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 법
2018.07.19.
그녀의 목소리가 회의실에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이상하게도 여자들 특유의 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닌, 단호한 힘이 실린 거센 목소리였다.
대리인을 선택하지 않고 스스로 작위를 주장하다니. 그에 모든 이가 아연하여 루시펠라를 바라보았다.
황제가 얼굴을 찌푸리며 낮은 숨을 내뱉었다.
제드는 루시펠라에게 시선을 옮기다 라흐시 공작을 보았다. 그녀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숨길 수 없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루시펠라를 바라보았다.
설마 라흐시 공작을 데려온 것도 이오지프 녀석의 계산이었나?
그가 이오지프를 바라보자 이오지프는 입을 떡 벌린 채, 가식적인 연기를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됩니다!”
“여자가 작위 승계라니요!”
“여자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철없는 레이디의 말입니다. 폐하, 이건 말도 안 됩니다!”
무수히 많은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관들 역시 당황한 표정이었다. 칼리드는 창백한 얼굴로 루시펠라를 바라보았다. 이드리스 공작 역시도 헛웃음을 지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입니까. 아무래도 영애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잠시 미친…….”
“저는 미치지 않았고, 지극히 정상입니다, 폐하.”
루시펠라가 미소 지으며 또렷하게 말했다. 황제가 입을 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영애는 짐을 능멸하는 것인가?”
“아닙니다.”
“얀스가르에서 여성은 작위를 물려받을 수 없다.”
“그것은 어째서입니까?”
루시펠라가 묻자 황제가 대답했다.
“제국의 땅을 다스리는 자리이다. 사람을 다스리는 곳에 나약한 여자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폐하, 나약한 여자가 어째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가르침을 주십시오.”
루시펠라가 공손한 표정으로 말하자 황제가 말했다.
“땅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마땅히 땅을 지키기 위해 전투조차 불사해야 한다. 그것을 레이디인 그대가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해.”
“영주는 영지를 다스리며 지켜내야 하기 때문에 가녀린 레이디로서는 그것이 불가능하시다는 겁니까?”
“그렇다.”
루시펠라의 명료한 요약에 황제가 대답했다.
황제는 이제 어떻게 할 거냐는 얼굴로 루시펠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드는 루시펠라의 굳은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눈은 기이할 정도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에 제드는 기시감을 느꼈다. 반짝거리는 두 눈은 분명 누군가와 닮아 있었다. 제드는 그 얼굴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폐하, 기꺼이 전투를 해 보이겠습니다.”
그에 사람들이 경악 어린 소리를 냈다. 황제 역시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입꼬리를 틀어 올리며 물었다.
“영애가 전투를 하겠다는 것인가?”
“네. 검을 들어 영지를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입증해 보이겠습니다.”
“…….”
“제게 물려진 작위를 인정해 주십시오, 폐하. 폐하께서, 얀스가르를 이끌어간 모든 선황제께서 아이딘가에 주셨던 영지를, 아이딘 가의 후손인 제게 물려주십시오!”
그녀의 말에 황제가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증명해 보이겠는가? 증명하는 법도 영애가 마땅히 생각해 왔겠지?”
황제의 죽어가던 눈에는 희열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제드는 그에 불안감을 느꼈다. 최악의 배신자인 칼리드 루이르크를 죽이지 않고 받아들였을 때처럼 기이하고 비틀린 호기심이 황제의 구미를 당긴 모양이었다.
“잠시만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루시펠라가 허가를 구하자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난 그녀는 귀족회의에 참여한 귀족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다시 앞을 바라보며 지체 없이 누군가를 가리켰다.
“나, 루시펠라 아이딘은 여전히 선대 아이딘 백작의 살해를 지시한 가문이 이드리스 공작가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백작 부인의 발병과 죽음에도 이드리스 공작이 관여했을 거라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루시! 아까부터 편지와 이야기가…….”
“본가는 이드리스 공작가와 양립할 수 없는 원한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이 원통함을 풀 길이 마땅히 존재하지 않으니, 하여 폐하께 요청드립니다.”
그녀는 황제를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이드리스 공작가와 영지전을 허가해 주소서.”
영지전은 가문끼리의 분쟁이 해결되지 않을 시, 황제에게 청하여 가문과 가문이 벌이는 결투였다.
기본적으로 ‘결투’라는 취지에 걸맞게 한쪽이 이기면 나머지 한쪽의 가문은 사라졌다. 가주의 목숨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했다.
즉, 루시펠라는 자신이 아이딘 백작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면 죽음을 택하겠다고 말한 것과 같았다.
루시펠라의 말에 회의장 안은 싸늘한 침묵이 자리 잡았다.
제드는 자신이 회의 전에 했던 추측이 모조리 틀렸음을 깨달았다.
이것은 아주 철저하게 계획된 연극의 무대였다. 심지어 황제마저도 그것에 이용당했다.
제드는 이오지프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제드의 시선에도 이오지프는 당황한 얼굴로 루시펠라를 바라볼 뿐이었다.
제드는 그것이 늘상 봐오던 저놈의 가식적인 연기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루시펠라를 향할 때, 이오지프가 고개를 살짝 돌려 제드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엔 미묘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그 쳐 죽일 얼굴을 보며 제드는 이를 갈았다.
이것은 칼리드와 이드리스 공작가를 이간질하려고 열린 것이 아니었다.
루시펠라가 작위를 계승하기 위해 이오지프와 루시펠라가 공모하여 만든, 루시펠라만을 위한 자리였다.
***
“영애는 제정신인가?”
이오지프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여기, 이드리스 공작에게 보내는 편지. 적당히 알아서 끼워 넣어줘.”
루시펠라는 책상 위에 편지를 올려놓고 미소를 지었다.
이오지프는 눈을 크게 뜬 채 루시펠라를 바라보았다.
“말도 안 돼. 이건 정말 무모한 짓이야.”
“무모한 계획이라고 생각해?”
“여자가 작위 승계를 받다니, 그게 용납될 리가 없어.”
“왜 안 되는 일이지? 여자가 남자보다 능력이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심약하고 감정적이기 때문인가?”
루시펠라의 물음에 이오지프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아는 레이디들은 남자보다 능력이 더 뛰어났고, 심약하고 감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 이상하지. 내가 요즘 들어 생각해 봤는데, 여자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비극은 우리가 똑같은 사람으로 대접받지 않아서 생기는 일들이더라고.”
작위를 물려받을 이가 없어 귀족에서 평민이 된 에레네 부인, 화풀이 대상으로 살해당한 여자, 황태자에게 폭력을 당한 진짜 루시펠라, 작위를 물려받았음에도 자신의 숙부보다 자리를 잡지 못한 라흐시 공작, 약혼을 결정할 권한이 없어 고통받았던 클로렌스와 대리인 상속으로 고통받는 루시펠라, 얼샤의 모든 악업을 짊어지고 멍청하기 때문이라고 죽어서도 비난과 조롱을 받는 에스텔.
“생각해 보면 그들이 능력이 없지 않았어. 나도 능력이 있었지. 에스텔인 나는 몇 번이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왔어. 난 남자처럼 자라왔으니까 그럴 수 있었지. 그렇다면 여자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말은 틀렸다는 말이 되는 거야.”
루시펠라의 말에 이오지프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얀스가르도 여성이 작위를 승계받았던 역사가 있었어. 하지만 어느 여자 백작이 젊어지기 위해 영지민의 피로 목욕한 잔혹무도한 짓을 저지른 이후로 없어졌지. 사람들은 그것을 여자가 작위를 받으면 안 된다는 근거로 말하고 있어.”
“그렇다면 묻겠는데, 영지민을 불에 태워 죽인 이드리스 공작은 왜 남자의 무능을 증명하는 게 아니지?”
“아니, 그건…….”
“그 여자가 잘했다는 게 아니야. 제드가 그러더군. 딱히 그 여자 말고도 멍청한 이가 세상에 한가득이라고. 한데 왜 남자가 저지른 멍청한 일은 ‘남자’라는 집단의 무능함이라고 하지 않는 걸까?”
“…….”
“이상하지? 왜 레이디라는 약하고 보호만 받는 존재가 생겨난 걸까. 나는 항상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았어. 내가 여기서 이들의 법칙 안에 살다 보니 이들은 약한 이들이 아니었거든. 이들도 이들의 영역이 있고,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어.”
“…….”
“하지만 그 영역이 하찮아 보이는 건 이들이 무능해서도 약해서도 아니야. 애초에 주어진 범위가 그것뿐이었으니, 한정된 방법으로만 싸울 수밖에 없었던 거지.”
“영애, 그건…….”
“난 이 자리에 영애로 있는 게 아니야.”
루시펠라가 차갑게 말하며 말을 이었다.
“불과 예전에는 평민, 아니, 평민 남자가 기사가 되는 것도 힘들었지. 그러나 지금은 하인트 공작가를 시작으로 평민 남자가 기사가 되는 경우도 많이 늘고 있어. 예전엔 그랬다지? 평민은 병사나 되지, 귀족같이 귀한 피가 흐르는 고귀한 기사가 될 수 없었다고. 한데 여자는 왜 안 되지?”
“하지만 여자와 남자는 달라. 분명히 여자는 힘도 약하고…….”
“에스텔 슈페르트는 단순히 권력자의 개가 되기 위해 여자임에도 기사단장이 되어 그 날뛰는 야생마 같은 놈들을 이끌었을까? 정말 그 어리석은 국왕의 생각 때문이라고만 생각해?”
루시펠라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것은 레이디의 수줍고 얌전한 미소가 아니었다.
이오지프는 지금 이 순간, 루시펠라가 레이디가 아닌 기사 에스텔로 이곳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토라 기사단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얼샤의 잔당인 그들은 끝까지 에스텔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집단이었다.
이오지프는 날조된 역사가 아닌 진짜 진실을 알고 있었다.
여성임에도 그녀는 자신의 기사단을, 병력을 이끌어 승리를 거머쥐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녀는 스스로 그녀를 증명해 보였다. 그랬기에 이슈타르라는 어마어마한 별명이 그녀를 따라다녔다.
“얼샤의 라흐시 공작이 공작령을 어떻게 이끄는지 봐. 라흐시 공작은 알고 있지?”
알고 있다. 얼샤의 상속법에 따라 영지를 물려받은 젊은 여자 공작.
그녀가 이끄는 영지는 얀스가르에서도 꽤나 발전되고 안정된 영지 중 하나였다. 이미 라흐시 공작은 여자가 무능하지 않다는 걸 입증해 보였다.
“그리고 클로렌스를 떠올려 봐.”
클로렌스. 꽃과 같이 가련하고 아름다운 자신의 레이디. 그러나 그녀가 약했던가.
생각해 보면 그녀 역시도 그녀의 역할을 기민하게 파악하고 거기서 움직였다.
그런 그녀는 정말로 약한가.
“그 저택에 틀어박혀서 이 엿 같음에 대해 생각해 봤어. 참으로 불공평하더라. 남자들에겐 그냥 주어지는 걸 나는 받지 못해서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라 생각하니 짜증이 났어.”
“…….”
“그래서 증명하기로 했지. 사내놈들에겐 거저 주어지는 걸 내가 목까지 내걸면서 해야 하는 것도 상당히 기분 더럽지만 말이야. 그래도 나쁜 방법은 아니잖아?”
이오지프는 레이디의 탈을 쓴 기사를 바라보았다.
여자와 남자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클로렌스는 그렇게나 사교계에서 알아주는 이였는데 약혼자도 제대로 결정하지 못했다.
자신의 약혼녀는 너무나 현명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정말로 영지를 이끌어 나갈 능력이 없을까?
과연 그 드레스를 입고 점잔을 떨던 이들에게 그럴 능력이 없었던 것일까?
이오지프는 인정했다.
그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녀들의 무능을 기정사실화하며 그녀들이 기를 쓰고 내세우는 외모에 대해서만 칭찬했다.
이오지프는 루시펠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아름답던 외모보다 그녀의 빛나는 눈동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려운, 아니,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입에 담은 그녀의 얼굴은 누구보다 빛나 보였다.
“경, 그대는 제드의 도움을 받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알아. 그렇지만 이러면 제드가 죽을 위험에 처하지 않겠지.”
“대신 그대가 위험에 처하겠지. 제드가 화를 낼 수도 있어. 돌발 행동을 벌일 수도 있다는 말이야.”
“그건 내가 막을 수 있어. 제드는 날 사랑하니 내 말을 들어줄 거야.”
루시펠라의 말은 어딘지 모르게 가벼웠다. 그러나 반드시 그를 제어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레이디라는 게 답답해 보이지만, 또 보호받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핑계도 돼. 경은 그것을 던져 버리려는 거야.”
“상관없어. 나는 지켜지는 것보다 지키는 것을 선택할래.”
“…….”
“마냥 지켜지기만 하는 입장도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거든.”
어째서인가. 그녀의 몸은 여전히 레이디였지만, 그 얼굴 뒤에 기사 에스텔이 보이는 것 같았다.
루시펠라에게서 보이는 기백, 그 자신감은 언제나 자신을 숨기고 가면을 덧씌우던 레이디의 것이 아니었다.
루시펠라가 눈을 반짝이며 이오지프를 바라보았다.
“그쪽은 전쟁을 싫어하기 때문에 황제가 되고 싶다고 했지.”
“…….”
“죄 없는 사람이 죽는 게 싫으니까.”
“그래.”
“기사로서 말하는데, 때로는 유혈이 불가피할 경우가 있어. 바로 지금처럼.”
이오지프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 알고 있어. 너무도 잘 알고 있지. 항상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거든. 내가 내 형을 죽여야 하듯 말이야.”
“그걸 안다면 당신은 내가 모셨던 그 어리석은 국왕과 당신의 그 멍청한 형과는 다를 거라 해도 되겠네.”
“…….”
이오지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 대답할 가치를 못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을 눈치챈 루시펠라가 피식 웃더니 그러더니 별안간 이오지프를 마주하고 섰다. 그러더니 무릎을 꿇었다.
“경?”
“당신을 오늘부로 나의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충성 맹세를 했다.
이오지프는 그 모습을 보며 이것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그가 받아들여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말도 안 되는 제안에 동참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럼에도 왜 이리도 심장은 빨리 뛰는 것인가.
이오지프는 레이디의 충성 맹세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 날 도와준다고 약속해, 전하.”
그녀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난 전하에게 마땅히 승리를 안겨줄 테니까.”
어쩌면, 제드에게 모든 걸 맡기는 게 더 현명할지도 몰랐다.
그녀의 계획에 동참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위험부담이 컸기 때문에.
그러나 이오지프의 그 몹쓸 직감이 가리키고 있었다. 어서 그녀의 맹세를 받아들이라고. 그녀를 믿어보라고. 그는 자신의 직감에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기로 다짐했다.
이오지프는 그녀와 앞으로 벌일 일에 대해 상의했다.
그녀가 세운 계획은 무모하지만 촘촘했으며, 사람들의 본질을 꿰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역사의 기록대로 어리석지 않았다. 멍청하지도 않았으며, 자신을 고집하지도 않았다.
이오지프는 루시펠라와 미래에 대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
남자와 여자로서가 아닌, 군주와 신하로서.
모든 대화가 끝난 후, 루시펠라는 미소를 지었다. 창문에 비가 내리는 것을 본 루시펠라가 이오지프에게 말했다.
“그럼 난 돌아가 볼게.”
“바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인가?”
“아니, 제드를 만날 생각이야. 얼굴을 보고 싶어.”
“그래, 지금쯤 한참 너를 찾아다니고 있겠군. 어서 가보도록 해.”
이오지프의 말에 루시펠라가 인사한 후 재빨리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에 긴 머리카락과 치맛자락이 휘날렸다. 저런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레이디였다.
이오지프는 한참 동안 루시펠라가 나간 방문을 지켜보았다. 그는 지금 자신이 받은 충격을 음미했다.
그의 생각이 바뀌었고, 그를 이루는 세계가 바뀌었다. 그리하여 그는 세상을 바꿔야만 했다.
아직도 한 인간에게서 느꼈던 경외심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 대상이 ‘여자’라니, 그것도 놀라웠다. 그러나 그녀는 ‘여자’이기 때문에 경외받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마치 이미 다 정해진 것처럼 승리를 약속했다.
전쟁의 여신 이슈타르처럼.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그는 왜 시토라 기사단이 최초의 평민 여자 기사를 따랐는지 알았다.
에스텔 슈페르트에게는, 육신이 바뀌어도 굴복할 수밖에 없는 마력이 있었다. 아니, 그것은 마력이 아니다.
본인이 결정한 것을 밀고 나가는 추진력.
스스로를 믿는 고강한 자신감.
끝끝내 자신을 관철하는 그 꿋꿋함.
흔들리는 이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매료될 수밖에 없는 것들을 그녀는 가지고 있었다.
보호받지 않는다. 지켜지려고 하지 않는다.
스스로 오롯이 일어나, 스스로의 목숨을 내걸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쟁취한다.
자신이 속한 레이디가 사는 방식을 존중할지언정, 그들이 둘러싸이고 강요당한 환경의 부당함을 알고 그것과 기꺼이 싸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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