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이런 짓을, 알면서
“물에서 하는 것은 몸에 안 좋다고 합니다. 도중에 물이 안으로 들어간다고 해요. 흥은 나지만 왕비께서 아프시면 안 되니까.”
이겸이 혀끝으로 입술을 적셨다.
“그리고 가까이서 보고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왜 굳이 이 시점에 손을 뗀 거예요?”
우희가 불만을 드러내며 이겸의 어깨를 밀었다.
“딱 다다르기 직전이었는데.”
어차피 바닥에 등을 대고 있겠다. 우희는 다리까지 써서 이겸을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이겸은 홧김에 거리를 벌리려고 움직이는 우희의 다리를 잡아 오히려 제 허리에 감았다.
늘 생각하는 바지만 이겸은 허리가 날렵하면서도 탄탄했다. 두 다리 사이에 끼운 뒤 조여 보고픈 충동을 일게 만든다.
이겸 본인도 이를 알고 있었다. 우희가 자신의 몸 중에 어느 부분을 어떻게 좋아하는지. 왜냐면 둘이 동침을 하기 시작한 후로 우희가 끊임없이 일러 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야하다는 거야. 이런 짓을, 알면서 하니까.’
우희는 등을 대고 누워 있고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세였다. 왠지 덮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겸의 눈길이 따뜻한 몸을 핥듯이 타고 내려가 결국엔 돌기에 이르렀다.
다리가 양쪽으로 벌려진 탓에 모든 것이 또렷이 보였다.
번들거리는 포피 사이로 부풀어 오른 점. 방금 전까지 이겸이 손가락으로 자극하던 곳이었다.
우희는 두꺼운 성기가 아래를 꾹 누르는 느낌에 신음했다.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흥분감이 묵직하게 짓눌렸다.
“이대로 들어가지 않고 비비면—.”
“어디 그러기만 해 봐요.”
“그대가 화내기 전에 제가 먼저 미치겠죠.”
이겸이 제 것으로 느리게 아래를 문질렀다. 굵직한 성기 끝이 젖은 음순을 가르며 올라갔다가 오므라든 사이를 긁어내렸다.
좀 더 힘을 실어 찔러 올릴 때면 그대로 안을 쑤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금 차오르는 기대감에 우희는 배가 당겼다. 자잘한 쾌락에 안달이 났다.
“제가 형부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견딘 줄 아십니까? 어째서 아직 황궁에서 소식이 없을까. 정말 이대로 놈의 채찍에 찢겨 죽나. 아니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말라 죽으려나 하던 순간을 말입니다.”
이겸이 엄지 끝으로 우희의 예민한 지점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즉시 고조되는 감각에 우희가 등을 휘었다. 새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대가 휘두르는 채찍이라면 그조차 기쁨일 텐데.”
“제정신……. 흐! 앗아, 아……. 지금 그런, 하……!”
“저도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점을 문지르는 이겸의 손길이 집요해졌다. 우희의 안에서 맑은 액이 울컥거리며 흘러나왔다. 정욕이 뚝뚝 묻어나는 눈으로 이겸이 말했다.
“왕부로 돌아온 첫날부터 바로 약을 먹었습니다. 오로지 이걸 할 생각밖에 없었죠.”
이겸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넣어도 되겠습니까?”
“당장—.”
우희의 말이 끊겼다. 허락이 다 떨어지기도 전에 이겸이 단번에 성기를 밀어 넣었다. 오므라진 점막을 가르며 끝까지 들어온 묵직함에 날카로운 숨이 터졌다.
“흣, 이, 이겸, 내가 올라갈래요.”
우희가 쾌감에 일그러진 얼굴로 요구했다.
“당신 하는 대로 둬선 안 되겠어요. 몸이, 달아서…… 부족해.”
“이제부턴 부드럽게 하지 않을 건데요.”
“빨리, 응?”
우희가 이겸의 것을 문 채로 허리를 튕기자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뜨겁고 촘촘한 주름이 성기를 녹일 듯이 달라붙고 있었다.
고집을 부릴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이겸이 앓는 소리를 흘리며 우희를 제 몸 위로 올렸다. 이겸을 올라탄 우희는 아까보다 깊이 박히는 감각에 입을 벌렸다. 숨이 모자랐다.
“우희……. 하, 으으…….”
“아, 좋아요.”
우희는 제 손으로 가슴을 주무르다가 꼿꼿이 선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비볐다. 아래엔 이겸의 것을 넣고, 가슴을 자극하는 기분이 짜릿했다.
흰 피부에 복숭아꽃 같은 혈색이 확 돌았다. 밑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이겸이 절박한 얼굴을 했다. 우희의 안에서 그가 꿈틀거렸다.
“좋아요, 이 정도면, 아……! 이겸, 앗, 흐! 움직이지 마요. 아, 내가, 앙! 내가 하기로…….”
“아무도 안 오지 않습니까. 읏, 몇 번이고 계속 해도 되니까.”
이겸이 아래에서 강하게 쑤셔 박았다. 우희는 하마터면 앞으로 엎어질 뻔했지만 이겸이 팔로 받쳐 주어 그것만은 면했다.
그런데 얼핏 받쳐 주는 것 같던 손길이 실은 우희를 위에 고정시키려는 목적이었음이 드러났다. 이겸은 핏줄 불거진 성기가 우희의 안을 드나드는 것을 한참 동안 뚫어지게 보았다.
“하, 앙! 아! 앗……! 조금 더, 이겸. 거기……. 으!”
깊숙이 찔러 대는 감각은 우희의 안에 쌓이고 쌓여 아주 빠르게 절정으로 몰고 갔다.
* * *
“아무것도 얻은 게 없구나.”
귀비 금설약은 어항 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오래전, 황제와 첫 밤을 보낸 뒤에 받은 선물이었다.
황제는 물고기가 예로부터 풍요를 상징하거니와 주홍빛 비늘이 때로는 금빛으로도 빛나는 어여쁜 자태가 재인을 떠올리게 한다며 열 마리를 하사했다.
그때는 품계가 재인이었다. 앳된 티가 남아 있던 재인이 귀비가 되는 동안 열 마리 중에 하나가 세상을 떴다.
황제가 하사한 것은 그게 생물이든 보석이든 무조건 온전하게 관리해야 했다. 함부로 죽어서도 안 되며 흠집이 나서도 안 됐다.
그런 의미에서 하사품은 참 복잡한 존재였다. 분명히 황제가 총애하여 내린 물건인데 이 때문에 화를 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제일 튼튼해 보이던 금붕어가 죽은 날, 궁녀들은 당연히 사색이 되었다. 죽을죄였다.
하지만 설약은 관리자의 그달 녹봉을 삭감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궁녀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평소 엄격한 주인이 이번만큼은 관대한 처분을 내린 것에 의아해했다. 그들은 당시 설약이 중얼거린 말을 두고두고 곱씹었다.
「열 마리에서 아홉이 되었으니 완전하지는 않아도 오래 살겠구나.」
예로부터 아홉 구(九)는 오랠 구(久)와 발음이 같다 하여 좋은 숫자로 여겨지긴 했다. 그러나 궁녀들은 설약처럼 대범하게 넘어갈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황제가 찾을 때를 대비해서 외양이 비슷한 금붕어를 다시 채워 넣으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설약은 그러는 대신 연못가에 잘 묻어 주라고 했다. 지금보다 어렸던 첫째 황녀가 금붕어를 묻어 주는 자리에 따라갔다. 어린 황녀는 애도하는 글을 낭독했고 먹이와 꽃을 공물로 바쳤다.
그해 계절이 바뀌기 전에 설약의 품계가 올라갔다. 이후로는 탄탄대로였다.
설약은 둘째 황녀를 낳았고, 한 걸음 물러나 있는 황후를 대신해 후궁의 법도를 다스리게 되었다. 금붕어가 죽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금붕어를 받은 날 생각했지. 왜 하필 금붕어일까? 개나 고양이, 새도 있는데 어째서 폐하께선 내 성과 같은 금붕어를 주셨을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설약은 어려서부터 총명했다. 관리자를 여럿 붙여서 정성껏 돌본 물고기가 원인불명으로 죽었을 때 또 한 번 깨달았다.
이 모든 게 황제의 시험임을.
황제는 중임을 맡기기 전에 반드시 상대의 기세를 꺾었다. 혹은 승승장구하도록 놔두다가 기회를 보아 자리에서 끌어내리곤 했다. 조정이든 집안이든 마찬가지였다.
황제 진이락은 그야말로 군림하는 자였다. 그래서 설약은 사건만 잘 꾸미면 황후를 폐할 수 있다는 범왕의 말을 믿었다.
한데 거짓말이었다.
“황후는 티끌만큼도 타격을 입지 않았어. 단왕은 채찍질에도 죽지 않았지.”
설약의 고운 손톱이 어항 밖을 긁었다. 먹이를 주는 줄 알았을까. 금붕어 두 마리가 설약의 손끝을 따라왔다.
“그리고 폐하.”
설약은 물결에 살랑거리는 금붕어의 꼬리를 들여다보았다.
“폐하께선 냉정한 분이기에 비빈들도 바둑돌로만 보시는 줄 알았어요. 제가 이번에 셋째를 회임하자 갑자기 목비를 찾으셨잖아요. 제가 추천한 이는 찬밥처럼 버려두고요.”
그래서 재차 확신했다. 황제는 균형을 중시한다고. 그는 타고난 천자임이 분명하다고.
“설마 황후에게 진심이셨을 줄은 몰랐어요.”
설약은 이제껏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황제가 뒷배도 없고 회임도 못하는 황후를 계속 정궁으로 앉혀 두는 이유는 황후의 바로 그 속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일부러 구멍이 많은 자를 꼭대기에 앉힌 뒤,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주기 위해서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턱없는 소리였다. 그렇게 많은 낮과 밤을 함께 보냈는데도 설약은 황제의 심중을 읽는 데에 실패했다.
그는 연기를 했던 것이다. 설약이 온순함을 꾸며 냈듯이. 그리고 이번 사건을 통해 그가 지키려는 대상이 누구인지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황제는 적의 손에 유일한 피붙이를 내줄 수 있을 만큼 황후를 아낀다. 그 고결한 단왕이 만신창이가 되어 왕부로 돌아가는 광경을 모두가 봤다고 했다.
설약은 단번에 이해했다. 단왕은 본보기였다. 또다시 황후의 안위를 노리면 그때는 봐주지 않고 벨 것이다, 단왕도 형부로 보내 초주검으로 만들었거늘 너희라고 무사하겠느냐. 그런 의미였다.
“미리 알았다면 복중 태아를 건 도박 따위 하지 않았어…….”
기능은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은 앗을 수가 없다. 황제가 황후를 처음 만난 게 언제라고 했던가. 열 몇 살 때라고 하지 않았나. 그때 품은 마음을 여태 남몰래 숨기고 있었던 거라면, 대체 얼마나 깊고 집요한 감정이란 말인가.
“바둑돌 중에 사람이 있었구나.”
차라리 복중 태아를 지킬 걸 그랬다. 이번에 황자를 낳았다면 황제는 가장 우수한 바둑돌에게 봉호(封號)를 내려 치하했을 텐데.
만일 황후가 회임 못하는 것 또한 황제의 뜻이라면, 그가 필요로 하는 후계자는 금설약이 줄 수 있었을 텐데.
황자가 자라 태자책봉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그럼 황후가 제 성질을 못 이기고 뛰쳐나가든, 황제의 마음이 식든 무언가는 일어났을 터다.
“더 멀리 봤어야 했어.”
그쪽의 가능성이 높았다. 한데 자신은 어떻게 했나. 갖고 있는 제일 좋은 패를 버려 가며 올라가지도 못할 산을 깎겠다고 덤벼들었다.
이는 본시 설약의 방식이 아니었다.
“범왕…….”
진이흔은 황제의 본심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 알면서도 모른 척 설약을 부추겼다. 귀한 패를 버려야 그만큼의 파급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속였다.
무엇 때문에? 단왕의 심기를 긁으려고. 소중한 아내가 누명을 뒤집어쓰고는 형부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게 하려고.
고작 그것 때문에.
“감히 날 속여서 독을 마시게 해?”
어떻게 가진 황자인데 스스로의 손으로 없앤 모양이 되었다. 황자를 잃었더라도 뒷일이 제대로 진행되었다면 괜찮았을 텐데 그것도 아니었다.
“폐하께서 친히 들이미신 모가지가 아닌가. 끝까지 밀어붙여서 단왕의 목숨을 끊어 놨어야지. 어차피 형부는 네놈의 소관이잖아. 형벌로 죽인 다음 원래 책임자에게 떠밀면 되는 것을……. 고질병을 다스리지 못하고 그걸 살려 보냈어.”
무도한 놈의 세 치 혀에 놀아난 기분이 과히 좋지 않았다. 범왕이 순순히 움직일 거라는 기대는 적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일을 망칠 줄은 몰랐다.
놈은 금설약을 속이고는 뒤처리도 똑바로 안 하고 발을 뺐다.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짓이었다.
“단왕이 제 아내를 싸고도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야. 범왕과 단왕의 사이가 안 좋은 것은 봉무국 사람이면 모르는 이가 없지. 게다가 범왕은 유난히 단왕비를 신경 쓰는 눈치던데.”
설약은 어항에서 손을 뗐다. 옷 주름을 가지런히 펴고는 몸을 돌렸다. 큰 상실을 겪은 미인의 얼굴에선 지울 수 없는 피로감이 묻어났다. 설약은 한동안 이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역시 협공은 내 방식이 아니었어.”
어쩌면 단왕 부부와 범왕을 한 번에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설약의 머릿속에 계책 하나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