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법-144화 (144/173)

#144화 사내들과의 전쟁

2018.07.16.

루시펠라는 거울을 보며 서 있었다. 그녀는 허리에 손을 얹었다. 코르셋을 입지 않은 허리 선은 정리되지 않았지만 숨쉬기는 한결 편했다.

“이대로 괜찮을까요. 지금이라도 코르셋을…….”

하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녀는 루시펠라가 코르셋을 착용하지 않고 옷을 입자 불안해했다.

루시펠라는 검은색 드레스 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코르셋은 입지 않아. 숨쉬기 불편하니까.”

“네?”

“그냥 그렇게 알아둬.”

루시펠라의 단호한 말에 하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동료 하녀들과 눈짓을 주고받았으나, 모두 포기하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해, 이제 얼굴을 단장해 줘야지.”

루시펠라가 웃으며 말하자 하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루시펠라의 화장을 도와주었다.

생기 없는 볼에 분가루가 발라지고, 입술에는 진하지 않은 색의 루주가 덧발라졌다.

루시펠라는 멍하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코르셋은 벗었는데 얼굴엔 답답한 화장을 하다니, 이것도 우습네.’

루시펠라는 속으로 웃었다.

뭔들 어떤가. 몸이 답답한 코르셋을 벗었어도, 얼굴엔 답답한 화장을 할 수도 있는 거지. 그녀가 앞으로 벌일 일에 비하면 이 정도는 하잘것없는 작은 일탈에 불과했다.

그녀의 윤기 나는 긴 머리가 단정하게 빗겨지고, 틀어 올려 장식하는 대신 검은 공단 리본 하나로 수수하게 묶었다.

화려한 장식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단장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그러나 그런 수수한 차림에도 하녀들은 어째서인지 루시펠라에게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눈부시게 화려한 차림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시선이 가는 것일까.

어여쁨이라는 외적 아름다움과는 달랐다. 루시펠라는 어쩐지 이전과는 달라 보였다.

“고마워. 마음에 들어.”

루시펠라가 하녀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보는 루시펠라의 미소에 그녀들은 어쩐지 마음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딘 백작이 죽고 나서 그녀는 거의 미소를 짓지 않았다.

특히나 장례식 이후로 그녀는 부쩍 우울해한 듯 방에 틀어박힌 채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루시펠라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긴 머리를 매만졌다.

그때, 루시펠라의 눈치를 본 용기 있는 하녀가 물었다.

“저, 아가씨.”

“응?”

“오늘은 왜 단장을 하시는 거예요?”

사실 루시펠라는 이제껏 거의 단장을 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돌연 오늘 몸을 단장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어딘지 긴장한 것 같았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그녀의 변화에 하녀들은 이 상황을 판단하려 애썼다.

혹시 아가씨가 루이르크 공작 각하를 받아들이려 하시는가?

하녀들 사이에 그런 추측을 담은 시선이 오갔다. 그러나 아가씨는 그들의 마음을 이미 읽고 있었다.

“루이르크 공작의 마음을 받아들여서 그러는 게 아니니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

루시펠라가 차갑게 말했다. 그에 하녀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루시펠라는 그녀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맹랑하긴 했지만, 자신이라도 궁금해할 것 같았기에 딱히 벌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고개를 숙인 하녀를 보며 루시펠라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렇게 궁금하면 알려줄까?”

그와 동시에 방 밖이 소란스러워지며 다투는 듯한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녀들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자 루시펠라는 올 게 왔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었다.

“사내놈들과 전쟁하러 가려고.”

문이 열리고 기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들어온 이들은 이 저택을 지키고 있는 2기사단이 아닌 황제 직속 기사단이었다.

***

귀족회의가 열리는 건 사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나라의 중요 정책에 대해서 황제와 귀족들이 논의하여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으니까.

제드의 아버지가 뻔질나게 드나든 곳이 바로 귀족회의였다.

그러나 오늘 열리는 귀족회의는 어딘가 달랐다.

황제는 수도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귀족에게 소집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 말인즉, 무언가 중대한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제드가 황급히 회의장으로 향하는 복도로 걸어가고 있었다.

설마 황제가 양위할 생각인가? 그것 말고는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그는 황제가 양위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그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제드.”

이오지프였다. 제드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사람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에게 걸어갔다.

“무슨 일이지?”

“그냥 불러봤어.”

제드는 저놈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여전히 태평한 놈이었다.

“폐하께서 어떤 일로 귀족들을 모두 소환한 건지 알고 있나?”

별로 기대하지 않고 물어본 질문이었으나 이오지프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얼굴을 찌푸린 제드가 의아한 표정을 했다. 좋은 일인가? 이오지프의 저런 표정을 보면 확실히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그게 뭐지?”

“알고 싶어?”

이오지프가 은밀한 대화를 하려는 듯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제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거리를 좁혔다.

“비밀이야.”

이오지프의 말에 제드의 얼굴이 와그작 구겨졌다.

회의 전 황자에게 폭력을 가하면 난리가 나겠지? 제드는 초인적인 인내로 뻗어 나가려는 주먹을 다스렸다. 이오지프가 그걸 보며 웃으며 말했다.

“네놈이 난리 칠 걸 아니까, 안 알려줘.”

“……그게 무슨 소리지?”

“그래도 너무 놀라지는 마. 소란 피우지 말라는 말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이오지프가 제드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등을 돌렸다.

저놈의 의뭉스러운 짓이 또 시작되었다.

제드는 눈썹을 찌푸렸다. 자신이 알기로 저놈도 별로 좋은 상태가 아닐 텐데, 이오지프는 묘하게 기분 좋게 흥분한 것 같았다. 원래 궁지에 몰리면 미친놈이 되는 건가.

그는 이오지프를 자신이 잘못 선택한 건 아닌지 생각하며 다시 회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드가 회의장에 들어가자 길쭉한 두 개의 테이블이 보였다. 테이블이 두 개나 마련되어 있는 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개회 전인지 회의장은 아직 어수선했으며, 먼저 도착한 중소 귀족들은 불안한 듯 눈을 굴리고 있었다. 이들의 태도를 보아 저들도 황제가 왜 그들을 불렀는지 알지 못하는 듯했다.

자신의 자리에 앉은 제드는 회의장을 훑어보았다. 그러다 바로 건너편에 칼리드 루이르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리 배정을 일부러 이렇게 한 것인가.

그는 칼리드 루이르크가 자신을 보고 오만한 표정으로 비웃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어두웠고 무언가 깊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때 칼리드가 제드를 눈치챈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이 적의, 아니, 살의를 띠고 있었다.

오늘은 미친놈이 많은 날인가?

현재 루시펠라의 약혼까지 취소시켜 억지로 데리고 있는 이는 저놈이다.

승리감에 취한 표정으로 자신을 볼 때는 언제고 저런 표정을 짓는단 말인가.

정작 가장 미치겠는 건 자신인데.

이놈이고 저놈이고 알 수 없는 놈 투성이였다.

그가 칼리드를 노려보려고 하니, 칼리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시선을 피한 채 얼굴을 찌푸렸다.

그걸 본 제드는 그에게 관심을 거둔 채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는 의외의 인물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저 사람이 저기 왜 있는 거지?

라흐시 공작이었다.

얼샤의 귀족까지 초대된 건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정말로 양위라도 할 생각인가.

그때, 라흐시 공작과 제드의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제드는 라흐시 공작의 주변에 있는 귀족들 전부가 그녀를 힐끔거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의장에 여자인 그녀가 들어온 것이 그들에게는 기이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심지어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차며 그녀를 대놓고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제드는 그걸 보며 무언가 도와주어야 할까 생각했지만 바로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자신에게 비호의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라흐시 공작은 당당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이들과 눈을 마주했다. 심지어 그녀는 그들을 한심하게 여긴다는 감정을 숨기지도 않았다.

제드는 그런 공작의 태도를 보고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하며 시선을 돌렸다.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 착석하는 것을 본 제드는 이드리스 공작이 아직까지도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 무슨 일이지?

제드는 얼굴을 찌푸린 채 생각에 골몰했다.

라흐시 공작에 이드리스 공작의 부재, 오늘 회의의 주제가 무엇인지 도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이드리스 공작을 제외한 모두가 도착하고 시간이 되었다.

황제는 정확히 정시에 들어왔다.

시종의 부축을 받는 황제의 뒤로 테미르와 이오지프가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 대신관 몇몇이 서 있었다.

제드는 미약하게 눈썹을 찌푸리며 신관들을 보았다.

왜 신관놈들이 저기 있을까. 이 자리에 또 그놈의 서약을 할 만한 일이 벌어질 건가?

황제가 들어오자 모든 귀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허리를 숙이며 일제히 입을 열었다.

“얀스가르의 태양이여, 영원하라.”

황제는 한 손을 들어 그들의 인사에 답하고 자리에 착석했다. 그는 귀족들을 둘러보곤 말했다.

“제국의 땅을 이끌어주는 이들이여, 그대들의 노고에 언제나 이 땅이 평온하다.”

“…….”

“오늘 그대들과 논의할 일은 그리 길게 이야기할 것은 아니다. 다만 짐이 함부로 결정할 일이 아니기에 그대들을 부른 것이다.”

“…….”

“그대들의 합리적인 결정을 기대한다.”

황제가 다시 손을 들자, 집행관이 탁상 위에 종을 울렸다.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지며, 이드리스 공작이 들어왔다.

“폐하를 뵙습니다.”

우선 이드리스 공작이 이때 등장할 건 그가 이때까지 오지 않았으니 짐작할 만한 일이었다.

제드는 팔짱을 낀 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이드리스 공작은 아이딘 백작가의 공동 대리인을 주장하였다. 그것에 대해서 일찍이 들어보지도 못한바, 나는 그대들의 의견을 구한다.”

공동 대리인? 이게 또 무슨 미친 소리인가. 제드는 이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욕설이 나오려는 걸 삼키며 이의를 제기하려다 이오지프의 표정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너무 놀라지 말라고 했지.

그렇다면 무슨 생각이 있는 건가?

그는 차분히 자세를 바로 했다. 생각해 보면 황제는 이드리스 공작을 견제하고 있었고, 그에게 순순히 대리인의 자격을 인정할 리가 없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아이딘 백작가의 공동 대리인 자격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이드리스 공작의 말에 제드는 힐끗 칼리드를 바라보았다. 칼리드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진 것으로 보아 그는 이것을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현 아이딘 백작가의 대리인인 칼리드 루이르크는 이리로 나오라.”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드는 이오지프를 바라보았다. 그는 저놈의 기분이 좋았던 이유를 알았다. 이드리스 공작가와 칼리드 루이르크를 이간질이라도 시킬 심산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이드리스 공작은, 칼리드 루이르크에게 모든 걸 맡기는 것보다 자신이 한발 걸치는 것이 재산을 운용하기엔 편할 테니, 공동 대리인이란 말이 솔깃했을 것이다.

그래 봤자 둘 다 황태자파이지 않나? 어쨌든 이오지프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제드가 힐난하는 듯 이오지프를 보았으나, 이오지프는 고개를 저으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에 제드는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상황을 보았다.

점입가경이었다. 사촌을 죽이고 여전히 재산을 탐하는 미친놈까지 등장하다니. 제드는 미친놈의 개싸움이 어디까지 가는지 보자고 생각했다.

칼리드는 이드리스 공작의 말에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표정을 차분하게 갈무리했다.

“저는 아이딘 백작에게 정당하게 ‘대리인’의 권한을 위임받았습니다. 공동 대리인에 대해서는 듣지 못한 사실입니다. 신관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맞습니다. 루이르크 공작께서는 합당한 절차에 따라 자격을 위임받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드리스 공작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예로부터 대리인은 대부분 혈연이 되어 왔습니다. 가문에 대해 어느 정도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아이딘 백작과 혈연이며, 막역한 사이입니다. 아이딘 가를 위해서는 제가 같이 대리인이 되는 편이 루이르크 공에게도 좋을 겁니다.”

제드는 생각에 잠겼다. 그가 생각하기로, 이오지프가 어떤 루트로 이드리스 공작에게 공동 대리인이라는 바람을 넣은 것 같은데 이유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때, 이드리스 공작이 말했다.

“그렇다면 물어보면 되지 않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공작?”

칼리드가 날카롭게 물었다.

“루시, 루시에게 의견을 물어보도록 합시다. 그 아이는 아이딘 백작가의 마지막 혈족이니 그 아이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이드리스 공작이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말하자 황제가 말했다.

“아이딘 영애, 회장에 들어오라.”

그에 제드가 눈을 크게 떴다.

루시펠라가 이곳에 와 있다고? 왜? 이드리스 공작은 설마 루시펠라를 믿고 대리인을 주장한 건가?

황제의 지시에 회장의 문이 열리고 루시펠라가 걸어 들어왔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루시펠라의 모습은 변한 게 없었다. 다만 얼굴선은 살짝 갸름해졌고, 몸 역시도 말라 보였다. 그러나 눈만은 빛이 나고 있었다.

제드는 가까이 보이는 루시펠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제드에게 단 한 번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였으나 원망스러울 정도로 냉담했다.

제드는 그것에 실망하다가도, 대체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가 냉정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설마, 루시펠라가 저번에 저택을 탈출해서 간 곳이 이드리스 공작가였나?

“날 믿어.”

루시펠라는 그때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스스로 오겠다고 했지.

그것을 떠올리자 제드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과 결혼하는 조건으로 저놈을 공동 대리인으로 선정하겠다는 거래를 이드리스 공작과 한 것이 아닐까? 이드리스 공작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니 틀린 추측은 아닌 것 같았다.

분명히 저놈이 악질이라는 것을 알 텐데 대체 왜?

제드는 초조한 표정으로 루시펠라를 바라보았다.

“얀스가르의 태양이여, 영원하라. 루시펠라 아이딘, 폐하를 뵙습니다.”

그녀는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황제에게 인사했다. 그녀는 치마를 잡은 채 우아하게 인사했다. 레이디 인사의 표본이었다.

“아이딘 영애, 아이딘 가문의 대리인 자격을 놓고 루이르크 공과 이드리스 공이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어떤 상황인지 들어 알고 있습니다.”

루시펠라가 또렷하게 말했다. 황제가 물었다.

“영애는 어떻게 생각하지? 이드리스 공작까지 공동 대리인을 지정하고 싶은가, 아니면 루이르크 공만을 대리인으로 지정하겠는가?”

제드는 눈썹을 찌푸렸다. 루시펠라는 고개를 들어 칼리드와 이드리스 공작을 바라보았다.

칼리드는 루시펠라를 노려보고 있었고, 이드리스 공작은 역겨운 가식을 두른 채 미소 지으며 말했다.

“루시, 네 의사를 말하려무나.”

“…….”

“네가 마땅히 원하는 대로 살도록 도와주겠다. 널 다른 이에게 맡긴다고 생각하니 불안하지 뭐냐.”

참으로 역겨운 인사였다. 이오지프가 말리지 않았다면 그는 당장에라도 뛰쳐나가 개소리하지 말라고 말했을지도 몰랐다.

루시펠라가 이드리스 공작을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녀는 황제를 보며 말했다.

“황제 폐하께 말씀 올립니다.”

“…….”

“저는 둘 다 원하지 않습니다.”

그 목소리에 회의에 참여한 귀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황제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애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이 사안은 대리인으로 누구를 정하느냐가 걸려 있다. 영애는 마땅히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 말에 루시펠라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제드는 이번에 루시펠라가 한쪽 무릎을 세운 채 꿇어앉은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레이디들의 인사가 아닌 남성 귀족의 예법이었다.

꿇어앉은 그녀는 잠시 숨을 들이쉬더니 입을 열어 소리쳤다.

“폐하, 저 루시펠라 아이딘은 아이딘 백작가의 정당한 작위 승계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dark

4