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법-172화 (172/173)

#172화 냉전과 열정 사이 (1)

2018.10.22.

어느 곳에서나 시대와 신분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이야기였다.

그중 사람들이 단연 좋아하는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타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제국 얀스가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라가 큰 만큼 유명인들에 대한 이야깃거리는 끊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황후 클로렌스의 이야기라던가, 로맨스 소설을 아직도 읽는다는 황제 이오지프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아니면 그들의 딸인 황녀 이자벨이라던가.

그러나 실상 이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이는 황제와 황후가 아니었다.

제더카이어 하인트 공작과 루시펠라 아이딘 백작. 사람들은 이 둘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다.

사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제더카이어 하인트 공작은 전쟁의 영웅이었고, 무력으로 얀스가르에 견줄 사람이 없는 일인자였다. 막강한 군사력과 땅, 그리고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그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당연했다.

문제는 루시펠라 아이딘이었다. 그녀는 아름다워서 사교계에 데뷔했을 당시, ‘얀스가르의 샛별’이라는 칭호를 선황으로부터 얻었다.

그러나 그녀가 진정 유명한 이유는 그 아름다운 외모 때문이 아닌, 그녀가 여자임에도 작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가문의 복수와 스스로 작위를 잇기 위해 레이디였던 아이딘 백작이 영지전을 벌여 제국에서 손꼽히는 강력한 가문인 이드리스 공작가를 멸문시킨 일은 너무도 유명한 일이었다.

그녀의 별명은 얀스가르의 샛별에서 이슈타르가 되었고, 그녀는 뭇 남성들처럼 정식으로 ‘백작’으로 살아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목을 끌었지만, 결혼 시 성을 바꾸지 못하게 하는 법과 대리인에 대한 법률을 개정한 이후, 약혼자였던 제더카이어 하인트와 결혼까지 했다.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는 그들은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최근, 어느 백작가의 연회에서 사람들은 이들에 대해 여느 때처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요새 그 둘,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게요. 보아하니 대화를 잘 안 하는 것 같던데.”

“황녀님의 생일 파티 때 이후로 그런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저번 회의 땐 눈 한 번을 안 마주치더군.”

“둘이 싸웠을까요?”

“내가 보기엔 분명 저 둘은 냉전 중이야.”

“헤어지려는 것일지도 몰라요.”

“에이, 그냥 흔한 부부 싸움이겠지요.”

“하인트 공작께서도 이제 조금 평범한 여자를 원하는 것일 수도 있지.”

“하인트 공작도 ‘공작부인’이 필요해진 겁니다. 아이딘 백작이라니, 그런 특이한 경우를 참아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않습니까.”

“집에는 여자가 있어야 해. 그런데 서로의 집에 번갈아 들락거리다니,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인가.”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게 이들이 싸웠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소문은 점점 더 과장되어, 이들이 헤어질 수도 있다는 추측마저 나왔다.

***

“요새 싸웠나?”

이오지프의 말에 제드는 정신을 차렸다.

“싸워?”

제드가 얼굴을 찌푸리며 되묻자 이오지프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도는 것 같더군. 그러니까, 이미 갈라설 준비를 했다나 뭐라나.”

“미친 소리로군.”

제드는 소문을 미친 소리라 한 번에 일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오지프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도는 건 어찌 되었든 이유가 있지. 근거가 있냐 없냐는 둘째 문제고. 제드, 내가 보기에도 좀 이상해.”

“이상하다니 뭐가?”

“그러니까, 아이딘 백작과 네가 교류를 안 한다는 말이야. 이번 회의 때도 확실히 그랬어.”

“그랬나?”

제드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을 이었다.

“회의 때, 눈을 마주치며 연인들의 눈빛이라도 보내야 했다는 건가? 그러면 또 나는 세기의 사랑꾼이 되고, 내 아내는 공사를 구분 못 한다는 소리나 듣겠지.”

제드의 냉소적인 말에 이오지프가 하하, 웃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없다면 아이딘 백작은 왜 그랬지?”

“내 아내가 왜?”

“그냥, 좀 뭔가…… 고민이 많아 보였다고나 할까? 보니까 대화도 없고. 뭔가 고민이 있어 보이는 것 같던데. 난 그래서 너희가 냉전 중이라고 생각했지.”

“그런 낌새는 없었는데. 내 아내가 나한테 화가 날 만한 일이 있었던가?”

“나한테 그걸 왜 물어?”

이오지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점점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저놈이 소위 말하는 무뚝뚝한 기사라고들 하지만, 사실 엄청 섬세한 인간이었다.

루시펠라가 화가 나거나 무언가 서운해하는 걸 눈치 못 챌 사람은 아니었다. 심지어, 루시펠라 역시도 화가 나면 딱히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편이었다.

제드가 보기에 이들의 사이는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심지어 이오지프마저도 이들 사이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들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없다는 말인가. 이오지프가 고민에 잠겼을 때, 제드가 말했다.

“나는 그냥 황녀 전하의 생일 기념 연회를 보고 그간 루시펠라의 생일을 챙기지 않았던 걸 깨달았을 뿐이야. 그래서 생각할 게 좀 많았고.”

“생일을 안 챙겨?”

“그래, 생일을 만나고 나서 단 한 번도 챙긴 적이 없었으니까.”

“허, 참. 생일을?”

이오지프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연인 간에 그럴 수 있는가. 보통 연인이 되면 제일 먼저 생일부터 챙기지 않는가?

이오지프의 어이없다는 눈초리에 제드가 변명하듯 말했다.

“챙겨진 적이 있어야 챙기지.”

생일을 조용히 보내는 가문도 있으므로 하인트 공작가가 대외적으로 생일 파티를 열지 않았던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조용히 보내는 게 아니라, 아예 안 보냈던 모양이었다.

“난 내 생일도 챙긴 적이 없어.”

생일이 태어난 날이라는 것 이외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심지어 그는 그걸 축하하는 귀족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생일도 언제인지 가물가물한데, 대체 누구의 생일을 챙기라는 것인가.

하지만 이자벨 황녀의 생일 파티를 보고 그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자그마한 어린애가, 모든 이에게 탄생을 축하받는 것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이 태어난 날을 축하하는 날.

이오지프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의 마음속에 큰 울림이 일었다.

그는 루시펠라가 더없이 소중했다. 그런 사람이 태어난 날은 당연히 특별해야 함이 옳았다.

결국 자신은, 자신이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가족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하는 노력은 자신이 생각하는 범위 내의 노력이었다. 자신은 언제나 루시펠라에게 완벽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완벽하긴 개뿔, 제드는 스스로를 반성했다.

살짝 풀이 죽은 제드를 보고 이오지프가 물었다.

“그간 사귀었던 여자들은? 그런 걸 가르쳐 주지도 않았어?”

“내가 그간 사람을 엄청 많이 사귄 줄 아나 보지? 그리고 다짜고짜 생일을 말하는 사람을 내가 사귀었을 것 같나?”

제드가 살벌한 어투로 대답했다.

그것에 이오지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좋은 관계로 발전했다고 해서 다짜고짜 자신의 생일이 언제니 선물을 내놓으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이상하긴 했다.

“지금이라도 생일을 축하하면 되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어.”

“문제라니?”

“에스텔의 생일은 언제냐 이 말이지.”

“…….”

“대체 생일을 언제로 쳐야 하지? 루시펠라의 생일? 아니면 에스텔의 생일? 루시는 자기를 루시펠라라고 부르라고 했지만, 어찌 되었든 에스텔이라 에스텔의 생일을 챙겨줘야 하지 않나? 그런데 에스텔의 생일은 언제지?”

고민하면 할수록 점입가경이었다. 그간 생일을 챙겨주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반성하며 앞으로 어떻게 할까 고민했더니, 어느 쪽 생일을 챙겨줘야 하는지 애매했으며, 심지어 다른 쪽은 생일조차 불명이었다.

“내 아내는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자신의 생일을 혼자 보내왔던 거지. 나란 놈은 남편인데 그것도 몰랐고 말이야.”

‘에스텔’의 자아를 가진 루시펠라가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생일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니 자기 자신이 더 쓰레기같이 느껴졌다.

제드의 어두운 표정을 본 이오지프가 혀를 찼다.

“아이딘 백작이 심란해하는 게 이 이유 때문인 건가?”

“아니, 생일에 대해서는 내가 돌려서 물어본 적이 있는데, 아무런 생각도 없어 보였어.”

“하긴…….”

“게다가 그런 걸 가지고 ‘나’한테 서운해할 성격은 아니잖아.”

제드의 성격상 루시펠라가 생일을 가지고 서운해하는지 어쩐지 눈치를 보았을 터였다.

하지만 루시펠라가 마냥 제드에게 입 다물고 서운함을 느끼는 성격도 아니었고. 그가 ‘생일’ 때문은 아닌 것 같다고 느끼면 그런 거겠지.

뭐가 문제냐고 생각했는데 이런 문제였다니, 이것은 이오지프도 생각하지 못했다.

생일이 두 개. 심지어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생일은 모른다.

“와, 너 어떻게 하냐.”

이오지프가 혀를 차며 말했다. 제드 역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 녀석들한테 알아보면 되지 않아? 그 ‘에스텔의 얼샤 친구들’ 말이야.”

제드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그놈들과 연락할 길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비상 연락처를 두고 갔고, 과거 루시펠라가 테미르의 칼에 맞아 쓰러졌을 때 요긴하게 썼으니까.

제드의 표정을 본 이오지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아, 아아, 알겠다. 혹시라도 ‘그놈’의 귀에 들어갈까 봐 싫은 거지?”

이오지프가 묻자, 제드가 대답 대신 더욱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일단 그 ‘친구들’에게 5년이나 지나서 에스텔의 생일이 언제입니까, 라고 물어보다니, 얼마나 한심한가.

분명 그놈들은 길길이 날뛸 것이다. ‘단장의 생일도 모르다니,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어쩌면 그녀의 옆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살아 있는 ‘그놈’의 귀에 들어간다면…….

그놈이 듣고 작은 승리감을 느끼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얼샤의 역사서를 몇 번이고 읽고, 심지어 사람을 시켜 조사를 했어. 그런데 찾을 수가 있어야지.”

제드가 도저히 못 찾겠노라고 두 손, 두 발을 다 들던 버나드를 떠올리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 이오지프가 피식 웃었다. 그야말로 사랑에 고민하는 이의 모습이었다.

그때, 제드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간 오늘이 에스텔의 생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군.”

“아무 의미 없다니, 나랑 만나는 게 아무 의미 없는 거야? 나 이 나라 황제인데?”

이오지프의 물음에 제드가 뭐라고 하려던 찰나였다.

“우아!”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참고로 이오지프는 낮잠을 잔 아이를 안고 있는 상태였다.

제드와의 대화로 인해 깬 모양이었다.

“아이고, 우리 공주님 깼구나.”

이오지프가 자신의 품에 안긴 아이를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찬란한 금발과 더불어 초록빛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이자벨은 웅얼거리더니 이오지프의 뺨에 손을 댔다.

“빠!”

이자벨의 입에서 나는 소리에 이오지프가 눈을 크게 떴다.

“제드, 방금 들었어?”

제드는 눈썹이 찌푸려지려는 것을 참으며 말했다.

“그래, 들었어.”

“그치, 방금 너도 확실히 들었지?”

“…….”

“아빠, 아빠, 아빠라고 했어! 우리 이자벨은 천재야. 오구오구, 우리 이자벨, 아빠한테 아빠라고도 부르고 아빠는 정말이지 행복해 죽을 것 같단다.”

혀 짧은 소리를 내는 이오지프를 보며, 제드는 구역질을 할 것 같은 느낌을 참았다.

자식을 아끼는 건 좋다. 그러나 그것도 적당히 해야 할 거 아닌가.

아빠라는 소리는 진즉부터 해왔다. 딱히 특별한 일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라고 불러주면 꼭 주위 사람에게 들었는지 확인하며,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처음 봤을 땐 좋아서 그렇구나, 넘겼지만, 그것이 열 번을 넘기면 확실히 보는 쪽에서도 짜증이 밀려오는 법이었다.

“제드, 너도 이 기쁨을 알아야 할 텐데.”

“미친놈, 다신 아내한테 아이를 낳지 않게 하겠다고 한 놈이.”

제드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클로렌스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기까지의 이오지프를 말하자면, 그는 진상이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이오지프는 출산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얼굴이 새파래졌다.

생살을 찢고 아이가 나온다는 고통은 상상만 해도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을 꼭 제드를 붙잡고 토해내는 것이 문제였다.

“제드, 그거 알아? 입덧이 그냥 음식 냄새만 맡고 하는 게 아니라, 물 냄새만 맡아도 한대. 그런데 배는 고프대. 이게 살아 있는 고문 아니야? 어떻게 섭취해야 할 음식을 애를 가졌다고 못 먹지?”

“제드, 그거 알아? 애를 가진다고 배만 나오는 게 아니라, 온몸이 다 붓는 사람도 있대. 뼈도 약해지나 봐.”

“제드, 그거 알아? 애를 낳을 때 생살을 찢고 나온대. 그런데 이게 잘못되면……. 아니, 끔찍해서 말을 못 하겠군.”

“제드, 그거 알아? 애를 낳는다고 끝이 아니래. 몇 달 동안 계속계속, 하혈하는 모양이야. 임신하면 몸이 망가진다는 게 몸매가 망가진다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냥 몸이, 건강이 크게 나빠진다는 소리였어. 젠장! 내가 왜 애를 만들어서!”

“제드…….”

나중에 보다 못한 클로렌스가 남들도 다 그런다며 적당히 하라고 말하자, 이오지프는 남들도 다 그렇다면 출산할 때마다 사망자는 왜 나오냐는 말로 애는 다시없을 거라고 펄펄 뛰었다.

이오지프의 이런 행동에 제드는 ‘임신과 출산이 미치는 여성의 신체 변화’에 대해 줄줄 꿰게 되었다.

제드는 그 짜증 나는 나날들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아이딘 백작이 아이를 낳기 싫대?”

이오지프의 물음에 제드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이야기해 본 적은 없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건 아는데, 아이딘 백작의 의사는 물어봐야 하지 않겠어? 본인의 몸이니 말이야.”

제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물론 그 말은 맞았다.

“결혼도 겨우 한 거잖아. 그걸 하려고 그간 우리가 얼마나 고생……. 어라, 설마 그거 때문 아닐까?”

“뭐?”

“아이딘 백작도 뭔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다고 했잖아. 아이를 낳고 싶어 했던 건 아닐까?”

“무슨…….”

“황후가 이자벨을 보고, 갑자기 자식을 낳고 싶어 하는 귀부인이 늘었다고 그러더라. 윈터 경도 나한테 이자벨 같은 자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랬지”

“뭐?”

“생각해 봐. 이자벨같이 귀엽고 깜찍한 아이를 보면 누구라도 애를 가지고 싶어진다고. 우리 이자벨은 누구나 인정하는 귀엽고 깜찍한 딸이니까!”

제드가 눈을 크게 떴다. 개소리라 생각했지만. 그러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항상 철저하게 피임을 했고, 루시펠라는 아무런 이의도 없었다. 하지만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은가. 갑자기 아이를 낳고 싶을 수도 있었다.

루시펠라와 클로렌스는 절친한 사이였고, 아이를 낳아 기뻐하는 클로렌스를 보며 루시펠라가 부러움을 느낄 수도 있었단 말이다.

그러던 중 자신이 생각에 빠져 있느라 진짜로 루시펠라와 교류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루시펠라는 사람들이 없을 때면 애정 표현을 자주 하는 편인데 요 근래 그런 적이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자벨 황녀의 생일 파티 이후로 그랬던 것 같은데,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게 아닐까?

그러고 보면 오늘은 그가 아이딘 백작저에 찾아가는 날인데, 언제 오냐는 연통조차 없었다.

이오지프의 말이 맞는 건가? 진짜 아이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고?

제드는 에스텔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물론, 결혼한 사이에 아이에 대한 고민은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 오히려 그들 사이에 아이를 낳는 건 나쁘지 않았다. 지금부터도 가신들이 계속 말하는 후계자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우선 그녀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것이 괜찮을 리가 있겠는가.

고민하는 제드를 본 이오지프가 말했다.

“아무튼, 고민해 봐. 아이 문제야 지금부터 상의해도 되니까. 생일 문제도 그냥 네가 자존심상 물어보지 않은 거잖아? 아이딘 백작이 그런 걸 말한다고 서운해하진 않을 테니 물어봐. 소문이 저렇게 났는데, 오해받지 않겐 해야지.”

이오지프가 말하자 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오지프는 때론 짓궂지만, 때로는 연애에 있어서 좋은 조언자가 되었다.

생일에 대해서 조금 더 고민해 볼 생각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더러 냉전 관계라고 손가락질하는 건 더 짜증이 났다.

그리하여, 그는 이오지프의 충고에 따라 오늘 모든 걸 이야기해 보기로 하며, 단단히 마음먹고 백작가를 찾아갔다.

마차를 탄 제드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진짜 왜 연통이 없었을까? 언제나 빨리 오지 않냐는 식의 연락을 보내지 않았나? 아내의 생일에 집중하느라, 정작 아내에 대해 집중하지 않았다.

잠시 후 도착한 아이딘 백작저는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그건 겉모습뿐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용인들은 혼비백산했고, 무언가 서두르고 있었다.

허둥지둥하는 것이 한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그것이 께름칙하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그가 얼굴을 찌푸리며 루시펠라의 방으로 들어갈 때였다.

“제드!”

루시펠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밝은 목소리에 찌푸렸던 제드의 표정이 확 펴졌다.

자신에게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그녀는 어째서인지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대부분 바지를 입었던 터라 그 모습에 그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루시펠라가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뒤꿈치를 들더니 조용히 입을 맞췄다.

갑작스럽게 퍼부어지는 키스에 제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 이내, 그녀의 진한 애정 표현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한참의 열렬한 입맞춤이 끝나고 루시펠라가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

“생일 축하해, 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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