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법-150화 (150/173)

#150화 그해 겨울

2018.08.06.

“아이딘 백작령, 말씀이십니까?”

남자의 물음에 테미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아이딘 백작령. 그곳에 영지민인 척 잠입한 뒤 틈을 봐서 루시펠라 아이딘을 납치해.”

그 말에 남자가 이해가 안 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오나 전하, 아이딘 영애는 영지전으로 분명…….”

“만일을 대비하는 거야. 잠입을 하게 된다면 아이딘 백작 영, 아니, 백작이 이길 시에도 그녀가 방심한 때를 틈타서 그녀를 죽일 수도 있으니까.”

“…….”

“물론 절대 이길 리는 없지만 말이야. 그녀가 이기면 그녀를 죽이고, 그녀가 진다면 시체를 바꿔치기해서 내게 그녀를 데려와.”

“…….”

“실수 없게 해야 할 거야. 내가 너희 길드에 돈을 꽤나 많이 쓰고 있으니까. 미래를 생각한다면 알지?”

황제가 될 미래를 언급하자 남자가 움찔하며 허리를 숙였다.

“실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자의 깍듯한 대답에 테미르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는 루시펠라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대로 끝낼 수는 없지.”

그는 루시펠라를 곱게 죽일 생각 따윈 없었다. 자신이 말했던 대로 루시펠라 아이딘은 가장 비참하게 죽어야만 했다.

그가 혀를 날름거리며 입술을 핥았다. 그의 눈이 뱀처럼 빛나고 있었다.

***

이드리스 공작은 칼리드를 바라보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우리 사이가 돈독한 줄 알았더니, 공에게 그렇게 비밀이 많았을 줄은 몰랐지.”

“…….”

“조국과 상관을 배신한 개를 받아줬더니, 이젠 나를 물려고 할 줄이야.”

“죄송합니다, 이드리스 공.”

이드리스 공작의 폭언에 칼리드가 드러낸 것은 분노가 아니라 사과였다. 칼리드는 그의 발치에 망설임 없이 무릎을 꿇었다.

명백한 굴종의 표시. 그것을 본 이드리스 공작이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아, 이해하네. 공이 루시에게 품은 마음이 지나치게 크다는 건 똑똑히 알았으니까.”

“…….”

“여인에게 품은 연정이 그리 깊으면 그럴 수도 있다네. 아이딘 백작도 아내에 대한 사랑이 참으로 대단했지.”

그것은 이드리스 공작이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경고였다. 그에 칼리드가 더욱더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이길 싸움이라는 건 공이 더 잘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피차 빨리 끝내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래야 영지가 받을 피해도 적고, 시간 낭비도 안 할 텐데 말이야.”

“…….”

“아직 자네에겐 대리인 자격이 남아 있지? 그렇다면 아이딘 가를 도와도 문제가 되지는 않을 터. 루시를 도와준다고 말하게.”

“도와준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전쟁의 전 자도 모르는 여자애가 아니던가. 공이 도와준다고 하고 나를 도와달라는 말일세.”

“…….”

칼리드가 이드리스 공작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렇다면 그 아이의 목숨을 살려는 주겠네. 듣자 하니 아이딘 백작이 얼샤에도 작은 땅을 가지고 있다지? 그곳에서 둘이 여생을 보내는 게 어떤가? 내 부족함이 없게 해주겠네.”

칼리드의 두 눈이 흔들리는 것을 본 이드리스 공작은 미소를 지었다.

칼리드는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아이딘 백작이 나를 믿어준다면, 그리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이드리스 공작의 뜻대로 칼리드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용건이 끝나고 칼리드가 돌아가는 것을 본 이드리스 공작은 혼자서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순조로웠다. 계획이랄 것도 없지만 너무도 순조로웠다. 왜 세상은 이런 멍청이만 가득하단 말인가.

그는 호화로운 잔에 포도주를 따라 마셨다.

앞으로 거머쥘 부와 권력에 벌써부터 심장이 뜨겁게 뛰고 있었다. 한참 기분이 좋던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라.”

들어오는 이는 다름 아닌 그의 딸 멜로즈였다.

그는 딸에게 미소를 지으며 푹신한 소파에 기댔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멜로즈는 아버지를 오랜만에 만남에도 웃지 않은 채 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왔으면 앉지 않고 무엇을 하는 거냐.”

그의 말에 멜로즈가 자리에 앉았다. 어색한 침묵 속 이드리스 공작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 때문에 온 거냐?”

“남편에게 저번 회의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들었어요.”

이드리스 공작이 미소 지었다.

“아아, 그래. 계집애가 전쟁이라니, 참으로 어리석지 않더냐. 그 멍청함이 아직도 우습구나.”

“그 애가, 아버지께서 아이딘 백작과 아이딘 백작부인을 살해한 거라고 주장하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그 말을 들은 이드리스 공작이 와인잔을 놓았다.

“아니길 바라느냐?”

“정말 그렇다면 정말로…… 그 애의 부모님을, 아버지가 죽인 건가요? 그러니까, 그 애와 저랑 처음 만날 때, 아버지는 이미 그 애 어머니를 죽였던 건가요?”

멜로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것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이드리스 공작이 말했다.

“왜, 새삼 그 애가 불쌍하더냐?”

멜로즈는 대답 대신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한참 후 망설이듯 이야기를 꺼냈다.

“꼭 영지전을 하셔야 하나요?”

멜로즈의 물음에 이드리스 공작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멍청한 계집애가 스스로 청한 것이다. 한데 거기서 내가 거절을 했어야 한다는 거냐?”

“…….”

멜로즈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대신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 바반드 백작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 어떨까요?”

“바반드 백작?”

“아버지는 전쟁을 치르신 적이 없잖아요. 분명히 백작은 조언을…….”

“어린 계집과 전쟁하는데 내가 그놈에게 도움씩이나 청해야 하는 것이냐!”

그 말은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었다. 이드리스 공작이 버럭 소리치자 멜로즈가 몸을 움츠렸다.

“설마, 그 멍청한 계집에게 내가 질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에요, 아버지. 레이디가 어떻게 전쟁을 하겠어요.”

“그렇다면 바반드 백작가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말거라! 바반드 백작 영애의 마땅한 잘못이었으니까!”

그는 바반드 백작과의 싸움을 떠올리고 이를 갈았다.

바반드 백작 영애는 자신의 아들이 다른 여자를 만난다고, 이곳으로 찾아와 감히 따져 물었다.

남자가 꼭 한 여자만 만나야 한다는 법은 없다.

심지어 결혼한 것도 아닌데 다른 여자를 만난다고 감히 백작 영애씩이나 되는 이가 자신의 아들에게 따져 묻다니, 그건 바반드 백작의 교육이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나 백작은 딸을 두둔했다.

바반드 백작은 오랫동안 그와 함께해 왔다. 서로의 자식을 약혼까지 시킬 정도로 그들은 돈독했다. 그러나 자식 문제로 멀어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사실 자식 문제는 핑계일 거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2황자 놈에게 붙으려고 그런 거겠지! 그런 괘씸한 놈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그것도 내 딸이 그런 말을! 그가 분노로 씩씩거렸다.

“죄송해요, 아버지. 저는 그냥 아버지가 걱정되었을 뿐이에요.”

멜로즈가 간절한 표정으로 말하자 공작은 그제야 화를 가라앉혔다.

딸아이는 심약한 여자다. 자신을 걱정한 것이니 그럴 수도 있지. 원래 여자들이란 잔걱정이 많지 않은가. 그는 오랜만에 보는 딸아이의 얼굴에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

“그런 쓸데없는 건 생각하지 말고, 네 남편에게 올봄부터 바빠질 테니 단단히 각오하라고 전해두거라.”

“…….”

“걱정 말거라, 멜로즈.”

“그 멍청한 루이보스 놈의 딸이 무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러는 거냐. 나는 이 일을 봄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 참을 수가 없을 뿐이란다.”

이드리스 공작이 미소를 짓자 멜로즈가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공작은 멜로즈가 여전히 치맛자락을 꾹 쥐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멜로즈는 자신의 아버지가 한 행동에 충격을 받았다. 멜로즈는 루시펠라를 미워하면서도 왜 그 계집애가 자신을 미워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이유가 이것이었다. 아이딘 백작부인을 자신의 아버지가 죽였다는 것.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원수의 딸인 자신이 얼마나 미웠을까?

게다가 그녀는 아이딘 백작까지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잃어버렸다. 그녀가 가진 원한은 상상을 초월할 터였다.

그렇지만 멜로즈는 루시펠라가 마냥 감정적으로 영지전을 요청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루시펠라는 어느 때를 기점으로 분명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직도 기마회에서의 루시펠라 아이딘의 행동을 기억한다. 정말 그녀가 아무 생각 없이 영지전을 하자고 주장했을까?

그녀는 루시펠라 아이딘이 불쌍했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의 패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멜로즈는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원래부터 아버지는 영지민들에게 가혹했지만, 영지의 주 수입원이 고갈되고 나서는 더욱 대놓고 영지민들을 쥐어짰다.

황제 폐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일부러 건드리지 않는 거라고 남편은 말했다. 그리고 꼭 얀스가르에게 복속당하기 전 얼샤의 모습이 이와 똑같았노라고 덧붙였다.

그런 사람들을 징집한다면 그들이 과연 아버지를 위해서 싸우겠는가?

심지어 이드리스 공작은 전쟁을 제대로 치러보지도 않았다.

이드리스 공작령은 얀스가르의 거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었기에 그들은 전쟁 따윈 경험해 볼 기회조차 없었다.

게다가 기사의 수준 역시도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이드리스 공작령의 기사들은 봉신들의 자제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명예직’이었으니까.

황태자 일파에 전쟁에 제대로 참여한 이는 바반드 백작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드리스 공작은 그의 조언을 들을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너무나 잔혹한 자신의 아버지를 보았다.

분명 아버지를 사랑하고 승리를 기원한다. 그러나 마냥 순수하게 그것만을 바랄 수는 없다는 것이 서글펐다.

***

“꼭 이렇게 하셔야겠습니까?”

제드는 버나드의 물음에 대답 대신 고삐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출발하지.”

“각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이 시기에 수도를 떠나시다니요.”

“수도에 있어봤자 대체 뭐가 달라진다는 거지?”

버나드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며칠 전, 이오지프와 제드가 크게 싸웠다는 것은 수도의 모든 이에게 다 알려진 사실이었다.

제드는 다시 돌아오지 않기로 작정한 듯 공작령으로 내려갈 거라고 선언하곤 수도의 모든 이가 다 알도록 요란한 준비를 해댔다.

그것이 꼭 이오지프에게 보라는 것 같았다.

“아이딘 영애, 아니, 아이딘 백작은…….”

버나드의 말에 제드의 두 눈이 좁아졌다.

“별로 듣고 싶지 않군.”

제드의 차가운 말에 버나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체 왜 이렇게 일이 된 건지 모르겠다. 아이딘 백작 영애와 싸웠다는 건 잘 알겠는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심지어 아이딘 백작은 이미 영지로 내려가 버렸다. 그 소식을 듣고도 제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주군의 속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무, 무슨 일이십니까?”

버나드는 제드의 시선을 따라갔다. 하늘 위에서 새하얀 눈이 팔랑이며 떨어지고 있었다.

“벌써 눈이 내리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지나치게 이르군요.”

눈이 내린다. 가을이 채 다 가기도 전에 겨울이 다가왔다는 소리였다.

“이번 겨울은 참으로 혹독하겠어.”

“그러게나 말입니다.”

겨울은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든다. 온기를 가지고 있던 생명이 너무나 쉽게 사그라들고는 했다.

제드는 고개를 들어 꺼먹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맞았다.

올해 처음 내리는 눈. 그것이 쌓이면 골치 아픈 문제가 유발되었으나 조용히, 얇게 내리는 눈은 기이한 운치가 있었다.

제드는 그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출발한다.”

한참 후, 그는 다시 한 번 다짐한 듯 말을 몰았다.

그렇게 하인트 공작이 사실상 황위 계승 싸움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이 수도에 퍼졌다.

***

“눈이 많이 오네요, 부인.”

“그러게 말입니다.”

루시펠라의 말에 에레네 부인이 대답했다.

눈 때문인지 하늘이 구름에 가려졌음에도 바깥이 새하얗게 빛이 났다.

“영지까지 내려와 주셨는데, 아무래도 수도로 돌아가시기까지 조금 묵으셔야 될 것 같아요. 수도에 일정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요, 항상 바쁜 건 아니니까요. 묵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더 가르칠 수 있을 겁니다.”

에레네 부인의 대답에 루시펠라가 미소 지었다. 그러던 그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벌써부터 눈이 내리다니, 겨울 대비를 잘 해놨는지 염려스럽군요.”

루시펠라가 눈을 보며 한숨을 내쉬자 그것을 본 에레네 부인이 웃었다.

“이제 보니 어엿한 영주님이 다 되셨군요.”

“그런가요?”

“네. 아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이들은 눈의 아름다움만 칭송하는 법이지요. 하지만 백작님께서는 이제 겨울 대비를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확실히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다면 눈의 아름다움을 좋아했겠지.

하지만 루시펠라는 에스텔이었을 적, 대부분 눈 때문에 고생하는 쪽이었기에 반사적으로 그 말이 나온 것이다.

아직 어엿한 영주는 아니지 않을까. 루시펠라가 머쓱하게 생각했다.

두 사람은 눈이 내리는 창밖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에레네 부인이 입을 열었다.

“참으로 재미있지 않습니까, 백작님?”

“무엇이요?”

“저는 아들을 잃고 친척도 모두 잃었습니다. 제가 우리 가문의 작위를 잃었던 이유는, 대리인이 될 남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

“제 가문과 작위는 내 남편과 제 아들이 물려준 마지막 유산과도 같은데 말이지요. 그걸 여인이 물려받는다는 건 생각도 못 했어요. 백작님 같은 사람이 10년만 더 일찍 나타났다면 허망하게 작위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겁니다.”

에레네 부인이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루시펠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에레네 부인이 겪은 일을 감히 공감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지 그녀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기십시오, 백작님.”

“…….”

“반드시 이겨서 스스로를 증명해 보이십시오. 드레스를 벗고 그 옷을 입으셨다면 마땅히 그리하셔야 합니다.”

루시펠라는 자신의 옷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드레스를 입고 있지 않았다. 라흐시 공작처럼 그녀도 바지 차림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의 사교계가 아닌 이곳에서 이렇게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루시펠라는 그녀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백작님은 참으로 훌륭하지만 독특한 제자입니다.”

에레네 부인이 빙그레 웃었다.

루시펠라는 자신이 입은 옷을 바라보았다. 이전, 남자들의 눈요깃거리가 되기 위한 승마복과는 달리 여체를 부각시키지 않는 옷은 확실히 숨쉬기도, 활동하기도 편했다.

그에 그녀는 새로운 예법의 습득이 필요했다. 그녀가 습득한 ‘레이디’의 예법은 우아했으나 바람에 팔랑이는 꽃처럼 연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영지민에게 여린 모습은 분명 좋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참, 외람되지만 백작님. 좀 전에 방으로 오면서 소식을 들었습니다.”

에레네 부인의 말에 루시펠라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소식이요?”

“하인트 공작이 영지로 내려갔다는군요.”

“영지로요?”

루시펠라가 눈을 크게 떴다.

“2황자 전하와 크게 싸웠다고 들었습니다. 황위 싸움에 더 이상 관여치 않을 생각인가 봅니다.”

제드가? 이오지프와 싸웠다고? 대체 왜?

그러다 루시펠라는 제드가 아직도 화가 나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결국 그는 루시펠라가 영지로 내려오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만나러 오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지금까지 편지조차 없었다.

루시펠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 사람은 아직도 제게 화가 많이 나 있는 모양인가 봐요.”

“…….”

“적어도 그 사람은 날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너무 제 위주로 생각한 거겠지요. 그 사람도 필사적으로 절 지키려고 애썼는데 그 노력을 무시한 거니까.”

“…….”

“역시 저는 그 사람이 바라는, 지켜지기만 하는 레이디가 될 수 없었어요. 그건 결국 아무것도 못 한다는 소리와 똑같으니까요.”

“저는 백작님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알아요, 저는 틀리지 않았지요. 그렇지만 그 사람에게 이건 다른 문제니까요.”

루시펠라는 창밖을 보았다. 여전히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이 눈이 그치고 봄이 와서 모든 게 다 끝나면…… 만약, 내가 이긴다면 그 사람은 과연 저를 그대로 사랑해 줄까요?”

에레네 부인은 답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두 사람 사이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고 있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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