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여기 저승 아니에요?
심소천은 정신을 차린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또 분홍색 휘장이었다. 만개한 벚꽃을 닮은 분홍빛. 혼절하기 전에 본 천장이 또다시 소천의 시야를 채웠다.
자신은 친정에서든 단왕부에서든 이런 색의 휘장을 침상에 건 적 없으니 여긴 저승이 맞는 모양이었다.
소천이 자신의 죽음을 확신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몸에 있던 상흔이 사라진 것이다.
오른 손목 안쪽에 화상 흉터 있던 자리가 매끈하게 변해 있었다. 피부는 처음부터 상흔 따윈 없었다는 듯이 희고 깨끗했다.
‘혼백까지 흉터가 새겨지진 않나 봐.’
매일 보던 자국이 없으니 기분이 묘했다. 소천은 신기함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흉터 있던 자리를 문질러 봤다.
‘한데 계속 이렇게 누워 있어도 되는 걸까? 생전의 업보를 가지고 심판받거나 뭔가…… 해도 해도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일을 해야 되지 않을까?’
소천이 보드라운 감촉의 홑이불을 턱 아래까지 끌어당겼다. 무슨 처분이 내려질지 짐작 가지 않아 두려웠다. 아무리 좋게 봐 주려 해도 심소천은 무엇 하나 잘한 게 없는 인간이므로.
사내가 아니라 관직에 나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규방에서 할 수 있는 선행을 하였느냐 물으면 그것도 아니었다. 가뭄이 들거나 수해가 발생하면 대갓집 규수들은 패물을 내놓아 부족한 구휼미를 충당하곤 했다.
손재주 좋은 이들은 겨울 추위를 대비한 솜옷을 만들었는데 선행도 하고 친구도 사귈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그 때문에 평북 지역 대부분의 규수가 침선 모임 한두 개쯤엔 참석하고 있었다.
소천은 아니었다. 다른 여아는 괜찮아도 소천은 하면 안 되는 것들이 참 많았다.
「수예 배우는 시간 외에는 바늘을 잡지 마라. 눈이 나빠지면 못쓴다. 멀리 볼 때마다 매번 얼굴을 찌푸릴 게 아니냐.」
「내일부터 책 읽는 시간을 줄여라. 이유는 설명 안 해도 알겠지?」
「서신 교환은 금지다. 듣자하니 배씨 가문의 여아가 다른 규수에게 보내는 척 사내와 연서를 주고받았다더구나. 평판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니 소천이 넌 아예 서신 같은 건 쓰질 말도록 해.」
「네가 잘못할 때마다 이 계집종이 대신 매를 맞는다. 이 아이 목숨은 이제 너 하기에 달린 거야.」
「넌 필시 귀한 분께 시집갈 거다. 가문의 기대를 저버리지 마라.」
소천이 어릴 적, 지나가던 관상가가 한 말이 집안사람들의 기대를 무럭무럭 키웠다. 이 댁 아가씨 얼굴엔 부귀영화의 운이 서려 있으니 반드시 존귀한 사람에게 시집가서 가문을 명예롭게 할 거란 말이었다.
이후 관상가가 딸 있는 집마다 가서 똑같은 말을 한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심가(家) 사람들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소천의 용모 때문이었다.
다른 가문에도 규수들이 많겠지만 어느 누구도 소천만큼 눈에 띄게 아름답지 않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한 해가 다르게 피어나는 용모에, 집안사람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더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하지 마라. 이유를 들어 보면 죄다 몸이 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귀한 사내에게 시집가려면 고운 몸에 흠집이 나선 안 되니까.
그들이 가문의 미인을 제일 비싼 값에 팔아넘기기 위해 정성을 쏟는 동안, 소천은 좋아하던 책을 못 읽게 되었다. 막 친해지기 시작한 친구들을 잃었다. 궂은 날은 물론이고 화창한 봄날에도 오래 걷지 못하게 하니 자연히 몸이 약해졌다.
옛 고문 방법 중엔 사람을 결박한 다음, 얼굴에다 물에 적신 종이를 겹쳐 올리는 형벌이 있다. 두어 장일 때는 숨을 쉴 수 있지만 종이를 계속 올릴수록 호흡이 어려워진다.
소천은 자신의 삶이 그 형벌 같다고 느꼈다. 심소천은 아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죽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겸에게 차를 올리다가 화상을 입었을 때 쓰라린 한편으로 기묘한 만족감마저 느꼈다. 평북의 가문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이걸 보라고. 당신들이 흠집 날까 벌벌 떨던 몸에 드디어 흉이 생겼다고.
그날 밤 소천은 많이 울었다. 시녀들은 상처 난 데가 아파서 우는 줄 알았겠지만, 정말 크게 다친 부분은 따로 있었다.
‘차라리 내가 백치였다면 좀 더 버티기 쉽지 않았을까?’
이따금 소천은 품어선 안 되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조금만 더 모자랐다면, 생각이 적었다면,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에 춥지 않고 매일 배곯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인간이었다면 훨씬 나았을 텐데.
혹은 이런 용모만 아니었어도 자신의 삶이 조금은 달라졌을 텐데. 가문 사람들이 과분한 욕심을 품지 않았을 테고, 그럼 원하는 일을 하나는 더 할 수 있었을 거라고.
소천은 원치 않는 가면을 벗으려는 듯 얼굴 가죽에 손톱을 세우다가 또 울음을 삼키곤 했다. 불평해선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세상엔 심소천보다 힘든 삶을 사는 자가 차고 넘치니까.
그에 비하면 소천은 어떤가. 지방 명문가에서 태어나 스스로 손수건 한 장 빨아 보지 않고 자랐다. 거기다 황제의 친동생과 혼인하여 왕비가 됐으니 봉무국 여인 중에 심소천을 부러워하지 않는 이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숨이 막히는걸.’
소천은 입술을 깨물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공허함과 갑갑함에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모두가 바라 마지않는 왕비가 됐지만 자신은 여전히 작은 실수가 두려워서 처소를 벗어나지 못했다. 단왕부는 친정과 비교 불가하게 자유로운 분위기인데도 그랬다. 소천만 혼자 다른 세계에서 살았다.
흠집 나선 안 된다. 트집이 잡혀선 안 된다.
처소에 혼자 있는데도 자꾸 사람들의 말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대신 매 맞던 아이의 피투성이 종아리가 떠올랐다.
미안하다며 약을 주었더니 그게 또 말이 새어 나가 매질을 당했다. 이후 계집종은 소천의 모든 호의를 거절했다. 말을 걸지도 말고 안타깝게 쳐다보지도 말고 그냥 제발 잘못만 하지 마시라며 소천을 밀어냈다.
대체 그게 뭐 어렵냐고. 아가씨는 자기처럼 힘들게 일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가만히만 계시면 되지 않느냐고.
그래서 소천은 가만히 숨만 쉬며 살았다. 누군가를 돕진 못할망정 해를 끼칠 순 없으니까.
하지만 많은 것이 그러하듯 언젠가는 때가 온다. 제 안의 메아리를 무시하며 견뎌 오던 날들이 더 이상 못 버티겠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소천에겐 올해 봄이 그런 순간이었다. 가지에 새순이 돋고 꽃봉오리가 맺히는데, 사방에서 넘쳐흐르는 생동감에 질식할 것 같았다.
‘스무 살이면 다들 좋은 나이라고 말하지. 천지 모르던 시절은 지났고, 아직 병으로 누울 나이는 아니니까. 게다가 왕비마마는 이토록 아름다우시니 앞날이 구만리와 같다고……. 한데 난 알아. 사실 나아지리란 희망 같은 건 없어. 심소천은 벌써 끝까지 온 거야.’
눈물이 고였다. 스스로의 탓으로 돌리자니 의아함이 솟구쳤다. 자신은 단 한 번도 부귀영화나 평생 서로 은애하는 상대를 바란 적이 없었다. 소천은 그저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여칙(女則) 대신 소설집을 택할 수 있었으면 했다. 단왕비도 같이 연극을 보러 가자는 권유가 들어오면 몸이 안 좋다고 둘러대는 대신 선뜻 응하고 싶었다.
그럴 용기가 있기를 바랐다. 한 번이라도,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다. 죽지 않고 이생에서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엔…… 이렇게 되어 버렸지만.”
“선자, 눈 뜨셨네요?”
시야에 불쑥 들어온 소녀의 얼굴에 소천은 숨소리도 못 내고 얼어붙었다. 겁먹은 와중에도 동그란 만두 두 개를 엎어 놓은 듯한 소녀의 머리에 이승에 두고 온 시녀 상아가 떠올랐다. 소녀는 상아보다 두어 살 어려 보였다.
‘하나 이래 봬도 저승의 관리일 거야. 심기를 거슬러선 안 돼.’
소천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었다. 보통 이렇게 갑자기 일어나면 머리가 핑 도는데 오늘은 어쩐 일로 멀쩡했다. 다리가 후들거리지도 않았다. 소천은 이 모든 게 저승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여겼다.
“단왕…… 평북 심가의 소천, 인사 올립니다.”
예를 거둬도 좋다는 말이 돌아오지 않았기에 소천은 한동안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무릎 굽힌 자세를 유지했다.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주기가 시작된 걸까?’
소천이 이런 의혹을 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소천은 감히 무릎을 펴지 못하고 눈동자만 움직여서 상대를 살폈다.
소녀는 빨간 입술을 삐죽이더니 투정 섞인 말투로 대꾸했다.
“선자, 절 또 놀리시는 거죠? 어떻게 백 일 잠에서 깨자마자 가여운 맹아를 놀리세요. 정말 너무하셔.”
맹아가 소녀의 이름인가 보다. 소천은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손을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심가의 소천, 맹아 님께 인사 올립니다.”
“네, 네, 선자께서 그러기로 마음먹으셨으면 어쩔 수 없는 거죠. 맹아에게 무슨 힘이 있겠어요. 에고, 내 팔자야.”
소녀가 한숨 쉬며 손에 든 쟁반을 내려놓았다. 따뜻한 물이 담긴 대야와 명주수건, 찻잔이 차례로 탁자 위에 놓였다. 왕부에서 받던 아침 시중을 축소시킨 것 같았다. 남의 시중을 드는 건 처음이지만 이 정도라면 소천도 해낼 수 있을 터다.
소천은 조심스런 손길로 수건을 든 다음 맹아가 세안을 마치길 기다렸다. 상전이 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들기 전에 수건을 건네주어야 했다. 그런데 맹아가 세안을 시작하지 않았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소천이 움츠러들었다.
잘못하면 안 돼. 잘못하면 안 돼.
죽음과 함께 사라진 줄 알았던 환청은 기어코 저승까지 따라붙었다. 소천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 염치 불고하고 여쭙니다. 저기…… 저승에서는 세안 시중을 어떻게 드는지요.”
맹아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 소리가 채찍처럼 소천의 등에 내리꽂히는 것 같았다.
실망하신 거야. 묻지 말고 눈치껏 모셨어야 했는데.
수건을 쥔 손이 가늘게 떨렸다.
“비록 선자가 점쟁이 할머니의 경고를 무시했고, 맹아의 충언도 듣지 않으셨지만! 어쨌든 차가운 강물에 빠져 기절하셨으니 맹아는 무척 걱정을 했었답니다. 한데 눈 뜨자마자 신나게 절 놀리시는 모습을 보니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지네요.”
맹아가 이마를 짚었다.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가 소천의 손에서 수건을 빼 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대야를 눈짓하며 말했다.
“하여튼 무탈하시니 다행이에요. 이제 얼른 씻으세요.”
“……네? 제가 씻는 건가요?”
“빨리요. 선자가 강에 빠진 이후로 계속 주무신다는 소식에 태율 진선께서 사향원(思香園)의 옥로를 보내 주셨다고요. 마시면 심신이 상쾌해지는 아침 이슬이라지요? 저도 딱 한 모금만 주세요. 네?”
소천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세안을 마쳤다. 맹아가 하는 말을 절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강에 빠진 것까진 맞다. 근데 저승에선 ‘죽었다’고 하지 않고 ‘잔다’고 표현하나? 생전의 이름 대신에 ‘선자’라고 부르고?
질문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은데 어쩔 수가 없었다. 소천은 부디 맹아가 너그러운 성정이길 빌었다.
“맹아 님, 자꾸 여쭈어 죄송합니다. 태율 진선께선 누구신지요?”
“선자의 대사형이시죠. 어화둥둥 우리 막내가 몸에 밴 분 말이에요. 극락정의 우희 선자, 사향원의 태율 진선. 다른 분들도 읊어 드려요?”
“아, 아뇨…….”
소천이 찻잔을 건네받았다. 뚜껑을 열자 싱그러운 풀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맡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향내와 달리 양은 형편없이 적었다.
“하지만 난 대사형이 없는데.”
소천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로 찻물을 삼켰다. 옆에서 보던 맹아가 히익, 숨을 들이켰다.
“왜 양칫물을 드세요?”
“아…… 이게 양칫물이었나요? 소천이 맹아 님께 사죄드립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깨달음에 두 사람은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둘은 그제야 뒤늦은 질문을 던졌다.
“낭자 이름이 심소천이시라고요?”
“제가 백 일 동안 잠을 잤다고요?”
소천과 맹아는 서로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들짝 놀랐다.
“그럼 우리 선자는 어디 계신데요?”
“대체 여기가 어딘가요?”
맹아가 답하기 전에 소천이 한 번 더 물었다. 아까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떨리는 목소리였다.
“여기, 저승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