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기분이 좋아지실 거예요
형부에서 돌아온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이겸은 몸을 씻고 싶어 했다. 물수건으로 닦는 것 말고 따뜻한 탕 안에 몸을 담그길 원했다.
평소에 매일 씻었던 사람이니 몸이 청결하지 못한 것이 찜찜할 만했다. 문제는 그가 며칠 전까지 끔찍한 채찍질을 당한 환자라는 데 있었다.
이겸은 괜찮다고 했다. 사실 우희가 보기에도 상태가 괜찮았다.
갈라진 살가죽은 잘 붙었고, 우둘투둘한 상흔은 둘째 날보다 평평해졌다. 하루 이틀만 더 있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듯했다. 이겸의 눈엔 생기가 돌아왔다. 목소리도 제대로 나왔다.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우희는 추가로 도착할 태율의 약상자를 기다렸다. 이번 약까지만 쓰고 욕탕에 들어가라고 이겸을 달랬다. 이겸이 알겠노라 답한 것까진 좋았다.
‘이게 뭐지.’
태율이 추가로 보낸 것은 약상자가 아니었다. 종이로 싸맨 환약 한 알이 전부였다. 처음 받았던 꾸러미만큼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 ‘갖춰진’ 느낌을 기대했던 우희는 세상 탐탁잖은 눈으로 환약을 쳐다보았다.
반면 이겸은 기꺼운 기색이었다. 몇 단계에 걸쳐 바르고 말릴 필요 없다니 좋을 것이다. 씹어 먹는지 그대로 삼키는지만 확인하고는 얼른 우희의 손에서 환약을 가져갔다.
“어때요? 뭔가…… 나아져요?”
의심 가득한 투로 묻자 이겸이 자신의 팔을 들어 보였다. 우희가 보는 앞에서 우둘투둘 도드라져 있던 상흔이 사라졌다.
“내상은요?”
이겸이 말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덜 나은 기분이에요?”
“첫날보단 괜찮습니다. 그리고 목욕은 피부를 씻는 거니까요. 겉을 씻는다고 해서 장기가 상하고 그러진 않을 겁니다.”
“맞는 말이긴 한데요…….”
정말 절실하게 씻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단왕이 벌써부터 욕탕에 들어간다는 말이 돌면 안 되어서, 우희는 자기가 씻겠다는 핑계로 욕조에 물을 받으란 지시를 내렸다.
하인들은 목욕 준비만 마친 후에 단왕의 처소를 빠져나갔다. 드넓은 처소에 아무도 남지 않았음을 확인한 우희는 이겸에게 소원 풀고 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갑자기 일어났더니 조금 어지러워서요. 왕비께서 옆에 있어 주시면 안 될까요?”
“목욕하는 동안에요?”
“예.”
“영 이상한데.”
우희가 혀로 볼 안쪽을 긁었다.
“목욕 중의 혼절을 염려해야 할 정도면 목욕을 안 하는 게 맞지 않나요?”
이겸이 대답했다. 담담한 표정에 비해 말은 약간 빠른 감이 없지 않았다.
“혼절을 염려할 만큼은 아닙니다. 그래도…….”
“씻고는 싶으시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이라도 욕탕으로 달려갈 기세였으면서 우희의 대답을 물끄러미 기다리고 있는 게 귀여웠다.
이게 문제다.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유혹은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는데 짠한 귀여움은 잘라 내기가 곤란하다.
“현을 부르시면 되죠.”
우희가 웃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우리 곽 호위는 전하의 등에 비늘이 돋아도 말을 흘리지 않을 거니까요. 나흘 만에 상처가 나은 것도 마찬가지일 테고.”
“저는 현을 욕탕 안까지 들여 본 적이 없습니다.”
오, 말에 뼈가 있네? 우희가 눈을 굴렸다.
“좋아요. 자고로 영웅은 미인을 구해야 하니까. 전하께서 목욕 중에 위험에 처하지 않는지 제가 지켜봐 드릴게요.”
우희의 말에 이겸이 비로소 웃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욕탕으로 향했다.
욕탕 문을 열자마자 촉촉한 공기 중에 섞인 나무 냄새가 맡아졌다. 옷을 벗기도 전에 온몸이 따스하게 젖어 드는 기분이었다.
우희가 화려한 머리 장식을 하나씩 뺄 동안 이겸은 몸을 가볍게 씻은 다음 욕조에 먼저 들어갔다. 뜨거운 물속에 몸을 푹 담근 이겸이 한숨을 내쉬었다.
“살 것 같습니다. 이보다 좋을 수가 없군요.”
눈이 저절로 감기나 보다. 이겸이 머리를 천천히 뒤로 젖혀 욕조 가장자리에 기댔다. 입이 살짝 벌어졌다. 완전히 긴장이 풀린 얼굴이 야했다.
둘째 날부터는 머리도 매일 감았지만 그거로는 이겸의 성에 안 찼던 것이다. 우희는 그에게서 항상 깨끗한 냄새가 나던 것을 떠올렸다.
“전쟁터에선 어떻게 견뎌요?”
우희는 풀어 내린 머리카락을 다시 한 갈래로 묶으며 물었다.
“그런 데선 물이 귀할 거 아니에요.”
나른함을 만끽하느라 이겸의 대답이 조금 늦어졌다. 우희가 ‘응?’ 하고 답을 채근하자 그제야 이겸이 느릿느릿 입술을 움직였다.
“물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죠. 그저 마시는 데에 그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릇을 씻고 몸을 씻고 옷을 빨기에도 여유로워야 살아 돌아갈 수 있습니다.”
전쟁터는 전쟁터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대충 나올 줄 알았다. 한데 아니었다. 우희는 남편이 지금 목욕 중에 병법 강의를 하는가 하는 의문에 빠졌다.
“항간에는 단왕을 가리켜 백전불패의 명장이라고 한다죠.”
은근슬쩍 자기자랑까지?
“그러니까 제 대답은, 애당초 물이 넉넉한 곳을 점해 자주 씻습니다. 비록 거기가 전쟁터여도요.”
우희가 이겸을 빤히 쳐다보다가 겉옷을 벗었다. 어차피 상대는 눈을 감고 있어서 우희가 자길 쳐다본 줄도 몰랐다.
“형부에서 방금처럼 입을 놀렸다면 전하의 몸이 그 꼴이 된 것도 이해가 가요.”
이겸이 슬며시 웃었다.
“장 책사는 제 입담이 마음에 든다더군요.”
“조롱하고 비틀기로 제일가는 이의 인정까지 받으셨네요. 참 뿌듯하시겠어요.”
“왕비의 칭찬 또한 감사히 받죠.”
이 능청스러운 미남자를 어쩌면 좋아.
우희는 준비된 욕의로 갈아입었다. 탕에 들어갈 생각은 없지만 습한 곳에서 원래 옷을 입고 있기 싫었다.
“칭찬 아니었는데.”
우희는 이겸의 맞은편에 턱을 괴고 앉았다. 바구니에서 꽃잎을 한 줌 집어 욕조 안에 떨어뜨렸다. 홀쭉한 국화꽃 잎이 수면에 흩뿌려졌다. 희고 노란 빛을 보니 어느덧 계절이 바뀌었음이 실감났다.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리자 이겸이 눈을 떴다.
“왜 그리 멀리 있으십니까?”
비스듬히 쳐다보는 눈이 젖어있었다.
“아까 전보다는 훨씬 가까운걸요.”
욕조의 끝과 끝에 있긴 하지만. 우희가 꽃잎을 한 줌 더 떨어뜨렸다.
“그러는 전하께선 왜 아래를 빳빳하게 세우고 계세요?”
우희는 긴 손가락으로 꽃잎이 떠 있는 수면을 이리저리 그었다. 우희가 하는 양을 보고 있던 이겸이 욕조 밖으로 손을 뻗어 입욕제를 집었다. 조그만 병을 기울이자 유백색 액체가 쪼르르 흘러내렸다.
“왕비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젠 자기 몸이 안 보인다 이거다. 이겸은 한 술 더 떠서 물속에 손을 넣고 휘저었다. 이겸의 주변만 가리고 있던 뽀얀 물이 맞은편의 우희에게까지 퍼져 나갔다.
“들어오실 건가요?”
“전 지켜보러만 왔지 같이 씻으러 온 게 아닌데요.”
“여기 안에서 보셔도 되지 않습니까.”
이겸이 하얀 여우처럼 속살거렸다. 이리 오렴. 해치지 않아. 내게 가까이 오면 좋은 일이 생기거든.
“물 온도가 딱 적당합니다. 기분이 좋아지실 거예요.”
미끈한 몸 뒤로 꼬리 아홉 개를 살랑거리면서.
“……그렇게 살살 꼬드기는 건 누구한테 배우셨나 몰라.”
우희는 이겸이 보는 앞에서 욕의 앞섶을 끌렀다. 안개처럼 흐린 살굿빛 천을 걷자 긴 목에서부터 어깨까지 떨어지는 섬세한 선이 드러났다. 이겸의 눈길이 닿는 게 느껴졌다.
우희는 반대쪽 어깨도 드러낸 후에 일어섰다. 욕의가 몸을 타고 아주 느리게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 서서히 물 안으로 잠겨 들었다. 발가락부터 발등, 종아리를 지나 허벅지가 이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느 지점에서 이겸이 동요했다. 우희는 모른 척하며 끝까지 몸을 집어넣었다.
이겸의 말은 사실이었다. 물 온도는 완벽했다. 쌓인 줄도 몰랐던 피로가 녹는 기분이었다. 우희는 이겸이 했던 것처럼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어깨 위로 목욕물을 끼얹었다.
물이 흘러내린 피부 위에 꽃잎이 달라붙었다.
“언제 그렇게…… 하셨습니까?”
이겸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어젠가 엊그제던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우희가 손가락을 튕겨 어깨에 붙은 꽃잎을 떼어 냈다.
“그런데 뭐가요?”
제대로 답해 놓고 괜히 되묻는 이유는 그저 재밌어서였다. 저 단정한 입술에서 음탕한 말을 이끌어 내는 게 좋았다. 본인이 주저할수록 더 좋았다.
언젠가 이겸이 스스로 원해서 야하고 더러운 말을 입에 담는다면 우희는 퍽 기쁠 것이다.
‘배덕감이 대단할 테지.’
웃음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그곳을…….”
“거기 어디요?”
“우희.”
“벌써 물러나게요?”
우희가 짓궂게 웃으며 이겸에게 다가갔다. 이겸이 여태 젖히고 있던 고개를 바로 당겼다. 우희는 물속에서 그의 손을 잡고 자신의 아래쪽으로 이끌었다. 걸릴 것 하나 없이 반드러운 그곳을 직접 만져 보게 했다.
“도술을 쓰면 이쯤은 일도 아닌데, 여기선 꽤 번거롭더라고요. 그래도 해 볼 만했어요.”
태율이 보낸 진통제 효력이 가시기 전에 했더니 괜찮았다. 충격이 선연한 이겸의 표정을 본 지금은 더더욱 만족스러웠다.
“전하께서 혀를 쓰실 때 훨씬 편하겠죠?”
이겸이 말없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도톰한 주름을 따라 문지르다가 둔덕으로 올라왔다. 익숙한 쾌감이 두근대는 곳에 그의 손끝이 닿았다.
“이겸, 으응…….”
우희는 이겸의 다리 사이에 자릴 잡고 앉았다. 그의 어깨에다 팔을 걸치고 두 몸을 가까이 붙였다. 이겸이 눌러 참는 듯한 신음을 흘렸다.
“손으로 충분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입으로 해 드릴까요?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말만 하세요.”
“앗, 으응, 지금, 아……. 계속 그렇게요.”
이겸이 우희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숨을 몰아쉬었다. 젖은 살갗에 젖은 숨결이 닿아 흩어졌다. 그러고 보니 둘 다 금욕한 기간이 길었다. 왕비궁에서의 자숙, 이겸의 형부 압송과 치료가 이어지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래서일까. 우희 스스로도 놀랄 만큼 몸이 빨리 달았다. 원래도 민감한 몸이긴 하지만 오늘은 좀 이상했다.
“아! 흐, 앗! 이겸……. 거기, 응……!”
우희는 이겸에게 매달린 채 허리를 마구 흔들었다. 쾌감이 차곡차곡 쌓이는 게 아니라 무서울 정도로 널을 뛰었다.
자칫하면 자제력을 잃을 것 같았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겠고 그저 더 깊고 강하게 닿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래가 너무 미끄러워서 손이 엇나갈 것 같습니다.”
이겸은 제 얼굴 앞에서 흔들리는 가슴을 핥았다. 부드러운 단맛이 난다며 속삭였다.
“벌써 이렇게나 젖으셔서는…….”
“흣! 흐으으, 그렇게 돌리면. 아, 흑……!”
“하지만 도저히 손을 뗄 수가 없는걸요.”
이겸이 발갛게 드러난 정점을 손끝으로 굴렸다. 모든 감각이 그 조그만 돌기에 몰린 느낌이었다. 한숨처럼 분 바람에도 하르르 떨릴 곳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대니 몸을 가만히 놔둘 수가 없었다.
우희는 소리 없는 비명을 삼키며 절정의 문턱에 다다랐다. 안에서 흘러나온 점액이 이겸의 긴 손가락을 흠뻑 적셨다.
거기서 조금만 더 자극해 줬다면 바로 절정에 이르렀을 텐데 이겸이 손을 뗐다. 우희는 이겸의 것에다 미끈거리는 아래를 보채듯이 비볐다.
다음 순간 갑자기 몸이 공중으로 훅 떴다. 이겸이 욕의 위에 우희를 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