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그녀는 뻣뻣하게 굳은 채 그 파렴치하고도 음란한 광경을 코앞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가슴을 함부로 찔러 대던 흉악한 성기가 붉게 충혈된 젖꼭지에 스칠 때마다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 반짝했다가 스러졌다.
나디아는 제가 이런 난잡한 행위에 느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참으면 끝날 것이다.
가슴 안쪽이 붉게 달아오를 만치 문질러 대던 그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싶더니 이내 그가 낮은 신음과 함께 정액을 쏟아 냈다. 궤적을 그리며 나디아의 가슴 위로 흩어진 정액이 느른하게 가슴골 사이로 흘러내렸다.
비릿한 냄새가 훅 끼쳤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듯이 성기를 훑던 그가 성기 끝을 그녀의 가슴에 문지르며 닦더니 느긋한 손놀림으로 바지춤을 갈무리했다.
그때까지도 나디아는 충격으로 굳어 있었다. 그가 유두를 꼬집으며 그게 손잡이라도 된다는 양 젖가슴을 벌려 정액이 배 아래로 흘러 들어가는 꼴을 구경했다.
“오늘 이 꼴만 마음에 드는군. 넌 정액이 잘 어울려.”
에드윈은 낄낄거리며 드레스를 끌어 올려 주었다. 가슴을 넣고 끈을 묶어 주는 손길은 짐짓 다정했지만 조금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드레스 안쪽은 축축했고 가슴 위쪽에 뿌려졌던 정액은 가려지지도 않은 채 번들거렸다.
그는 볼일이 끝났으니 가 보라며 나디아를 일으키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말끔한 신색으로 깃펜을 잡았다. 망연히 그 손끝을 바라보던 나디아는 주춤거리며 몸을 돌렸다. 또, 또 이런 기분이었다. 마치 창부가 된 듯한.
그녀가 비틀거리며 커다란 마호가니 문 앞에 섰을 때 에드윈이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이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나디아는 모른 척하지 못하고 돌아보았다.
“구음 연습을 좀 하는 게 좋겠어. 너무 형편없어서 섰던 것도 다시 죽을 판이던데, 다음에도 이러면 기사단을 돌며 연습하게 해 줄게. 연습 대상은 많으니까.”
“…노, 농담이죠?”
묻는 그녀의 입술이 달달 떨렸다. 그럴 리가. 그렇게까지 할 리가. 이제껏 몇 번이고 배신당한 부정이 다시 떠올랐다.
울지 않겠다며 참았던 것이 무색하게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러자 걷잡을 수 없어졌다. 속눈썹이 흠뻑 젖고 가슴이 들썩였다. 나디아는 여차하면 그의 발밑에 매달리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남편이 씩 웃었다.
“농담이야. 순진하긴.”
농담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진정되지 않았다. 나디아는 울음을 삼키며 돌아섰다. 그가 무어라 더 말하려는 기색이었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얼굴이 흠뻑 젖을 만큼 울며 방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아무도 마주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우는 모습이든 정액투성이인 모습이든, 누구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기는 매한가지였다. 지금은 그저 혼자 있고 싶었다.
***
여름이 훌쩍 가까워졌다. 날은 점점 더 더워졌고 사람들의 옷차림은 더더욱 가벼워졌다.
엘하임은 이국의 옷차림이 유행이었다. 겹겹이 둘러 풍성하게 부풀린 치마와 꽉 조인 코르셋 대신 하늘하늘한 천 한 장을 반으로 접어 머리를 뺄 구멍을 뚫고는 허리띠로 조여 맨 단순하고도 파격적인 차림새였다.
스톨라라고 부르는 가벼운 드레스는 어깨에 망토를 매달거나 허리춤에 다른 색 천을 더 늘어트리는 것이 전부인 단출한 옷차림이었다.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스타일에 나디아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수도를 벗어난 적 없었던 그녀에게는 너무도 외설적으로 느껴졌던지라 난색을 표하며 손을 내저었지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자 상체를 꽉 조인 코르셋은 숨을 턱턱 막히게 했고 바람 한 줄기 새어 들어오지 않는 치렁치렁한 드레스 안으로 불쾌하게 땀이 찼다.
결국 그녀는 하녀들이 내밀었던 옷을 받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아래가 휑하니 빈 느낌은 생소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걸 감내할 가치가 있을 만큼 시원했다. 이런 옷이 유행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풍성한 페티코트도, 가터벨트와 허벅지까지 오는 스타킹과 굽 높은 구두도 필요 없었다. 옆이 길게 트인 치마 안으로 바람이 술술 불어 들어오고 걸을 때마다 치맛단이 다리에 감겼지만 그 모든 낯선 감각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저택은 강이 바로 옆에 있어서 사시사철 강바람이 불었는데. 발코니의 넓은 창틀에 걸터앉아 냉기를 머금은 강바람을 맞으면 더위도 한풀 꺾이는 듯하였다.
그녀가 엘하임에서 지낸 지도 한 달이 훌쩍 넘었다. 나디아는 수도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 흠뻑 빠졌다. 그리고 낯설었던 도시에 적응한 만큼 제 괴짜 남편에게도 조금쯤 적응할 수 있게 된 것도 같았다.
지난 몇 주 동안 에드윈과의 잠자리가 몇 번쯤 더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고약한 말버릇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것도 반복되자 나디아는 조금이나마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지켜본 바 그가 그녀에게 지껄이는 막말의 대부분은 딱히 악의를 품고 있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말의 내용이 고약하기로는 누구도 따를 수 없겠지만 그는 꼭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인 것 같았다.
날 때부터 개새끼인 사람도 있는 법이지. 몇 주 전이었으면 듣는 것만으로 기절초풍했을 만한 단어를 떠올리며 나디아는 홀로 쿡쿡 웃었다. 그녀가 적응하는 것보다는 에드윈의 입에 자물쇠를 채우는 것이 더 바람직했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가 기상천외하고 입에 착착 붙는 욕설을 배우게 된 건 딱히 의도한 일이 아니었다. 엘란츠성에는 기사들이 차고 넘칠 만큼 우글우글했고 귀족 출신이 반, 평민 출신이 반인 그 기사들 중 일부는 입이 험했다.
아니, 기사라기보다는 용병에 가깝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우아하고 기품 있는 수도의 기사만 보아 왔던 그녀에겐 충격적이었지만 계속 보다 보면 그도 익숙해지기 마련이었다.
기사들과 어울릴 만한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마주치지 않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들이 자주 지껄이는 욕설 몇 가지 정도는 기억에 남아 홀로 있을 때 조심스럽게 입에 올려 보는 정도가 되었다. 대상은 대부분 하나뿐인 남편이었지만.
그동안 아실도 몇 번인가 마주쳤지만, 그는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했던 나디아의 애원을 들어주려는지 굳이 아는 척하지 않았다. 그저 성안에서 마주치곤 하던 여느 기사들처럼 꾸벅 인사를 한 뒤 떠나 버렸다. 그녀는 안도하면서도 내심 섭섭해하는 스스로를 느끼고 통렬하게 비웃었다. 내버려두랄 땐 언제고 이젠 섭섭하다고? 정신 차려. 이걸로 된 거야.
나디아는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때에는 후원의 누각에 앉아 차가운 과실차를 홀짝이며 시간을 보냈다. 홀로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한 번씩 에드윈이 은근슬쩍 찾아와 차를 얻어 마시곤 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인 모양이었다.
나디아는 아직도 그가 왜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차만 마시고 떠나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변덕인 모양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은근히 신경 쓰였다.
한가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연못 위로 잘게 자른 과일 조각을 떨어트리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나디아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왜 저였어요?”
그동안 품어 왔던 의문을 굳이 지금 입에 올린 것은 지극히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이런 운명이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왜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에드윈이 그녀를 흘끔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수면 아래로 입을 뻐끔거리는 비단잉어를 들여다보았다. 앞뒤 맥락도 모를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그는 알아들은 듯이 반문했다.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하지?”
나디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무어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자 그가 보란 듯이 한숨을 내쉬더니 시선을 맞춰 왔다.
“좋아. 대답해 주지. ‘조심하지 않아도 돼서’였어.”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그래.”
그가 남은 과실차를 한입에 털어 마시고는 금세 따분하다는 얼굴로 돌아왔다. 확실히, 그녀와 있는 게 즐거워서 함께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내 소문에 대해서는 들어 봤겠지? 내가 낸 소문이야. 어찌나 들러붙으려는 승냥이가 많은지 귀찮길래 퍼트렸어. 꽤나 효과가 좋았는데 그래도 남는 인간들이 있더군. 네 아버지 같은… 이득이 된다면 딸자식을 미친놈이랑 결혼시켜도 좋은, 그런 작자 말이야.”
그가 턱을 괸 채 고개를 기울이자 부드러운 금발이 흰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그렇게 보내진 여자는 내가 마음대로 굴어도 울면서 돌아가 못 살겠다며 부모에게 매달리지 않을 테니까.”
“…듣지 않는 게 나았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대가 물어봤으니까 대답을 해 줘야 했지.”
그녀는 시선을 바닥에 내리깐 채로 호두가 알알이 박힌 쿠키를 집어 먹었다. 입 안에서 진한 버터 향이 물씬 나는 과자와 호두 알맹이가 부서졌다.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좋은 이유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 그리 타격이 크지는 않았다. 나디아는 복잡한 생각들을 과자와 함께 꿀꺽 삼켰다.
에드윈은 조롱하듯이 제 빈 잔을 나디아의 잔에 부딪히더니 잉그램가를 위해, 하며 낄낄 웃었다. 나디아는 얼른 그가 떠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하녀를 부르더니 차를 더 내오라고 하며 떠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남편 노릇을 하는 김에 궁금한 게 더 있다면 대답해 주지.”
그런 이유였던 모양이었다. 에드윈과 함께 있으면 목 뒤가 빳빳해질 만큼 긴장하게 되었고, 모양 좋은 입술 사이로 무슨 말이 흘러나올지 걱정되기만 했기 때문에 그는 불청객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스스로는 좋은 남편 노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지만 굳이 입 아프게 정정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크리스털 잔의 겉에 매달린 물방울을 손끝으로 문지르며 궁금한 것에 대해 생각했다. 가장 묻고 싶은 건….
“당신은 날 때부터 그 모양이었나요?”
생각만 한다는 것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나디아는 제가 한 말에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당장이라도 그가 잔을 내던지며 불같이 화를 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는 오히려 폭소를 터트렸다.
허리를 젖혀 가며 웃느라 정신없는 에드윈을 망연히 바라보던 나디아는 얼굴을 굳혔다. 뭐가 그리 웃긴단 말인가? 어찌나 심하게 웃는지 숨이 넘어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다 될 지경이었다.
나디아는 이럴 줄 알았으면 날 때부터 개새끼였느냐고 물을 것을 그랬다며 후회했다. 한참을 웃던 그는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가쁜 숨을 고르며 눈물을 훔쳤다.
“그래, 날 때부터 이랬느냐고? 하하, 맞아. 날 때부터 이랬지.”
하녀가 얼음을 띄운 과실차를 가져왔다. 에드윈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차를 받아 마시고는 마치 오늘 날씨가 좋다고 하듯이 평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나는 황제의 사생아야.”
“……!”
“그리고 나는 아버지, 아니 황제 폐하 앞에서도 이따위로 말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