돼, 보지… 흣.”
아까 전, 나갔다가 들어온 것은 그를 부르기 위함이었을까? 나디아의 머릿속으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오기 시작하자 그것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처럼 에드윈의 움직임이 격렬해졌다.
나디아는 피가 날 만큼 입술을 깨물며 소리를 참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반항이었다.
가릴 만한 것 없이 훤하게 드러난 접합부로 에드윈의 것이 드나들며 질척이는 음란한 소리가 선명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녀의 비참한 기분과 상관없이 그의 성기가 내부를 비비며 들어올 때마다 배 속이 꽉 조여들며 쾌감이 진해졌다.
“각하.”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아실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고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나디아는 흔들리는 시야로 그가 손이 새하얗게 질릴 만큼 주먹을 쥐었다가 펴는 것을 보았다.
“…시키실 일이 없으시다면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하아, 나가라고 한, 적 없는데? 거기 앉아. 술이라도 마시든가.”
“각하.”
뻔뻔하게 웃는 에드윈의 얼굴 위로 땀방울이 굴러떨어졌다. 그가 새빨갛게 물든 입술을 핥으며 평소 가벼운 장난을 칠 때처럼 짓궂게 웃었다.
“내가 쌀 때까지, 거기서 지켜보면 돼.”
보기 좋게 그을렸다고 생각한 아실의 얼굴이 누가 봐도 알 수 있으리만치 창백해졌다. 무언가를 억누르듯, 앙다문 턱 근육을 따라 난 흉터 자국까지 꿈틀거렸다. 이 자리에서 멀쩡한 얼굴로 웃는 사람은 에드윈뿐이었다. 그 역시 마냥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디아는 쉴 새 없이 울컥대며 올라오는 서러운 울음을 그대로 토해 냈다간 아실의 귓가로 참아 내지 못한 신음 한 올이라도 새어 들어갈까 봐 필사적으로 참았다.
이토록 몸이 부들부들 떨릴 만큼 충격적인 상황에서도 그가 파고드는 대로 착실하게 쾌감을 느끼는 몸이 비참했다. 한껏 달아올라 연한 분홍빛으로 물든 살결과 뾰족하게 서 있는 유두 그리고 쉴 새 없이 애액을 흘려 대는 아래까지.
뺨이 눈물로 흠뻑 젖었다. 울음과 신음을 참느라 목울대가 쉴 새 없이 꿀렁거리고 숨이 할딱할딱 차올랐다. 입술 사이로 약한 피 냄새와 함께 짠기가 스며들었다.
석상처럼 선 남자가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에드윈은 은밀한 행위를 하는 공간에 타인이 있다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그걸 신경 쓰는 건 아실과 나디아뿐인 듯했다.
아니, 에드윈도 신경 쓰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아실을 불러 이런 꼴을 보게 한 것이겠지.
그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모든 걸 알지는 못해도 아실이 숨기지 못하고 흘려버린 감정을 알아차린 거겠지. 그리고 이런 식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너는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있다고.
그녀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피가 나잖아.”
숨소리가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에드윈이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앙다문 입술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약하게 짠기가 머문 손끝이 억지로 입 안으로 파고 들어와 혀를 문질렀다.
말은 상처가 나는 것을 걱정하는 척하고 있었지만 그의 손가락이 파고들며 억지로 입을 벌리게 하자 간신히 참고 있던 신음 소리가 여과 없이 새어 나왔다.
“시, 러, 싫… 웁, 읏, 시….”
에드윈이 자유로운 한 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손자국이 남을 만큼 함부로 주무르고 유두를 튕겨 댔다.
쇄골을 잇자국이 나도록 깨물던 그의 입술이 올라와 나디아의 입술 위를 문질렀다. 그가 손가락을 물어 다 다물어지지 않는 입술 위에 제 입술을 대고는 혀로 할짝거렸다.
이상한 감각이었다. 그의 가느다란 손가락과 혀가 함께 그녀의 혀를 문질러 댔다. 나디아는 울고 헐떡이고 신음하면서 그가 주는 모든 감각을 속절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는 내내 아실이 옆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단 한시도 잊을 수가 없었다.
나디아는 내내 눈을 질끈 감은 채 버텼다. 침대 밖으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지 않으면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는 것처럼. 그녀에게는 에드윈을 멈춰 세울 힘이 없었고, 그것은 아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실의 손이 몇 번이나 검집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것을 목격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검을 뽑지 못했다. 그를 위해서도, 그녀를 위해서도 옳은 선택이었다.
에드윈이 흠뻑 젖은 나디아의 뺨을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었다.
“왜 그렇게 울어? 내가 나쁜 짓을 한 것 같잖아.”
거친 숨이 귓가로 은근하게 스며들었다. 가증스럽다고 느껴질 만큼 달콤한 목소리였다. 한순간이라도 그를 다정하다 여겼던 스스로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멍청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