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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부인과 두 남자-7화 (7/115)

7.

불쑥 찾아온 두려움에 나디아는 제 배를 감싸 쥔 채로 훌쩍거렸다. 그가 조금이라도 저를 가엾게 여겨 부드럽고 정중하게 행동하길 바랐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귀엽기도 하지.”

그가 한껏 꾸며 낸 듯한 다정한 목소리를 내더니 몸을 숙여 나디아의 목덜미를 콱 깨물었다.

몸이 펄쩍 튈 만큼 아팠다. 자국이 남을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몸을 조금이라도 일으켜 이런 끔찍한 자세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후들거리는 팔에는 조금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침대 시트를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쥐고 있는 나디아의 손을 그가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몸이 앞으로 계속해서 밀려날 만큼 거세게 쳐올리는 허리의 움직임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관자놀이에서 맥박이 치는 것 같았다.

“읏, 응… 흐응….”

나디아는 정신없이 신음하며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풀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남자의 손가락이 파고들어 깍지를 껴 왔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를 만큼 은밀하고 다정하다고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나디아가 왠지 모르게 조금 안도를 느끼기 무섭게 남자가 몸을 일으키며 그녀의 팔을 뒤로 잡아당겼다. 힘에 이끌려 상체가 들려 올라갔다.

“아, 뭐, 뭐 하는….”

이런 건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았는데. 정말 이런 행위를 모두가 한다고? 분홍빛으로 달아오른 피부에 남자의 손끝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한숨과도 같은 탄성과 함께 눈이 감겼다. 손끝이 바작바작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이런 감각을 나누고도 그렇게 냉정하게 서로에게 무관심해질 수 있는 건가? 나디아가 알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이런 걸 경험해 버리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변화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녀에게는 지극히도 두려운 것이었다. 흘러나온 눈물로 속눈썹이 흠뻑 젖었다.

짐승이 교접하듯 하체를 바짝 붙인 사내가 다시 그녀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쏟아진 머리채는 물론이고 붉게 손자국이 남은 가슴까지 앞뒤로 흔들리는 느낌은 지나치게 수치스러워서 느닷없이 서러워졌다.

손을 좀 잡은 것을 다정하다고 여긴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만큼 저속한 행위였다. 몸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결코 이런 식은 아니었다. 이런 모습으로도 한껏 느껴 울부짖는 자신마저도 수치스러웠다.

정숙한 숙녀였던 그녀를 이리 대하는 게 조롱은 아닐까 싶을 지경이었다. 남자가 아프리만치 꽉 쥐고 있는 손목은 내일이면 분명 멍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가 갑작스레 나디아를 확 잡아당겼다. 무릎에 힘이 풀린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이끌려 그의 몸 위에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그의 것을 품은 채였다. 나디아는 급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팔을 놓아준 남자가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자신을 모두 쑤셔 박을 듯이 강하게 움직였다. 혹사당해 퉁퉁 부은 게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만치 화끈거리는 내벽이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의 것을 조이며 정액이 섞인 묽은 액체를 흘려 댔다. 맞닿는 그의 허벅지 위가 점점 더 미끄러워졌다. 나디아는 흠칫흠칫 떨며 울었다.

“싫어… 시…이, 아읏! 이제 그, 응, 읏… 그만… 그만해요!”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그녀가 울며 비는 것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남자는 몇 번이고 제 욕구를 모두 풀고 나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 나디아는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벅차 손 하나 까딱할 수도 없었다. 한껏 내몰렸던 몸이 건드리지 않는데도 움찔거리며 튀었다.

“아, 흐으, 으….”

나디아는 입술을 깨물며 눈을 감았다. 그가 일어나는 기척이 느껴졌고 이윽고 그녀의 시야가 기절하듯이 까무룩 점멸했다.

***

이튿날, 더 자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떨치고 눈을 떴는데도 시간은 이미 정오에 가까웠다.

이틀간 축하 연회가 이어질 예정인 걸 알고 있으니 이제 슬슬 일어나 준비를 해야 했는데도 나디아는 도무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예상대로 손목에는 남자의 커다란 손자국대로 난 푸른 멍이 선명했으며 반죽처럼 주물러졌던 가슴은 물론이고 어깨 주위로 붉은 울혈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다리 사이는 퉁퉁 부었는지 따끔거리고 화끈거렸다.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는 데다 여전히 붉은기가 남은 허벅지 안쪽으로는 정액이 흘러 말라붙은 흔적이 선연했다. 새벽 내내 소리를 지른 목은 반쯤 쉬어 있었다. 살아오면서 이토록 엉망인 꼴이 된 것은 단연코 처음이었다.

엘란츠 후작, 아니 그녀의 남편은 이미 나갔는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가운을 챙겨 입고 침대맡의 줄을 잡아당겼다.

마치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목욕물을 준비해 온 하녀들이 시중을 들며 그녀의 몸을 깨끗이 씻겼다.

몸 곳곳에 남은 지난밤의 흔적에 나디아는 내심 민망해했지만 하녀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따뜻한 물속에서 뻐근한 몸 곳곳을 주물러 근육을 풀어 주는 손길을 받고 나니 한결 움직이기 편했다.

그녀는 목욕 후에 가볍게 식사를 하고 화장을 했다. 눈가가 조금 붉었지만 하녀들이 솜씨 좋게 가려 주었다. 뒤이어 머리를 손질하던 하녀들이 멈칫했다. 머리채를 틀어 올리자 드러난 목덜미에 잇자국이 선연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이내 뒤로 길게 리본과 레이스가 늘어지는 꽃 장식을 달아 자국을 가렸다. 그리고 진주가 조롱조롱 달린 흰 드레스를 입히고 팔목의 멍을 가리기 위해 실크 장갑을 끼웠다.

치장이 끝나고 따라붙는 하녀들을 모두 물린 나디아는 화끈거리는 다리 사이의 감각을 애써 무시하며 홀로 한산한 황궁의 복도를 걸었다. 모두 연회 준비로 바쁠 테니 한동안은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지난밤의 행위에서 불거진 의구심을 거두지 못했다. 그 도를 넘는 난잡한 행위는 대체…. 로맨스 소설에 등장하는 정사는 지나치게 두루뭉술해서 잘 알 수 없었다. 나디아는 필사적으로 가정 교사가 해 주었던 말들 중 빠트린 것은 없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죽을 만큼 아프지만 조금만 참으면 끝날 거라는 이야기는 확실히 틀렸다. 죽을 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죽을 것 같은 감각이 들긴 했지만 그게 아픔은 아니었다. 그리고 금방 끝나지도 않았고.

또… 아래 어디로 들어간다는 말은 맞았다. 아직도 아래에 무언가 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게, 정확히 어디인지는 무서워서 알아볼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나디아는 혼자 얼굴이 빨개졌다, 파래졌다 하며 생각에 잠겨 있느라 누군가 곁으로 다가오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뒤늦게 제 앞에 멈춰 선 사람의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올린 그녀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렇게 잊으려 노력했건만, 그 옅은 녹색 눈을 바라본 순간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한 가슴이 격랑을 마주한 듯이 출렁였다.

아실. 불타는 듯한 새빨간 머리카락과 싱그러운 녹색 눈. 오른쪽 뺨의 긴 흉터와 한참 올려다봐야 할 만큼 큰 키까지 모두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그는 이제 꾸며 낼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겠는지 그 어떤 감정도 담고 있지 않은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알고 있었는데도 이를 악물지 않으면 울음부터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듣겠다며 나서지 않은 게 다행인지도 몰랐다. 지금 이 냉랭한 눈만 봐도 답을 알 수 있었다. 그제야 나디아는 정신을 차렸다. 눈으로만 주위를 훑은 그녀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 한 후 입술을 꾹 다물고 턱을 치켜들었다. 뒤늦게 그가 기사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죠?”

반쯤 쉬어 있는 목소리를 그 역시 알아챈 듯했다. 자연스럽게 연상된 것은 간밤에 그녀를 울부짖게 했던 남자였다. 나디아는 지난 밤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버렸다. 정말로 그와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와 똑바로 눈을 마주치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울컥울컥 올라오는 서러움을 계속해서 삼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나디아는 그에게 자신이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같이 좀 놀았던 여자로 생각한다면 그녀도 그를 좀 놀았던 남자 취급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했다. 당장 그에게 달려들어 뺨을 때리고 가슴을 치며 나한테 왜 그랬느냐고 울며불며 따지고 싶은 자신을 감추느라 숨이 다 찰 지경이었다.

아실에게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그녀를 전 연인이 아니라 예의를 갖추어야 할 귀부인으로 대해 주겠지.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아무리 궁 안이라도 혼자 다니시면 안 됩니다, 귀부인.”

익숙했던 목소리가 들렸다.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스스로 납득 할 수 없는 실망감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나디아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무엇을 기대한 거야? 왜 말도 없이 떠났느냐고 물어 주기라도 바랐나?

“이제 돌아갈 테니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나디아는 대답도 듣지 않고 돌아섰다. 어떻게 그가 기사 복장을 하고 황궁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연히라도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고작 5분도 되지 않을 이 만남으로 그녀의 정신은 다시 너덜너덜해졌다. 나디아는 어떻게든 그 자리를 벗어나고픈 마음에 정신없이 걷다가 어느덧 도착한 갈림길에서 멈춰 섰다.

이대로 방으로 돌아가 저녁까지 처박혀 있든가, 아니면 일찌감치 연회장으로 가 귀족들과 어울릴지에 대한 짧은 고민을 하다 목적지를 정했을 때, 나디아는 우악스럽게 팔을 잡아당기며 입을 틀어막는 누군가의 힘에 소리 한번 못 지르고 근처의 빈방으로 끌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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